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60화
동천이 영수산에 나간 지 오늘로서 나흘째. 그 사이 약왕전의 내부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늘이 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광명의 축복이 서린 양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시들어가던 꽃들조차 다시 생기를 머금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었으며, 병 고치러 왔다가 되려 더 큰 병을 얻고 간다던 약전에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병자들이 찾아와 우글거리고 있었다. 보라,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 모두가 1000명도 아니고, 100명도 아닌 단 한 명의 힘일지니…
“여보게. 자네 많이 나았는가?”
“그렇다네. 나는 이 정도면 되었으니, 소전주가 오기 전에 얼른 가보려 하네. 그런데 자네는 어떠한가?”
“나도 곧 있으면 나갈 것 같네. 소전주가 없으니 세상 살맛이 나는구만! 하하하!”
그렇다. 소전주. 바로 동천의 힘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신이나 약전에 치료를 받으러 들어가고 있을 때, 반대로 소연은 며칠 동안 소식이 없는 주인님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간만에 찾아온 수련은 놀러 왔다가 졸지에 언니의 걱정을 나누어가게 되었다.
“아이, 글쎄. 걱정 말라니까요?”
동생이 자신을 위로했지만 소연은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걱정이 안되니. 영수산에 가셨다가 소식이 끊긴 지 4일째인데.”
수련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나 참! 언니는 아직도 걔 성격을 몰라요? 걘 지금쯤 산삼을 못 찾아서 그냥 돌아오면 쪽팔릴까 봐 찾을 때까지 안 돌아오겠다며, 괜한 사람들을 붙잡고 방방 뜨고 있을 거예요.”
신빙성 있는 수련의 말에 소연은 조금 풀린 얼굴로 동생에게 물었다.
“그, 그럴까?”
드디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언니의 모습을 보고 수련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녀는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눈을 번뜩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요! 말이 나와서 말이지 산삼이 보통 물건이예요? 그런데 그런 거를 동천이 어떻게 쉽게 찾아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자자, 그러지 말고 며칠 더 기다렸다가 안 돌아오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잠 좀 자요. 보아하니 뜬눈으로 지샌 것 같은데.”
“정말 괜찮으실까?”
수련은 언니를 침대로 이끌고 가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괜찮아요. 언니가 모르나 본데, 걔 생명줄이 얼마나 질긴지 알아요? 아주 소 심줄보다 질긴 놈이예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소전주 신분인 동천이 행방불명되면 위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아니라구요. 때가 되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분들이 다 알아서 처리를 해줄 테니까, 어서 푹 자요. 알았죠?”
소연은 이불을 덮어주는 동생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련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동천이 영수산에서 소식이 끊긴 지 7일째가 되던 날, 이각(二閣) 중 하나인 살각(殺閣)에서 여러 명의 인원들이 동천의 행적을 찾아내려 영수산으로 향했다. 아울러 그들과 함께 구장로가 대형의 명을 받들어 도연을 찾기 위해 영수산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나흘 후.
동천은 뻣뻣하게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는 것도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렇기에 몸을 움직여 굳어진 근육들을 풀어야 했지만 당연히 그게 동천의 뜻대로 될 리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배가 고플 때면 감초인가 감똥인가 하는 영감이 찾아와 풀잎만 입에 억지로 쑤셔놓고 다시 나가버렸다. 또 목이 마를 때는 어찌 그리도 잘 아는지 그 시간대에 찾아와서 색깔도 불분명한 독즙을(동천은 독이라 생각하고 있다.) 들이키게 했다. 바로 지금처럼.
“크르윽! 켁! 켁! 꿀꺽꿀꺽!”
감송은 동천의 입을 벌리고 입안으로 검붉은 색의 액체를 무식하게 퍼부어댔다.
“흐흐. 옳지. 잘도 쳐 먹어 대는구나.”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고통스러웠는지 동천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이고 있었다.
‘크아악! 사, 살려줘! 으윽. 먹고 싶지 않아…’
동천의 성격에 발광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동천이 얻은 결과는 가혹한 것이었다. 감송은 바가지에 담겨있는 액체를 다 마시게 하고, 옆에 그 액체가 가득 담긴 물통에서 다시 한 바가지를 펐다.
“자자, 아직 한 바가지가 더 남았다.”
“히익?”
전보다 두 배의 양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흑흑, 할아버지. 저 그마… 크륵! 꿀꺽꿀꺽! 으에엑! 살려줘!”
짝!
“머, 먹을게요. 으흑? 때, 때리지 말아요.”
뺨따구 한 대 얻어맞고 순순히 받아먹는 동천에게 남은 양을 마저 먹인 그는 도연에게 가서도 먹였다. 의외로 도연은 순순히 액체를 받아먹었다.
“이봐, 소전주 꼬마. 네 수하 좀 닮아봐라. 네 수하는 잘 먹어대지 않느냐.”
감송이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통에 동천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해야만 했다.
“예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음부터는 잘 먹을게요. 그럼요. 그렇구말고요. 다음부턴 정말로 잘 먹을게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감송은 히죽 웃고 나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언제 웃었냐는 듯 동천은 이를 바득 갈며 원독에 찬 소리를 토해냈다.
