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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49화


1649화. 빨리 찾아봐, 빨리. (3)

멍하니 넋을 놓은 채 청명이 날뛰는 모습을 보던 백천의 정신이 뒤늦게 번뜩 돌아왔다.

“마, 말려야 한다! 빨리!”

“어…….”

“뭐 해, 이 새끼들아! 어서 말려야…….”

“사숙.”

“응?”

“늦었는데요?”

“어?”

백천이 다시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아.”

이미 늦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아니, 어쩌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쾅!

청명의 발이 모용세가 검수의 얼굴에 자비 없이 꽂혔다.

“꾸웩!”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이가 구경하던 사람들의 한중간에 처박혔다. 그들의 머리로는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모두가 망연히 서 있었다.

그때, 청명의 시야에 오들오들 떠는 거지 한 놈이 걸렸다.

“근데 이 거지새끼는!”

“초, 총사! 저는 아무 말도 안 했……!”

“거지가 눈치까지 없으면 뒈져야지, 이 새끼야!”

콰앙!

청명은 거지의 허리춤에 달린 타구봉을 빠르게 뺏어 들고, 단번에 내리쳤다. 자신의 타구봉에 정수리를 맞은 거지는 꽥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퍽 엎어져 경련했다.

“뭐? 맹규?”

청명이 눈을 희번덕대며 다음 먹잇감을 찾았다.

“내가 여기 온 이후로 맹규 보여 달라는 새끼를 단 한 명도 못 봤는데, 뭐? 맹규에 의하면? 너희 맹규가 뭔지는 알아?”

“…….”

“어, 그래. 한 놈만 나와 봐. 맹규에 뭐가 어떻게 쓰여 있는지 아는 새끼가 한 놈만 있으면 그냥 넘어갈 테니까. 어디 한 사람만 나와 봐. 당장.”

“그…….”

오늘 일어난 사건을 침묵으로써 동조하던 이들까지 기겁하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서 맹규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노라 주장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천우맹은 아직 제대로 된 맹규 같은 걸 정비한 적이 없으니까. 애초에 맹규를 만들어야 할 당사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데, 없는 맹규를 어디서 보고 온당함을 주장하겠는가?

“없어?”

청명이 다그치자 모두 침묵 속에 움찔했다. 잠시 차분해지나 했던 청명의 눈이 그 순간 다시 희번덕거렸다.

“어, 그래. 그럼 알겠네. 너희가 왜 처맞아야 하는지!”

쾅!

또 한 사람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히, 히이익!”

“이리 와! 이리 와, 이 새끼야! 어딜 도망가!”

“초, 총사! 이, 이러시면…….”

“이러시면 뭐? 내가 이러면 너희가 뭘 어쩔 건데?”

청명이 미친개처럼 날뛰며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던 남궁도위가 식은땀을 뚝뚝 흘렸다.

“진짜로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요?”

“그, 그래도…….”

조걸은 태연하게 턱을 쓸며 딴 세상 이야기하듯 중얼거렸다.

“옛날에는 많이 봤던 광경인데.”

“……그렇지.”

“확실히 요새 좀 뜸하긴 했죠?”

“그도 그렇지.”

조걸과 윤종은 손을 놓다 못해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황한 남궁도위가 이번엔 백천을 찾았다.

“자, 장문대리! 어떻게든 말려야…….”

“흐음.”

백천은 머릿속으로 뭔가 고민이 깊은 듯 침음성을 흘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예?”

“저지르기 전이면 말리는 게 맞는데…… 이왕 저지른 거면 차라리 확실한 게 좋은 것 아닐까요?”

“……예?”

“의도가 있겠지요. 애도 아니고.”

“그,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아아아아악!”

마침 청명의 발에 턱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이가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시원하게도 팬다. 내가 다 개운하네.”

아예 생각하기를 멈춘 것 같은 백천의 반응에 남궁도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정신 나간 화산 놈들…….’

어떻게 이 광경을 보며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제정신이라면 그럴 수 없다.

“한 맹의 총사가 맹도들을 구타하고 있는 광경입니다. 언제 어디서고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일 아닙니까?”

