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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36화


1636화. 짐승도 고마움은 압니다. (1)

“흐읍!”

“좀 천천히 가요!”

“한시가 바쁘지 않소!”

남궁도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런 그를 뒤쫓는 당소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뭐 이렇게 무식한 사람이 다 있지?’

세상의 무식이란 무식은 청명과 조걸이 모조리 쓸어간 줄 알았더니, 여기도 적당히 나눠 먹은 모양이다. 저런 몸뚱이로 저리 무리를 해 대는 것을 보니.

외상이야 적당히 아물었다지만, 아직 내상은 반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저리 무리를 하다가는 어디 하나가 잘못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의원인 당소소는 그런 환자의 방종을 용납할 수 없었다.

파아앗!

“억?”

뒤쪽에서 날아든 당소소의 붕대가 남궁도위의 팔을 칭칭 감는다.

“더는 안 돼요. 속도 줄이세요.”

“아니, 소저. 이건…….”

“소저가 아니라 도장!”

“아……. 죄송하외다, 도장. 여하튼 지금은 한시가…….”

“네. 한시가 급하죠. 그런데 그렇게 달리다가는 소가주님이 한시바삐 저승으로 가실걸요?”

“…….”

“속도 줄이세요. 의원으로서 하는 말이에요.”

“……알겠소.”

의원이라는 말이 힘을 발휘했는지, 남궁도위가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의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정말…….”

답도 없다는 듯 그런 남궁도위를 바라본 당소소가 눈을 확 찌푸린다.

“소가주님이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난대요? 그럴까 봐 애초에 장로님을 보내신 거잖아요.”

남궁도위가 소매로 땀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숙부님은 나보다 훨씬 현명하게 일을 처리하실 분이지요.”

“잘 아시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꽁지에 불붙은 사람처럼 굴어요. 누가 보면 소가주님 없으면 천우맹이 망하는 줄 알겠네. 그거 자의식과잉이에요.”

당소소의 말에 남궁도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의식과잉이라…….”

“뭐, 그게 남궁세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남궁도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남궁세가에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게 아니오.”

“그럼요?”

“내가 없으면 무슨 일이 날까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날까 싶은 거요.”

당소소가 고개를 갸웃했다.

같은 말 아닌가?

“내가 없어도 청명 도장과 도장의 사형들이라면 어떤 일이든 대처할 거요. 절대 쉽사리 무너지지 않겠지. 그 상대가 저 패군이라 해도 말이오.”

“…….”

남궁도위의 목소리에는 확연한 신뢰가 어려 있었다. 누가 들어도 절대 예의상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느낄 만큼.

같은 문파도 아닌 다른 문파의 사람에게 저런 신뢰를 느끼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저와 나이도 그리 다르지 않은 이들에게?

“……그럼 문제없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사형들이 잘 알아서 하실 건데.”

“물론 그렇소. 하지만 그러니 억울하지.”

“네?”

남궁도위가 피식하고 웃었다.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지. 내가 없어도 해결되는 일이라니, 그건 내가 그만큼 하찮은 사람이라는 의미니까.”

“…….”

당소소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남궁도위를 바라본다. 이게 대체 무슨 논리인가.

하지만 남궁도위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참을 수가 없는 거요. 나라는 사람이 그 사람들이 세울 업적에 곁다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남궁세가 소가주로서의 내가 아니라, 남궁도위라는 한 검수로서 말이오.”

“……말은 좀 꼬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조연은 참을 수 없다는 말 같은데요.”

“맞소.”

남궁도위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 정도 욕심은 부려도 되는 것 아니겠소? 검수라면?”

당소소가 또다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여하튼 오대세가 놈들은 하나 같이 좀 이상하다. 하기야 오대세가 출신에, 저 화산의 제자인 그녀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없었지. 흑룡왕의 목을 베기 전까지는.”

“…….”

“하지만 이제 복수는 끝났소. 그러니 다음을 봐야겠지. 나는 그 ‘다음’에 내가 뒤처질까 봐 조바심이 나는 거요.”

당소소가 혀를 찼다.

어떤 면에서는 이 사람도 청명 사형과 비슷하다. 무언가 하나 이루고 나면, 절대 멈추지 않고 다음 할 일을, 다음 목적을 찾아 댄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언제고 힘이 다해 쓰러지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리고 궁금하지 않소?”

“뭐가요?”

“청명 도장 말이오.”

청명을 말하는 남궁도위의 두 눈에 살짝 흥분된 기색이 어렸다. 진지한 말을 늘어놓던 지금까지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살짝 장난기마저 섞여 있는 눈빛이.

“그 사람이라면 지금쯤 분명 일을 벌였을 거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그 사람 성격에 적당히는 없으니까.”

“…….”

이 말은 당소소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청명이 얌전히 며칠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건 그녀도 상상할 수 없다. 분명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고 위장이 쑤시는 일을 벌여 대고 있겠지.

“분명 말도 안 되지만 일리가 있는 일을 성난 황소처럼 밀어붙여 대고 있을 거요. 그게 뭔지 궁금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럼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날아오는 소식이라도 듣고 출발하는 게 옳지 않나요? 세상은 그걸 상식적인 처사라고 하는데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건 도장도 알지 않소.”

당소소가 답도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바뀌어도 적당히 바뀌어야지.’

물론 예전의 그 재수 없고 오만하던 남궁도위가 괜찮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방향도 뭔가 좀……. 적당히 절충할 수는 없는 건가?

“그럼 다행이네요.”

“뭐가 말이오?”

“곧 알게 될 테니까. 저기, 화음이에요.”

“아.”

남궁도위가 고개를 번쩍 들어 앞을 바라본다. 저 멀리 그들이 공들여 지은 화음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런 말은 좀 웃기지만 말이오.”

