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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92화


“비, 빌어먹을, 저놈들!”

“잘도 저 절벽을……!”

“막아! 아니, 포위해서 죽여 버려!”

사패련도들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크게 요동치며 일렁이는 사패련의 모습에, 무진은 상황에 걸맞지 않도록 적잖이 당혹했다.

‘이건?’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반응이었다. 천하의 무당을 앞에 두고도 상처 입은 사슴을 보듯 이죽거리던 놈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얼굴에 긴장과 진득한 공포가 어린 게 똑똑히 보였다.

수로 따지자면 고작 일백 남짓.

수천에 달하는 무인들이 몰린 이곳에서 일백은 하찮다 표현해도 될 만한 수다. 그런데 그 일백의 적을 두고 지금 천하의 사패련이 떨고 있는 것이다.

“이, 이쪽이다! 이놈들부터 마무리해!”

“놈들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죽여 버려라!”

그런데 그 순간.

곧장 화산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들썩이던 이들이 돌연 고개를 돌려 무당을 향해 짓쳐 들기 시작했다.

카앙!

무진은 날아드는 칼을 급히 막아 내었다. 얼핏 보아도 적들은 이제 필사적이었다.

카가강!

검을 휘둘러 또다시 도기 어린 칼을 받아 낸 무진의 눈이 짧게 흔들렸다.

‘이놈들……?’

사패련도들이 전에 없이 다급해졌다.

그들이 에워싼 무당과, 지금 막 절벽에 올라온 화산이 합류하게 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한껏 여유를 부리며 무당을 압박하고 상대하던 모습과는 판이했다. 죽어 가는 무당의 검수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던 그 악귀들이 아니다.

지금 무진의 눈에 보이는 건, 두려운 적을 앞에 두고 잔뜩 얼어버린 조무래기들이다. 저래서야 제 실력의 반이나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걱정이 들게끔 하는…… 사파의 잡졸.

“아무래도!”

파아앗!

진현이 날아드는 창을 검으로 흘리고 단숨에 상대의 목숨을 끊었다. 다급한 마음에 정교함을 잃고 만 적을 베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학을 쌓을 동안…… 화산은 적들에게 위압을 쌓은 모양입니다.”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그를 찾아와서였다.

‘아니. 지금은 감상 따위에 빠질 때가 아니다.’

무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떤 감상이든 살아남아야 누릴 자격이 생긴다.

구원이 왔다고는 하나, 그들은 아직 수렁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적들의 칼날은 더욱 급해졌고, 흉포해졌다.

“버텨라!”

잃은 눈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진다. 육신은 천근만근이고, 단전 역시 한계에 달해 찢기는 일만 남은 듯 아프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이 생생히 느껴진다는 건, 지금 그가 살아 있다는 다시없을 증거가 아니겠는가.

쇄애애애액!

새파란 도기를 품고 날아드는 도를 무진이 쳐 냈다.

공격은 막았으되 손목이 시큰거리고 다리가 휘청 꺾였다. 이제 그의 몸에는 이름 없는 사파인의 공격을 받아 낼 만큼의 내력조차 남지 않았다.

쾅!

하지만 적의 힘을 이용하는 태극권의 요체라면 아직 싸울 수는 있다. 적의 턱을 팔꿈치로 후려치고, 쓰러지는 적 너머로 단번에 삼검을 발출해 낸 무진이 이를 악물었다.

‘할 수 있다!’

고작 일백이 더해진 것이지만, 결과는 고작이 아니다. 저 일백이 이 절벽 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화산과 완전히 합류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무진이 목이 터지도록 고함쳤다.

* * *

냉정한 눈빛이 절벽 위를 살폈다.

‘먹히나?’

임소병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도 절벽에 오른 화산이 활약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청명 도장이 없어도 화산은 화산!’

그들이 지금껏 헤쳐 나온 전장이 얼마고, 상대해 온 사파가 얼마던가.

천하를 다 뒤져 봐도 저들만큼 사파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한 이들은 없다. 특히나 사패련을 상대로는 그 어떤 문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이들이 바로 화산이다.

‘다행히 무당도 아직 전멸하진 않은 것 같고.’

