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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 1786화


1786화. 사패련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1)

“음?”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개방 거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보이는 건 없다. 느껴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 느낌은…….’

잠시 주춤하던 거지의 시선이 획하고 꺾인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제 발밑으로.

떨린다. 아니, 흔들린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미약하디 미약한 진동. 그렇지만 또한 확실하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지진인가?’

하지만 그 생각은 즉시 거두었다. 이건 지진과는 다르다. 급격하게 커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조금씩 규칙적으로 커지는 이 진동은…….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거지의 시선이 격하게 앞쪽으로 꺾인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 초원의 끝에 무엇인가 보였다.

그의 단련된 시각으로도 지금은 그저 ‘일렁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

‘저건?’

등을 타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 흐릿한 일렁임이 점점 더 선명하게 번져 오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

거지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윽고 그 일렁임이 지평선을 채우며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군세라는 것을 알아차린 거지가 그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사, 사패련!’

단순한 이동? 그럴 리가 없다. 저건 분명 사패련의 총공세다.

‘빨리 알려야!’

그의 손이 재빨리 품 안으로 파고든다. 아직 이 모든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맹에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그들이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거지가 재빠르게 작성한 전서를 특급 전서구의 발목에 매달고 띄우려 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안 되지.”

덥석.

누군가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심장이 목으로 튀어 오를 것처럼 놀란 거지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손목을 허용할 거리까지 적이 접근했음에도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다니.

“…….”

“알려진다 해서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래도 수월한 쪽이 낫지 않겠나. 우리는 실리를 중히 여기니까.”

거지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처음 보는 얼굴. 그가 기억하는 사패련의 고수들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거지는 이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천면…….”

“똑똑하군.”

콰악.

천면수사의 남은 한 손이 거지의 목을 틀어쥐었다.

“끄륵…….”

거지의 발이 땅에서 띄워 올려진다. 허공에 매달린 거지가 반사적으로 제 목을 조르는 손을 부여잡았다.

“그럼 네가 왜 죽는지도 알겠지.”

혈류가 차단되어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거지는 눈앞의 천면수사 대신 진군하고 있는 적의 군세를 곁눈질했다.

‘안……돼. 이대로……는…….’

우득.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거지의 목이 모로 꺾였다. 목이 분질러진 시신을 무심하게 바닥으로 던진 천면수사가 끌끌 혀를 차며 제 손목으로 흘러내린 침을 털어 낸다.

“하여간.”

이래서 호가명은 방심할 수 없는 자다.

‘뻔히 감시하고 있는 이들의 위치를 파악해 두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건가?’

언젠가는 반드시 이리될 것이라 여기고?

‘나라면 감시하는 놈들을 진작에 치워 버렸을 텐데.’

이 시점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느 쪽이 더 이득인가는 따져 볼 것도 없다.

“흥.”

덕분에 애꿎은 천면수사만 할 일이 늘어났지만, 이 정도의 수고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천면수사 역시 사패련의 승리를 바라는 자였으니까.

‘지금은 말이지.’

천면수사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예민한 귀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답답한 신음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수하들이 잘 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력이 동등하다면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쪽이 유리한 법. 자신들이 들키지 않았다고 여긴 순간부터 저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면…….”

천면수사가 제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이제는 낯설어져 버린 진짜 입술 대신 얇디얇은 면구의 감촉이 그의 혀끝에 느껴진다.

‘저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까? 일각? 이각? 아니면…… 한 시진?’

일각이라면 유리함을 취할 수 있을 것이고, 반 시진이라면 전장의 형세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한 시진이라면…….

천면수사의 달뜬 눈빛이 북쪽으로 향했다.

“명운을 바꾸고도 남을 시간이겠지.”

그 목소리에 옅은 흥분이 묻어나고 있었다.

* * *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딱히 이렇다 할 게 없습니다.”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 이대로 물러날 이들이 아닙니다. 반드시 무언가를 노리고 있을 테니,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해 주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제갈자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군악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천면수사라…….’

생각했어야 했다.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뻔히 적에게 완벽한 역용이 가능한 이가 존재함을 알았음에도 미처 헤아리지 못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당군악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남궁세가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남궁명이 있었다.

“화산검협이 천면수사를 쫓아냈으니, 한동안은 문제가 없을 테니까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사파의 수괴 놈이 망신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그 말에 오래간만에 밝은 공기가 천막 안을 타고 돌았다.

모두의 입가에 짧은 미소가 어렸지만, 당군악만은 쉬이 웃지 못했다. 이 소식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상해.’

천면수사는 살아 돌아갔다. 청명의 말대로라면.

당군악은 그 사실에서 한가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천면수사의 실력이 그리 대단했던가? 그 화산검협의 검을 상대하고도 목숨을 부지할 만큼?’

다른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당군악에게는 이상할 게 없는 의문이었다. 이미 당군악은 천면수사와 손을 섞어 보았다. 그는 분명 강했다. 하오문주라는 자리와 사파제일수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 상대가 청명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그를 뛰어넘어 이제는 정파제일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청명이었다.

