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644화
1644화. 그래서 즐거우십니까? (3)
정적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먼저 물러선 건 다름 아닌 장일소였다.
한숨과 함께 다시 자리에 앉은 장일소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하자꾸나, 가명아. 이게 이렇게까지 너와 으르렁대야 할 일인지 모르겠구나.”
호가명은 대답 없이 장일소를 바라보았다.
“네 말이 옳다. 내가 여유를 조금 잃었던 것도 맞고, 마음을 과하게 급히 먹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란다.”
장일소의 민낯에 짙은 피로가 어렸다.
“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는 게 아니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저들을 짓밟아 발밑에 두는 쪽이지.”
“…….”
“그러니 내가 손을 다 놓은 것처럼 말하지는 말려무나.”
“……정말 그러십니까?”
“아닌 것 같으냐?”
장일소가 되물으며 호가명을 똑바로 보았다. 부드럽게 휘어진 초승달 같은 눈으로.
호가명은 눈을 감아 버렸다.
태도는 부드럽다. 잃었던 여유도 분명 어느 정도는 되찾았다.
하지만 지금 장일소의 말은 그저 완곡한 거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호가명이기에 밀려오는 허탈감을 어찌하기 어려웠다.
“……련주께서 그러길 원하신다면, 저는 당연히 그 뜻을 따를 것입니다.”
천천히 말을 내뱉은 호가명이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련주님께 하나만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장일소가 잠시 멈칫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굳이 그런 걸 묻지 않아도 된다. 언제든 물으렴.’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항상 입버릇처럼 해 대던 말임에도.
“련주께서는 납득하십니까?”
과연 그 질문에 장일소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가 들으면 뜬구름 잡는다고 느낄지도 모를 질문이다. 어쩌면 그게 무엇이냐고 웃어 버리고 넘길 질문.
하지만 장일소는 정곡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침묵했다.
“……즐거우신지를 물었던 이유는 달리 있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의……. 아니, 련주님의 처음 목적이었고, 스스로 가고자 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호가명의 목소리가 조금씩 더 침착하고 담담해졌다.
“련주님. 그자, 왕사를 기억하십니까?”
“……그래. 기억하지.”
“련주님의 은혜로 복수를 하고도 저는 항상 그를 생각했습니다.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미 모든 걸 가지고, 그걸 누릴 시간도 부족했을 이가 왜 우리 가문 같은 한미한 곳을 제 손으로 짓밟아 굳이 원한을 샀을까. 한때는 그토록 훌륭했던 이가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
“그때는 알 수가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해를…… 했다고?”
“예.”
“그자를?”
호가명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일소의 얼굴에 짧은 호기심이 스쳤다.
“그래. 무엇이었니, 네가 알아낸 이유는? 그 돼지 놈이 왜 너희 집안을 짓밟았다는 거냐? 그저 탐욕에 눈이 멀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으냐?”
“……없었던 겁니다.”
“음?”
호가명은 잠시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유 같은 건 없었던 겁니다. 아니, 필요하지 않았던 거지요.”
장일소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재물이란 무언가를 위해 모아야 할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어 버렸던 겁니다. 설령 죽는 순간까지 쓰지 못하여 손아귀에서 썩어갈지언정, 어떻게든 더 긁어모아 끌어안아야 하는.”
“…….”
“그러니 관계없었던 겁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저 거기에 재물이 있으니 죽이고 빼앗는다. 그저……. 예, 그저 그게 전부였던 거지요.”
한참 동안 호가명을 응시하던 장일소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열렸던 입이 다시 닫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기어코 그 말은 장일소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그 돼지와 같다는 거냐?”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밤바람이 두 사람 사이로 서늘하게 흘렀다. 차가워진 손끝을 살짝 비비며 호가명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궁금할 뿐입니다.”
“뭐가?”
“모든 게 무의미해지기 전에 강호를 발아래에 두겠다는 련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입니다. 그렇게라도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는 의미신지, 그게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 해도 강호를 손에 넣는 것 자체가 련주님에게 의미가 된다는 말씀이신지.”
“…….”
“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잠시간 침묵하던 호가명이 깊게 고개 숙였다.
“물러가겠습니다.”
“…….”
“잠은 좀 주무시길.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심력엔 한계가 있습니다.”
호가명이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장일소가 그런 호가명을 불러 세웠다.
“가명아.”
호가명이 걸음을 멈췄다. 평소와는 달리 몸까지 돌리지는 않았다. 그런 그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던 장일소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어렵게 떼어 냈다.
“만약 그렇다면 어찌할 셈이더냐?”
“…….”
“나 역시 그저 강호라는 불에 홀린 부나방처럼 구는 거라면, 의미도 없는 불길에 다가가 자신을 스스로 태우는 멍청한 작자라면…… 너는 어찌할 테냐?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테냐? 그게 아니면 내가 변했다고 침을 뱉고 돌아설 테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호가명이 몸을 돌렸다. 그리곤 늘 차분한 그 눈으로 장일소를 가만히 응시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드리워진 깊은 음영을 보며, 호가명이 말했다.
“그날.”
“…….”
“련주님께서 하찮기 짝이 없던 저의 원을 들어주신 그날 이후, 제가 련주님을 떠나는 일 같은 건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습니다.”
“…….”
