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3장] – 기적을 감상하는 태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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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3장] – 기적을 감상하는 태도 2


뭄토는 접칼을 접었다 폈다 했다. 그걸로 책상 모서리라도 깎 아 볼까 하는 생각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그를 이곳으로 안내 한 제국군 수전사는 얌전히 앉아 기다리라고만 했지 언제까지 기 다려야 하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초조함이 동반된 무료함이 뭄토를 괴롭혔다. 뭄토는 짜증스러 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에겐 약간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리 크지 않은 방 안에는 오밀조밀한 물건들이 많았다. 뭄토는 갑작스럽게 심술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오히 려 간소한 물건들이었지만, 뭄토의 눈에 그것들은 어떤 질서와 어떤 힘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국군 일개 중대를 지 휘하는 자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는 셈이 니 뭄토의 인상이 그리 틀리진 않았다. 그리고 뭄토는 그 광경에서 희미한 시기심을 느꼈다. 뭄토가 그 느낌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뭄토는 문 쪽을 쳐다보았다. 제국군 수교위 한 명이 들어섰다.

인간 여자였다.

뭄토는 언젠가 예편한 제국병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자는 제국군을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장군은 머리이고 전사들은 무기다. 부위는 무기를 휘두르는 팔이고 교위 들은 다리다. 다리에는 무시무시하다거나 맹포한 느낌은 없다. 하지만 다리가 없으면 꼼짝도 할 수 없다. 제국군에 교위들은 바 로 그러한 존재다. 전투를 수행하는 부위와 전쟁을 다스리는 장 군들 사이에서 교위들은 전투와 전쟁을 연결하며 드러나지 않게 제국군을 움직인다.

하지만 뭄토는 멍석을 깔고 바닥에 앉아 있는 그보다 별로 크 지 않은 조그마한 여자를 보며 자신이 뭘 잘못 들었던 것이 아닌 가 생각했다.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 어디에도 그런 수교위 의 굳건함은 찾기 어려웠다. 한 장만 걸친 윗옷을 떨어지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은 단추가 아니라 어깨인 듯했고 바지는 앞뒤가 바뀌어 있었다. 얼굴은 침 자국으로 가득했고 그 위의 머리카락 은 사자처럼 일어나 있을 듯했다. 가정형인 것은 왜 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투구가 머리카락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 틀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여자의 손엔 반쯤 베어 먹은 무가 들려 있었다.

어디를 봐도 숙취에 고통스러워 하는 주정뱅이였다. 뭄토는 어이가 없었다.

책상 뒤로 돌아간 수교위는 갑자기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절 이라도 하는가 하고 놀랐던 뭄토는 수교위의 머리에서 투구가 쿵 떨어지자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회를 느꼈다. 수교위는 빙 글빙글 돌던 투구를 손으로 눌러 고정시키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 았다. 그리고 입에 들어 있는 무를 대충 삼키고 뭄토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말했다.

“제국군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상대가 술일 경우만 빼고 말이지.”

“제국군의 군사 기밀을 알고 있는 당신은 누굽니까?”

“뭄토다.”

수교위는 자신 있는 동작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 쳤다. 그 손에 무가 들려 있다는 것을 잊었던 모양이다. 수교위는 책상에 고꾸 라져 한동안 고통스러워 했다. 뭄토는 왜 자신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 후 가까스로 호흡을 회복한 수교위가 말했다.

“죽는 줄 알았네. 이건 뭐야? 아, 무. 저는 니어엘 헨로 수교위입니다. 뭐 하시는 분입니까?”

“정해 놓고 하는 일은 아직 없어.”

“그렇습니까. 그럼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군.”

“비밀은 지켜 드리죠.”

“너에게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뜻이야. 하 지만 이왕 만났으니 이야기는 하지. 내가 검은 깃털의 레콘을 보 았는데.”

니어엘 헨로 수교위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제야 손에 든 무의 용도를 떠올린 듯 니어엘은 그것을 와삭 깨물었다. 무를 질겅거리다가 니어엘이 타이르는 어조로 말했다.

“검은 레콘이 포악하다는 속설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은 레콘이 곧 범죄자인 것은 아닙니다. 뭄토. 사실 저는 레콘이 다 른 레콘에게 포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 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모색 차별은 버리세요.”

뭄토는 한 번만 더 참기로 했다. 제국군 장교를 살해하는 것보 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녀석은 살벌한 망치를 들고 있었어.”

니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뭄토의 암시를 이해한 것 같았다.