임소병의 눈빛이 침잠했다.

어떻게든 무당을 구한다.

설령 남은 게 소수라도 상관없다. 그 하나의 목적을 이뤄 낼 수만 있다면, 소림을 무너뜨리며 하늘 끝까지 오른 사패련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음은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느냐인…….”

화산이 해낼 것을 의심치 않고 시선을 돌리려던 임소병이 순간 중얼거리던 걸 멈추고 움찔했다.

‘뭐지?’

등줄기로 소름이 타올랐다. 그의 눈이 급하게 위화감의 정체를 좇았다.

그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드높은 절벽.

흰 암석으로 이루어져 백안암으로 불렸으되, 이제는 적안암(赤顔巖)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게 변해 버린 이 절벽의 좌우 끝.

가파른 암석에 맞닿은 비탈에서 정체 모를 무인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아직 사파의 잡졸들이 빽빽이 매달려 있는 그 절벽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가파른 암석을 박차며 횡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벼락처럼 꽂혔다. 이윽고 임소병이 두 눈을 찢어지도록 부릅떴다.

“아, 안…… 돼.”

끔찍할 만큼 커다란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막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두 눈에, 숨길 수 없는 절망이 아득히 휘몰아쳤다.

윤종이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조걸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뭐 하십니까, 사형!”

“아니, 지금…….”

“뒤돌아볼 시간에 내달리십쇼!”

“……그래.”

윤종은 알 수 없는 느낌에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선을 거두었다. 뭔가 뒷덜미가 서늘했다. 그러나 조걸의 말대로 지금은 뒤를 돌아볼 때가 아니다.

그가 잠깐 주춤하는 순간에도 무당의 제자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으니까.

‘더는 못 버텨!’

한눈에 알 수 있다. 저들은 이미 가진 힘을 모두 소진했다.

대적할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무수한 적이 밀려온다는 공포, 문파를 지켜야 한다는 지독한 압박감 속에 쉴 새 없이 싸워 온 무당은 이미 진즉에 한계를 맞닥뜨렸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저들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줘야 한다. 무당이라는 이름이 정말 이곳에서 끝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달려라!”

윤종이 그답지 않게 거칠게 외치며 검을 내질렀다.

물러나던 적들이 그의 검 끝에 사정없이 뚫렸다. 차가운 검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어 내는, 아무리 반복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을 버텨 내며 윤종은 박차를 가했다.

‘사숙은?’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백천에게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도저히 신경을 끊을 수가 없다.

그의 조금 뒤편,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백천의 기운이 느껴졌다. 선봉은 아니더라도 전방이다. 적들의 공세를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하는 위치.

윤종이 저도 모르게 이를 으득 악물었다.

안다. 알고 있다.

백천은 앞에 서야 하는 사람이다. 청명이 없는 이상, 화산의 모든 검수들은 백천의 등을 좇고 있을 터.

조걸과 윤종이 길을 뚫어 낸다고는 하나, 백천이 앞에 서느냐 아니냐는 사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빌어먹을!”

윤종이 내뿜는 검기가 거칠어졌다.

‘내가…… 내가 좀 더 강했어야 해.’

지금 백천이 맡은 역할을 그가 짊어질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백천이 저리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윤종은 그럴 수 없다. 누군가의 등을 밀어 줄 수는 있어도, 누군가를 이끌어 갈 수는 없다. 그게 지금 화산이 바라보는 윤종이었고, 윤종 스스로 자각한 자신의 한계였다.

“차아아아아압!”

윤종이 내뻗은 검이 수백 줄기 매화검기를 뿜었다. 평소의 진중한 검이 아니었다. 다소 거칠게 흩뿌려진 매화검기가 적들을 꿰뚫었다.

“사, 사형?”

놀란 조걸이 윤종을 돌아보았다. 단순히 무당을 구하느라 급한 마음에 뿌린 검이라기엔 너무도 살기 짙었으니까.

그때, 윤종이 일갈했다.

“뭐 하느냐! 날 재촉할 땐 언제고!”

“예? 아, 예!”

조걸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래,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된다. 이제 고작이다. 곧 무당을 구할 수 있다.

