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1장] – 분쟁을 음미하는 태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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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1장] – 분쟁을 음미하는 태도 6


베로시 토프탈 상장군은 반역이라는 말의 어감이 좋았다. 그것 은 두억시니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감과 비슷했다.

두억시니는 혼란이다. 두억시니는 귀납법의 적용을 거부한다. 모든 두억시니는 모든 두억시니와 다르며 그렇기에 그것이 두억 시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을 잃은 이 가련한 종족은 보살펴 줄 어떤 법칙도 가지지 못했기에 아무렇게나 존재한다. 거의 대 부분의 역사에서 상종할 수 없는 괴물로 기록되어 있는 이 기괴 한 존재가 단 한 번 역사의 중심에서 활약한 적이 있다. 모든 면 에서 언어도단적 존재였던 대호왕이 자신의 수호자로 선택했던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가 바로 그들이다. 현재의 이십이금군은 이 들을 기원으로 한다. 그리고 베로시 토프탈이 구할 수 있었던 두 억시니 자료는 대부분 대호왕의 이십이 두억시니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두억시니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부터 베로시는 그 기괴한 존재 에 매혹되었다. 단어에는 지시 대상이 따르는 법이지만 두억시니 의 경우에는 그 방식이 독특하다. 두 사람이 고양이에 대해 이야 기를 나눈다면, 비록 털빛이나 크기 같은 것은 조금 다를 수 있 지만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 다. 동물적이라는 말은 고양이라는 말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도 덕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동물적’이라는 말을 사용 한 사람은 상대편이 기민함과 직관적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잘못 이해하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약간의 오해를 조정할 수 있다면 동물적이라는 말은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사용된다. 그런데 두억시니에 이르면 그 단어의 지시 대상은 규정할 수 없 는 것이 되어 버린다. 두억시니는 이렇다. 두억시니는 저렇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두억시니는 모든 두억시니와 다르므로.

두억시니의 그런 무규칙성에 매혹된 베로시 토프탈에게, 대호 왕의 이십이 두억시니에 대한 기록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대호왕의 두억시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좌 우 대칭의 몸을 가지고 있었고 대호왕을 따랐다. 대호왕의 수호자로 선택된 존재들이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특징이겠지만 베로 시에게 그런 공통점은 매우 두억시니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베로시는 다른 자료들을 원했다. 하지만 두억시니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별로 없었다. 흔치 않은 우연으로 두억시니와 조우 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록을 남길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관찰하 기보다는 재빨리 피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대에 대한 현명한 대처법이지만 베로시는 그런 현명함 때문에 그 불성실한 기록자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베로시가 더욱 끌리는 가설은 그들이 현명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무지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베로시를 한없는 흥분으로 몰아 갔다. 즉 그들은 자신이 본 것이 두억시니라는 것 을 알지 못한 것이다. 두억시니에게는 어떤 규칙도 없다. 그것은 숲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일지도 모른다. 발에 부딪히는 돌 멩이였을지도 모른다. 불가능할 게 뭔가. 두억시니에게는 규칙이 없는데. 그러나 목격자들은 나무를 봤다거나 돌을 걷어찼다는 식 으로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이 두억시니일 수 있다. 어쩌면 베로 시가 앉아 있는 의자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두억시니일지도 모른다. 대지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산처럼 생긴 두억시니일 지도 모르고 개미굴을 향해 걸어가는 개미 떼 중에는 개미처럼 생긴 두억시니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세상이 한 마 리 두억시니일 수도 있고, 베로시 토프탈이 두억시니일지도 모른다…….

사고가 그 지점에 도달하면 베로시는 늘 가슴이 쿵쿵 뛰곤 했 다. 실재의 수수께끼를 살살 건드리고 있는 듯한 아스라한 고양 감. 그러나 해석은 불가능하다. 베로시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좌절감 속에서 베로시는 지극히 짧은 거리를 넘지 못하고 항상 좌절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로시는 우물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 우물이 두억시니일 수도 있고 그 위에 덮여 있는 뚜껑이 두억시니일 수도 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한 인간은, 어쩌면 두억시니에 가장 가까운 모습 을 하고 있을 것이다. 베로시는 자신의 악덕에 매료되는 버릇은 없었지만 짓궂은 즐거움은 느꼈다. 베로시가 신호를 보내자 힘센 병사들이 무거운 뚜껑을 들어 우물 옆에 세웠다.

굉장한 악취에 베로시는 코를 틀어막았다. 다른 병사들 또한 그렇게 했다. 그 냄새만으로도 우물 속에 갇혀 있는 엘시 에더리 가 어떤 꼴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물 속에서 웅웅 울리는 목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심하게 울렸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쇠약해져 있다는 것은 분 명히 알 수 있었다. 베로시가 손을 옆으로 내밀자 병사가 등롱을 건넸다. 베로시는 우물가로 다가가 안쪽으로 등롱을 비췄다. 불빛이 있었지만 우물 속의 정경은 한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우둘 투둘한 돌의 질감이 시야를 혼돈스럽게 해서 제대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래쪽에서 보는 이에겐 하 늘을 배경으로 한 베로시의 얼굴이 잘 보이는 듯했다.

