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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53화


붉은 장발의 청년이 그녀의 눈앞에서 맨티스 크루저들에게 힘차게 돌진을 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상대가 되질 않았다. 헌터일 때도 제일 상대하기 귀찮은 존재 중 하나인 맨티스 크루저…. 보통 인간으로선 절대 1대 1로 상대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결국, 맨티스 크루저들에게 덤비던 그 청년은 자신의 검을 봉쇄당했고, 다른 맨티스 크루저에게 등을 보이고 말았다. 그녀는 그 청년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운이 좋으면 그 청년도 살고, 자신도 사는 것이었다.

푸욱–!!!

그러나, 그녀는 운이 나빴다. 그 청년을 살리는 데엔 성공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데엔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품속에 쓰러진 것을 본 그 붉은 머리의 청년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 누나…? 베니카 누나!!!!”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의식도 점점 흐려져갔고, 등에 당한 상처에서 전해지는 통증도 이젠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는지, 사력을 다해 그 청년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희미하게 말했다.

“너, 넌 살아야 해 리오…. 기사가…되었잖아….”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눈앞은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청년의 목소리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앞엔 어딘가 낯이 익은 듯한 붉은 장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엔 십여 마리의 흉악한 마물들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 붉은 장발의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약한 여자 혼자서 싸우는 것을 보고만 계실 건가요? 너무하잖아요.”

“아아, 미안….”

그 붉은 장발의 남자는 자신의 보라색 검을 뽑으며 주위의 마물들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그녀의 눈앞엔 아까 보았던 붉은 장발의 남자가 이성을 잃은 채 자신의 앞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그만하라 소리치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의 목엔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보라색의 검이 닿았고, 그녀의 눈앞은 다시 어둠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영혼의 목소리로….

‘…미안해요, 리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앞엔 붉은색의 거대한 마법탄이 들어왔고 그녀는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위험했다. 이대로 가다간 성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저 마법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몰살을 당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저런 마법을 튕겨낼 힘이 없었다. 그녀는 급히 자신의 작은 은제 십자가를 손으로 포갠 뒤, 혼신의 힘을 다해 공간 이동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거대 마법탄이 성에 닿은 순간, 그녀의 십자가와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온몸을 덮어오는 초고열의 느낌, 그리고 다시 닥쳐오는 어둠….

그녀는 다시금 영혼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전부터 있던 한 남자를 향해….

‘미안해요…리오….’

…………………….. . . . . . . . . . .

“…으음…!”

새벽녘, 아란은 머리를 감싸 쥐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몸은 땀에 완전히 젖어 있었고, 그녀의 안색 역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란은 침대 옆에 놓아둔 물주전자의 물을 컵도 이용하지 않고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잊으려는 것처럼…. 물을 충분히 마신 아란은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쓰디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입가에 묻어난 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아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훗…쓸데없는 기억이 또…. 이젠 정말 싫군…후후후훗…하하하핫….”

아란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히스테리 말기 증상의 환자처럼 웃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자신의 옛 기억 때문에 죽음에 대한 간접 경험을 몇 번씩 하는 그녀였다. 게다가, 리오라는 가즈 나이트를 직접 만난 후 그 꿈을 더욱더 자주 꾸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 꿈을 꾸는지, 그리고 리오라는 남자를 만난 뒤 왜 자주 그 꿈을 꾸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인연은 우정으로, 우정은 믿음으로, 믿음은 사랑으로, 사랑은 배신감으로, 배신감은 ‘절망’으로….

※※※

“…음? 오늘은 안색이 좋지 않군, 아란.”

제궁 밖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던 리오는 우연스럽게도 아란과 마주치게 되었으나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없자 약간 의외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란은 피식 웃으며 재미없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후, 쥐가 고양이 걱정을 하는 것 같군요. 그런데, 당신은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나요? 알테미스와 츄우, 그리고 레베카가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며 연락을 해 왔는데…. 후훗, 설마 겁이라도 나는 건 아니겠죠?”

“…아아, 이번 작전엔 이래저래 빠지게 됐지. 하지만 보통 때완 달리 당신들과 WED들이 추가 지원을 하니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봐. …아,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바이칼이 아침부터 보자고 해서…. 그럼 다음에 점심이라도 같이 하지. 후훗….”

리오는 곧 손을 흔들며 아란과 헤어졌고, 리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아란은 다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당신은 여러모로 성장했군요…. 700년 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이니까…. 후후후훗….”

아란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이아의 집이 있는 구역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

모스크바의 외곽 지역은 현재 피를 말리는 접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도시 안쪽엔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동룡족, 바이오 버그들과 방어선을 뚫겠다는 서룡족과의 전투는 현재 어느 쪽도 밀리지 않고 사상자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전룡단 단장들 역시 입술을 태울 정도로 긴장한 채 전황을 지켜보았고, 그들과 반대편에 있는 동룡족의 장성들 역시 긴장할 대로 긴장해 있었다. 양측 다 밀리는 쪽이 이번 싸움에서 지거나 큰 피해를 입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렌님,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양측이 큰 피해만 입고 끝날 것 같습니다.”

제8 전룡단 단장 ‘레소드’는 자신의 상관이자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인 슈렌에게 지시를 부탁했고,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은 채 전투 상황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슈렌은 화면을 전체 지도 화면으로 바꾼 뒤 레소드에게 보라는 듯 턱을 움직였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슈렌은 광학식 사인펜으로 모니터에 일직선을 그어 보였다. 모니터에 긋긴 했지만 거리상으론 70km가 넘는 거리였다. 슈렌이 동룡족의 본진으로부터 이쪽 기함까지 선을 그어 보이자, 레소드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슈렌에게 물었다.