‘이리 간단히 될 일을!’

조걸이 이를 악물었다. 나서기만 하면 이리 쉽게 해낼 수 있을 일을 왜 그렇게 고민했던…….

‘……잠깐. 쉽게?’

콰득!

적의 심장을 뚫은 조걸의 검 끝이 움찔했다.

‘쉽다고?’

내내 앞으로만 나아가던 눈빛도 희미하게 흔들렸다.

조걸은 심장에 박힌 검을 더듬더듬 움켜쥔 적의 일그러진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하지만 그뿐, 적은 더 이상의 저항을 하지 못하고 스르르 허물어졌다.

조걸이 잠시 홀린 듯 그 광경을 보았다.

“뭐 해! 정신 안 차려?”

“아, 네!”

조걸이 다시 정신을 다잡고 발을 내디뎠다.

새파랗게 질린 채 주춤 물러나려던 사패련도들이 더 물러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발작처럼 비명을 지르며 조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아아앗!

단번에 발출된 조걸의 삼 검이 달려들던 이들의 육신을 저항 없이 베어 냈다. 하지만 적을 더없이 수월하게 격퇴해 냈음에도 굳어진 조걸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패련이 이렇게 쉬운 상대였나?’

그럴 리 없다. 이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조걸보다 잘 아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이유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화산의 난입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하필 화산이 도착한 순간에 이곳에 제대로 된 정예들이 자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장 장일소와 마주했던 이후로 그 지긋지긋한 홍견 놈들을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조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형! 이놈들…… 생각보다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뭔 소리야?”

“아니, 이들…….”

“이들도 지금까지 무당을 상대했다! 지칠 대로 지쳤을 거다!”

윤종의 대답에 조걸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사패련도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저들 역시 이 험준한 적지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 이곳까지 진군하기가 그저 쉬운 일이었을 리 없다.

그래, 따져 보면 이상하지는 않다. 초조함에서 비롯된 기우이리라.

여전히 위화감이 없지 않지만, 당장 조금 전만 해도 무당을 사지로 내몰고 있던 이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을 두고 단순히 약하다 할 수는 없다.

“아아아악!”

그 순간, 조걸의 생각을 끊는 듯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항전하던 한 무당 검수의 가슴에 시뻘건 도가 틀어박혀 있었다.

‘저…….’

“으아아아아아아악!”

이윽고 박힌 도가 비틀리며 그의 가슴을 헤집었다.

이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건만, 저 도는 무당의 검수에게 깔끔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몸에 박아 넣은 도를 휘젓는 동작 하나하나가 적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고통을 주겠다는 악의로 가득했다.

희게 질린 무당 검수의 얼굴이 역류한 피로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조걸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 개자식들아아아아아!”

터질 듯한 분노가 고함이 되어 터져 나왔다.

무당에 딱히 대단한 호의를 가진 건 아니다. 아니, 무당에 대한 조걸의 감정은 호의는 고사하고 오히려 껄끄러움에 가깝다.

더 먼 과거부터 장강 사태에 이르기까지 무당은 끊임없이 화산과 대립해 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무당의 고통 앞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관계가 어떻든, 저곳에 서 있는 이들은 저리 농락당하다 무참히 죽어선 안 된다. 백천이 말했듯이 세상에 무가치한 의지 같은 건 없으므로.

끓어오른 울분이 고스란히 세찬 검기가 되어 적을 휩쓸었다.

본디 진영이란 하나의 둑 같은 것이다.

견고하게 짜여 있을 때는 물 한 방울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적을 틀어막을 수 있지만, 어느 한 곳만 무너져도 단번에 흐트러지고 삽시간에 무너져내린다.

지금 조걸이 보기에 무당의 진영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한 군데만 뚫려도 대번에 모두 휩쓸려 버릴 것이다.

‘더 빨리!’

조걸이 이를 악물고 검을 떨치려던 바로 그때였다.

“멈춰.”

“엇?”

조걸이 뻗으려던 검을 움칫 멈추며 돌아보았다. 유이설이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여전히 표정이랄 건 없었다. 다만 눈썹을 조금 찌푸린 모양이,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듯했다.

