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94화
호 이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주문은 시작되었다.
-남자.
최 요원의 얼굴 위에 수많은 동그라미 파임이 일렁인다.
요원의 얼굴 위 미소도 파문에 일그러진다.
그리고 그가 몸을 뒤로 빼는 순간.
쿵.
“…!!”
얼굴 한쪽이 함몰되듯 피가 쏟아진다.
파문 모양 그대로 살점이 뜯어져 나간 것이다.
안 돼.
“움직이면 안 됩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나는 최 요원을 붙잡았다.
‘손등이 아니라 얼굴에 하고 있어.’
스파이들과는 취급이 달랐다.
움직이면 죽이겠다는 뜻이다.
식은땀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문이 계속된다.
-너는 영원히 이 일을 발설하지 못한다.
그건.
-발설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출혈이 거세진다.
최 요원의 어깨를 잡은 내 손 위로 피가 흐른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호 이사의 주문은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내가 호 이사에게 말을 걸거나 간청해도 멈출 수 없다.
-네 마지막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이대로면 내가 붙잡고 있어서 그냥, 최 요원이 더 순조롭고 빠르게 죽도록 만드는 것 아닌가?
도망가게 도울 수도 없다. 이미 주문은 시작되었고, 그의 장비는… 장비는, 전부 내 문신 속에 있다.
‘애초에 무장을 해제시키지 않았다면.’
아니, 애초에 쪽지를 주지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이라도 차라리 유리 감옥에 이송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순간은 지나갔고, 지금 호 이사는 이야기한다.
-무심코 드러내는 암시, 태도의 변화, 단서의 제공은 원천적으로 금지되며, 네 자유의지의 제한은 겉으로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금제가 걸린 사실을 알리려는 모든 시도는 좌절되며,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를 바꾸려 할 시, 벌을 받는다.
‘…….’
끝인가?
저거 분명 끝 문구 맞지? 그럼 강력한 금제만 걸고 끝나는 건가?
나는 순간 안도했다.
일단 상황을 넘겼다면 뭐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그리고 오늘밤.
주문이 끝나지 않는다.
-너는 죽음을 결심하게 된다.
안 돼.
-네 신변을 비관한 채 이 골목의 가장 비천한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나는 달려들었다.
호 이사의 등받이를 발로 차는 동시에 손을 뻗어서 호 이사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리고 핸들로 거칠게 눌렀다.
삐이이이이익!
무게에 클락션이 미친 듯이 울린다.
그 소음이 모든 주문을 누르고, 흐트러진 주의는 집중을 깨트린다.
공간을 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진다.
순간, 최 요원의 얼굴에서 둥근 파문이 사라졌다.
헐떡거림.
침묵.
…고요함.
“…….”
“…….”
“솔음 님.”
“…….”
“방금 절 공격하신 건가요?”
나는 손을 뗐다.
입이 간신히 움직였다.
“멈추셔야 했습니다.”
“…….”
“잘못된 선택이니까.”
미친 선택이었다.
나는 지금 까마득한 상사에, 내게 금제를 걸어놓았으며, 언제든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비난했다.
“아하.”
호 이사가 자신의 양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맞댔다.
“저보다 잘 아신다는 거군요!”
“…….”
“잠입한 지 한 분기도 버티기 어려우셔서 같은 팀의 상사에게 정체를 들키고, 제게 한 마디 귀띔도 없이, 스파이 신분으로 경비팀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계신 분이요!”
죽을 것 같다.
여기서 한 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죽는다.
이토록 호 이사가 직접적인 반감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나는 죽는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그건 당신의 실책입니다.”
…….
“네?”
“애초에 설정이 지나치게 허술했습니다. 잠입자는 절대 본명으로 투입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래.
“재난관리국에서 입사자들의 행적을 모를 것이라 판단했다면, 기획자로서 지나치게 나이브한 결정이었던 겁니다.”
까마득한 상급자에게 하는 말이라고 믿을 수 없는 미친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다.
멈출 수가 없다.
“왜 이토록 들키기 쉬운 조건으로 보낸 겁니까? 전 다른 방지책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없더군요. 일부러 그러신…….”
…….
잠시만.
“그렇군요.”
나는 호 이사를 보았다.
“일부러 그러신 거군요. 들키라고.”
“……!”
“애초에 발각되길 바라며 보내셨던 겁니다. 그래서 본명을 그대로 쓰게 했던 거고, 그래서 베테랑이 아닌 신입만 고르셨던 거였군요.”
미숙한 자들이 실수하길 기대해서.
