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358화


얼굴은 확대 사진이라 너무 흐릿했다. 게다가 잘 보이는 각도도 아니었다. 티베는 더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 남자의 모습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간간이 드래곤의 모습만이 나올 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베셀에게 말했다.

“후우‥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군요. 도대체 이 드래곤과 붉은 머리 남자는 적일까요, 아니면‥.”

베셀은 애용하는 씹는 담배를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흠‥하여튼 성경에 나오는 메시아는 아닐 거야. 다 때려 부수고 다니는데 구원자까지는 아니겠지. 난 숨겨진 BSP나 다른 조직의 일원 내지는 생체 병기, 셋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블랙 프라임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건 사실이고. 여태까지 블랙 프라임들이 연료를 강탈하기 위해 나타났을 때 열 번 중 한 건에서 두 건은 실패했어. 저 드래곤과 정체불명의 슈퍼맨에 의해서 말이야. 10에서 20% 정도의 손해를 보면서 블랙 프라임이 쇼를 할 이유는 없겠지. 그리고 죽어간 병사들도 진짜고. 자아, 회의 시간이 다 됐으니까 어서 가자고. 나중에 계속 얘기해 보지.”

티베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셀과 함께 VTR 편집실을 나섰다.

회의실에서 국제부 부장은 머리를 긁으며 일주일 전에 벌어졌던 공항에서의 일을 티베와 베셀에게 물어왔다. 사실 그들도 대답할 거리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기절해 있거나 트럭 안에 갇힌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부장은 쓴맛을 다시며 물만을 벌컥벌컥 들이킬 뿐이었다. 다른 안건이 올라와 토론을 벌일 무렵, 회의실 내부 전화가 울렸고 부장은 지겹다는 듯 전화를 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국제부요! ‥음? 뭐라고!?”

부장은 옆에 있던 직원에게 어서 회의실 브리핑 TV를 켜보라고 손짓했고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TV를 켰다. 켜자마자 나오는 것은 뉴스 속보, 그것도 파리 근교에서의 일이었다. 베셀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저, 저건 로블 정유 공장!! 블랙 프라임 녀석들이 벌써 저기까지!!!”

화면 안의 같은 방송사 기자는 몸을 숙인 채 공포에 질린 얼굴로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신 방해 내지는 무슨 이상이 있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카메라 뒤로 보이는 검은 제복의 군인들이 블랙 프라임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뒤에서 불꽃이 몇 번 번쩍이더니 기자의 어깨에서 선혈이 튀었고 카메라도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카메라맨도 맞은 듯했다. 회의실 안의 여직원들은 기겁을 하였고 남자 직원들 역시 입을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메라는 용케 돌아가고 있었다. 넘어진 카메라가 홀로 잡고 있는 부분은 미사일 공격을 버티고 있는 정유 공장의 고출력 배리어 부분이었다. 색으로 봐서 별로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회의실 안은 침묵의 도가니였다. 아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방송국 전체, 프랑스 전체가 침묵의 도가니였다.

“제, 젠장! 어째서 정규군이 출동하지 않는 거야!! 저렇게 빼앗기기만 하면 어쩌자고!!”

한 직원이 울분을 토하며 책상을 내리쳤다. 다른 직원들도 침통한 모습이었다. 티베는 안타까운 눈으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티베는 이상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배리어에 가해지던 미사일 공격이 멈춘 것이었다.

“‥잠깐만요 여러분! 미사일 공격이 멈췄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메라의 음향 전송을 방해하는 그 무엇도 사라진 듯, 치직 소리와 함께 폭음과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 으윽‥!」

누군가의 큰 신음 소리와 함께 카메라의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카메라맨이 정신을 차린 것인지, 상처를 무릅쓰고 투혼을 발휘하는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화면은 회전과 흔들림을 거듭하더니, 이윽고 어느 한 곳에 멈추었다.

“저, 저걸 봐!! 드래곤이야 드래곤!!!”

베셀의 외침과 같이 화면엔 예전에 그들을 구해준 일이 있던 드래곤이 빠른 속도로 화면 안을 휘젓고 날아다니며 블랙 프라임의 미사일 포대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고성과 함께 드래곤의 벌려진 입에선 푸른색의 빛이 방출되었고 지상에 있는 장갑차 부대와 미사일 부대, 보병 부대를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세, 세상에‥!?”

다시 공격을 하려던 드래곤은 공중에서 전투 헬기 부대가 나타나자 포효와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고 카메라 역시 드래곤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여 올라갔다. 그 순간, 드래곤의 등에서 또 하나의 그림자가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그 그림자를 따라 카메라는 다시 움직였고 회의장 안의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 사람이야! 사람이 드래곤의 등에 타고 있었어!!”

