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95화


“…….”

나는 현무 1팀 대기실 문을 보았다.

그 모든 일을 다 겪고 여전히 이 앞에 서 있다는 게 이상하도록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습관은 솔직했다.

달칵.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오셨습니까?”

나를 보며 반가운 얼굴로 일어서는 청동 요원의 모습을 보았다.

“좋은 아침입……. 포도 요원. 안색이 안 좋군요.”

아.

“또 잠을 잘 못 잤습니까?”

“그, 약간 설친 정도예요. 괜찮습니다.”

눈에 띌 만한 상처들은 미리 치료해 둬서 다행이었다.

“너무 피곤하면 말씀하셔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평소처럼 웃으며 청동 요원과 대화하는 것에 성공했고, 요원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

손아귀에 땀이 찬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 대기실 안은 여전히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나타나야 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저기.”

“예?”

“최 요원님은….”

“아. 요원님은 오늘 근무하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

뭐라고?

‘잠깐만.’

뭔가 잘못됐나?

‘안 돼.’

설마 호 이사가 다시 찾아간 건가? 아니면 금제를 즉각 풀려고 시도하다가 사고를 당했나? 나는….

“좀 일찍 출근하셨는데, 몸이 좋지 않다고 연가를 쓰고 들어가셨습니다.”

“……네.”

목격담이 있다.

안도라고 부르기엔 너무 강력한 느낌이 가슴께를 스쳤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인간… 아니, 요원님은 멀쩡해 보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청동 요원이 대기실 방구석에 있던 작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온다.

카페 음료가 담긴 캐리어.

“이걸 주고 가셨습니다. 카페에 들렀다오셨다고 하더군요.”

“…….”

“이건 포도 요원 거라고 합니다.”

나는 음료를 받아들었다.

청포도 에이드였다.

그리고 카페에서 파는 듯한 포장된 쿠키가 컵홀더 끼워져 있고, 그 위로 검은 마커로 쓴 듯한 흔적이 남아 있다.

자필로 적은 최 요원의 문구가.

[현무 1팀 파이팅]

그리고 줄을 그어서 지워놓았다.

“…….”

“포도 요원?”

“…감사합니다.”

나는 에이드를 잡아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달았다.

* * *

당으로 인한 각성 상태인지, 오전 중에 머리는 계속 돌아갔다.

내가 세운 계획, 한 달간 해야 하는 일들이 몰아친다.

‘일단 숨을 죽이고 있는다.’

최 요원과의 사건이 있었으니 일주일 정도는 가만히, 괜히 재난관리국에서 눈에 띄지 않고 지내며 가벼운 밑 작업을 한 후에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내 계획은 긴 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타이밍이 중요한 문제가 됐으니까.

다만….

고민 하나.

‘…영은 씨에게 이걸 말씀드리는 게 맞나?’

지금 내 상황을 공유하는 게 맞는 것 같다가도, 대체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 건지 가늠하기가 모호하고 아슬아슬했다.

내가 한 달 내로 처리할 거라는 말에 과연 영은 씨는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뻔히 들킬 거라 예상하고 미끼용으로 이곳에 스파이로 잠입시켰다는, 호 이사의 악의에 대해서 말하는 게 과연 옳을까?

그게 안다고 해서 대처할 수 있는 일일까…….

“…….”

차라리 모르는 편이 스파이 업무가 더 수월하고 덜 티 나지 않을까?

속이 아팠다.

위액으로 쓰린 것 같다.

‘아니야. 괜찮아.’

영은 씨도 딱 한 달만 더 근무하시면 된다.

내가 제대로 해내기만 한다면 호 이사가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형태로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영은 씨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 문제없이 끝날 것이다.

‘좋아.’

힘내자.

“후우.”

나는 다 비운 에이드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바닐라라떼를 마시며 문서를 확인하던 청동 요원이 말을 건다.

“오늘은 그 인형이 안 보이는군요.”

“……!”

“브라운이라고 부르시는 작은 토끼 인형 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점퍼에서 봉제 인형을 꺼내서 보여주었다가 다시 넣었다.

“그, 음, 그 인형은 잘 지내고 있답니까?”

“그렇겠죠.”

나는 주머니에서 얼른 봉제 인형과 닿았던 손을 꺼냈다.

그때였다.

삐비비비비비빅!!

“…!”

청동 요원의 손목에서 요란한 알람이 들린다.

호출이다.

‘구조 요청!’

“대기하십시오.”

청동 요원이 문서를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괴담인지 호출기에 뜬 코드를 확인하고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구출에 반드시 인원 둘이 필요한 괴담이군요. 함께 진입하면 됩니다.”

“네.”

나도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몇 주간의 출동 경험은 자동으로 몸을 움직이게 했고, 그게 도리어 유리되어 있던 현실감을 살려줬다.

