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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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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왜 그것만 드세요?”

어제 역천이 다녀간 후로 주인님의 식성이 예전만 같지 않자 소연이 걱정스런 눈길로 물었다. 두 그릇만 먹었던 동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묻지마. 이야기하면 하나도 안 길지만 말하기 짜증나니까.”

“예에…….”

소리 죽여 대꾸한 그녀는 식탁 밑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자신의 치맛자락을 긁고있는 호연화에게 고기 몇 첨을 던져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비워진 그릇들을 치웠다.

“오늘부터 수련에 다시 임하시는 거죠?”

생각해보니까 그 문제도 있었다.

“으음, 그러네? 헌데 의욕하나 없는 이 몸께서 오늘 잘 해낼 수가 있을는지…….”

소연은 기회다 싶어 다시 물었다.

“왜 의욕이 없으신 건데요?”

동천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건 말이지. 이야기하면 하나도 안 길지만 말하기 짜증나니까 말 안 할래.”

“…….”

되려 그녀가 약간의 짜증이 치솟았지만 늘 그렇듯 자신이 참고 인내하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신경을 끄고 싶은 그녀였으나 나름대로 걸리는 문제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인 질문에 들어갔다.

“혹시 그 천하제일의 미녀 일 때문에 그러세요?”

동천은 뭔 소리인가 했다.

“천하제일의 미녀? 그게 무슨 소리냐?”

소연은 그제야 잘못 짚었음을 깨닫고 대충 얼버무렸다.

“아, 아뇨. 천하제일의 미녀가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서요. 호호호.”

무언가 찜찜하여 머리를 굴려본 동천은 뒤늦게 만독문의 소문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문제도 있었네? 이런 젠장! 도대체가 풀리는 것은 없고 죄다 고민거리들만 쌓이고 있잖아?”

강소홍에 관해서는 집착이라고 할만한 게 없었지만 기분도 안 좋은 마당이라 생색내기 식으로 화를 낸 것뿐이었다.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아직도 남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챙겨먹는 화정이를 힐끔 흘겨보더니 화풀이 식으로 죄 없는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주었다.

“야! 니 대가리에는 처먹는다는 것 밖에 없냐? 먹어도 어느 정도 것 먹어야 말을 않지! 이건 돼지새끼도 아니고 남는 음식들만 보면 가만히 놔두질 않네?”

화정이는 아픈 머리를 비비며 항의 섞인 말투로 말했다.

“히잉, 왜 때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단 말야.”

동천은 버럭 화를 냈다.

“이런 씨이! 아니니까 건드렸지! 니는 개새끼였으면 좋겠냐? 집 지킨다고 왈왈 짖어대다가 때 되면 주인새끼의 뱃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그런 인생이고 싶어? 앙?”

화정이의 여건상 자세한 이해는 어려웠지만 듣고 보니 무언가 무시무시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지레 겁을 먹은 그녀는 무조건 반항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냐, 아냐. 잘 건드렸어. 나 하나도 안 아파.”

그제야 동천이 어느 정도 화를 가라앉혔다.

“츱, 까불고 있어.”

팔자걸음으로 나와 지체 없이 마차를 타고 사부에게 도착한 그는, 무게 잡힌 표정으로 앞마당에 나와 먼 산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사부에게 인사를 올렸다.

“제자가 왔습니다, 사부님.”

역천은 표정의 변화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보았느니라.”

동천은 오늘따라 약간 변화된 듯한 사부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부님, 무언가 달라지신 듯합니다.”

그 순간 역천의 눈이 반짝였다.

“으음? 무엇이 달라져 보인단 말이더냐.”

“그러니까 그게…….”

멍석까지 깔아졌건만 동천은 어쩐 일인지 중간에서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보니까 사부가 근엄한 척 하셨던 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괜히 일만 벌려놨다고 생각한 동천은 그냥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게 사부님의 얼굴에 현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푸헤헤! 뭐 그 정도까지야!”

갑자기 말을 끊고 들어와서 놀란 동천은 바로 진정시킨 뒤 자신의 아부가 먹혀 들어간 김에 계속 이야기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도대체 어떠한 방법을 쓰셨기에 하루아침에 그토록 현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요? 이 제자는 그저 놀랍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힐 따름입니다.”

근엄이고 뭐고 간데 없어진 역천은 화리혈현단으로 마사지를 한 것이 이렇듯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제자는 그렇게 놀라워할 이유가 없느니라. 사람은 날마다 변하는 것이고 그 변함의 정도가 비범한 사람일수록 커지니, 바로 이 몸께서도 그러했기에 이토록 현묘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었던 것이니라. 허니, 제자는 이 사부를 본받아 하루 하루가 평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무도에 정진하길 바란다. 알겠느냐?”

동천은 바로 대답했다.

“예, 사부님.”

마음에 들었던지 역천이 만면에 가득 미소를 띄웠다.

“그래그래. 일단 수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쁜 소식부터 전해주어야겠구나.”

동천은 의아해진 눈으로 물었다.

“기쁜 소식이라니요?”

역천은 준비를 해놓았던 듯 작은 옥병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동천이 입을 여는 대신 눈짓으로 옥병의 용도를 묻자 역천이 대답해주었다.