카메라는 운이 좋게도 사나이의 정 측면을 잡을 수 있었다. 짙은 회색의 망토, 갈색 아대, 아마색의 옷, 그리고 위로 묶어 내린 붉은 장발과 입가를 가린 회색의 복면‥. 누가 본다면 불순분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런 단어가 떠오를 틈이 없었다. 뉴스 카메라에 잡히고 있는 현재의 광경은 어떤 영화의 장면보다도 압권이었다. 사나이는 망토 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짙푸른색의 날을 가진 긴 자루의 소검이었다. 카메라는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을 했다. 중전차 몇 대와 경장갑차 몇 대가 그 사나이와 카메라맨을 향해 포신을 돌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다시금 사나이에게 돌려졌다. 사나이의 복면이 꿈틀거렸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웨이크 업‥!」

그 목소리와 함께 소검의 날을 중심으로 우윳빛의 또 다른 넓은 날이 퍼져 나왔다. 그야말로 넓은 대검이었다. 그 광경에 베셀의 입안에 있던 씹는 담배가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영화나 만화를 보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져 보았다.

“아니, 저런 검으로 어떻게 전차들을 상대한단 말이야! 그것도 박물관에서 끌고 온 초구형 전차가 아닌 최신예 [헤무츠-4] 전차를!!”

그러나 부장의 그런 말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사나이의 모습은 화면에서 사라졌고 카메라는 급히 전차들이 있는 곳을 향해 돌려졌다. 흰색의 넓은 잔광들이 전차들 사이에서 번뜩였고 순간 전차들의 표면에 칼로 잘린 듯한 균열이 생겨났다. 전차들의 폭발과 동시에 사나이의 몸은 공중으로 치솟았고 사나이는 아까 있던 자리에 다시 착지를 했다. 사나이는 검을 옆으로 비스듬히 들며 또다시 중얼거렸다.

「‥슬립.」

그 말과 함께 우윳빛의 날은 서서히 사라져 갔고 아까와 같은 소검의 모습이 된 검은 다시금 사나이의 망토 안으로 사라져 갔다. 그 붉은 장발의 사나이는 카메라를 주시했다. 그리고 입을 꿈틀거리며 물어왔다.

「괜찮소? 총상이 있는데‥.」

그 순간, 카메라가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부장이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아니 뭐야!! 화면을 똑바로 잡아야 할 거 아니야!!!”

쿠직–!

「치이이이이이–」

카메라가 순간 하늘을 찍는가 싶더니 이상한 기계음과 함께 화면은 나가버렸고 검게 변한 TV에선 치이익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같은 카메라맨인 베셀은 그 이유를 아는 듯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결국엔 정신을 잃은 모양이군 저 친구. 그것도 뒤로 쓰러진 모양이야. 카메라도 부숴 먹다니‥어쨌든 저런 귀중한 장면을 혼신의 힘을 다해 찍은 건 칭찬할 만하군. 안 그래요 부장님?”

베셀은 웃으며 부장을 비롯한 모두를 돌아보았다. 남자 직원들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고, 여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검게 변한 TV를 주시하고 있었다. 티베 역시 같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베셀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허, 참‥대단한 스타의 탄생이군 그래. 모든 내로라하는 남자 직원들과 연예인들의 도전을 뿌리친 티베까지 넋이 나가게 하다니‥.”

그날 그 방송국에선 예전에 1분 동안 포르노 비디오가 실수로 방영되어 항의 전화가 빗발친 이래 가장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나이는 누구냐, 영화를 속보랍시고 튼 게 아니냐, 정밀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냐, 심지어는 그 사나이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고 있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방송국에선 또 오후 뉴스 시간에 특집이라 하며 그 속보를 재방송하기에 이르렀다.

베셀과 티베는 다음날 조기 퇴근을 한 후 [로블의 영웅]이 되어 버린 동료 카메라맨을 찾아 병원으로 갔다. 카메라맨과 그 당시 취재를 하던 기자 둘은 나란히 병실에 누워 있었다. 둘 다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총격을 받지는 않은 듯했다. 카메라맨이 찍은 사람은 일순간 수수께끼의 스타가 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그를 찍은 카메라맨의 병실엔 그의 부인이 놓아준 꽃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베셀과 티베가 들어오자 그는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맞아 주었다. 기자는 잠이 들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아, 어서 오게나 베셀. 내 꼴이 말이 아니지? 하하핫‥.”

베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긴 아는군. 후훗, 농담일세.”

카메라맨은 미소를 지으며 티베와 베셀을 번갈아 본 후 물었다.

“음‥자네들 내가 어제 찍은 그 남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온 거지? 하긴 뭐 티베도 여자니까 당연히 그 슈퍼맨에게 관심이 있겠지. 하하하핫‥.”

티베는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카메라맨은 숨을 후우 들이킨 후 몸을 약간 움직여 편한 자세를 취한 다음 얘기를 시작했다.

“음‥그때 카메라가 부서져서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야. 나만 알고 있는 내용이 있긴 하지.”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