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3장] – 기적을 감상하는 태도 9
제국령 나나본과 발케네령을 경계 짓는 강변에서, 제국의 역사 는 물론이거니와 유사 이래 한번도 없었던 요구에 직면한 노인은 자신의 오랜 습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인간 여자,은편 다섯 닢, 그런데 레콘 남자는 탄 적이 없어 서 모르겠군요.”
데무즈의 목소리는 그의 예상보다도 더 크게 들려서 자신을 놀 라게 했다. 데무즈가 특별히 크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 이쪽을 소란스럽게 만들던 소음이 일시에 사라진 덕분에 그 소리는 꽤 잘 들렸다. 정신이 나가 있기로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상태였던 아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질문했다.
“인간 여자? 레콘 남자? 유료도로당원 말투 같은데. 그러세요?”
데무즈는 허리춤에서 당원패를 꺼내 들어 보였다.
“그래, 당원이야. 여긴 유료도로당 나나본 지부 소속 유료 나루터고.”
“아아, 그렇구나. 한번도 탄 적이 없다면 새로 요금을 결정하 셔야………… 그런데 지멘? 탄다고요?”
아실의 말 끝부분은 숫제 비명이었다.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신호가 된 듯 제국병들 사이에서도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 다. 그들을 통솔할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니어엘은 자신의 책임 을 망각한 채 아실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탄다고?”
몹시 당혹한 병사들에겐 그것도 일종의 지휘 행위가 된 모양이다. 병사들은 앵무새처럼 니어엘의 말을 반복했다. 탄다고? 탄 대? 탄대잖아? 탈까? 타려고? 제발 타지 마! 삶에 대한 믿음을 잃을 것 같아!
세계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레콘은 언제나 행동으로 대답한다.
지멘은 천천히 발을 들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데무즈는 황급히 이물 쪽으로 물 러났다. 이윽고 지멘의 발이 나룻배 위에 실렸다. 데무즈는 제발 배가 뒤집히지 않길 바라며 이물 바깥으로 몸을 한껏 내밀었다. 그리고 지멘은 배 위에 섰다.
“탔다.”
니어엘의 얼빠진 목소리는 곧 오백 배로 증폭되었다. 오백 명 이 동시에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광경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그 터무니없는 공포극에 정신을 차린 니어엘은 뭄토를 돌아보았 다. 같은 레콘으로서 뭄토가 지멘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 금했기 때문이다. 니어엘은 만족했다. 뭄토는 두 손으로 눈을 가 린 채 당장 부서질 듯이 떨고 있었다.
니어엘은 다시 나룻배를 돌아보았다.
배는 몇 번 무겁게 흔들렸지만 뒤집히지는 않았다. 지멘은 니 어엘에게 등을 보인 자세 그대로 배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앉았 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는 아실이 배낭 위로 몸을 쭉 뺀 채 지멘의 머리를 여기저기 만져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혼란 에 빠져 버린 니어엘은 촉진으로 정신 질환을 판별할 수 있다면 제국 의학계의 진일보가 아니고 무엇이라 생각했다.
그 모든 광경 속에서 침착하게 배 바깥으로 손을 뻗고 있는 데 무즈의 모습은 이채로웠다. 수면과 뱃전을 만진 데무즈는 나룻배 가 거의 만재 흘수선이라 할 만한 깊이까지 잠겼음을 깨닫고 이 맛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태운 독특한 고객의 특성을 알고 있는 데무즈는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듣던 것보다 더 무겁네. 스무 닢.”
데무즈의 말에 아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실은 재빨리 배 낭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조금 후 그녀는 돈주머니를 꺼내어 지멘의 어깨 너머로 던졌다.
“달라는 대로 드릴 테니까 출발해요!”
아실은 분통을 터뜨렸다. 곧장 출발하기는커녕 데무즈는 허리 를 굽혀 뱃전에 떨어진 돈주머니를 주워 들었다. 주머니 안에서 은편 스물다섯 닢을 꼼꼼하게 세어 꺼낸 데무즈는 돈주머니를 다 시 묶어 지멘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지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데무즈는 어서 받으라는 듯이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아실이 배낭 밖으로 몸을 던지듯이 빠져나왔다. 배바닥에 선 아실은 데무즈의 손에서 돈 주머니를 낚아챘다.
