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680화
1680화. 그냥 믿는 것뿐이. (4)
“빌어먹을! 겨우! 겨우 왔다고!”
조걸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의 눈에 불타고 있는 무당산의 모습이 들어온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럼에도 조걸의 눈은 그 불길이 아직 무당의 최정상부를 침범하지 못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숙! 저 윕니다!”
“알고 있다!”
백천이 앞으로 달려나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그대로 소리쳤다.
“아니, 앞쪽! 장문대리! 우선은 앞쪽입니다!”
“음?”
다급하게 들려온 혜연의 목소리에 백천이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그러자 그의 눈에 산 아래가 요동치는 것 같은 광경이 들어온다.
‘뭐?’
아니,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산이 움직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그의 눈에 보인 광경은 산이 요동치는 게 아니라 산 아래에 빼곡히 포진하고 있던 사패련의 군세가 그들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에는 이제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자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백천조차도 순간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어떻게 합니까?”
윤종의 목소리에 백천이 힐끔 고개를 뒤로 돌린다.
그가 아무리 화산의 장문대리라 하나 그 직위는 부당주에 불과하다. 지금쯤 당주님들이 나선다면…….
하지만, 고개를 돌린 백천이 마주한 것은 그의 당주가 아니라 어느새 그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선 진금룡의 재수 없는 얼굴이었다.
“뭐.”
“어?”
진금룡이 짧게 코웃음을 친다.
“뭐 한다고 이제 와 뒤를 힐끔거리느냔 말이다. 지금까지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
“아, 아니!”
“왜, 정작 저들을 보니 겁이라도 나나? 겁쟁아?”
백천의 얼굴이 순간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뭔 개 같은 소릴…….”
“그게 아니면 고개 앞으로 고정하고 명이나 내려!”
진금룡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뒤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이.
“지금 명을 내릴 사람은 바로 너다.”
그 순간, 진금룡이 검을 들어 올려 마치 백천에게 내보이듯 슬쩍 내밀었다.
“어디 네놈이 사람답게 구는지 내가 똑똑히 지켜봐 줄 테니까.”
“…….”
“뭐 해?”
“으…….”
죽일 듯이 진금룡을 노려본 백천이 부글부글 끓는 얼굴로 고개를 앞으로 획 돌렸다.
‘하여간!’
성격 하고는.
‘네가 무슨 명을 내리든 내가 전력으로 보좌해 주겠다’를 이렇게 재수 없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진금룡 한 사람뿐일 것이다.
청명이 놈과는 다른 의미로 사람을 열 받게 한다. 재수 없기로는 거의 쌍벽이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사숙! 그러니까 어떻…….”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인마!”
파앗!
백천의 검이 섬전처럼 뽑혀 나왔다.
“윤종! 조걸!”
“예!”
“적의 좌우를 타격한다! 분산시켜라!”
“예!”
윤종과 조걸에게는 이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중앙을 뚫는다! 남궁도위! 혜연! 도와라!”
“예!”
“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덩어리처럼 달려나가던 천우맹의 군세가 세 갈래로 분열한다.
단 한 번도 합을 맞춰 보지 않은 이들이 수십 년간 손발을 맞춰온 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뒤는 없다! 단번에 뚫어 낸다!”
“예!”
“모두!”
백천이 검을 들어 앞을 겨누며 외쳤다.
“사파의 무리를 분쇄해라!”
“가자아아아!”
파아아아앗!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신형이 백천을 스치며 앞으로 치고 나간다.
“엇?”
“흠?”
진금룡과 유이설.
시기 좋게 앞으로 튀어나온 두 사람이 굳은 얼굴로 일순 서로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도 잠시.
파앗!
두 사람이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을 박차며 쾌속하게 그들을 맞아오는 이들에게 쇄도했다.
“비켜라! 여자.”
“방해돼.”
바람처럼 치고 달린 이들의 검 끝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이들을 단숨에 꿰뚫는다.
콰득! 콰드득!
“아, 아아아아아악!”
단숨에 십여 명의 몸에 바람구멍을 낸 진금룡과 유이설이 서로를 다시 힐끔 바라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저리 꺼지라잖느냐!”
“방해된다니까?”
파앗!
두 사람이 적진을 파고든다. 그들의 검에 꿰뚫린 이들이 미처 쓰러지기도 전에.
“마, 막아야!”
“아-미-타-불!”
“하아아아아아압!”
그 쾌속함에 반응하려는 순간, 그들의 귓가에 웅장하기 짝이 없는 불호와 어마어마한 고함이 들려 왔다.
안으로 침투한 이들을 제압하려던 사패련도의 머리 위로 황금빛의 불광과 백색의 거대한 검기가 떨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가공할 내력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권력과 검기에 가격당한 사패련도들이 마치 절벽에 부딪힌 파도가 뿜어내는 포말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뭐, 뭐 저런?”
사패련도들에게 전투란 더없이 익숙한 것.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소림 최고의 기재와 남궁의 소가주가 전력으로 날린 무학의 위력은 경악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과 파괴력이 높다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천하에 드물지 않을지 모르지만, 단 일 초식으로 이만한 위력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손꼽힐 터.
그 힘의 향연은 그들을 상대하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먹혀들어 갔다.
“이런 괴물 같은!”
하지만 그 힘을 절감하고 있을 시간도 그들에게는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꿰뚫어라!”
어느새 제 당을 이끌고 좌우로 갈라졌던 윤종과 조걸이 마치 위아래를 꿰뚫는 짐승의 송곳니처럼 그들을 노려 오고 있었다.
중앙을 부수고, 좌우를 베어 낸다.
