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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99화


그 복잡한 사정을 가진 검이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화산을 구하기 위해서.

“타아아아압!”

진금룡이 전력을 다해 검을 떨쳤다.

굳은 얼굴로 지켜보던 이송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픔은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갈등도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종남과 화산의 이름이 존재하는 한, 두 문파 간의 관계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그들은 화산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한 거겠지…….”

“예?”

“저도 가겠습니다, 소가주님.”

“자,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대들만으로는 위험합니다.”

남궁도위의 진지한 만류에 이송백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은 대책 없이 홀로 이 절벽을 올라와 놓고, 막상 남이 같은 일을 하려 드니 걱정부터 한다. 이 사람도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소가주님.”

“예?”

“우리뿐만은 아니니까요.”

그 말에 남궁도위가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내달렸다. 어둠에 잠긴 붉은 절벽을 타고, 수십의 인원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일 만큼 눈빛들이 형형했다.

“아…….”

남궁도위가 눈을 부릅뜨며 앓는 듯한 소리를 흘렸다. 이송백은 작게 미소 지었다.

“조금 늦긴 했습니다만, 늦었다고 마음이 부족한 건 아닐 겁니다.”

“……소협.”

“그럼.”

타앗!

그 말을 끝으로, 이송백이 남궁도위를 둔 채 위로 솟구쳤다.

“돕겠습니다, 사형!”

“필요 없다!”

“하압!”

이송백의 웅혼한 검기가 가파른 절벽을 내달렸다.

흩뿌려진 새하얀 검기와, 마치 절벽에 뿌리를 내리려는 듯 단단하고 두둑하게 퍼져 가는 짙은 검기가 절묘하게 섞여 들었다.

남궁도위는 두 검기의 조화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검도, 방식도, 나서는 순간마저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르지 않다.

카각!

남궁도위가 검을 더욱더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놀고 있을 수는 없지.’

그도 아직 싸울 수 있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적어도 이곳에 오른 이들의 생각은 모두 같을 것이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남궁도위가 나직이 웃었다. 눈에 다시 맹렬한 안광이 피어오른 그가 두 다리로 절벽을 박차며 솟구쳤다.

“남궁의 검도 여기에 있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높은 절벽의 정상, 그 너머까지.

종리곡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의식적으로 아래에 시선을 주지 않고 있지만, 지금 그가 얼마나 위험한 곳을 오르고 있는지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친 짓이야.’

이런 짓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 제정신 아닌 짓을 지금 종리곡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누구 하나 강요하거나 시킨 적도 없는데 말이다.

쇄애애액!

그런 그의 옆을 풍영신개가 대단한 기세로 솟구쳤다.

종리곡의 능력으로는 따라 할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경공이다. 한때 천하제일신(天下第一迅)이라 불렸던 풍영신개의 경공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질 수는 없지!”

그 속도에 고무된 종리곡이 절벽 면을 박찼다.

“종리 장문인!”

남궁명의 커다란 고함이 들려왔다. 하지만 종리곡은 돌아보는 대신 절벽을 더 박차고 오르기를 택했다.

‘왜일까?’

알 수 없다. 그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어째서 손해밖에 안 되는 짓을 굳이 하고 있는지.

그는 어깨에 수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다.

종남의 미래, 앞으로 자라날 종남의 동량들, 그리고 어쩌면 천하의 미래까지.

절벽이 붕괴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천우맹을 이끌어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땐 그렇다. 그리고 그 일원이 되어야 할 종리곡이 이곳에서 제 목숨을 건다는 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다. 새하얗게 흩뿌려진 검기와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는 두 검기의 조화가 보인다.

“어린놈들이…….”

종리곡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 너희에겐 이르다!”

파앗!

그가 바람같이 절벽 면을 타며 쇄도했다.

* * *

“군사!”

호가명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천우맹…….’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이들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속도다. 저것만으로도 무위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각 문의 최정예들을 절벽으로 투입했다는 건가?’

천우맹의 본대는 절벽 아래에서 사패련의 군세와 교전을 벌이고 있다. 한데 그 와중 저만한 전력이 빠졌으니 반드시 피해를 늘리게 될 터다.