“……사고?”

“지휘가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구난방. 이렇지 않았는데.”

“그야…….”

무언가 말하려던 조걸이 입을 꾹 다물었다.

좁은 공간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있으니 당연히 포진이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유이설이 정말 그런 것도 모르고 의문을 제기했을까?

“사고. 그 말씀은?”

유이설은 대답 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표정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었지만, 지금 조걸의 눈에는 그녀의 표정이 유독 심각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이 점차 다급함으로 달아올랐다.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잖은가. 이 순간에도 무당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

조걸이 결국 몸을 틀었다.

“다시 갑니다.”

“기다려.”

“사고! 한시가 급합니다!”

조걸의 외침에도 유이설은 눈빛을 더욱 가라앉히며 다시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함정……. 아니, 여기에는…….”

“함정?”

조걸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가 어떻게 함정이 됩니까?”

함정이란 적을 기다려 파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함정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 처음 이곳을 전장으로 삼은 이들은 사패련이 아니라 무당이니까.

게다가 이곳은 버텨 내기 위해 자리한 곳이다. 적을 섬멸하기 좋은 위치와 싸워서 버티기 좋은 위치는 엄연히 다르다.

조걸이 조금 전 불쑥 찾아온 위화감을 끝끝내 외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화공도 이미 격파했고, 당가가 함께 온 이상 독도 통하지 않을 겁니다. 남은 건 이제 사람밖에 없잖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을 지금 우리가 뚫어 내고 있고요.”

저들이 더 쓸 수 있는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이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대답이 없었다.

“사고!”

조걸이 다시 재촉하려 하는 순간, 그녀의 입이 열렸다.

“미끼…….”

“예?”

유이설의 시선이 획 뒤로 돌아갔다. 그들을 뒤따르던 화산을 넘어, 하늘과 맞닿은 듯 보이는 절벽 끝까지.

허공의 검기로 인해 엉망진창 파인 절벽을 보던 유이설이 순간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사람이 아냐……. 미끼.”

“예?”

“미끼? 무당이요?”

“아니, 여기에 있는 이들이. 사패련이!”

선뜻 이해하지 못한 조걸은 망연해 보이는 유이설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아!”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조걸이 번뜩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윤종의 얼굴이 거의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와 달리 윤종은 유이설의 말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사형?”

“…….”

“사형!”

검을 쥔 윤종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형, 대체 무슨 말을…….”

“사숙!”

윤종은 대답할 여유도 없다는 듯 백천을 향해 비명처럼 외쳤다.

“함정입니다! 빠져나가야 합니다! 사숙, 당장……!”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절벽 바깥쪽에서 세상을 부술 것 같은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싸우던 이들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이윽고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금방이라도 뒤집히고 으스러질 것처럼.

“뭐, 뭐야!”

“엎드려!”

화산의 검수들과 사패련도들이 기겁하며 일제히 몸을 낮췄다. 땅에 댄 손을 통해 커다란 진동이 느껴지자 조걸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이게 무슨…….”

그가 반사적으로 적들을 살펴보았다.

사패련도들 역시 화산과 똑같이 엉거주춤 몸을 낮추고 있었다. 심지어 영문을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눈빛과 표정은 결코 지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

저들 역시 이 상황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 조걸의 뇌리에 조금 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단어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미끼.

그리고 그제야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설마…….”

조걸이 홀린 듯 절벽 끝을 바라보았다.

더는 누구도 오르지 않는 절벽, 날카롭게 솟은 그 끝이 흔들림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냐.’

그의 두 눈에 짙은 공포가 어렸다.

비단 이 상황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다. 머릿속을 스치고 간 예감 탓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일 만큼 끔찍한, 그 지독한 악의에 대한 공포였다.

‘아니, 아니야! 그럴 수는…….’

지금만큼은 절벽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이의 생각이 하나로 모였다. 그리고 이 지독한 예상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현실이 되어 그들을 찾아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또다시 절벽 아래서 터진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산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이미 화공으로 동물도, 새도 죄 죽거나 달아난 산은 폭음이 가라앉자 순간적으로 적막에 휩싸였다.

잠시 후,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쩌적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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