그 철저한 합공이 몇 마디 상의도 없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 아니! 너무 치고 나가지 말라니까! 사매! 진금룡!”
백천이 악을 쓰듯 고함을 내질렀다.
“따라붙어라! 고립되게 두면 안 돼!”
“예!”
서로가 서로에 이끌리듯, 중앙을 맡은 백천의 군이 가공할 속도로 내달렸다.
“……으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종남의 장문 종리곡이 안색을 굳혔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 위력이야 둘째 치고, 고작 몇 마디의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함께 싸워 본 적 없는 이들이 마치 익숙한 일인 듯 움직이고 있었다.
종리곡은 안다. 이만한 수를 제 뜻대로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뭐가 어떻게…….”
“단순하니까.”
“음?”
종리곡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전신에 축축하게 젖은 임소병이 헐떡이고 있었다.
“……어디 물에라도 빠지셨던가?”
“단순하니까 그런 겁니다.”
종리곡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임소병이 헉헉대며 설명을 이어 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요. 저들에게 내려진 명은 오직 앞에 있는 부당주를 따라 움직이라는 것뿐이니까.”
“……따라 움직인다?”
“그럼 체계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는 겁니다. 막아 낼 때나 대치할 때라면 몰라도, 공격은 오직 한 점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
종리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병법의 끝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틀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공격 면에서는 더욱 명확했다.
“하나의 주공(主攻)과 네 개의 조공(助攻).”
“…….”
“어떤 병법에서도 공격의 갈래는 다섯을 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 다섯만 움직일 수 있다면 가능한 공격은 다 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장문인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종리곡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네.”
“예. 뭐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지요. 다만…….”
임소병이 턱 끝으로 앞을 가리켰다.
“먹히잖습니까?”
“…….”
이 말에는 종리곡도 반박하지 못했다.
“어차피 지금에 와서야 복잡한 전술과 체계를 만들어 낼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십 년이 지난다고 해도 그게 제대로 돌아가 리 없죠. 하지만 단순한 방법이 있습니다.”
“……다섯 군이 아니라 다섯 명의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는 건가?”
“예. 그리고 잘하는 걸 시키는 거죠.”
종리곡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하나가 뚫고, 둘이 보좌한다. 그리고 또 다른 둘은 적의 좌우로 흩어져 혼란을 유도한다.
“……오행(五行)?”
“정확합니다.”
저건 오행 포진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무가에서 자란 이라면 수도 없이 해 보았을 포진. 다른 것이 있다면, 본래 한 사람이 수행하는 일을 지금은 한 당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뿐.
“그…….”
종리곡은 이해해 버렸다.
이런 방식이라면 명령 체계 같은 건 크게 필요치 않다. 지금 각 당의 선두를 맡고 있는 이들은 서로 눈빛만 보아도 통할 수 있는 이들. 수도 없는 전장을 어깨를 맞대며 뚫고 온 이들이니까.
“부당주를 중심으로 삼은 건 이런 이유인가?”
“뭐, 그거야 총사만 아시겠지요.”
“허…….”
종리곡이 또다시 헛웃음을 흘려내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군. 이건 우리가 공세를 퍼붓는 입장이니 통하는 반편짜리…….”
그 순간, 종리곡이 움찔했다.
말을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 그의 뇌리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이번에는 우리가 공격할 차례예요.
“……공격……한다?”
‘공격할 것이다’가 아니라, 공격해야만 한다. 아니, 공격할 수밖에 없다.
‘대체 언제부터?’
그저 문파들을 뒤섞어 각 문파의 욕심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허.”
종리곡이 고개를 내저었다.
따라갈 수가 없다. 아니, 따라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지금은 감탄할 때가 아닙니다, 장문인. 힘 좀 써 주셔야 할 때입니다.”
“……직위는 서로 비슷하지 않나?”
“저는 문관입니다만?”
“…….”
종리곡이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안 그래도 이대로 뒷짐만 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럼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들 테니까.
“머리는 몰라도 검은 아직 뒤지지 않지.”
종리곡의 검이 그 사실을 증명하듯 맑게 검명을 토해 냈다.
“군사!”
피로 물든 백안암의 아래에 선 호가명이 산 밑을 내려다본다. 이미 그에게도 이곳에 돌입한 천우맹의 군세가 아래에 몰려 있는 사패련도들을 분쇄하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어, 어떻게 저들이 벌써 여기까지!”
“…….”
“군사! 서,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호들갑 떨 것 없다. 올 줄 알았으니까.”
“예?”
호가명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천우맹은 보이지만 련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건 련주가 자신의 계획을 성공시켰다는 뜻. 그 말은 즉 저들 사이에 청명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가명은 몇 번이고 다시 저들의 군세를 낱낱이 훑듯 확인했다. 이윽고 그곳에 청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이 확실해진 순간, 호가명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여졌다.
“없군.”
“……군사?”
“그럼 오합지졸일 뿐이다.”
호가명이 서늘하게 말을 내뱉었다.
“맞상대하지 말고 적당히 싸우며 물러나라 전해라.”
“하지만 군사, 저들의 기세가…….”
반론을 펴려던 부관이 호가명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는 움찔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이 산으로 끌어들인다.”
호가명의 눈빛이 깊게, 또 깊게 가라앉았다.
‘이런 기회는 쉽사리 다시 오지 않는다.’
호가명의 시선이 슬쩍 백안암 위로 향한다.
‘물지 않을 수 없는 미끼가 있다면…… 활용해야지.’
이제 남은 것은 대어를 낚아 내는 것.
호가명의 시선이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넘어, 저 깊은 어둠으로 향했다.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매화검귀.”
호가명이 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