“음, 칼 들고 맹에 반대하는 놈들 나와 보라고 설치던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

“저, 저는 입장이 좀 다르…….”

찔리는 면이 있었는지 남궁도위의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뭘 새삼스럽게. 삼대제자가 이대제자 대가리 깨고 다녔던 건 말이 되고요?”

“……화산 놈이 남궁세가 사람들 패고 다닌 건?”

“남궁세가 정도면 다행이지. 소림 출신인 혜연 스님 머리에다가 그림 그리고 놀린 적도 있는데. 사실 저 정도면 청명이 입장에서는 무척 온건한 반응이지.”

……남궁도위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청명 저 인간은 ‘그런’ 인간이었다. 이제야 그것이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랐다. 요새 이리저리 무게 잡을 일이 많아서 잠깐 잊은 감이 있었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소가주님. 잘 생각해 보십쇼. 원래 그랬습니다. 저 새끼가 해도 되는 일만 하는 게 더 이상한 겁니다.”

“어…….”

듣고 보니 그게 또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해진 남궁도위가 일단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두가 남궁도위처럼 납득한 건 아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청명에게 걷어차여 나뒹굴었던 제갈연이 몸을 일으키며 악을 썼다. 또 어디서 재수 없게 걸린 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잡고 주먹질을 해 대던 청명이 시선만 슬쩍 돌려 그런 제갈연을 보았다.

“뭐야, 저건 또?”

“이, 일맹의 총사가 폭력이라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어.”

“……예?”

“된다고.”

제갈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되, 된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걸 누가 정하는 겁니까?”

“나.”

“……예?”

날카롭게 반박하려던 제갈연의 얼굴이 순간 멍하니 풀어졌다. 청명이 다시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정한다. 왜?”

“…….”

“근데 이 새끼가 말을 열 받게 하네?”

청명이 제 손에 잡혀 탈탈 털리고 있던 이를 제갈연을 향해 휙 집어 던졌다. 제갈연은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그를 피해 버렸다.

쿠당탕.

내던져진 이가 땅에 형편없이 나동그라지고, 청명이 혀를 찼다.

“저, 저, 의리 없는 새끼. 받아라도 주지.”

“아, 아니. 사람을 던진 건 그쪽…….”

“내가 총사인데, 이 새끼야. 그럼 내가 정하지, 네가 정할래?”

제갈연의 입이 다시 한번 다물어졌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를 옹호하기 위해 나설 이는 아무도 없을 듯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상대가 가진 게 논거뿐이라면 맞서 논쟁할 수 있고, 권위뿐이라면 항거할 수 있고, 힘뿐이라면 모두 협력해 싸워 볼 수 있겠지만, 논거와 권위와 힘을 한 몸에 다 갖춘 이에게 대항하기란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일 테니.

그러나 제갈연도 이제 와 쉬이 물러설 순 없었다.

“초, 총사께서 마음대로 그리 정하신단 말입니까?”

“어, 그럴 건데? 뭐 잘못되기라도 했어?”

청명이 제갈연을 향해 휘적휘적 다가왔다. 움찔한 제갈연이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났다.

“천우맹은 정파의 연합체요. 그런 곳에서 어찌 상급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급자를 구타해도 된다는 규율을 정한단 말입니까!”

제갈연의 말에 청명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 새끼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네. 내가 뭔 뒷골목 흑도패 새끼도 아니고, 그런 규율이 말이나 되나?”

“그, 그렇지요! 그렇다면 지금 총사께서 저지른 일이 월권이자 그릇된 행위임을 아실 텐데……!”

“지랄한다.”

청명은 상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피식 웃었다.

“이 새끼가 아주 아가리질 더럽게 하네. 야, 내가 지금 너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패?”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항명.”

“……예?”

“부당주에 대한 항명. 이 외에 또 다른 이유가 뭐가 있는데?”

“하, 항명이라니요!”

제갈연의 시선이 순간 혜연에게로 향했다. 혜연의 낯빛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제갈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우리는 그저 부당주의 지시가 사리에 맞지 않다는 판단하에 논의한 것뿐이외다! 그게 어찌 항명…….”

“어, 그게 항명이야.”

“예? 어째서…….”

