화산귀환-1627화
1627화. 좋은 게 좋은 거잖습니까? (2)
마치 ‘부들부들’이라는 표현을 몸으로 구현해 보이는 듯한 현종 앞에서 청명은 연신 입을 삐쭉거렸다.
“아니…… 내가 뭐 이상한 말 한 것도 아니고…….”
“뭐?”
“자, 잠시만, 맹주님! 고정하십시오!”
당군악이 기겁하며 급히 현종을 만류했다. 그 검 뽑는다고 저놈을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괜히 현종의 건강이 상할까 우려되었다.
붙잡고 늘어지는 당군악을 힐끔 본 현종이 이를 갈아붙였다.
“대체 청명이 너는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당연히 있는 놈 아닐까요?”
“그런 놈이 이런 짓을 해!”
청명의 입이 또 툭 튀어나왔다. 있다고 해도 화낼 거고, 없다고 해도 화낼 거면 애초에 물어보지를 말지.
“아니, 이게 뭐 어때서 자꾸…….”
“어때서? 어때서라니! 그 아이들이 뭘 안다고 당주직을 맡긴다는 말이냐, 대체!”
“물론 아는 거 없고 무식한 데다 제멋대로니까 영 못 미더워하시는 것도 이해는 가요.”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현종이 슬쩍 입을 꾹 다물었다. 내 입으로 미숙하다 할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저놈 입으로 들으니 묘하게 배알이 뒤틀려서였다. 어떻게 키운 아이들인데…….
“그런데 그건 반대로도 마찬가지잖아요.”
“응?”
“맹주님은 당주로 누굴 생각하고 계시는데요?”
현종이 살짝 머뭇대다 대답했다.
“그야…… 맹주 아래에 군사나 총사 같은 특별직을 제외하고 바로 당주를 둘 것이라면 당연히 한 문파의 장급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종리 장문이나 모용 가주 같은…….”
“그래서 그 양반들은 믿음직하고요?”
“아무래도…….”
그 아이들보다는, 하고 말하려던 현종의 입을 이어서 흘러나온 청명의 말이 틀어막았다.
“그 양반들이 뭘 했는데요? 그냥 직위가 문주일 뿐이지, 사파 놈들도 하는 패싸움 한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사람들 아니에요? 냉정하게 말해서 전쟁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치러 본 적 없는 양반들이에요.”
“…….”
“그런 백면서생(白面書生)같은 양반들을 그 많은 목숨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리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긴 한데, 어쨌든 지금까지 문주 자리는 지켜 왔으니까 그냥 왠지 잘할 것 같아서?”
가만히 듣던 현종이 살짝 움찔했다. 뭔가 개소리 같긴 한데, 또 일리는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아니, 태상장문인! 우리 사형제가 아무리 못 미더워도, 적어도 그 인간들은 수없이 목숨 걸고 싸워 온 경험이 있고, 사파와 정예들을 이끌고 마교와 싸워도 봤고, 해남을 이끌어서 강남을 빠져나와 보기도 했잖아요. 저 없이도 사람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단 사실은 이번 수로채를 상대하면서 증명했고.”
“…….”
“반면에 그 문주라는 양반들은 대체 뭘 증명했냐 이거예요. 문파를 잘 운영하는 능력? 그럴 거면 차라리 은하상단주님을 쓰죠. 그 양반은 돈이라도 잘 버니까.”
현종의 상체가 조금씩 뒤로 밀렸다. 딱히 기세를 담아서 하는 말도 아닌데 어째 밀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궁지까지 몰린 현종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 당군악에게 구원을 청했다.
“가, 가주님?”
“예?”
“가주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나는 말발이 달리니 어서 저놈의 개소리를 어떻게든 해 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현종의 간절한 바람을 분명 느꼈을 것임에도 당군악의 반응은 기대와 영 달랐다.
“저도 생각을 좀 해 보긴 했습니다만, 화산검협의 말이 그리 틀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예?”