“련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에 버림받고 가장 지독한 곳에서 몸부림치는 날이 온다면…… 그 곁에 마지막 남을 한 사람은 반드시 저일 겁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호가명은 굳이 그 말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으니까요.”
“…….”
“쉬십시오.”
깊게 읍을 한 호가명이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탁.
호가명이 닫고 간 문을 풀린 눈으로 바라보던 장일소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술병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산산이 깨어진 잔해와 다탁을 축축이 적신 술만이 손끝에 닿을 뿐이었다.
“하하.”
바래 버린 듯한 입술을 비집고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
하지만 그 웃음조차도 끝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깨어진 술병과 흘러내린 술을 거머쥐었다. 날카로운 자기 조각이 손에 파고들며 진득한 핏물이 투명한 술과 뒤섞였다.
그 고통을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장일소는 시선을 천천히 옆으로 옮겼다.
동경에 그의 얼굴이 어슴푸레 비쳤다. 화려하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한 치장과 화장으로 늘 화려하던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보이는 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한 사람의 모습뿐이다.
갈라진 입술과 눈 아래로 드리운 짙은 음영,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 표정까지.
결국 그가 손에 잡힌 병 조각을 동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탕 소리와 함께, 등잔에 기대어 세워져 있던 동경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하하. 몰골이 말이 아니로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
과거 호가명을 만났을 때도 장일소는 그때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이 손가락으로 움켜쥐려 했다.
지금과 그때의 장일소가 대체 뭐가 그리 다르단 말인가?
부나방으로 살아가는 게 그리도 나쁜 건가?
설령 양 날개가 모두 타들어 가고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떨어지는 게 그 끝이라고 해도, 불길을 피해 오물이나 퍼먹기 바쁜 돼지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그리 믿었다. 적어도 그는 그리 믿었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서 저들과 손을 잡으라고?
장일소가 입을 틀어막았다. 생각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 저들과 등을 맞대고 싸우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머리로는 그 역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몸이 거부한다. 아니, 어쩌면 그의 영혼이 거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찌할 수 없는 적개심과 분노.
소림을 반파했다. 정파라 거들먹거리는 수많은 이들을 그의 손으로 지워 냈지만…… 검게 타오르는, 흡사 원한과도 같은 이 적개심은 쉬이 식어 주질 않았다.
오히려 저들과 마주하는 일이 늘수록 더욱더 거세게 불타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하핫……. 하하핫. 가명아, 가명아.”
호가명의 말은 옳다. 하지만 틀렸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장일소의 방식이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장일소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 ‘생존’이, 그 ‘승리’가 장일소가 장일소로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살아남기 위해 저들과 같은 곳에 서는 순간, 장일소 역시 그가 가장 경멸하던 이와 다를 바 없어진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인가?
“가명아…….”
웃어 대던 장일소가 천천히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고개를 젖히고 천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짙은 허무가 어렸다.
“왜…….”
눈이 천천히 감겼다. 조금 전 보았던 호가명의 눈빛이 뇌리에 새겨진 화인처럼 떠오른다.
옅은 실망과 묘한 불신, 그리고 조금씩 가열되는 듯한 노기.
작디작은 감정들이 뒤섞여 끓는 듯했던 그 눈빛이 장일소의 몸을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게 했다.
묘한 기시감이 든다.
그럴 리 없음에도 언젠가 한 번 본 것 같은 그 눈빛이 장일소의 손끝을 떨리게 했다.
‘가명아…….’
달라진 건 없다. 그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얻어야 할 게 있다면 반드시 얻어 낸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얻을 수 있는 걸 내려놓는 멍청한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옅은 숨을 흘리는 장일소의 곁에서 작은 등불이 힘없이 흔들렸다.
“군사.”
인사해 오는 이들을, 호가명은 찬바람이 일 정도로 획 스쳐 지나갔다.
인사했던 이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으나, 호가명의 눈에 그런 것 따윈 들어오지도 않았다.
‘련주님.’
호가명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깨물었다.
– 하하하핫. 표정 한번 볼만하구나. 그렇게 울상일 것 없다. 이렇게 죽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지 않으냐?
언젠가 백천간두의 위기 속에서 장일소가 했던 말이다.
그가 아는 장일소는 언제고 여유가 흘러넘쳤다. 당장 제 목이 베일 상황에서도 웃었고, 호가명마저 더는 길이 없다고 여겼을 때도 마지막 가능성을 내려놓지 않는 이였다.
그리고…….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을 이였다.
그런데 호가명의 눈에 과거와 다른 장일소가 보인다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장일소가 직면한 미래가 그토록 무거운 건가? 저 장일소가 자기 자신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설령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장일소는 시원하게 웃어젖힐 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 속에서라도 무너질 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왜…….”
호가명은 결국 소리 내어 앓듯이 중얼거렸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설령 장일소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해도, 호가명은 신명을 다해 그를 보좌할 것이다.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장일소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 곁에 있을 이는 여전히 호가명일 것이다.
다만 호가명은 장일소가 그 지옥에서도 웃을 수 있길 바랐다. 천국에서 슬퍼하느니, 지옥에서 웃는다. 그게 그가 아는 장일소의 방식이었으니까.
으득.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호가명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해하게 되었다.
“다르구나. 아니, 달랐구나.”
설령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호가명이 이루고자 하는 것과 장일소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입가에 흐른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훔친 호가명이 빠르게 제 집무실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떠오르는 해에 덮이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