“영감님, 정말! 누가 유료도로당원 아니랄까 봐. 됐어요?”
데무즈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물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도 그는 태평스럽게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뒤쪽에서 퇘퇘 하는 소리 가 들리자 지멘의 벼슬이 움찔했다. 손바닥을 비빈 데무즈는 나 룻배 뒤에 달린 노를 움켜쥐었다.
나룻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니어엘은 문득 자신 이 말도 안 되는 지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제국병들은 당장 달려나갈 듯이 몸을 긴장시 켰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 고 있던 제국병들은 침묵이 길어지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들 은 지휘자를 곁눈질했다.
노를 젓는 데무즈의 곁에 와 있던 아실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니어엘을 바라보았다. 제국군 수교위는 손을 높이 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실은 니어엘의 손끝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턱으 로 물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턱을 적신 아실은 놀란 표정으로 데무즈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요?”
“내가 아냐.”
데무즈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를 멈추었다. 그때 속하 는 소리와 함께 물이 다시 튀어 올랐다.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 던 아실의 눈에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화살 하나가 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실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때 강 건너편에 서세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지멘!”
아실은 비명을 지르며 지멘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아실은 자신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을 확신했다. 화살은 꿈쩍도 하지 않는 지멘의 머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다. 당장이라도 그 미간에 화살이 꽂힐 것이다.
지멘이 고개를 아주 조금, 세차게 비틀었다.
날아온 화살은 지멘의 부리에 맞았다. 파열음과 함께 튕겨 나 간 화살이 빙글빙글 돌며 하늘로 치솟았다. 아실은 그 화살이 수 면에 떨어질 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아실이 몸을 날렸다.
어떤 명령도 받지 못했기에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지만, 제국 군은 그 사실에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아실의 행동은 넋놓고 구 경해도 허물이 되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거침없이 몸을 날 린 아실이 떨어진 곳은 데무즈의 가슴이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데무즈는 아실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황 급히 뱃전을 움켜쥔 덕에 데무즈는 배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았 다. 사공은 자신의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는 고객에게 외쳤다.
“무슨 짓이야! 왜 갑자기…………….”
“제기랄, 가만 있어요! 당신을 쏘고 있는 거라고요!”
데무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조금 후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저 레콘이 아니고?”
아실은 데무즈를 인정사정없이 짓누르며 외쳤다.
“저 산만 한 덩치를 맞히는 데 세발이나 필요하겠어요? 지멘 이 얼어 죽을 화살에 맞기나 하고? 그럴 리 없죠. 당신을 쏘는 거예요!”
“귀 좀 그만 눌러. 귓바퀴 찢어지겠네. 왜 나를 쏜다는 거야?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당신이 없어지면 이 나룻배는 그대로 바다까지 흘러가 버릴테니까!”
지멘의 벼슬이 꼿꼿하게 곤두섰다.
강 저편, 발케네령에 서 있던 텡 마바노 조장은 천천히 활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궁술 실력에 낙심하고 있었다. 앉아 있었지만 그 래도 지멘은 지나치게 큰 장애물이었다. 그를 지나쳐 그 뒤편에 있는 데무즈를 저격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과제였다. 게다가 세 번째 화살이 날아갔을 때 아실이 보여 준 행동은 텡의 의도가 간파되었다는 증거였다. 씁쓸한 기분 속에서 텡이 외쳤다.
“데무즈! 데무즈! 그 소녀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배 위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바노 조장님, 당신이 저를 쏘고 있다는데, 맞습니까?”
“설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나는 지멘을 쏘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좀 위험하군요. 내 불찰이었습니다. 배에서 뛰어 내리십시오.”
“배에서 뛰어내려요?”
