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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83화


고요한 한빛 도서관의 통로.

경비반장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선은 자신의 손을 향한 채.

마치 직전에, 검고 기이한 앞발 형태의 오염을 늑대 조장을 제압하려 끌어올리던 것을 떠올리듯이.

…혹은, 그 공격을 받기 직전, 혀를 끊고 포박을 일부 풀어냈던 자신의 상태를 반추하듯이.

“…….”

나는 내가 골든, 포도, 노루 셋으로 나뉘어 이 한빛 도서관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전부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경비반장도 혹시….

“음…….”

“…!”

경비반장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이런 거구나.”

고요한 목소리.

나는, 무심코 불렀다.

“늑대 조장님?”

상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입을 다시 연다….

“저기… 그렇게는……, 안 불렀으면 좋겠는데…. 헷갈리기도 하구…….”

아.

힘없이 늘어진 사지와 기력 없는 두 눈.

경비반장은 여전히 똑같았다.

“두 분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신 것, 아닙니까?”

“음…….”

경비반장은 말을 고르는 듯했다.

“책…으로 말하자면……, 그 페이지가 나한테 있다는 걸 알아도요…. 잉크를 쏟거나… 구겨진 페이지를… 처음처럼 읽을 수는 없지…….”

“…….”

“그 페이지를 복원했던 건…… 이 도서관의… 힘일 테니까….”

…이미 오염 전 자신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J3에게, 늑대 조장 시절이란 일종의 ‘훼손된 페이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훼손된 페이지는 여전히 읽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저와 함께 다니신 감각은 이어졌을 겁니다.”

“…….”

“그러니까, ‘이런 거구나’라고 말씀하신 거죠. 전과 다른 뭔가를 느끼셨으니까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오염되기 전에 대해.

‘훼손되지 않고 알던 상태’와 합쳐졌으니까.

그리고….

“그래…….”

“…!”

그제야 경비반장의 얼굴에 다른 감정이 드러났다.

무감각한 표정.

실패와 고통에 익숙하고 무뎌지고, 이윽고 그마저 잃어버렸던 사람이, 다시 그 아픔을 실감할 때 떠오르는 정적.

“어떤 느낌인지… 다시… 알았네….”

“…….”

모르겠다.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무뎌지고 잊힌, 잃어버린 자신을 상기하는 것 자체가 압도적인 고통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시간이 좀 지나야 알 수 있을까.’

저 고통을 소화한 다음에는 무엇이 남을지.

J3는, 무엇을 되찾을지.

나는 떠올린다.

반년도 더 전에 내가 그에게 했던 질문을.

-혹시 제이 씨는 어떤 소원을 위해 이 회사에 들어오셨습니까?

…어쩌면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은 질문하는 대신, 나는 경비반장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

“그리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 탐사에서 몇 번이고 살았습니다. …제이 씨.”

“아냐….”

경비반장은 덴탈마스크를 고쳐 썼다.

그 경비반장의 손동작은, 직전까지 나와 같이 있던 어떤 옛 정예팀이 자신의 가면을 고칠 때와 똑같았다….

“…….”

“…그래서 이게 다 무슨 소리냐, 노루야.”

앗.

“대리님.”

분위기상 가만히 있어주던 다른 일행들이 내게 조용히 물어보기 시작했고, 나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그제야 공유하기 시작했다.

늑대 조장과 함께 다니며 겪었던 일을.

세광공업고등학교를 탐험하고, 사서가 되기 직전에 이 사태의 본질을 깨달은 것.

그리고 다시 하나로 합쳐진 것까지.

“파란만장했구만.”

“그러게요.”

참고로 ‘포도’와 함께 있던 이전 D조의 경우, 골든이나 노루가 있던 쪽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일이 전개되었었는데….

-모두 주의하십시오.

-우리 신입 오소리, 여기선 조심하고.

-네, 네넵…!

바로 내가 없던 시절의 D조가 다른 복도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헤어스타일과 호칭에서 그것을 곧장 알아차린 D조 사람들은 도서관의 진실을 알아내려 더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포도가 된 나를 어르고 달래며, 자신의 도플갱어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면서 말이다.

“아니 우리 조장님은 심지어 똑같았잖냐. 나 무슨 분열한 줄 알았다.”

“하하하….”

참고로 도마뱀 과장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라 도무지 구분이 불가능한 도마뱀 머리 둘로 나타났었다….

-조, 조장님?

-예.

-예.

-X발 저 거리에서 내 말을 듣네. 도망쳐!

“…….”

생각해 보니 저 외계 파충류들은 오염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했던가.

정말로 도마뱀 과장은 언제든 비슷한 인물이라 어느 페이지든 똑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무사히 합쳐져서 다행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나왔다. 입구.”