‘재난관리국의 탐지 기능을 속이기 위해서’라는 쉬운 변명을 대면서, 선량하고 성실해 가장 재난관리국에 어울릴 법한 신입만 뽑아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또 다른 부가 효과가 있다.
“그렇게 잠입한 자들의 정체를 밝혀낸 요원들은 더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사실, 진짜 요원과 성품의 차이가 없으니까요.”
내부에서는 처분에 대한 의견이 엄청나게 갈릴 것이다.
더해서 어떤 인성 테스트를 내걸어도 스파이를 거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향한 의심이 번질 것이다.
그렇게….
“재난관리국의 내부 분열을 유도한 겁니까?”
“…….”
“팀워크가 끈끈한 조직을 천천히 와해시키기 위해서, 새롭게 들어오는 신입들을 믿지 못하도록 불신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
“솔음 님.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그래?
“하지만 아니라고 직접 답변하시진 않는군요.”
우뚝.
호 이사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는 그럴 의도가 없었으며, 상담실을 걸고 그것을 맹세할 수 있다.’ …그렇게 선언하실 수 있습니까?”
“…….”
“선언하실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솔음 님.”
호 이사의 얼굴에 부드럽고 사람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신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요.”
“……!”
“약속은 처음부터 하나였답니다.”
호 이사가 검지를 든다.
“솔음 님께서 제가 부탁드린 서류를 가져오시면, 소원권이 지급될 거예요. 그 조건은 절대 철회되지 않을 확실한 보장입니다.”
“그러니까.”
긴장으로 입이 말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하지만 내 입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들키든 말든, 그건 사실 중요하지 않은 거군요. ‘서류’만 가져올 수 있다면.”
“…….”
“그 정보만 이사님께서 들으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멸형급 초자연 재난에 대한 정보.
…….
그래.
“그렇다면 무조건 가져오겠습니다.”
“서류를?”
“원하시는 정보를.”
“이미 들켰는데?”
“들켰더라도,”
나는 호 이사와 눈을 맞췄다.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 요원을 가리키는 동시에 살짝 등으로 가렸다.
“하지만 여기서 저 요원이 죽거나 행동 불능이 될 시,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죠?”
“거기서부터는 제가 수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호 이사는 말없이 미소를 띠고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나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를 계속 보았다. 버텼다.
그리고.
“그러세요.”
호 이사가 선언했다.
“우리 약속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솔음 님께서 대체 어떤 방법으로 제게 문서를 가져오실지 정말 기대가 되네요.”
“…….”
안도의 한숨이 겨우 목구멍에서 내려갈 때.
“하지만… 벌은 받으셔야죠?”
……!
“방금 솔음 님의 대처가 말도 안 되게 무례하고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믿어요.”
눈꺼풀이 떨린다.
“애초에… 다른 분들은 하나도 안 들켰는데, 어떻게 솔음 님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불길함이 내려간다.
“변명은 자유지만, 자기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상급자를 공격하신 건 너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요.”
“…….”
“정을 붙이셨나요?”
식은땀이 턱을 따라 떨어진다.
“같이 일하던 요원이 죽는 게 무서워지셨나요? 솔음 님께서는 낯선 환경에 떨어져도 꽤 쉽게 소중한 걸 만드시네요.”
“이사님.”
나는 최대한 고조 없이 대답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이 죽는 걸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
“혹시 제 반박에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럴 리가요!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어요. 당연한 말씀이신걸요.”
호 이사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죠.”
“…….”
“손등을 내밀어주시겠어요? 벌을 받으셔야 하니까요.”
…….
나는 천천히 양손을, 간신히 떨지 않고 내밀었다.
손등을 위로 가도록.
-남자.
파문이 인다.
그러나 이전에 걸렸던 비밀 금제처럼 잔잔한 것이 아니다.
거대하고 깊은 파임이, 손등에 기괴한 통증과 함께 뒤틀린 듯 기괴한 감각을 부여한다.
“…!”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움직이면 안 된다. 움직이면….
-너는 한 달 후에 죽는다.
…!
-다만 ■■■와의 약조를 이행할 시, 해당 의무는 철회된다.
-이를 회피하려는 다른 모든 시도에서, 벌을 받는다.
나는 비명을 억눌렀다.
손등의 파문이 잦아들며, 천천히, 기괴한 감각과 고통이 사라진다….
“시간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셨을 수도 있다는 염려가 들어서요. 말씀대로 이번에는 나이브 하지 않게 대처해 봤답니다!”
호 이사가 밝게 웃는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나는 손을 거둬들였다.
순간, 최 요원의 떨리는 동공과 마주쳤다.
