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9장] – 불씨의 비행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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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9장] – 불씨의 비행 10


하늘누리가 멈춘 상태에서 이동을 시작할 때 그 아래쪽에 있는 사람은 건물 내부에 있도록 권장된다. 이동의 충격 때문에 하늘 누리에서 뭔가가 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것, 그 러니까 실수로 나루터에 놔둔 그릇 하나라도 아래로 굴러떨어지 면 그것은 곧 놀라운 속도로 땅을 강타하게 된다. 물론 유수부원 들이 이동에 앞서 철저하게 검사를 하고 실제로 그런 물건이 떨 어져 아래에 있는 사람을 다치게 할 확률은 지독하게 적다.

하지만 틸러 달비는 권장이라는 용어 대신 규칙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정우를 성 내부에 있도록 강제했다. 그는 정우가 배웅을 핑계 삼아 날아오를까 봐 두려웠다. 환상 계단을 다루는 정우의 놀라운 솜씨는 틸러의 이해나 추측을 벗어난 수준이지만 그래도 정우는 하늘누리가 움직일 때 환상 계단을 사용해 본적 은 없었다. 그래서 틸러는 그녀가 엉뚱한 생각을 떠올릴 기회를 주지 않기로 했다. 그 때문에 정우는 볼이 약간 부은 채 자신의 방 창가에서 하늘누리가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하늘 누리가 움직이는 장관을 넓은 장소에서 보고 싶었다.

갑자기 정우는 묘안을 떠올렸다. 정우는 환한 얼굴로 틸러를 돌아보았다.

“틸러! 탈해와 함께 번뜩이를 타고 날아오르면 되죠? 땅이 아니니까 상관없잖아요.”

정우의 곁에 있던 탈해도 환한 얼굴로 틸러를 바라보았다. 틸 러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 말이 나오길 기다리 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안 되겠습니다. 하늘누리는 곧 움직일 겁니다. 지금 딱정벌레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갔는데 뭐가 떨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정우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우는 그녀가 딱정벌레를 타 고 날아오를 때까지 하늘누리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증거를 찾 기 위해 열심히 하늘누리를 관찰했다. 물론 그런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정우는 한숨처럼 말했다.

“떠난다니 아쉽네요.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을 땐 참 좋았는데.”

틸러는 정반대라고 생각했다. 정우가 하늘에 있었던 엿새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우가 틸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하늘누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그건 유수부의 극비입니다.”

“아, 그래요?”

정우는 그냥 그런가 하는 얼굴로 다시 하늘누리를 돌아보았다. 탈해 또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틸러 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늘누리의 이동이 극비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늘누리는 제국의 수도다. 수도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아무리 그 수도가 움직이는 수도라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늘누리의 이동 계획은 제국의 모든 지역에 공지된다. 하늘누리가 비밀리에 움직일 때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틸러는 그런 경험을 한 번 했 었다.

규리하를 공격하기 전, 하늘누리는 이동 계획을 공지하지 않았다.

틸러 달비는 어딘가에서 또다시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확 신할 수 있었다. 주둔지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참나무 군단과 가 시나무 군단에도 갑자기 경계령이 내려졌다. 치안 유지 병력과 함께 성에 남아서 정우를 보좌하기로 한 틸러는 다른 병사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또한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증거 였다. 부위의 인맥으로도 전쟁 목표 같은 것은 알아낼 수 없다. 틸러는 알아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할 자유는 포기하지 않았다.

겨우 얼마 전 전쟁을 치렀는데 또 이렇게 새해 벽두부터 전쟁 을 치른다면 그 전쟁 상대는 어디일까? 틸러는 자신이 정치에 지나치게 무지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럴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 았다. 설마 시련인가? 틸러는 그 생각에 잠깐 매달렸지만 곧 포 기했다. 도시 연합과 아라짓 제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엄 청난 규모가 될 것이다. 모든 제국군에 경계령이 내려질 테니 굳 이 알아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련은 아니다. 만에 하나 전쟁 상대가 시련이라면 그것은 상대에게 겁 을 주기 위한 소규모 국지전일 테고 그 경우 하늘누리가 이동할 필요는 없다. 역시 제국 내부의 누군가다.

하지만 규리하의 대승으로 황제 폐하의 위엄이 제국 전체에 떨쳤는데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폐하께 대들 수 있을까? 

“아! 새님.”

정우가 갑자기 작은 탄성을 질렀다. 틸러는 어리둥절하여 정우 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새장 쪽으로 달려가서는 그것을 들고 창 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장을 가슴에 안아 하늘을 잘 볼 수 있 게 했다. 틸러는 조금 전까지 빠져 있었던 고민도 잊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늘누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우와 탈해는 탄성을 질렀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 었다. 그런 물체가 하늘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 같 았다. 물론 하늘에 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상식을 짓밟는 일이 긴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하자 하늘치는 그 무게감을 온전히 드 러내어 보였다. 눈 두 개가 앞쪽에 있는 생물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지 않고서는 그 전체 모습을 보기 힘든 크기의 생물이 부드 럽게 하늘을 날아갔다. 위쪽에 있는 도시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 해 이동 속도는 느렸다. 그래서 정우와 탈해는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고개 한 번 내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늘치의 두 가슴 지느러미가, 배가, 꼬리 지느러미가 시야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이미 하늘치의 앞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하늘치가 하늘 저편의 조그마한 모습이 되었을 때 정우는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새장을 꼭 붙들고 있던 팔이 저려서 그녀는 새장 을 창턱에 내려놓고 두 팔을 조금 흔들었다. 정우는 틸러에게 말 했다.

“가슴 지느러미를 날개치지는 않네요. 꼭 날개처럼 보이는데.”

“예. 그러지는 않습니다.”

“환상 계단을 탈 때와 마찬가지네요.”

“예?”

“저도 두 팔을 흔들지는 않았잖아요.”

“아, 예.”

“그러면 하늘치도 환상 계단 같은 걸로 떠 있나 봐요?”

틸러는 흥미로운 가설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치의 비행에 대해 설명하길 승낙한 생물학자는 없다. 그들은 아예 하늘치에 대해 설명하길 꺼린다. 그토록 거대한 물체가 떠 있을 수 있다면 그것 은 공기보다 가벼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기보다 가벼운 생물 의 등에 도시를 건설할 수는 없다. 하늘치를 저울 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없지만 그 무게가 엄청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자연법칙으로 하늘치의 부양이나 비행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고, 따라서 생물학자들의 거부감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그것이 ‘하늘치 자신에게만 작용하는 환상 계단에 의해 떠 있다 면? 환상 계단은 상상한 자에게만 영향을 끼치지만 그 영향은 한계가 밝혀져 있지 않다. 틸러가 목격한 정우의 비행이 그 한 예다. 틸러는 그럴 법하다는 의미의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인간이나 도깨비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불씨가 날아간다. 큰불이 일어날 거야.”

정우와 탈해는 놀란 눈으로 새장을 바라보았다. 새장 속의 인 조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한 것이 인조새라는 것은 분명했다. 정우는 의아해하며 틸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틸 러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는 더 큰 의아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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