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59화
베셀은 감탄하듯 말했다.
“호오‥미공개 얘기라는 건가? 좋아, 비밀은 지켜주지. 하하핫‥.”
티베는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맨이 얘기하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카메라맨은 숨을 들이킨 후 그때의 얘기를 시작했다.
“으, 으윽‥!!”
카메라는 부서진 모양이었다. 젠장, 월급에서 깎겠군이라는 말이 입 안에서만 돌았고 나오지 않았다. 그의 앞에 전차들을 야채 자르듯 자른 주인공이 다가왔다. 옷차림으로 보면 놀이공원에 가끔씩 아이들을 위해 나오는 쇼맨들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 사나이의 눈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 슈퍼맨은 카메라맨의 어깨에 난 관통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동맥은 다치지 않은 듯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저 기자도 비슷한 상처일 뿐이오. 이 나라의 상부가 아무리 썩었어도 구급차는 곧 올 테니 그렇게 누워서 편하게 쉬고 있으시오.”
상부가 썩었다‥뭐 새삼스럽게 놀랄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정치에 관련된 말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카메라맨은 뭐라 묻고 싶었다. 그러나 입이 이상하게 열리지 않았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이렇게 목격자들을 많이 만들어도 되는 건가?」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카메라맨의 귀에 들려왔다. 그는 카메라를 들 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여 눈을 떠 보았다. 그 정체불명의 사나이 옆에 어느새 그가 타고 있던 드래곤이 와 있었다.
“‥별 탈은 없겠지. 누가 사인해 달라고 찾아올 리도 없잖아. 자, 다른 장소로 가보자.”
그 사나이가 드래곤의 어깨 위에 올라타며 말하자, 드래곤은 눈살을 찌푸리며 놀랍게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이놈과 600년 전 알게 됐는지‥젠장할.」
너무나도 또렷한 음성이었다. 약간 차가운 기색이 있긴 했지만‥. 카메라맨은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점점 눈앞이 흐려져 왔다. 죽는 것이 이런 것 비슷할까‥?
“뭐, 이 정도라네.”
베셀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티베는 직업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를 가까이서 보셨으니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실히 보셨죠? 좀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선배님?”
카메라맨은 살짝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음‥입가를 두건으로 가리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보진 못했어. 하지만 그 엄청난 붉은 장발은 질릴 정도였지. 키도‥꽤 컸어. 190은 거뜬히 넘어 보이더군. 192cm‥내지는 195cm 정도 될 것 같았어. 망토와 아대가 꽤 두꺼운 편이라 살짝 보이긴 했지만 근육도 대단하더군. 약간 붉은색을 띄고 있는데, 무슨 큰 밧줄인 줄 알았다니까.”
그런 질문은 거기서 끝이었다. 더 이상 질문할 것도 없었고, 카메라맨도 안정을 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티베는 베셀과 병원 앞에서 헤어진 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기 위해 에펠탑 근처로 가던 티베는 에펠탑 앞의 광장에서 수많은 중년과 노인들이 모여 [결사반대]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데모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티베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백 년간 프랑스의 명물이라 불려온 에펠탑이 ‘전력만 잡아먹는 고철’ 신세로 전락되어 철거 예정 건축물이 된 탓이었다. 각 여론과 시민단체, 외국에서조차 프랑스 정부의 그 방침에 반발하고 나섰으나 프랑스 대통령의 자존심은 이상할 정도로 강했다. [결사반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티베는 한숨을 쉬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나갔다.
집에 도착한 티베는 피곤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힐린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힐린이 소설에 손을 댄 뒤부터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티베는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탁자에 가방을 놓고 힐린의 뒤로 다가가 물었다.
“어머, 웬일이세요? 오늘은 TV도 다 보시고‥이상한 일이네요?”
그녀가 그렇게 물어오자, 힐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티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힐린의 얼굴이 거의 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싶으면 나갔어야지‥!”
그 순간 우악스러운 손길이 티베의 양팔을 붙잡아 그녀의 등 뒤로 돌려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도 큰 손에 막히고 말았다. 티베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정장의 사나이들이 어느새 그녀의 집 안에 잔뜩 들어와 있었다. 그들 중 흰 옷을 입은 청년이 티베의 앞에 다가섰다. 티베는 그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읍! 으으읍‥!!!”
티베가 손으로 입이 막힌 상태라 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그 흰 정장의 청년은 빙긋 웃은 뒤 한쪽으로 몰아 내린 긴 머리채를 멋진 동작으로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잘도 도망쳐왔다‥티베·프라밍. 왜 몇 년 동안 프랑스 안에서 도망 다녔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잡혔군. 잘 사용하는 마법도 양팔이 묶이고 입이 봉쇄되었으니 못쓰겠지? 저번엔 내 부하들이 이상한 할아범에게 처절히 당하는 바람에 잡히지 않았지만‥오늘은 그 할아범도 없군. 후후훗‥자, 끌고 가.”
그 청년의 부하들, 검은 복장의 사나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티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청년도 곧 따라 나섰고, 부하 한 명에게 귀띔을 했다.
“저 여자는 티베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정리해 버려.”
부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곧 나갔고, 힐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읍! 으으읍!!!!”
티베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프로 클리너급의 남자들에겐 벗어날 수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그녀의 팔엔 주사가 투여되었고, 그녀는 곧 자신의 의식이 가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탕탕탕–!!
그녀의 의식이 잠시나마 되살아난 것은 자신과 힐린이 있는 층에서 총성이 들린 직후였다. 그녀는 경악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읍읍!!! 읍–!!!!!!”
그녀의 앞에 흰 옷의 청년이 섰다. 청년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부하가 실수를 한 모양이야, 후후훗‥미안하군.”
티베는 더 이상 소리칠 의식도, 힘도 없었다. 그녀의 눈앞은 어느새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 청각은 좀 오래갔다. 디젤 자동차의 엔진 소리에 섞여, 그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그렇고 프로라는 녀석이 여자 한 명에게 총을 세 방이나 쏴? 젠장‥오면 갈아치워야겠군.”
“×, ××××‥?”
점점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희미해졌다. 아니,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의식과 감각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티베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분명 실험실 안에 준비된 표본 보존실이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망쳤는데‥어째서‥! 구해줘‥케톤‥아슈탈‥!!’
그녀는 속으로 처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구해주러 오지 못했다. 벌써 그녀가 마음속으로, 아니면 어딘가에 혼자 있을 때 그들의 이름을 불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오지 않았다. 가끔씩 꿈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었다.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왔다. 그녀는 움찔하며 뇌를 해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 손길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의사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고무질의 장갑도 아니었다. 맨살이었다.
“아, 아니‥!?”
티베는 눈을 떠 보았다. 자신의 집 거실 천정에 붙어 있는 형광등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죽었는 줄 알았던 힐린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보였다.
“히, 힐린 언니! 어떻게, 그리고 여긴‥?”
힐린은 티베가 무사히 정신을 차리자 그녀를 꼭 안아주며 안도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티베는 상황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꿈이었단 말인가?
“‥정신을 차렸나요?”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티베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파 뒤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청년을 본 티베는 진짜 기절할 것만 같았다.
“다, 당신은‥!!”
티베가 경악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자, 그 청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훗‥나중에요. 어쨌든 방 안의 침대로 모셔다 드리지요. 소파보다는 침대가 훨씬 몸에 좋을 테니까요.”
그 청년은 티베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며 힐린의 안내를 받아 티베의 방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깨와 다리에서 느껴지는 그 남자의 단단한 근육질이 티베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또다시 뒤엉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