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화산귀환 1792화


1792화. 저게 대답이란다. (2)

경악한 눈빛이 따가울 정도로 꽂혀 온다. 숱한 시선 속에서 남궁도위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소가주님! 무슨……!”

다급히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저들이 하려는 말은 빤했다. 그리고 남궁도위도 그 말이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모르겠군.’

알 수 없었다. 지금 그가 나서는 게 옳은지, 아니면 묵묵히 지시를 기다리는 게 나았을지.

아직 망설임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굳이 검을 뽑아 들고 나선 이유를 꼽자면 하나밖에 없다.

–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도장.’

그 말이 이제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남궁도위는 이제 따르는 이가 아닌, 이끌어야 하는 이다. 이끄는 이는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거기에 굳이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사파 떨거지 놈들.”

남궁도위가 느릿하게 제 검을 들어 올린다. 이윽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다소 어색한 말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남궁도위는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남궁황이라면, 그의 아버지라면 반드시 이리 말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것을 따지기 전에, 그저 저들의 앞을 막아섰을 것이다. 간교한 칼날이 정(正)의 이름하에 있는 이들을 감히 침탈하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닮으려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가슴을 흉내 낼 용기조차 없다면 어찌 남궁(南宮)이란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갈 수 있으랴.

치켜든 남궁도위의 검에 새하얀 검기가 어렸다. 한없이 부풀어 가던 검기는 이내 집채만 한 크기로 불어났다.

“어……. 어, 어?”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존재만으로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제왕의 검이 현현(顯現)하고 있었다.

“와라! 내가 남궁도위다! 모조리 무찔러 주마!”

남궁도위의 검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강력하다는 말로는 이를 다 표현하기 부족했다.

명문의 정수가 모인 내력이다. 거기에 그 내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검술을 갖추었고, 수련자의 부단한 노력이 따랐다.

그러나 이 검격엔 그 모든 걸 뛰어넘은 무언가가 더 실려 있었다. 그 때문에 모두가 보는 것만으로도 혼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어…….”

뒤는 생각지 않는다. 모든 것을 끌어낸 일격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일격을 평가하기에 가장 온당한 말은 ‘어리석다’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전투의 시작부터 내력을 소진하는 것은, 빈말로도 훌륭한 전략이라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외려 그렇기에 지켜보는 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남궁…….”

“소가주님이다! 남궁가의 소가주 남궁도위다!”

그의 등장을 지켜본 이들이 목이 터지도록 함성을 내질렀다.

더 강한 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더 드높은 명성을 가진 이?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 순간 그들이 남궁도위보다 더 피를 끓게 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이 열광은 무학의 고강함에서 기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두의 뇌리에 확연히 새겨져 있지 않던가. 남궁도위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매화도에서부터, 늘 사패련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워 온 무인. 사패련의 손에 가문이 반파되었지만, 그러고도 가슴속 의지를 잃지 않은 이 시대의 기린아.

그런 남궁도위의 검이기에, 남궁도위의 목소리이기에 보는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 수 있었다.

“물러서지 마라!”

언제고 그와 함께하던 남궁의 이름이 그의 바로 등 뒤에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남궁이 있기에 그가 바로 설 수 있는 게 아니므로.

그가 있기에 남궁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남궁도위가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여기에 지키기 위해 섰다.”

그는 남궁이지만, 때로는 천우맹이었고, 때로는 화산이었다. 그가 그러했듯 이 검의 뒤에 서는 이라면 누구라도 남궁이 될 수 있다.

“단 한 놈도 이 땅을 밟게 내버려 두지 마라!”

남궁도위는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올곧고 고강한 기세에 사패련도들이 순간 움찔했다.

“이 애송이 놈……!”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을 상대로 기가 죽었으니, 차마 실컷 분노하기도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천우맹도들이 남궁도위를 따라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저, 저놈들이!’

흡사 다른 전장처럼 기세가 일변했다. 솟구친 기세가 사방을 뒤틀고 뭉개 버리는 듯했다.

“밟아 버려라! 설치게 내버려 두지 마라!”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사패련도들에게도 물러설 자리 같은 건 없었다. 이제 택할 수 있는 길은 그저 저들과 전력으로 맞붙는 것뿐이었다.

또 하나의 흐름이 이곳에서 뒤바뀌고 있었다.

“뭐, 뭐야?”

인근에서 들려온 거대한 함성에 시선이 돌아가고, 주의가 분산되었다.

카각!

그 순간, 사패련의 칼을 막아 내던 검이 튀어 오르며 얼굴에 긴 자상이 그였다.

“아악!”

“한눈팔지 마, 이 미친놈아!”

“허, 허억!”

근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알겠으나 눈을 돌려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뭔 일이 터지든 일단……!’

카아아아앙!

“……끄윽.”

짓누르듯 내리친 도에 실린 힘 때문에 손목이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 왜 자신은 검 같은 가벼운 병기를 택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후회마저 밀려왔다.

‘비, 빈틈을…….’

도가 회수되는 순간을 노려서 반격하지 않는다면 막기만 하다가 검이 부서지고 말 터.

그러나 적은 이 생각을 미리 읽기라도 한 듯 도를 회수하지 않았다. 그저 더욱더 아래로 내리누르기만 할 뿐.