“네?”

“고향에라도 돌아온 기분이로군. 나는 막 안휘에서 온 참인데.”

자신이 말해 놓고도 우습다는 듯 남궁도위가 쿡쿡 웃어 댄다.

“갑시다. 고향이든 뭐든 친근하면 그만이지.”

남궁도위가 당소소를 남겨 두고 먼저 화음을 향해 내달렸다.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한 듯한데.”

“그러게요?”

“분명 또 무슨 일이 터진 거겠지.”

“그걸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 말하지 말아 주실래요? 저는 벌써 위장이 아프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일 거요. 그건 도장도 알지 않소?”

“……그렇겠죠. 너어어어무 빙빙 돌아 좋은 결과로 가서 그렇지.”

그 말은 차마 부정하기 어렵다는 듯 남궁도위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청명이 하는 모든 일이 그런 경향이 있긴 했다.

“여하튼 무슨 일인지를 일단 알아봐야…….”

“소가주님!”

그 순간이었다.

“음?”

“소가주님! 오셨습니까!”

남궁도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남궁명을 뒤따라 화음으로 향했던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굳이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들의 얼굴에 지어진 심각한 표정을 본 남궁도위의 감상이었다.

“가문을 해체하고……. 당을 신설해 가솔들을 그 당에 흩어 놓는다는 말이냐?”

“예!”

남궁세가의 검수 중 하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남궁명 장로가 이 일을 소가주님을 대신해 승인했습니다.”

“…….”

남궁도위가 제 볼을 두어 번 긁어 댔다.

“……상상도 못 한 일을 벌일 거라 예상은 했는데, 이건 그 이상으로 상상도 못 할 일이로군.”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나간 일일 거라 여기긴 했지만, 이건 애초에 발상의 차원이 달랐다.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계획하고 진행할 엄두를 내겠는가.

“다른 문파에서도 승인한 거냐?”

“그렇습니다.”

“흠.”

남궁도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들어 봐야겠지만, 영 대책 없는 계획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당연히 아니겠지. 그랬다면 화산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파들이 찬성했을 리가 없으니까.

‘아니지……. 그 사람이라면 입장에 관계 없이 결국은 찬성하게 만들었으려나.’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척,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게 지금껏 남궁도위가 보아온 청명의 방식이었다. 그 와중에 조금의 협박(?)과 공갈이 뒤섞여 들어가는 것뿐.

“소가주님.”

“음?”

“지금이라도 남궁명 장로의 방종을 벌하시고, 모든 일을 되돌리셔야 합니다.”

“…….”

남궁도위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남궁세가의 검수를 바라보았다.

“이만한 일을 장로가 결정하는 것은 완벽한 월권입니다.”

“예. 맞습니다, 소가주님. 그리고 가문을 해체하다니요. 남궁의 피가 흐르는 이들이 어찌 다른 이들의 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남궁에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소가주님뿐이십니다.”

“다른 문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부의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선에서 싸워야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들이 면식도 없는 이들의 명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궁도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여론이 좋지 않다고?”

“예.”

남궁도위의 감각에 주변의 다른 이들이 그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저들의 말을 막아서는 이가 없는 것을 보아, 바닥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너희는? 너희도 마찬가지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이유는?”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남궁의 검수 하나가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목숨은 아깝지 않습니다. 제 목숨 따위, 남궁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리되어 버리면 제 목숨의 대가를 맹과 화산이 모조리 가져가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저희가 어째서 그들을 빛내기 위해 목숨을 내던져야 합니까?”

그 말에 몇몇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를 허문다는 건 말은 그럴듯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문파의 힘을 저들 뜻대로 휘두르겠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렇게 승리한다 한들 우리에게 대체 뭐가 남습니까?”

“…….”

“저는 소가주님께서 나서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궁은 남궁의 이름 아래서 가장 빛날…….”

“그만해라.”

“소가주님. 남궁은…….”

“그 입 닥치라고 했다.”

말을 하던 이가 움찔하며 남궁도위를 바라본다.

살기 어린 목소리.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쓴 거친 말투였다. 그가 알기로 남궁도위는 단 한 번도 이런 말투를 쓴 적이 없다.

“소……가주님?”

남궁도위가 일그러진 눈으로 말을 하던 이를 쏘아본다.

“남궁의 영광? 지금 그런 말을 지껄였느냐?”

그 살기 어린 목소리에 검수가 목을 움츠린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남궁도위가 이리 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흑룡왕을 앞에 두었을 때조차 이리 노골적으로 노기를 뿜어내지는 않았다.

그 기세가 얼마나 차가웠는지, 당소소조차 움찔 물러날 정도였다.

“매화도에서 죽어 갈 때는 누구 하나라도 제발 도와만 달라고 고개를 조아리던 것들이……. 살 만해지니 그 입에 영광을 담아 대?”

“소, 소가주님.”

“사람이란 본래 간사하다. 그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남궁도위가 뿌득 이를 갈았다.

“적어도 남궁의 성을 쓰는 이가, 은혜도 모르는 짐승 같은 소리를 해 댈 줄은 미처 몰랐다.”

“…….”

그 기세에 눌린 이들이 남궁도위를 똑바로 바라보지조차 못하고 고개를 내리깔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되던 참이었는데, 덕분에 답을 알겠구나.”

남궁도위가 제 검을 움켜잡는다.

이건 화산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하면 강압이 되어 버릴 테니까. 그렇기에 남궁도위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맹의 처사에 불만이 있는 이들은 나서라. 너희가 지금까지 얼마나 큰 자유와 권리를 누려 왔는지 내가 뼈저리게 실감하게 해 줄 테니까.”

그의 앞에 선 이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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