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61화
만약에 아까 동천이 악을 써서 목 부근의 혈을 풀었다면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져 혈도를 푼 것이 탄로 났겠지만 아파서 잠시 중단한 것이 행운으로 작용해, 있을지도 몰랐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하, 할머님! 저는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그러니 저한테 그러지 마시고 옆에 있는 도연이나 위로해 주시지요.”
동천의 다급한 말을 듣고 감 부인은 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연은 눈을 감고 있었다. 감 부인의 고개가 미련 없이 동천에게로 돌아왔다. 그녀는 쭈글쭈글한 입술을 혀로 핥더니, 수건으로 동천의 목 부근을 닦아주며 천천히 다가왔다. 육욕(肉慾)의 광기가 서서히 고개를 드는지 그녀의 눈은 점차 번들거려갔다. 거친 숨소리가 동천의 목을 간지럽힐 때쯤 감 부인은 흥분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아, 너무 곱구나… 후우. 후우. 너무 고와.”
동천은 노파가 자신의 양어깨를 잡은 순간 얼어붙었던 사고가 깨어남을 알 수 있었다.
“저리 가세요. 저리 가라구요! 다, 다가오지맛! 으악!”
동천의 외침이 시발점이 되었는지 감 부인은 지체 없이 동천의 목줄기를 물어버렸다. 곧이어 피 빨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쭈우우! 쭈우우욱! 쭈욱! 쭉!”
“끄아악! 살려줘! 도연아!”
“이 노파야! 주군을 놓아라!”
도연이 뒤늦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피 맛을 본 감 부인은 더욱 거세게 피를 빨아들였다.
“히히힛! 히히히히! 쭉욱!”
절대로 동천의 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피 맛을 보고 반쯤 미쳐버린 감 부인의 웃음소리였다. 감 부인은 주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신나게 피를 빨아대다 동천의 목에서 입을 떼어냈다.
“히히! 그만. 그만 먹을게.”
‘으으. 살았다.’
동천이 그만두는 줄 알고, 덜덜 떨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입가에 흐르는 피를 마저 핥아먹은 감 부인은 자신이 물었던 부분을 지혈시키고 동천의 팔을 들어 올려 날카로운 이빨을 거세게 쑤셔 넣었다.
“히히히! 대신 다른 곳을. 이, 이 맛이야! 이히히! 아득!”
끝난 줄 알고 안도를 하던 동천으로서는 다른 곳을 깨무는 감 부인의 행동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끄아악! 동천 죽네! 이 미친년! 아윽, 죽여버릴 테다! 으윽! 넌 반드시… 아악! 살려줘요. 흑흑! 잘못했어요. 아으으. 살려줘요…”
“히히! 싫어. 히히! 싫어.”
도연은 핏발이 선 눈으로 이 상황에서 어쩌지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애꿎은 입술만 피가 배어 나오도록 깨물었다. 감 부인이 동천의 애원 섞인 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을 씹어대며 피를 빨고 있을 때 잠시 나갔다가 부인이 없어져 혹시나 하고 지하로 내려온 감송은 다 죽어가며 힘없이 ‘살려주…’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는 동천을 발견하곤 재빨리 달려가 부인을 동천에게서 떼어냈다.
“부인! 왜 이리 성급하시오?”
감 부인은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두 팔과 다리를 좌우로 휘둘러대며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쳤다.
“시, 싫엇! 나 더 먹을래! 시… 으응.”
그녀는 보다 못한 감송이 수혈을 짚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마침내 공포의 순간이 지나가자 동천은 콧물을 흘려가며 울먹였다.
“흑흑, 살았다.”
옆에서 도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없었다. 눈깔을 치켜 뜬 동천은 고개를 획 돌리며 뻣뻣한 자세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도연에게 소리를 치려다 깜짝 놀라 다시 자신의 고개를 원위치 시켰다. 동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 못하며 감송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감송은 부인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방금 동천의 행동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에 동천은 속으로 웃었다.
‘으흐흐. 목이, 목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어디…’
동천은 물속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뜻대로 움직였다. 동천은 웃는 건지 울상을 짓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마음속의 지주를 크게 불러 제꼈다.
-하늘이시여!
벅찬 감동이 동천의 가슴에서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막혔던 혈들이 풀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방금 전 지랄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내공을 사용해 푼 것이었다. 다만, 그때 몸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서도 그러하지 못했던 것은 극한의 공포로 인하여 몸이 굳어져서 그랬던 것 같았다. 어쨌든 몸이 자유로워져 득의의 웃음을 짓던 동천은 감송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찰나 언제 그랬냐는 듯 콧물을 훌쩍였다.
“흑흑, 살려주세요. 아파요.”
죽지는 않을 것 같던지 감송은 피식 웃고는 자신의 부인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심히 걱정이 되었던 도연은 감송이 나가자 다시 동천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만약, 동천이 혈도가 풀리지 않았으면 괜찮을 리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그래서 동천은 도연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괜찮아. 변한 건 없어. 아마도 어제와 같을걸? 아아, 이 기회에 너도 나와 같이 하늘님을 믿지 않으련? 히히!”
왠지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은 주군의 행동에 도연은 조금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손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던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괜찮아. 까짓 거 빈혈 증세가 있는 노파에게 피 좀 나누어 준 셈 치지 뭐. 그게 뭐 대수냐? 그리고 조금 후면 다시 돌려받을 텐데 뭐. 히히히!”
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도연이 복잡한 일들로 인해 침묵을 고수하고 있을 때 동천은 얼른 운기조식을 취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십이주천을 마친 동천은 두 팔을 꽈악! 쥐어보았다.