현종의 눈빛에 배신감이 스쳤다. ‘여기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배신자 양반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당군악이 조금 씁쓸한 얼굴로 부연했다.
“예전이었다면 저도 당연히 반대했겠지만, 가문을 운영하는 능력이 전장에서의 판단이나 통솔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걸 뼈아프게 몸소 실감해 버린지라…….”
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현종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이 방정이지, 다급한 마음에 물어볼 사람을 잘못 찾고 말았다.
“가, 가주님. 저는 그런 뜻으로 여쭌 게 아니라…….”
“아닙니다. 당연히 하실 수 있는 질문이지요. 다만…… 저는 진심으로 화산검협의 선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력이 있거나……. 아니,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체면을 차릴 여유가 있었다면 반대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검증된 능력입니다.”
현종은 조금 떨떠름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묘한 기분에 빠졌다. 어쨌든 화산의 오검에게 그 많은 이들을 이끌 능력이 있다고, 무려 저 당군악이 인정한 것 아닌가?
맹주이지만 동시에 화산의 태상장문인이기도 한 현종으로서는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잠시간 들떴던 그 기분은 잠시 후 눈에 들어온 청명의 ‘거 보세요. 내 말이 맞지?’라고 뻐기는 듯한 표정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덕분에 흔들리려던 마음이 확고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니! 총사랑 부맹주가 찬성하는데!”
“내가 맹주다, 이놈아!”
“독재자!”
“시끄럽다!”
현종이 불을 내뿜었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결국 이건 악귀의 유혹이다. 절대 순순히 넘어가서는 안 된다.
현종이 당군악도 들으라는 듯 엄중히 말했다.
“이 의견대로라면 각 문파의 장로들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문인들까지 저 아이들의 지시에 따라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겠지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각 문파의 수장들이 이 안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보십니까?”
당군악은 살짝 고민하는 듯 침묵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받아들여야지요.”
“예?”
“받아들일 겁니다. 아니,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반발한다면 제가 받아들이게 만들겠습니다.”
현종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당군악은 되레 당연한 이야기라는 것처럼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애초에 권한과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건 그런 의미 아닙니까? 이 안에 반발하는 건 오히려 그들이 말로만 권한을 내려놓았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저들이 한 말이 진심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 안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현종은 휘둥그레 뜬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어째 이야기하면 할수록 당군악의 태도가 점점 더 확고해졌다. 그에 따라 현종은 점점 더 수렁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청명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다니까요? 아니, 뭐 대안이 있으면 저도 다른 방법을 택하겠죠. 그런데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니까요? 아니면 태상장문인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시든가요.”
“그…….”
“아. 참고로 말씀드리면 자리는 다섯 갠데, 천우맹에 속한 문주들 중에 다섯 명만 뽑아서 자리 채워 넣으려면 두엇 정도는 칼 물고 날뛸 수도 있다는 것도 감안하셔야 할걸요?”
현종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마귀다. 이놈은 마귀야.
“너,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로는 도무지 청명을 당할 수 없었던 현종의 시선이 이번엔 애꿎게 이곳에 불려와 있던 백천과 윤종, 조걸에게로 돌아갔다.
흡사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던 그들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당주요?”
“그래!”
“저희가요?”
“그렇다는구나.”
“왜요?”
조걸의 답에 현종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저것들을 당주를 시키잔다. 저런 것들을…….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으냐!”
“아니, 이게 말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이것보다 나은가를 따져 봐야 한다니까요! 대안이 없잖습니까, 대안이!”
“끄으으…….”
곧 넘어갈 듯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현종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야, 야 이놈아! 이대로 진행하면 천하의 동도들이 무어라 하겠느냐! 보나 마나 화산의 늙은 태상장문 놈이 욕심에 눈이 멀어 새파랗게 어린 자기 제자들을 맹의 당주 자리에 속속들이 앉혔다고 손가락질할 게 뻔하지 않으냐!”
“아, 그건 확실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장문인. 저는 여기서 종남 장문인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 그건 무슨……?”