“어째서?”

지금껏 빙글빙글 웃고 있던 청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우득!

그리고 삽시간에 거리를 좁혀 코앞에 나타난 청명이 제갈연의 목을 움켜쥐었다.

“끄…….”

“너 지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청명이 서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목을 잡힌 제갈연은 저항은 고사하고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 댈 뿐.

“전시가 뭔지는 알아?”

“…….”

“보아하니 병서깨나 읽은 것 같은데, 그럼 전시가 뭔지, 항명이 뭔지 아주 잘 알겠네. 네 입으로 읊어 봐. 전시에 장(長)이 아닌 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끄…….”

제갈연의 눈이 잘게 떨렸다.

“전시에는 이견이 만들어 낸 작은 이점보다 그로 인해 초래될 혼란이 더 치명적이고, 그러니까 전시의 강령이 따로 있는 거다. 이 등신 같은 새끼야.”

청명의 살기가 제갈연을 꿰뚫었다.

“왜? 나이도 어린 인간이 머리 위에 앉아서 이리저리 지시하니 속이 뒤틀려? 네가 훨씬 더 옳고 대단한 것 같아? 남들이 네 말을 더 우선시해서 따라야 후련할 것 같아?”

“그, 그게…….”

“그럼 네 능력을 전장에서 증명해, 이 새끼야. 잘난 아가리만 놀리지 말고.”

콰당!

청명이 제갈연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 버렸다.

“켁! 케엑!”

제갈연은 제 목을 붙든 채 폐를 토해 낼 기세로 기침을 뱉어 대었다. 그를 벌레 보듯 내려다본 청명이 이번엔 모두를 훑듯 노려보았다. 겁에 질려 있던 이들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다들 마찬가지야. 너희끼리 적당히 분위기 만들면, 어린놈 하나쯤은 가지고 놀 수 있어 보였어?”

“초, 총사……. 그런 건 아니…….”

“나는 안 그랬다 하는 새끼도, 적어도 이러면 좀 편할 수 있겠다고는 생각했겠지. 안 그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누구도 혜연을 적극적으로 비호(庇護)하지 않은 건 사실이고, 그 이유에는 청명이 한 말도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하긴 어려웠으므로.

청명이 차갑게 일갈했다.

“착각하지 마.”

“…….”

“맹에서 당을 만들고 당주와 부당주를 임명한 건 너희 불만이나 받아 주라고 그런 게 아니야. 말 안 듣는 놈은 목을 쳐서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당을 만들라고 그런 거지.”

이번엔 청명의 시선이 모여 있던 부당주들에게로 향했다. 부당주들이 움찔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어리광을 받아 주는 건 여기까지야.”

“…….”

“지금부터 부당주와 당주에게 항명하는 이가 나온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모두 벌한다. 똑똑히 기억해 둬. 이제 더 이상 문파는 없다. 그 말은…….”

청명의 목소리는 흡사 사나운 짐승의 목울음 같았다.

“이제 너희가 저지른 일을 무작정 대신 막아 줄 곳이 없다는 거야. 맹도가 된다는 말은, 이제 너희의 신상필벌을 오로지 맹에서 주관한다는 뜻이다.”

그 목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그리고 선득하게 모두의 귀에 파고들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구경하려 몰려들었던 다른 당의 무인들도 어깨를 움츠릴 정도였다.

“이게 단순한 위협인지 진짜인지 시험해 보고 싶은 놈 있으면 해 봐. 나도 본보기 하나 정도 있으면 편하거든. 이 맹의 총사가 허언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증명해 주지.”

청명의 말이 끝나자 숨도 크게 내쉬기 힘들 만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끝만 바라보는 그때였다.

“무슨 일이냐?”

인파를 헤치며 한 사람이 다가왔다.

분분히 좌우로 길이 열렸고, 이내 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제갈연을 비롯한 주동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벅.

독왕 당군악이었다.

부당주인 혜연과 함께 당을 이끄는 그가 싸늘한 얼굴로 모두를 응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가 설명을 좀 해 줬으면 좋겠군.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칼날 같은 목소리가 모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번져 가는 독왕의 분노를 실감한 이들이 체념하듯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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