내 털실이 정상적으로 기능해서 출입구로 우리를 안내했다는 점이다.

마치 지금까지 털실을 따라가며 일어났던 온갖 기괴하고 괴상한 일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들어왔던 승강장 입구 앞으로 돌아왔다.

“이 도서관 사서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나? 그래서 파리지옥처럼 우리를 납치하려던 거 아니었냐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용규칙들.

창을 응시하라

지하로 내려오지 말라

하나를 얻으면 떠나라

“그건… 일종의 시험이 아니었을까요?”

“시험?”

“예.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지 자격을 보는 겁니다.”

“…!”

지식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방문자가 이 지식을 가지기에 충분할 만큼 지혜로운지 확인’하는 건 흔히 있는 신화나 전설이었다.

도시전설, 괴담에서 적용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창을 응시해서 내가 여러 형상으로 나뉘어서 동시에 존재할 때, 상대를 없애거나 제물로 바치려 들지 않고 진실을 깨닫는 사람만 이용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괜히 전 세계에 도플갱어 괴담이 있는 게 아니다.

자기와 똑같은 존재를 마주치면, 존재적 거부감이 올라오니, 굉장히 어려운 시험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만큼 정신 수양이 덜 되어서 자기 자신을 없앤 놈은 사서나 시키고?”

“노동교화형 같다. 음, 노루 말이 그럴싸한데요?”

박민성 주임님이 맞장구를 쳐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이용규칙의 문장을 떠올린다.

하나를 얻으면 떠나라

이건 어쩌면 사서를 얻으면 떠나라는 게 아니라.

이 사태가 뭔지 깨닫고 하나가 된 자신을 얻으면, 그때 안전히 떠나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흠.’

그렇게 생각하면, 이 한빛도서관은 지금까지 겪었던 괴담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약간 신성하기까지 하다고 할까. 악의나 끔찍함보다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의지 때문에 압도감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

‘도서관을 안식처로 삼았다는, ‘절 해야하는 존재’의 특성일까.’

물론 이 모든 건 우리가 시험을 통과했기에 할 수 있는 감상이겠지만.

“어느 쪽이든 입구가 보이니 나가 보자고. 괜찮죠, 조장님?”

“예.”

우리는 한빛도서관을 나가서 현실로 복귀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탐사에서 확인한 것 중 현실에 돌아가서 확인해야 할 점들이 산적해 있었기에 말이다.

‘…영은 씨가 말한 열차도 확인하고 싶은데.’

마음이 초조하지만, 세광공업고등학고쪽을 생각하니 도저히 미루고 탐사를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나는 그냥 여기 남아 있을까?”

“예?”

박민성 주임님이 발을 멈췄다.

“그, 내가 여기서는 멀쩡하니까…. 여기서 있으면서 백업을 하거나 하면 어떨까 해서! 양손도 있고, 제정신이고.”

아.

이자헌 과장의 목소리가 선언한다.

“불가합니다.”

“…….”

“해당 어둠에서 홀로 보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확인 및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가 다량으로 추측됩니다. 복귀하십시오.”

“아….”

박민성 주임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저, 현실에서도 계속 치료가 진행됐을 테니, 오염에서 전보다 회복하셨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 확인은, 해봐야 하는 거니까….”

“그래, 가자. 오소리.”

“…예.”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었다.

‘후우.’

[아, 마침내 엔딩이로군요. 제법 흥미로운 탐험이었습니다.]

너는… 어휴, 됐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오늘은 끝이 좋으니 일단 넘어가자.

우리는 한빛 도서관을 나오며 안락사약을 복용했다.

“깨어나서 할 일이 많겠어.”

이번 세광특별시 탐사는 그렇게 처음으로 긴급하지 않으며, 모두가 안전한 상황에서 종료되었다.

* * *

잠시 전.

모두가 안락사 약을 복용하기 직전.

“…….”

J3, 이름을 잃어버린 자는 고개를 들어서 뒤를 돌아본다. 책으로 가득 찬 통로, 기묘한 도서관의 출입구와 그 안을.

그리고 떠올렸다.

숨겨진 길.

책장 너머에 있던 기이한 통로를 결박된 채, 또 결박한 채 걷던 자신을.

일행을 사서로 만들어 이 도서관의 주인을 경배하기 위해 내려가던 검고 붉은 통로의 막다른 끝에서, 안내판에 붙었던 문구들을.

· ■료■자실

→■자상■영

←■■■■료

↑■자실료■

다른 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둠 속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닌 시야를 갖춘 이 오염된 존재는 알아차렸다.

안내판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 안내판이 가리키는 각 방향의 책장마다 작은 부가 설명 안내판들이 따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오른쪽에 붙어 있던 것은, 이것이다.

■자상■영

: 전중작■명영Ⅱ동■화

재정립하자면.