“아.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
“빠르게 처리만 할 생각이었는데, 솔음 님과 담소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거든요.”
“담소… 아니었던 것 같은데…….”
……!!
“한 달 뒤에… 죽인다고 했잖아….”
경비반장님!
‘말하지 말라고, 제발!’
호 이사는 처음으로 경비반장의 존재를 인지한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청 이사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
호 이사는 경비반장이 했던 말이 마치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시길 바라요, 솔음 님!”
그리고.
호 이사는 운전석에서 사라졌다.
“…….”
“…….”
“청 이사… 만날 일 없는데…. 아, 갔네.”
살았다.
나는 하마터면 택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후들거리는 몸을 당장 움직였다.
최 요원의 출혈은 이제 끔찍한 수준이었다.
나는 출혈을 잡기 위해 내가 빼앗았던 최 요원의 장비 중 치료제를 개봉해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
얼굴에서 피가 멎고, 어느 정도 진정된다.
최 요원은 거부하진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말이 없다.
“요원님.”
그가 눈만 돌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뭘.”
“이사님이 건 금제를 풀 방법. 시도도 구상도 하지 마십시오.”
“…….”
처음 호 이사가 읊은 금제는 최 요원에게 이미 적용되었다.
이제 그는 내가 스파이인 것에 대해서, 혹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그 어떤 정보 전달도 할 수 없다.
어제와 똑같이 오늘을 사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겁니다.”
“벌.”
“예.”
나는 고개를 들어서 똑바로 말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이 이사님을 만나게 될 겁니다.”
“…….”
최 요원은 말없이 내 손에 있던 자신의 치료 도구를 회수하더니, 직접 응급처치를 이어갔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온 사람 특유의 능숙함.
그리고….
“…이사라고 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사가 너한테는 무슨 금제를 걸어뒀지?”
“…….”
“지금은 한 달 후에 스파이짓 제대로 못 하면 널 죽이겠다고 한 것 같은데. 이전에는 뭘 걸어둔 거지?”
나는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턱짓했다.
“귀가하십시오.”
“무슨 수로 정보를 빼낼 건데?”
“당신이 알 바 아닙니다.”
최 요원은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떤 정보인지 이야기하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필요 없습니다. 요원님께 빼돌리라고 부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려는 네 소원은 뭐야.”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는 거.”
“……!”
“……요원님의 장비는 트렁크에 두고 가겠습니다.”
나는 경비반장과 함께 차에서 나왔다.
그리고 최 요원의 장비를 모조리 꺼내 트렁크에 둔 후, 그 사이에 백일몽 저등급 재생 물약을 하나 두었다.
얼굴이 그 모양인 채로 내일 출근하면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으니까.
…그 일을 하는 동안, 최 요원은 차 밖으로 따라 나오지 않았다.
달칵.
트렁크를 대충 닫고, 나는 경비반장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어딘가로.
“…….”
“저기… 괜찮아…?”
“……예.”
최악은 면했다.
분명, 나는 상황을 제대로 모면했다.
한 달.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할 수 있었다. 계획이 있었다….
할 수, 있었다.
“음…….”
경비반장의 느린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도저히 안 되겠으면… 찾아와요….”
“…감사합니다.”
말만이라도 고마웠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저, 죄송합니다. 매번 도움을 주시는데 제가 뭐라도 대접해야 하는데요.”
근처에 빵집이라도 없나? 도넛은 안 돼도 다른 걸 좀 주고 싶었는데, 경비반장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음. 다음에… 맛있는 집에서…….”
“…네. 다음에요. 꼭.”
약간 헛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다.
“저기… 내가 알아 온 정보는…?”
“그것도 다음에 듣겠습니다.”
하지만 한계였다.
나는 간신히 희미한 미소와 함께 경비반장을 배웅했다.
경비반장은 몇 번 나를 돌아보았으나, 결구 해가 지기 전에 백일몽으로 돌아갔다….
“…….”
-후우, 숨 막히는 서스펜스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내렸다.
가슴팍의 봉제 인형이 보인다.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당신의 여정이 어디로 갈지 몹시 기대되는군요. 안 그렇습니까, 친구?
…….
“네 마음대로 생각해.”
그리고 봉제 인형을 빼내었다.
대로변에 던져버리고 싶다는 짧은 충동을 느꼈으나, 그것은 그대로 점퍼 주머니에 들어갔다.
이걸로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
적어도 오늘은, 말이다.
“…….”
나는 장기 임대했던 낡은 모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섯 시간 후 재난관리국으로 출근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