“흠. 황제 사냥꾼 지멘이군요.”

“그래. 음, 그 친구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다던데?”

“현상금? 예, 현상금이 있지요. 금편 삼백 닢입니다.”

뭄토는 애써 깜짝 놀란 표정을 숨겼다. 그가 아는 현상금 액수는 백 닢이었다. 언제 올랐을까? 뭄토는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말 했다.

“푼돈이네.”

“응? 관심이 없습니까?”

“공돈이 싫을 리야 없지.”

“공돈이라니요?”

니어엘 헨로 수교위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뭄토를 바라보았 다.뭄토는 자신이 뭔가 실수를 저질렀나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니어엘이 무청을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다시 말했다.

“협조를 요청하러 온 것 아닙니까?”

“협조라니, 무슨 말이야?”

“그럼 여기에 뭐 하러 왔습니까?”

“현상금 받으러.”

니어엘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뭄토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으며 초조하게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니어 엘이 말했다.

“아아. 모르셨군요. 그자는 맹랑하게도 자신의 거취를 숨기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그의 소재를 알 리는 자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별 의미가 없겠지요? 그래서 현상 금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액수를 세 배로 올리는 대신 체포한 자에게 지급하도록 말입니다.”

뭄토는 당황했다.

“뭐야, 그럼 붙잡아 와야 현상금을 준다는 거야?”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시체를 가져와도 상관은 없습니다. 꺼억. 저는 당신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군의 지원을 얻으러 온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지멘을 체포할 생각 같은 것은 해 보지도 않았던 뭄토는 낭패 감을 느꼈다. 모르는 척했지만 뭄토는 지멘이 가지고 있던 도끼 를 눈여겨보았다. 그 도끼는 분명히 레콘만 쓸 수 있는 것이었 다. 그것도 용력이 대단한 레콘이었을 것이다. 날폭이 2미터쯤 되는 물건이니. 자신의 무기를 타인에게 맡기는 레콘은 없으므로 그 원 소유자는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뭄토는 지멘이 그 죽음과 무관하다고 믿기 어려웠다.

니어엘은 입 주위를 쓱쓱 닦으며 곤혹스러워하는 뭄토를 바라보았다. 뭄토가 한동안 말이 없자 니어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제 상황을 알았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군의 지원을 요청 하겠습니까?”

“잠깐만. 내가 지멘을 잡을 수 있도록 당신들이 도와준다는 거야?”

“아니, 아니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당신이 군을 돕는 것입니 다. 지멘이 이 근방에 출현했다는 것을 안 이상 저는 그를 붙잡을 생각이니까요. 당신이 제 작전에 협조한다면 현상금 중 백닢 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백 닢?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니어엘은 킬킬 웃었다. 뭄토는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지만 꾹 참았다. 니어엘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는 건 그쪽입니다. 어, 이름이 뭐라 고 하셨더라? 아, 그래. 뭄토. 당신은 한 명이지만 우리는 천명 입니다. 이백 닢 가지고 천 명이 나눠야 한단 말입니다. 그게 싫 다면 혼자 가서 지멘과 놀아 보십시오. 그렇게 한다 해도 저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권고하겠는데, 저와 경쟁하는 것 보다는 제게 협조해서 백 닢을 얻는 편이 나을 겁니다. 분명히 그쪽이 훨씬 현실적이니까요.”

뭄토는 앉아 있는 멍석을 가리켰다.

“여기 변변한 의자도 없는 걸 보니 당신 졸병들 중엔 레콘이 없는 것 같은데.”

“없습니다. 혹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는 레콘이 있다면 모르겠 지만. 그런 의심이 가는 녀석들이 몇몇 있어요. 지독하게 씻지 않는 놈들이…”

“그만해. 제국군 수교위는 허풍 잘 치는 순서로 뽑나? 레콘 졸병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지멘을 잡겠다는 거야?”

“끄윽. 젠장. 웬 트림이. 그건 당신이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 다. 협조할 의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뭄토는 일단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머리를 굴려 보았다. 뭄 토는 얼핏 보기에 몹시 헐렁해 보이는 니어엘 헨로라는 수교위가 겉보기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대화는 논리적이었고 진행 속 도도 빨랐다. 교위들에 대해 뭄토가 들은 이야기는 역시 사실이 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협조 하에 지멘을 붙잡는다 해도 니 어엘은 현상금을 몽땅 가로채는 약아빠진 짓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뭄토는 그런 권리가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관건이 되는 문제는 하나다. 뭄토는 자신이 지멘을 상대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지멘은 그보다 크고 강했다. 무엇보 다 그보다 나이가 많았다. 쉽게 쇠약해지지 않고 성정이 폭력적 인 레콘에게 나이는 강력함을 추정하는 중요한 척도다. 나이는 경험이고 동시에 투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함의 증거다. 치천제를 모시는 저 즈라더 같은 강대한 레콘의 나이는……………… 뭄토는 벼슬이 뻣뻣하게 서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그는 지멘이 가지고 있던 도끼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 렸다. 뭄토가 그 유명한 도끼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누군 가가 즈라더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뭄토는 망연하게 말했다.