“커헉!”

허리가 뒤틀리며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릎이 꺾이는 순간 몸뚱이가 반으로 갈려 버릴 거란 사실을 알기에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하, 한계야.’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더는 버틸 수 없을 거란 절망감이 두렵도록 전신을 휩쌌다.

‘누가……. 누가 제발 도와…….’

째애애애애앵!

설상가상으로, 끝내 검이 부서지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직감한 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러나 기다려도 고통이 느껴지질 않았다. 단숨에 죽음에 이른 걸까?

두려움을 이기고 슬며시 눈을 뜨자 그의 앞에 검을 쥔 한 사람이 보였다. 내리쳐진 도를 가로막은 채로.

“어…….”

이자의 무기도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한 장검이었다. 그의 검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버티지 못한 도격을 막았다.

“끄으으으으…….”

도를 쥔 사패련의 무인이 온몸에 굵은 핏대가 서도록 힘을 주었지만, 검은 태산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예?”

질문을 받은 이는 넋을 놓고 있다가 얼떨결에 반문했다. 실로 멍청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던졌던 이는 담담히 말했다.

“늦을 뻔했군요. 죄송합니다.”

“아…….”

그러더니 심지어 멍하니 넋을 놓은 그의 어깨를 쥐고 슬며시 뒤로 뺐다.

‘하, 한 손으로?’

이 모든 과정 동안 그는 한 손에 쥔 검으로 적의 도를 막아 내고 있었다. 마치 아이가 휘두른 장난감 칼을 상대하는 듯 손쉽게.

“그럼.”

투우우웅!

검수가 검을 가볍게 튕겼다. 적의 도가 밀려났다. 특별히 큰 힘을 준 것도 같지 않은데, 도를 잡고 있던 이가 균형을 잃으며 뒤로 한없이 밀려났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응시했다.

이런 황당한 모습은 아주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현상임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네, 네놈은 누구지?”

“딱히 명성 높은 이는 아닙니다. 그래도 꼭 알고 싶으시다면 말씀드리지요.”

앞으로 나선 검수가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단단히 섰다. 마치 바닥에 뿌리를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검수가 그 상태로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실로 흔하디흔한 중단세였다. 모든 검의 기본이 되는 기초 중 기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보는 이들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 사내의 손에서 펼쳐지는 기초가 중압감을 준 것이다. 흡사 태산이 앞을 가로막고 선 듯했다.

푸른 문양이 새겨진 흰 무복 차림의 사내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남의 이송백. 지금부터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사패련도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송……백?’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만한 실력을 갖춘 검수의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

“사, 사형! 뭐 하는 겁니까?”

그 이름에 반응한 쪽은 오히려 뒤쪽에 있던 종남의 제자들이었다.

“뭐 하는 거냐니. 막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예?”

“그게 선두이든, 뒤이든 마찬가지 아니냐. 막으라 하니 막는 것뿐이다.”

“그게 무슨……!”

이송백의 뒷모습을 보며 종남의 제자들은 얼이 빠지고 말았다.

함부로 나서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는 장문인의 명을 뻔히 들어 놓고도 저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전면에 나서다니.

“이 개자식이!”

미처 다시 말리기도 전에 사패련도들이 이송백을 향해 흉흉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수많은 도가 사방에서 이송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칼날로 이루어진 짐승이 덮쳐 오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피, 피해!”

지켜보던 이들이 다급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정작 이송백은 담담하게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서른여섯.’

내가 보는 세상은 서른 하고도 여섯.

세상은 삼십육의 방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말인즉, 서른여섯의 방위를 동시에 점할 수 있다면…….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다.’

쇄애애애액!

이송백의 검이 허공에서 분열했다. 화려한 듯 보이지만 내실은 묵직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저 정확한 검이 온갖 곳에서 날아드는 도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막아 내었다.

카아앙!

수십 차례의 작은 금속음이 동시에 울리며 하나의 커다란 굉음을 자아냈다.

“커헉!”

“아아아아악!”

도가 이송백의 검에 가로막히자, 도객들은 족족 절벽에서 떨어진 개구리처럼 나가떨어졌다.

“저…….”

놀라운 신위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송백을 다시 보았다. 이번에도 그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한 중단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이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르쳐 준 이가 저기에 있다.

만일 그와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이송백은 어떤 이가 되었을까? 글쎄.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이송백의 시선을 받은 사패련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긴장을 이겨 내려는 듯 외쳤다.

“이 이름도 없는 놈이!”

“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요.”

이송백이 부정할 수 없다는 듯 끄덕였다. 나름 같은 배분이라 할 수 있는 진금룡이나 남궁도위, 오검에 비하면 그는 무명소졸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조금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는 중이었습니다.”

“……뭐라?”

“그러니 내친김에 오늘 얻어 보도록 하죠.”

이송백이 검을 겨눈 채 말했다.

“기억해 두십시오. 종남의 이송백. 당신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이름이 될 겁니다.”

화산의 꽃과는 다른 종남의 나무가, 그 가지만큼 든든한 뿌리를 발밑에 단단히 박아 넣었다.

청명이 뿌려 둔 하나의 씨앗이 이 순간 세상을 향해 활짝 피어났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