“슈, 슈렌님. 말씀하신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자, 슈렌은 조용히 펜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레소드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전방을 맡고 있는 바이오 버그들은 B+에서 A-급 정도의 대형 종들이오. 가죽도 두껍고, 힘도 상상외로 강하기 때문에 전룡단이라 하더라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오. 지금까지의 BSP 기록과 전룡단의 작전 기록들을 살펴본 결과, 대형 바이오 버그들은 본진 어딘가에 있는 슈퍼 컴퓨터의 명령을 받아 일괄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소. 바꿔 말하자면, 그 슈퍼 컴퓨터를 부순다면 일시적이나마 바이오 버그들의 행동을 멈출 수 있을 것이고, 그 사이 전룡단이 총공격을 한다면 지금의 균형을 깰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레소드는 순간 허망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70km의 거리 안에, 그것도 적의 본진 속에 있어서 몇 겹의 외부 방어선을 뚫어야만 파괴가 가능한 슈퍼 컴퓨터를 슈렌은 쉽게 ‘파괴하면 된다’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슈, 슈렌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적의 외부 방어선을 뚫지 않는 한 저 슈퍼 컴퓨터는 건들지도 못한단 말입니다!!”

“…정공법으로 한다면 그렇지.”

슈렌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레소드는 말을 잊고 말았다. 곧, 슈렌은 다시 모니터의 스위치를 누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군 본진에서 적 본진까지…정확히 이 기함에서 적의 통제용 슈퍼 컴퓨터까지의 거리는 71.028km…. 반올림해서 나온 수치요.”

“….”

“…이 거리는 내가 아무리 투창 실력이 좋다 해도 목표물을 100% 맞출 가능성이 희박한 거리가 되오. 그리고 분명 일주일 전 있었던 ‘울란바토르’ 작전까진 불가능했을 것이오. 그러나, 이번 작전엔 시도도 할 수 있고, 성공할 확률은 매우 높소.”

“…예에!?”

…………………….. . . . . .

“이보세요 케빈·브라이언씨!!! 웨드 안에선 흡연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웨드 격납고 안에선 웨드 책임자인 전직 BSP 대위 나타샤·벨로비치와 케빈의 말싸움이 또다시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의 웨드 ‘코알라'(참고로, 케빈은 호주가 고향)의 콕핏을 열고 담배를 즐기고 있던 케빈은 살짝 인상을 쓴 채 나타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허, 난 담배 연기 없으면 정신 집중이 안 되는 사람이라구요.”

“그건 니코틴 중독 초기 증상입니다! 게다가, 안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웨드의 트랜스율이 낮아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으니 담배는 밖에서 피워 주세요!”

그러자, 케빈은 피식 미소를 지은 뒤 어깨를 으쓱이며 비아냥대듯 말했다.

“…노처녀 언니, 밖은 당신 나이와 똑같은 영하 29도란 말이오. 폐가 얼어붙을 정도인데 밖에서 담배를 피라고요?”

“…지, 지금은 전투 중입니다! 사생활에 관련된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나타샤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케빈에게 소리쳤고, 케빈은 알았다는 듯 담배를 콕핏 외부 장갑에 부벼 끈 후 웨드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가 내리기가 무섭게 전룡단 단원 두 명이 격납고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은 케빈에게 경례를 붙인 뒤 자신들이 받은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케빈 소위님! 슈렌님께서 지금 즉시 웨드의 준비를 끝내고 나오시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음? 아아…맞아.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 있었지. 알았으니 2분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리시오. 아, 그리고 나타샤 대위님, 프로톤 라이플의 탄환 좀 꺼내 주십시오. 한 개만 있으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케빈은 웨드용 고글을 쓰며 웨드 안으로 들어가 콕핏 문을 닫았고, 나타샤는 곧장 들고 다니던 노트북의 스위치를 켠 뒤 원격으로 창고에서 프로톤 라이플용 탄환을 꺼내는 작업을 개시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프로톤 라이플의 탄환은 ‘코알라’에게 지급되었고, 케빈은 웨드의 시동을 걸며 씨익 웃어 보였다.

“자아, 나가 볼까 귀염둥이. 아아, 이게 빠지면 안 되지 안 되지….”

‘코알라’의 출격 모습을 지켜보던 나타샤는 케빈의 웨드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눈을 휘둥그래 떴고, 조금 후 통신기를 켜며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케빈 중위!!! 웨드의 외부 공기 흡입구에 도대체 뭘 꽂은 겁니까!!!!”

케빈은 들은 둥 마는 둥 하며 웨드를 이끌고 격납고 밖으로 나갔고, 나타샤는 밖에서 밀려오는 차가운 공기에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윽…! 저 니코틴 중독자…!!”

한편, 슈렌을 비롯한 전룡단 단장들은 케빈의 웨드가 어서 빨리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케빈의 웨드가 나왔을 때 전룡단 단장들의 얼굴은 일순간 굳어버렸고, 슈렌의 부관인 레소드는 당황한 말투로 슈렌에게 물었다.

“…슈, 슈렌님…. 웨드의 외부 공기 흡입구에 뭔가 꽂혀있습니다만….”

각 웨드들은 마스크 부분에 외부 공기 흡입구가 있었다. 마치 마스크에 구멍이 두 개 뚫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구조가 간단했기 때문에 그것에서 힌트를 얻은 케빈은 한국의 담배회사에 특별 주문을 하여 자신의 기호식품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것을 보던 슈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소드에게 말했다.

“…담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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