‘히히히! 금이 갔던 팔도 이젠 다 나은 것 같은데? 어디, 그 미친 노파가 물었던 곳은 어떻게 됐지?’
“어?”
감 부인이 물었던 팔뚝을 바라본 동천은 저도 모르게 놀람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나아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고도 기쁘기도 한 동천은 얼른 목 주변을 쓸어보았다. 그러자 그곳도 깨끗이 나아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동천이 놀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귀의흡수신공이 뛰어날지라도 단 한 번의 운기조식으로 여러 번 씹혔던 상처가 깨끗하게 나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팔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동천은 그때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물이 밋밋해졌네? 킁킁. 오잉? 냄새도 안 나고? 혹시, 내가 이것 때문에 다 나은 건가?”
그렇다. 바로 동천이 몸을 담그고 있던 검붉은 액체가 바로 동천의 상처를 모두 치료한 것이었다. 사실 동천이 담그고 있던 백록활근액은 각각 백 가지의 녹색 활초와 독초를 배합해 천연 약수에 섞어 만든 것으로 이곳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내공 상승의 효과는 없어도 몸의 노폐물과 독소를 해소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그 물에 몸을 담근 채로 운공을 하니, 기운을 흡수하는 귀의흡수신공이 백록활근액의 효능을 그대로 놔두질 않고 모조리 흡수해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잠재되어있던 항광의 내공이 녹아들어 동천의 내공을 약간 상승시켰지만 흥분에 도취되어있는 동천은 알아챌 수 없었다. 하여튼 자신의 효능을 톡톡히 보여준 백록활근액은 검붉은 기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보통 물처럼 투명해져 있었다.
“뭐, 상관없어. 킬킬킬! 이 동천의 복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톡톡히 보여주마.”
혼자서 자꾸만 중얼거리는 동천 때문에 심히 불안했는지 도연은 참다못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주군.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동천은 통 속에서 나와 도연의 앞에 섰다.
“짜식이. 괜찮다니까?”
“엇?”
도연은 자신의 앞에 당당히 서 있는 동천의 모습이 믿기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도연은 재빨리 정신을 추스렸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도연이 놀라하는 모습에 신이 났던지 동천은 어깨를 들썩여 가며 소리 죽여 웃었다.
“우히히! 어떻게 된 거냐고? 넌, 보면 모르냐? 잘 들어. 아까 그 미친 노파가 나를 물고 늘어졌을 때 내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쳐댔지?”
“그렇습니다.”
“그래. 그건 다 나의 계략이었어.”
“계략이요?”
“그래. 계략(計略). 계란이 아니니까, 혹시 헷갈리지 말어.”
동천은 당연히 헷갈릴 리가 없는 것 가지고 의미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것은 동천이 그만큼 흥분해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발악을 하는 척 하면서 그 틈새를 노렸어.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한 동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머리로는 힘들겠지. 잘 들어. 나의 고결한(?) 피가 그년에게 빨려 가는 순간! 나는 그 것을 기회로 삼아서 나의 전 내공을 격발시켜 막혔던 혈도들을 풀었던 거야. 알겠어?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냐?”
동천은 나오는 대로 지껄인 소리였지만 도연은 믿는 듯했다.
“네. 이해가 갑니다.”
“좋아. 좋아. 히히히!”
자신의 위대함을 한껏 뽐내고 도연을 통에서 꺼낸 동천은 앉아있는 자세로 굳어있는 도연을 보고 한바탕 웃어 제꼈다. 그러나 곧이어 소리를 죽인 동천은 도연의 명문혈에 손을 얹혀놓고 한식경 동안 내공을 부어주어 마침내 도연의 막혔던 혈을 뚫어줄 수 있었다. 말이 한식경이지 그 동안 쉴 새 없이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던 동천은 거친 숨을 내쉬며 뒤로 벌렁 자빠졌다.
“헉헉! 이제, 이제 움직일 수 있어?”
도연은 벌거벗은 몸이어서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손으로 가린 후 대답했다.
“주군께서 수고해주신 덕분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천은 키득키득 웃고 난 후 벌떡 일어났다. 도연이 하는 짓을 보고 나서야 자신도 맨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동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연아. 어디 입을 거 없냐?”
동천의 물음에 도연도 같이 입을만한 것을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는 자신들이 담겨져 있던 물통 두 개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히히! 좋았어. 그 늙은 것들에게 갚아줄 것도 있고 하니, 나가볼까?”
동천이 생각 없이 나가려 할 때 도연이 그를 제지시켰다.
“주군. 먼저 밤인지 낮인지 확인을 한 후, 빠져나가도록 하지요.”
주춤한 동천은 잠시 머리를 굴려본 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낮이면 좀 더 기다리고, 밤이면 그것들이 자고 있을 때 빠져나가자는 소리야?”
“예.”
좋은 의견이라 생각한 동천은 그러하기로 했다.
“좋아. 그럼, 네가 나가서 확인해 봐.”
고개를 끄덕인 도연은 굳게 닫혀있는 문을 살며시 열었다. 절대로 빠져나갈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소리를 죽이고 밖으로 나갔다 금방 돌아온 도연은 다급히 묻는 동천에게 밖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곳 지하는 아마도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 또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조심해서 여니, 밥솥과 주방기구들이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해가 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 노인이 저녁을 먹이러 내려올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았다가 그 후에 탈출하기로 하지요.”
다 좋았는데 문제는 한번 더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한 풀들을 먹어야 한다는 게 영 께름칙했던 것이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지만 동천은 애써 참아가며 말했다.
“까짓 거 한번 더 먹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