“도끼를 가지고 있었어.”

“네?”

“지멘 말이야. 이런 미꾸라지에게 따귀 맞을 멍청이. 그걸 왜 깨닫지 못했지? 망치 말고 도끼를 하나 가지고 있었어.” 

“아, 금군 즈라더의 도끼 말씀이군요. 알고 있습니다.”

뭄토는 충격을 받았다.

“알고 있었다고?”

니어엘 헨로 수교위는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무를 다 먹었음을 깨달았다. 니어엘은 몹시 불행한 얼굴로 빈손 을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예. 상부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지멘은 판사이 호반에서 그를 추적하던 즈라더와 조우했습니다. 도끼와 망치의 격 투가 어떤 결과로 끝났는지는 당신도 짐작하겠군요.”

“그렇다면 지멘이 즈라더를 죽인 거야?”

“망치로 머리를 때려 부수었지요. 쯧쯧. 당신들이라면 멋진 죽 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죽음이라면 사양하겠습 니다. 그런데 즈라더의 곁에는 그분의 도끼가 없었습니다. 그래 서 상부에서는 지멘이 즈라더의 도끼를 최후의 대장간으로 가져 간 것이라고 추정했고 발케네 이남 지역의 제국군에 경계령을 내 렸습니다. 그 추정이 맞았군요. 하긴 지멘이 아니면 누가 그 무 거운 도끼를 들고 가겠습니까? 팔아먹지도 못하는 건데.”

“그렇다면 이 근처로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거야?”

“제가 많이 놀라는 것처럼 보였습니까?”

“아니었어.”

뭄토는 희비가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지멘을 잡겠다는 니어엘 헨로 수교위의 선언이 취중의 결심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고민한 결론이라는 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지멘이 즈라더를 격퇴 했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었다. 승천한 티나한 외엔 아무도 죽일 수 없고, 티나한이 돌아온다 해도 즈라더와 약속한 철의 침묵 때 문에 공격하지 않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무적이라고 말해지던 즈라더였다. 그런데 지멘이 그를 거꾸러뜨린 것이다. 뭄토는 새 삼스럽다는 얼굴로 니어엘을 바라보았다.

“이봐, 수교위. 당신 정말 그 지멘을 잡을 작정이야? 군인들 허풍이 아니고?”

“당신에게 돈 빌린 것도 없는데 제가 왜 허세를 부립니까.”

“즈라더도 죽었어.”

“즈라더도 기뻐할 겁니다. 제 작전에 협조하겠습니까?”

어쩐지 결정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뭄토는 결정했다..

“이백 닢 내놔.”

“백 닢입니다.”

“젠장. 당신이 유료도로당원이야? 그럼 시원하게 반씩 가르자고. 백오십 닢.”

“백닢.”

“누가 군인 아니랄까 봐. 그만둬!”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뭄토는 멍석 위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주춤거리며 니어엘을 내려다보았다. 니어엘은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뭄토는 수염볏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거 고집 진짜 세네. 나 없어도 자신 있는 거야? 후회할 고집은 부리지 마.”

“협조할 겁니까?”

“백 닢은 꼭 내놔야 해! 제하는 거 없이!”

니어엘은 동의했고 협정이 맺어졌다. 하지만 뭄토는 그때까지 도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니어엘 헨로 수교위가 농담이나 불 가능한 도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뭄토는 지멘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불안 속에 서 뭄토는 니어엘이 취중의 흥분 때문에 장렬한 옥쇄로 자신의 군인다움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도 느 꼈다.

하지만 니어엘이 그런 낭만적 군인상을 추구하고 있지 않음은 곧 명확해졌다. 니어엘은 부위 한 명을 불러들여 몇 가지 명령을 하달했다. 그중 첫 번째는 숙취 해소를 위해 무보다 더 진한 것 을 준비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명령을 듣던 뭄토는 그만 지멘을 동정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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