“출동지가 좀 멉니다. 본래 해당 지부에 연락이 가는 게 보통입니다만… 이번 구출 요청이 본부 직통 번호로 왔다고 하더군요.”

“어딥니까?”

“충청남도 아산시입니다. 그리고 해당 초자연 재난은… 다소 장소적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숙지할 것이 좀 많습니다.”

청동 요원은 책장에서 빠르게 작은 책자 형태의 문서를 꺼냈다.

“이건 저희 팀에서 만든 매뉴얼 겸 팁입니다. 이동하면서 읽고 계십시오.”

“예.”

청동 요원이 비번인 사람들에게 호출 콜을 돌려두자마자 우리는 즉각 본부를 나와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 수단은….

“해당 재난의 구조 시간이 그렇게 촉박하진 않으니,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겁니다.”

…고속철도 열차였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목포행

“…….”

“포도 요원?”

“아, 아닙니다.”

나는 열차의 좌석에 앉았다.

당황하지 말자.

‘탐라행 고속열차 사태는 특수사례다.’

매번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이미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연구하기 위해 발생 조건을 관찰 중일 것이다….

괜찮다.

‘할 수 있어.’

초조해하지 말자.

여기서 힘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야 하고,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어지고, 지하철 열차에도 발을 디딜 수 없다….

출발

무사히 열차가 출발했다.

나는 괜찮다.

‘신경을 분산할 것.’

그래. 매뉴얼.

“재난관리국 소속이 아니면 다른 내용이 보이도록 금제가 걸려 있으니, 편히 읽으시면 됩니다.”

내가 책자를 꺼내 들자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해준다. 그래, 좋다. 괴담 매뉴얼과 팁을 읽으면서 그것에 집중하고 구출법을 구상하자.

나는 책자를 넘겼….

-나 이거 진짜 열심히 적었다 포도야 알차게 써먹어라ㅋㅋㅋㅋ

“…!!”

“무슨 일… 아.”

청동 요원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최 요원님이 주로 작성하신 겁니다. 쓸데없는 코멘트를 많이 적어두셨더군요. …요원님이 온 후로 덧붙여놓은 것도 좀 될 겁니다.”

나는 멍하니 책자를 넘겼다.

좀 더 이전에 적은 듯한 글자들이 나온다.

-뉴 신입 대환영 현무 1팀의 에이스 최 요원의 꿀팁 대방출

└제발 이런 글 좀 그만 적으십시오

└청동 요원의 덜 단 꿀팁도 포함됨

└하…

각자 다른 글씨체, 다른 펜으로 적은 것들.

-다음 장 반드시 정독할 것. 이 초자연 재난 소개인데 좀 어려워도 소설처럼 읽어봐

나는 떨리는 눈을 돌렸다.

<어둠탐사기록>에서 보지 못했던, 최 요원이 직접 적은 초자연 재난 간이 매뉴얼과 팁이 시작된다.

이 도움말은 전적으로 등록번호 1006PSYA.1941.아06., 일명 ‘지산소 공양의식’에서의 순조로운 인명 구출을 위해 작성 중이다.

우리 엄격한 관리국에선 해당 초자연 재난을 파형(破形)으로 분류했으나, 필자는 더 고등급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었음.

구출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하더라도 재난의 완전한 종결이 불가능하며, 무언가 더 사악한 존재가 그 안에 있다는 여러 도깨비의 증언들을 고려했기 때문.

그러니까 방심하지 말고 음력 4, 5월 중에는 출동을 대비하고 있을 것!

“여깁니다.”

우리는 천안아산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역에 보관되어 있던 공무원용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자전거로 30분 정도 거리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발생지 : 아산시 ■■리 지산마을

역에서 떠나서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며 자전거 안장에 진동이 전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인다.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시골 주택과 기와집이 이리저리 현대적 수리를 덧댄 모양새이며, 가로등 전선들이 보인다. 비포장도로가 마을을 기준으로 정비되었다.

해당 마을은 이동 수단만 갖춰져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나, 가족 단위로 생활하며 외지인에게 배타적임. (부동산 매물도 없음. 이사 등 잠입 불가능)

그러나 ‘지산 명절’이라는 시기에는 외지인의 참석을 환대하는 편이며, 방문자는 해당 명절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저깁니다. …시작했군요.”

현수막이 보인다.

지산 명절 축제

지산의 복 받으세요

바로 이 명절 축제가 초자연 현상이다.

“이쪽입니다.”

우리는 자전거를 마을 입구 구석에 세워두었다. 그 과정에서 ‘서울’이나 ‘경기’가 붙어 있는 차 몇 대가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

“기억해 두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청동 요원과 함께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야아아아아!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보인다.