청명이 히죽 웃었다.
“종남 장문인도 문파의 미래를 위해 오욕을 감수하셨는데, 태상장문인께서는 어차피 이제 장문인도 아니시잖아요? 욕 좀 먹는 건 감수를……. 흐엑!”
청명의 얼굴 바로 옆으로 매화검이 팽팽 돌며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렇다고 냅다 검을 던져요! 고운 얼굴에 흠집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안 고우니 던진 거다! 백천이면 안 던졌지!”
“……아. 이건 좀 상처 되는데.”
현종이 끙끙 앓으며 머리를 감쌌다.
농처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이게 영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걸 현종도 알고 있다. 모르면 차라리 나을 것을, 알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한 것이다.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돼. 명분이 없다. 이건 자칫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맹을 주저앉히는 일이 될 수도 있어.”
그 말에 백천과 윤종, 조걸이 물개처럼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태상장문인.”
“살면서 들은 말 중 제일 미친 소리입니다.”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리고 그 와중에 이설 사고는 왜 빠진 건데?”
“사고는 안 할 것 같아서.”
“뭐? 그럼 우린 시키면 한다 이 말이냐?”
“응.”
“…….”
뭔가 부정하기는 좀 애매하고……. 아니, 억지로 시키면 결국 죽는소리하며 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러면 기분이 뭔가…….
그때, 조걸의 두툼한 어깨 위로 윤종과 백천의 손이 동시에 턱 올라왔다.
“받아들이자.”
“솔직히 저놈 말이 사실이긴 해.”
“……이럴 겁니까? 진짜로?”
왜 자발적 노예로 살려고 하는 거냐고!
그 와중에도 현종은 머리를 부여잡고 앓기에 바빴다. 청명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니까 지금 다른 문주님들이 반발할까 봐 못 하겠다, 이 말씀인 거잖아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라…….”
“그럼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면 되는 거죠?”
“뭐?”
“기다리세요. 허락받아 올 테니까. 쯧. 정말이지 하나하나 직접 하지 않으면 뭐 돌아가는 게 없다니까. 에휴, 내 팔자야.”
“자, 잠시만! 청명이 너 어디 가는 거냐?”
“허락받으라면서요? 문주님들 빨리 만나서 받아 오려고요. 아오, 안 그래도 바쁜데! 후딱 다녀올게요!”
자리를 박찬 청명이 빛살처럼 뛰쳐나갔다. 현종이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듯 눈을 치떴다.
“마, 말려.”
“예?”
“자, 잡아라! 저 미친놈 당장 잡아! 빨리!”
“청명아, 이 새끼야!”
“아니, 이건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 거라고!”
“제발 사람답게 좀 굴어라, 제바아아알!”
불이라도 끄려는 듯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화산 사람들을 멍하니 보던 당군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바람 잘 날 없는 문파라니까.’
그보다, 오검을 당주로 앉힌다라. 잠시 그 의견을 곱씹어 보던 당군악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청명의 의견이 마구잡이식은 아닌 것이, 현재 정도 무림에서 저들만큼 많은 위기를 겪어 온 이들도, 그 위기 속에서 사람을 이끌어 본 이들도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간 오검은 착실하게 누군가를 이끌 준비를 해 왔다. 자의인지, 잘 계획된 타의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안건이 그저 순간적인 기지만으로 나온 건 아니라는 의미일 터,’
어쩌면 화산검협은 훨씬 이전부터…….
끝없이 이어지려던 생각을 당군악은 고개를 내저으며 끊었다.
‘너무 과한 생각이지.’
그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설령 준비는 했더라도 시기마저 이렇게까지 맞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만약…… 이 모든 일이 청명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강호사에 다시 없을 파격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파격으로 빚어 낸 것 같은 장일소조차도 입을 떡 벌릴 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래도 솔직히 궁금하긴 하군.’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저 화산의 오검이 이끄는 천우맹이 과연 어떤 모습이 될는지 말이다.
당군악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이는 가벼운 흥분이자, 무인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기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