“그래요. 그 소녀를 밀치고 강으로 뛰어들어요. 데무즈.”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왜라니, 당신이 위험하다고 말했잖습니까? 이것은 기회입니 다. 지멘은 꼼짝도 할 수 없어요.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것이고 작입니다. 당신은 그냥 배를 버리고 뛰어들면 됩니다. 그러면 지 멘은 바다까지 흘러갈 테고 당신은 지멘의 현상금을 받을 수 있 어요. 현상금은 금편 삼백 닢입니다.”
데무즈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금편 삼백 닢?”
“그렇습니다! 은편이 아니라 금편 삼백 닢입니다. 나와 니어엘 헨로 수교위가 증인이 되어 줄 테니까 당신은 틀림없이 그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데무즈는 놀랐다는 얼굴로 지멘의 등을 바라보았다. 데무즈를 짓누르고 있던 아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렇게 하세요.”
“응? 뭐?”
“빌어먹을, 그렇게 하라고요! 배에서 뛰어내려요. 노 젓기를 터득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떻게 되겠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실의 말을 생각해 보던 데무즈의 얼굴 이 곧 험악해졌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 데무즈를 보며 아실은 노 젓기가 대단히 어려운 기술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녀의 오해였다. 그가 아실을 밀어내고 일어나 노를 쥐었을 때 아실은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데무즈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나서 노를 잡고 다시 강물을 밀어붙였다. 잠깐 동안의 소동 때문에 나룻배는 통상의 궤도에서 밀려나 있었다. 데무즈는 투덜거리며 나룻배를 원래의 궤도로 밀 어 넣었다. 선수를 정확히 텡 마바노 조장에게 고정시킨 데무즈는 그대로 나룻배를 전진시켰다. 아실은 눈을 부릅떴다.
“영감님?”
“왜 불러?”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노를 젓는 거죠?”
“돈 받았으니까.”
아실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집게손가락을 내밀어 데무즈를 겨냥했다.
“돈 돌려주고 뛰어내려요! 은편 몇 닢으로 영감님 목숨을 사고 싶진 않아요.”
데무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아실을 노려보았다.
“얘가 미쳤나. 누구에게 뛰어내리라는 거야? 돈 돌려받고 싶으 면 네가 뛰어내려. 이게 누구 배인데.”
“뭐라고요?”
“못 알아듣겠어? 이건 내 배야. 돈 돌려받고 싶으면 이 배를 떠나. 하지만 나에게 떠나라는 건 말도 안 돼. 왜냐고? 이건 내 배니까.”
아실이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시야가 닿는 곳에 있는 사 람들 중 가장 크게 웃고 있었지만, 가장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영감님, 죽어요.”
“파!”
데무즈는 괴상한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고 아실의 웃음은 더욱 커졌다. 그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배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텡은 씁쓸함을 느꼈다. 텡은 사태 가 이렇게 진행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경고나 부탁 없이 곧 장 활을 쏜 것도 데무즈가 배에서 뛰어내리라는 권고를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텡은 고개를 내저었다.
“빌어먹을 유료도로당원. 역시 도로에서 죽겠다는군.”
어느 부하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하죠? 지멘을 쏠까요?”
“못 봤냐? 눈앞까지 날아오도록 내버려뒀다가 부리로 쳐내는 거? 지금 엄청나게 위축되어 있을 텐데도 그런 재주를 부리는 녀석이야. 역시 사공을 쏴야 해. 그러니까…….”
“덧살 착용!”
우렁찬 외침에 텡 마바노는 찔끔했다. 고함이 들려온 곳을 쳐 다보니 강 건너편에 있던 니어엘 헨로 수교위가 드디어 손을 내 렸다. 그리고 니어엘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모두 전통으로 손을 뻗었다. 다시 당겨진 그들의 손목에는 덧살이 걸려 있었다.
텡은 말도 안 된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니어엘은 이번에 도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녀의 짧은 외침이 떨어지자 오백 명의 제국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먹였다. 그것은 텡이 예상한 화살이었 고 또한 그가 절대로 볼 거라 믿지 않았던 화살이었다.
오백 발의 치명적인 아기살이 발케네령을 향해 겨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