작은 마을의 축제답게 엄청난 인파는 아니었으나, 이리저리 풍물 놀이패가 있고 사진을 찍거나 앉아서 마을에서 나눠주는 수육과 국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지루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만지는 사람들도.

※일단 진입 전 급한 팁!

재난관리국 점퍼는 절대 입지 말 것, 귀마개, 성냥, 방울을 챙길 것.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 틈에 앉지 말 것.

“야, 뭐야. 구린데.”

“잠깐 있어 봐. 상품 추첨한다잖아.”

우리는 누가 봐도 관심 없는 외지인 같은 그들 옆에 앉았다.

음식이 잽싸게 차려진다.

“한 술 드세요! 지산의 복 받으시고!”

나와 눈이 마주친 마을 사람이 씩 웃는다.

내 또래의 여성으로 보였는데, 가슴팍에 새의 깃털 같은 것을 달고 있었다.

지산 축제 현장에서 마을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깃털로 만든 브로치를 하고 있다면 마을 사람이다.

-하나 빼돌려서 분석했더니 수탉 깃이라더라. 도깨비가 질색했었음.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린다.

“어머, 마포에서 왔어? 우리 아들도 서울 마포서 일하는데!”

“여기 금연이에요. 절대 금지!”

“이거 한잔하지 그래. 집에서 담근 건데 아주 약주야 약주.”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 말을 붙이거나 친절하게 대하기도 하고, 술을 권하기도 한다.

인심 좋은 시골 마을 같다.

곧 사람이 죽을 것이란 점만 제외하면.

나는 작은 한숨을 참으며 음식이 담긴 그릇을 보았다.

축제 음식은 섭취해도 괜찮다. (솔직히 맛있기도 해)

하지만 개인적으로 국물이 있는 음식은 먹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이유는 듣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차피 식욕도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와 청동 요원은 숟가락만 대충 움직였다.

히야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마을 안에서는 계속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풍물놀이용 같기도 하고, 전통요 같기도 한 소리들.

분명 정겨워야 하나 리듬감이 묘하게 낯설다….

-아. 목적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 음악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

나는 주머니를 반사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아! 이제 들리나 보군요, 친구!

-하하, 갑자기 대화가 힘들어져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 솜 든 몸이 자칫 떨어질까 봐 염려된다면 잠시 대화를 멈출 수도 있지요.

-대화야 이렇게 다시 나누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초자연 재난.

괴담에 진입하면서 봉제 인형이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나는 당신과 대화할 수 없을 때에도 항상 듣고 있습니다. 착한 친구로서 말이지요.

…….

-오, 어제 나를 점퍼에 방치한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답니다. 도리어 감사했습니다. 그 끔찍한 방에서 뭐라도 가릴 게 있으니 낫더군요.

‘…그래? 다행이네.’

나는 음식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친구? 평소보다 피곤해 보이는군요. 저런, 어젯밤 모험의 피로가 남았습니까?

‘그럴지도.’

-그렇다면 오늘은 돌아가서 이 브라운과 함께 TV를 볼까요? 당신이 좋아하던 그 만화나 예능도 좋겠군요.

-그리고 푹 자는 겁니다. 이 브라운이 노루 씨가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

친구?

‘일단은 잠깐 일에 집중해도 괜찮을까? 잘 모르는 괴담이라서 말이야.’

-아, 물론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봉제 인형은 조용해졌다.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청동 요원처럼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구조 요청을 한 사람이 누굴지.

그리고….

적합한 마을 사람은 누군지.

지산 명절은 나흘간 계속되며, 구조 신호가 언제 왔든지 명절 축제가 끝나지만 않았다면 당사자를 구출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을 잘 관찰하면서, 최대한 불퉁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서 하룻밤 투숙을 청해보자!

-인상착의는 헷갈릴까 봐 굳이 안 적었음. 아무튼 절대로! 외지인한테 먼저 말 걸면서 친절한 척하는 사람 믿지마라 포도야

-사탕 주면서 애들 꼬시는 미친놈들 있지? 그냥 그거야ㅎㅎ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마을 사람을 보았다.

어디 보자, 최대한 덜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

잠깐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는 얼굴이 있었다.

불퉁스러운 얼굴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20대 남성.

의료용 안대를 끼고 있는, 인성 나쁜 백일몽 주식회사의 직원.

‘…백사헌!’

그 녀석이 여기 있었다.

가슴팍에 수탉의 깃털을 달고.

그리고…….

백사헌의 근처, 그쪽 마을 사람들이 말을 걸거나 챙겨주는 외부인들의 식사 자리에 앉아 있는 피로한 인상의 여성까지 연이어 발견했다.

장갑을 끼고 무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아주 친숙한 얼굴.

“…….”

은하제, 대리님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