제 문파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화산을 구하러 나선 셈이다.

심지어 자칫하면 자신들의 목숨까지 위태해질 곳으로.

‘아니. ‘자칫하면’이 아니지.’

이어질 폭발을 막아 낼 확률보다, 막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계산하지 못할 만큼 저들이 멍청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저 절벽을 오르고 있다.

호가명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상황이 지금 그의 전략에 커다란 지장을 끼치고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달리 보자면 절벽을 오르는 저 주요 전력마저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 버릴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가명은 지금 당혹감을 누르기 힘들었다.

‘저놈들이…….’

저들이 호가명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정파 놈들이 어떤 놈들이었던가.

제 이득을 위해서라면 다른 문파의 멸문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이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대놓고 서로를 공격하는 사파보다 더 간악하고 지독했던 게 바로 정파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당장 호북의 전투에서 사패련의 승리를 굳혀 준 것이 바로 정파 간의 미묘한 알력과 경쟁으로 인한 분열이었다.

그런데 그 간사하던 놈들이 지금 제 목숨까지 걸어 가며 절벽을 오른다. 도대체 어째서인가.

“군사, 대책을…….”

“조용.”

“군사.”

“조용히 하라지 않느냐!”

호가명이 별안간 벌컥 노성을 터트렸다. 안색이 창백해진 부관들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뿌득.

이를 갈아붙인 호가명이 절벽을 노려보았다. 늘 서늘하던 눈매가 일그러져 있었다.

‘달라진 건 없다.’

상황은 여전히 이쪽에 유리하다.

‘화산검협이 없음에도 패배할 리는 없다.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승리가 필요하다. 그것도 압도적인 승리가.

그것만이 그의 계획에 맞추어 움직여 준 장일소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사패련 군사로서의 호가명은 존재 가치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산은?”

“아직 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하지만 곧 알아채겠지.”

절벽에서 커다란 교전이 벌어진다면, 아무리 혼란스럽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태양궁에 전해라. 폭약을 터뜨리라고.”

“군사! 아직 준비가…….”

“상관없다.”

호가명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미 그물에 구멍이 뚫렸는데 물고기들이 다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반만 건진다 해도 손해는 아니다. 운이 좋다면 모조리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럼 태양궁도들도…….”

“그건 태양궁주의 몫이다.”

호가명이 냉정하게 부관의 말을 잘랐다.

“전해라.”

“예, 군사!”

호가명의 뜻이 확고히 정해진 것을 알아챈 부관들이 군말 없이 경공을 펼쳐 달려 나갔다. 호가명은 그 모습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절벽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나.’

손바닥이 흥건한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소림과 구파일방의 연합조차 그와 장일소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그건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니다. 본래 전쟁이란 예상하지 못해서 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막지 못해서 지는 것이니까.

그 예상 궤도를 유일하게 벗어나 있는 존재가 천우맹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당연히 화산검협이어야 한다.’

하지만 화산검협이 없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이는 화산검협이 천우맹의 핵심이 아니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호가명이 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호가명이 이 상황을 쉬이 못 받아들이는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이 흡사 저곳에 화산검협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일 화산검협이 저곳에 있었다면?

아마 첫 폭발이 터지는 즉시 저 절벽을 타고 올랐을 것이다. 무모하게, 대책 없이, 마치 광인처럼.

그 당황스러운 상식 밖의 모습을 지금 저들이 보여 주고 있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닌 여럿이 동시에.

호가명의 두 눈에 살짝 핏발이 섰다.

‘모조리 이곳에서 죽여야 한다.’

심장이 불쾌하게 날뛰었다. 그 역시 지금 자신이 느끼는 위기감의 실체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평소 그의 지론대로라면, 대다수가 화산겁협처럼 사고하고 움직이는 세력이란 당장 망해야 할 곳에 불과하므로.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목도한 순간, 호가명은 전에 없이 다급해졌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본능’과 ‘예감’이라는 두 단어가 지금 그를 향해 쉼 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호가명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이르듯 외쳤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 모조리 절벽 아래 파묻어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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