“네가 무사히 화리혈현단을 복용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단환이다. 소량의 극독과 그것에 상충하지 않는 약재들을 배합하여 만들었으니 일단 지금 한 개를 복용하고 효과가 어느 정도 신체에 퍼지게 되는 저녁 무렵에 화리혈현단 한 개를 복용하거라. 네 경지라면 능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니 따로 보조를 맞추어주지 않겠다 만은 네가 혼자 복용하기가 불안하다면 이 몸이 곁에서 인도를 해주마. 어떻게 하겠느냐. 혼자 복용하겠느냐?”

아무래도 혼자가 좋았던 동천은 집에서 아랫것들을 좀 볶아대다가 차분한 마음이 되어 복용하는 쪽을 택했다.

“이 제자가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자립심을 가지고 한번 복용해보겠습니다.”

기특함과 서운함이 교차되는 가운데 체면상 자신이 내뱉을 말을 번복할 수 없었던 역천은 제자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오오, 그렇다면 이 사부는 다음날 네가 훤칠해진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만을 기다리면 되겠구나. 이 사부는 너의 능력을 믿고 있으니 행여나 불안한 마음을 갖지 말기 바란다. 운기 중에 사념만큼 금기해야할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예, 사부님.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인 역천은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헌데, 요사이 도연이 잘 안 보이는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더냐?”

동천은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데 도연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옆에 만만한 하인이라도 지나가면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참고 대답했다.

“도연은 요즘 전대 사혼대이신 장로님들께 불려가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장로님들께서 그간 도연이 수련한 능력을 좀더 갈고 닦게 하기 위해서 놔주질 않고 있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역천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허어, 그분들이 진짜로 해보려고 하시는가보구나! 하나의 인재가 성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적극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면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인데…….”

역천은 장로들의 꿍꿍이라면 꿍꿍이를 알고있는 듯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몰랐던 동천은 물어보는 수밖에 달리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사부님. 이 제자가 아둔해서인지 잘 못 알아듣겠사옵니다. 좀더 자세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그제야 역천은 자기 위주로만 말했음을 깨달았다. 헌데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무사 하나가 황급히 달려 들어왔다.

“전주님, 소교주님의 집사가 찾아왔습니다.”

역천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소교주님의 집사라고?”

“예, 틀림이 없음을 소신이 확인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역천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명령했다.

“들어 오라일러라.”

무사는 꾸벅 허리를 굽힌 후 밖으로 나갔다가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을 데려왔다. 꾸밈없는 단정한 민 무늬 문사건에 새하얀 백의가 인상적인 중년인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이 미천한 집사가 전주님의 뵈어 영광입니다.”

역천은 피식 웃고 말했다.

“영광이라니 이 몸 또한 기쁘군. 그래, 자네가 나에게 어인 일인가.”

집사는 역천에게 대꾸하기에 앞서 잠시 소전주 쪽을 쓰윽 쳐다보았다. 무언가 관통하는 듯한 집사의 서늘한 눈빛은 당연히 동천의 기분을 상하게끔 만들었다.

<얼레, 저 씨발놈이 왜 재수 없게 내 쪽은 쳐다보는 거지?>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제가 오늘 이곳에 찾아뵌 이유는 전주님이 아니라 여기 이 소전주님께 볼일이 있어서입니다.”

역천은 의외의 상황에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졌다.

“이 몸이 아니라 이 몸의 제자에게 볼일이 있다고?”

냉현의 집사는 공손히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원래 이곳을 방문하기에 앞서 암한문에 먼저 들렸는데 그곳의 시녀가 소전주님의 소재지를 가르쳐주어 서둘러 이곳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흐음,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이 몸의 제자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집사는 역천의 물음에 미약하나마 난색을 표했다.

“거기까지는 제 소관이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소문주님께서 찾고 계시는 것만은 확실하오니 자세한 사항은 그곳에 도착하셔서 직접 들어보시는 게 나을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역천인들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동천에게 말했다.

“음, 소문주님께서 네게 무언가 볼일이 있으신 듯한 모양이구나. 이런 저런 일로 왔다갔다하면서 수련에 임하게 된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되니, 만일 소문주님과의 이야기가 길어지거든 곧장 네 거처로 되돌아가거라. 이 몸은 늦는다 싶어지면 개인적인 볼일에 몰두할 터이니 말이다.”

“예, 사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역천의 허락을 얻었다고 생각한 집사는 한 손을 바깥쪽으로 내밀며 동천을 인도했다.

“저 바로 문밖에 마차가 대기 되어있습니다. 이동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터이니 저를 따라 오시지요.”

동천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리라 믿고 그렇게 하겠네.”

집사도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나 소리 없는 웃음이었기에 일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모습이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으나 동천은 꾹 참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역천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 여기고 제자의 등뒤에서 전음을 보내주었다.

『아무래도 7년 전의 그 사건과 연관이 있을 듯 싶구나. 이번일 만큼은 이 사부가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없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네 뛰어난 심기로 잘 대처하길 바란다.』

동천 또한 짐작하고 있었기에 크게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절대 꼬투리를 잡힐만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끔 하겠으니 염려 놓으십시오.』

동천은 그답지 않게 당당한 걸음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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