주변의 도움 없이 청명과 대면해서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당금 강호에 몇이나 될 것인가.

‘아니. 그럴 수 없다.’

그가 본 천면수사의 실력이 진짜라면……. 아니, 천면수사가 다소간의 힘을 숨기고 있었다 한들, 청명의 검 아래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하지만 천면수사는 분명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갔다.

‘그렇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면 반드시 이유가 존재할 터.

어느 쪽인가? 천면수사가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가? 아니면 애초에 청명과 대면할 것을 목표로 하고 도주할 준비를 마쳤던 것인가?

그 둘 모두 아니라면…….

당군악이 고개를 내저었다.

세 번째는 생각할 것도 없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문파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적이 더없이 강대하게 느껴지는 지금 같은 상황이야말로 절대고수의 중요성이 가장 커지는 순간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가정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후…….”

당군악은 자신이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하지만 그 초조함을 이겨 내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당산이 아닌 이런 곳에 진을 치게 된 것도, 그 진을 벌써 며칠이나 유지한 채 무당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느 하나 그가 바란 상황이 아니다.

아직 피해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제는 저들이 단순히 맹을 평지로 끌어내기 위해 이런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을 거란 점이었다.

‘반드시 무언가 있다.’

상대는 그 장일소이고, 그 호가명이니까. 그들이 노림수도 없이 일을 벌인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니까.

하지만 당군악은 도무지 그 실체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적이 무언가를 노린다는 건 알겠는데, 정작 무엇을 노리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당군악의 눈이 절로 질끈 감겼다.

심장이 짓눌리는 것 같은 갑갑함이 그를 조여 오고 있었다.

‘내게는 버거운 일이야.’

당군악은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했다.

알고 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그에게 완벽한 맹주의 역할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지금 공석이나 다름없는 맹주의 위를 대신할 허수아비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들은 모른다. 당군악조차 얼마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 허수아비조차 타인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무게를 버텨 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맹주님.’

현종은 이런 부담감을 지금까지 감당해 온 것일까? 그의 판단 하나가 잘못되어 천우맹은 물론 강호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

당군악이 제 소맷자락을 가만히 움켜잡았다.

물론 그가 모두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어긋나지 않게 모두가 도울 것이다. 이 강호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들마저 틀린다면? 아니, 당군악이 그들이 틀린 답을 내어놓았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뒷일은 누가 감당할 수 있는가.

당군악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 앉고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머리 위에서 그를 짓누르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찾게 된다. 중압감에는 실체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때였다.

“그런데 맹주님께서는.”

남궁명의 입에서 맹주라는 말이 나오자 천막 안이 절로 고요해졌다.

“아직…… 소식이 없으십니까?”

“…….”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제갈자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 듯합니다.”

“으으음.”

남궁명이 곤란하다는 듯 침음을 흘린다. 절로 통해 버린 마음에 당군악이 짧은 한숨을 재차 내쉬려는 찰나, 모용위경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딱히 중히 여길 일은 아니잖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이리 당가주께서 그 역할을 해 주고 계시고, 위급 시에는 종리 장문인도 있으시니, 맹주님이 부재하시다 해도……. 아니, 차라리…….”

당군악의 눈가가 확연하게 일그러졌다.

현종에 대한 미묘한 무시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있어 온 것이다. 당군악도 그 사실을 알기에 지금까지는 딱히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가 앉아 있는 자리가 얼마나 지독한 곳인지 안다면 저딴 말은 절대 지껄일 수 없다.

“지금 그걸 말이…….”

“차라리 다행이라.”

당군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종리곡이 입을 열었다. 그의 서늘한 시선이 모용위경에게로 향했다.

“가주께서는 걱정거리가 없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모용위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저 말이 그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을 그라고 왜 모를까.

“장문인. 어찌…….”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모용위경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하지만 종리곡은 그런 모용위경과 시선조차 마주쳐 주지 않았다.

차라리 대놓고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것보다 더 삭막한 분위기. 그 분위기 속에서 당군악이 제 목을 신경질적으로 주물렀다.

그로서는 이들을 통제할 수 없다. 힘과 권한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포용할 만한 인덕이 그에게는 없으니까.

‘더는 무리입니다, 맹주님. 이제는 그만 돌아오셔야 합니다.’

당군악이 막 입을 열려는 모용위경을 만류하려 들던 찰나였다.

화악!

그들이 자리한 천막의 문이 찢길 듯 젖혀지더니, 그곳에서 한 사람이 바람처럼 뛰쳐 들어왔다.

“신개.”

당군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박하게 안으로 뛰쳐 들어온 이가 다름 아닌 풍영신개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

당군악이 입을 닫았다. 풍영신개의 안색이 귀신이라도 본 듯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렇기에 직감했다. 지금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사패련…….”

풍영신개가 입을 열었다. 떨리듯 나온 그 목소리는 마지막에는 비명처럼 화해 천막을 뒤흔들었다.

“사패련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총공세입니다!”

당군악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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