“으으. 씨발 놈의 눈탱이! 자유의 몸이 되기만 해봐. 내가 가만 놔둘 줄 알아? 저놈의 얼마 남지 않은 눈썹을 모조리 뽑아버리고야 말 테다. 아냐. 뽑는 것보다 아예 그 눈썹에다 불을 붙이는 거야. 히히히! 그래서 나처럼 이 통에 집어넣고 방금 내가 드셨던 액체를 퍼 먹이는 거지. 어때? 응? 야, 어떠냐니까?”
옆에서 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정하시지요.”
순간 동천의 눈알이 도연 쪽으로 획 돌아갔다. 이젠 이력이 나서 그런지 눈알만을 돌리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동천은 시끄럽게 소리를 치면 귀 밝은 노친네가 알아들을 수도 있기에 소리 죽여 말을 꺼냈다.
“얌마. 네가 지금 그따위 소리를 하고 있을 때야? 어서 여기를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할 거 아냐. 으으. 난 풀은 먹을 수 있어도 방금 먹은 독즙은 더 이상 못 먹겠어.”
도연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말했다.
“주군께서는 내공이 강하시니 그 내공으로 풀어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동천은 알 수 없는 소리에 의문을 표했다.
“내공? 여기서 왜 내공이 나오냐?”
동천의 어이없는 질문에 한순간 도연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동천이 그것을 볼 리 없었다. 어쩌면 도연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기회에 마음 놓고 표현을 하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도연은 곧 그런 표정을 풀고 주군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저 노인이 우리가 어린아이라는 것에 방심을 했는지 내공을 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전 내공이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지라 여태껏 겨우 단 한 개의 혈을 뚫었을 뿐입니다.”
놀라운 사실에 동천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야? 이런 씹새끼! 그런 건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쉿-!”
“아차차. 쉿. 쉿.”
제압을 당했으면 당연히 내공도 폐지 당했을 거라 생각했던 동천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뜨거운 기운이 단전 부근에서 용솟음쳤다.
“오오, 모인다. 으히히. 모여. 모인다구.”
“어서 막힌 혈을 뚫어 보십시오.”
도연이 다그치자 동천은 알겠다며 내공을 순환시켜 보았다. 막강한 내공이 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단전 바로 앞에 막혀있던 혈은 그대로 뚫려버렸다.
“앗싸! 가오리!”
의미 없는 환호를 질러댄 동천은 정해진 순서를 생각해 내며 내공을 돌렸다. 그 사이 몇 개의 혈들이 막혀 있었지만 버티는 것은 얼마 없고, 그대로 뚫려버렸다.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혈들은 다 풀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문제가 생겼다. 정작 움직임을 담당하는 팔다리의 막힌 혈들은 강하게 저항을 하는 것이다.
“어쭈! 이 씨필 것들이 반항을 하네?”
이를 악물고 내공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렸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막힌 혈을 풀려면 정해진 곳 두어 군데를 동시에 압박을 가하며 뚫어야 하지만 이를 알 리가 없는 동천은 한 곳에만 죽어라고 내공을 쏟아붓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 부근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결국 동천은 포기하기로 했다.
“헥헥. 야, 몸통은 다 풀었는데 팔다리하고 목 윗부분은 못 풀겠다.”
도연은 자신이 근 일주일 동안 하나밖에 못 풀었던 혈을 자신의 주군은 무려 십수 개나 뚫었다는 소리에 놀라했다.
“굉장하십니다. 좀 더 힘을 내셔서 마저 뚫으시지요.”
굉장하다는 소리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뒷말인 힘내서 혈을 뚫으라는 소리는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이곳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뚫어야 하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까 뚫어보려고 노력했던 부위가 아직도 아파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하자. 지금은 뚫다 실패한 부위가 너무 아파.”
“그래도 아직 처음의 영향이 남아 있을 때 마저 뚫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지가 아픈 게 아니기 때문에 무책임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동천은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씨! 나중에 한다니까? 만약에 내가 무리하다가 혈을 다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주군의 발악(?)을 잠시 지켜보던 도연은 지금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안전하게 푸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안정을 되찾으면 그때 다시 시도를 하시지요.”
동천이 진작에 그럴 것이지. 하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감 부인이 들어왔다.
“얘들아.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니? 하도 소리가 커서 밖에서도 뭐라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으윽! 식인 노파다!’
감 부인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동천은 조금 후면 그녀의 모습이 백팔십도 달라질 것을 의심치 않았다. 괜히, 말을 나누었다가 그때 도연처럼 손가락을 물리기 싫었던 동천은 꾹 입을 다물었다. 감 부인은 아이들이 아무 말 없자 약간 슬픈 눈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둘을 번갈아 본 그녀는 무표정한 도연이 대신 표정 관리에 못 들어가 겁에 질린 모습의 동천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흑흑, 무서워서 그러는구나? 불쌍한…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감 부인은 언제 꺼내들었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동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서리를 맞은 양 질린 표정을 짓고 있던 동천은 엄청난 왕소름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흐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