영상자료실

: 명작 동화Ⅱ 전시 상영 중

“…….”

그는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오래전, 백일몽에서 유실했던 어떤 동화 괴담의 진입법에 대하여.

진입 방법 :

■■시의 외곽, 재개발 지구 골목길에 위치한 중고 비디오 숍에서 구매한 특정 영상의 관람.

(관람 방식은 연구팀에서 개발한 특수 전시 상영법을 따른다.)

해당 영상은 영화이며, 그 명칭은

떠올린다.

‘세계 우수 명작 동화’.

“…….”

“제이 씨. 나갑시다.”

“응….”

이미 탐사는 종료되었으며, J3가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위해 행동할 의욕은 오래전 모두 닳아 없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순순히 안락사 약을 복용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 * *

“일어나셨군요.”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서는 미소를 띤 호유원이 나를 내려다보는 익숙한 구도다.

“이번에는 어떤 일을 겪으셨나요? 그리고 어떤 걸 알아내셨나요?”

집착적인 질문이 폭격처럼 쏟아지나,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다.

확인 : 꿈결 수집기

나는 품에서 챙겨갔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혹시 싶어서 챙겨갔던 그 물건의 안은….

황금빛 용액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

수집된 것이다.

건의 : 육안 감정

호유원의 눈이 가늘어진다.

“B. 거의… A에 가깝네요. 아니, A가 나올지도.”

‘…!’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아마 도서관의 주인을 직접 만나거나, 최소한 존재라고 체감하고 왔으면 더 고등급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정도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이, 이 정도만으로도 엄청난 결과였다.

꿈으로 통해서 진입해, 사상자 없이 고등급 물약을 뽑아낼 수 있는 어둠 탐사방법 연구?

‘이건 무조건 된다.’

심지어 우리가 챙긴 꿈결 수집기는 4개였다.

‘이 중에 경비반장에게 맡겼던 하나를 제외해도 3개면 충분히 회사에 초기 성과로 제출할 만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모두 깨어난 다음에 알게 된다.

모두가 꿈결 수집기를 확인하던 중, 경비반장도 수집기를 꺼내 들었는데….

“잠깐, 그건….”

“…….”

반짝이는 황금빛.

경비반장에게 주어졌던 꿈결수집기에도 용액이 차오른 것이다.

‘맙소사.’

완전 오염된 박민성 주임님께 맡기기 어려워서, 일단 들려준 것에 가까웠던 것에 용액이 차 있다.

하지만 다가온 호유원의 발언에 상황을 깨달았다.

“흠. 다른 수집기들보다 순도가 좀 떨어지네요….”

아.

‘늑대 조장 상태였을 때 수집한 것으로 처리된 거구나.’

나와 세광공업고등학교를 탐사했을 때, 그리고 빠져나왔을 때 책정된 것이 분명했다….

“…….”

그러나 호유원이 회수할 때까지, 경비반장은 몇 초간 멍하니 자신의 품에서 나온 꿈결 수집기를 응시했다.

어떤 감흥을 느낀 것은 분명해 보였다.

‘…….’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것에서 시선을 돌리며, 다른 인원들의 안부를 물었다.

정확히는, 우리와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 팀원에 대해서.

질문 : 오소리의 상태

“아, 그분은 깨어나시긴 했지만… 대화를 하시긴 좀 어렵겠네요. 여전히 오염 상태라서요.”

아.

“양팔도 아쉽지만 재생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자꾸 교육서를 어디선가 나타나게 만들어서 집어 들려고 하시네요.”

“…….”

역시 그런가.

아무래도 박민성 주임님은 세광특별시 안에서만 양팔이 회복되고 제정신인 상태를 유지하는 듯했다.

‘그래도… 현실에서도 천천히 오염에서 회복되다 보면 재생 물약이 듣게 되겠지.’

일단은 그렇게 애써서라도 생각해야 했다. 나는 검은 연기를 내리며 힘들게 생각을 돌렸다.

“그래서… 이제는 대답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호유원의 눈이 다시 번들거린다.

“세광특별시에서 이번에는 무엇을 알아내셨나요?”

…….

나는 연기를 움직여, 글씨를 만들어냈다.

질문 :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출동구조반에 대하여.

“그 요원들이라면 지금도 공격적으로 연락해 오고 있죠. 급하다고, 노루 님이 깨어나시면 바로 알려달라며 위협적으로…. 경우 없지만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보다 세광특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

나는 질문을 덧댔다.

더 구체적으로.

질문 :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출동구조반에 대하여.

출동구조반 청룡팀

호유원이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창에 찔리기라도 한 듯, 건물에 깔리기라도 한 듯 얼어붙은 그 몸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드디어.”

환희에 찬 목소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알아냈구나.”

호유원의 얼굴 가득 희열에 찬 미소가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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