“베로시인가?”

엘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을 때 베로시는 그 웅웅거리는 목소 리에 의해 간신히 엘시의 위치를 찾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것이기 때문에 엘시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 습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고개를 한껏 쳐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턱수염과 헝클어진 머리로 엉 망이 된,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얼굴이었다. 똑바로 서 있기 도 힘든지 엘시는 오른팔을 늘어뜨린 채 구부정하게 서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쾌해 보이진 않는군요, 대장군님.”

그 순간 엘시의 허리가 튕겨지며 아래쪽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던 그의 오른팔이 갑자기 치솟아 올랐다. 무엇인가가 그의 손 을 떠나 베로시의 얼굴로 날아왔다. 베로시는 미처 피할 틈이 없 었다. 차갑고 찐득찐득한 무엇인가가 얼굴에 달라붙는 것을 느끼 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얼굴을 감싸쥔 채 우물 옆으로 물러나 던 베로시는, 문득 입속에 기묘한 맛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짙은 갈색의 똥이 잔뜩 묻어 있었다. 베로시는 비명을 질렀다. 병사들은 당황하여 물을 뜨러 달려가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신 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베로시는 두 눈을 홉뜬 채 웃는 병사 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을 때마 다 턱과 목 사이가 미끈거렸고 가슴께는 차갑게 젖어 들었다. 베 로시는 눈을 감았다. 그때 병사들이 돌아와 외쳤다.

“구, 군단장님. 물입니다. 물 가져왔습니다.”

“부어! 부으라고!”

병사들은 황급히 들고 온 물동이의 물을 베로시의 머리 위에 쏟아 부었다. 베로시는 얼굴과 머리를 문지르려 했지만 손끝에 닿는 물컹물컹한 느낌이 죽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베로시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병사들은 당황해하다가 결국 계속해서 물을 붓기로 했다.

여러 개의 물동이가 빈 다음 베로시는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온몸에서 똥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으로 우물가에 다가갔다. 아래 쪽에서 묘하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쾌해 보이진 않는군, 상장군.”

“죽이겠다! 엘시, 죽이겠어!”

엘시는 피식 웃고 오른손을 아래로 뻗었다. 베로시는 질겁하며 물러났다. 우물 속에서 웃음소리가 진동했다. 베로시는 그 웃음을 견딜 수 없었다.

“기름을 가져와 저 안에 붓고 불을 붙여라!”

병사들은 당황했다. 그들 중 상급자인 나가 수교위 한 명이 당황하여 걸어나왔다.

“군단장님.”

“뭐냐, 지셀!”

“군단장님, 고정하십시오. 일단 씻고 옷을 갈아입으셔야겠습니다.”

“저놈부터 태워 죽이고 나서!”

지셀 수교위는 군단장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듣고 있는 병 사들을 고려하여 그는 낮게 말했다.

“군단장님, 안 됩니다. 황제의 대장군을 그런 식으로 죽였다간 뒷감당을 할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없으신 것 잘 알지만 제발 두 번, 세 번 살펴 주십시오.”

우물 속에서 울려 나오는 웃음소리가 조금씩 약해졌다. 하지만 베로시의 선고에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쇠약해진 몸 때문에 큰 소리로 웃는 것은 힘들다는 투였다. 베로시는 다시격 분에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러나 지셀이 재빨리 말했다.

“홧김에 대장군을 죽인다면 그것이 오히려 대장군의 술수에 넘 어가는 일입니다. 제발 노기를 가라앉히십시오.”

베로시 토프탈은 분노 때문에 하얗게 변한 얼굴로 우물을 노려 보았다. 우물 속의 웃음은 이제 작은 킬킬거림으로 변해 있었다. 베로시는 말했다.

“식사 반입을 하루 국 한 그릇으로 줄여라. 저런 인간에게 제 대로 된 식사는 사치다!”

나가인 지셀은 인간이 하루 세 끼를 먹지 않으면 죽는 것이 아 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그의 군단장에게 괜히 질문하여 가까스로 진정된 상황을 다시 악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지셀은 그대로 수행하겠다고 대답했다. 베로시는 거친 동작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지셀 수교위는 우물 뚜껑을 도로 닫은 다음 병사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절대로 함구하라고 명령했다. 자신이라도 지키 기 어려운 명령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병사들을 돌려보낸 후 지셀은 우물 쪽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물 뚜껑이 닫힌 후부터 엘시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지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물가를 떠났다.

엘시는 우물 바닥에 앉아 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무를 짜 맞추어 만든 뚜껑에는 가느다란 틈이 있어 그 틈으로 빛이 새어 들었다.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 없는 빛이 었다. 엘시는 우물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마른 우물 안쪽은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우물 안의 공기는 혼탁했고 열기가 가득했다. 엘시는 우물 벽에 귀를 댄 채 자극을 추구했다. 돌로 된 우물벽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들을 엘시에게 들려주었다. 물소리나 바람 소리, 어떻게 들으면 사람이 뛰는 소리 같은 희미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가끔 그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밤이 찾아들었다. 뚜껑 쪽에서 더 이상 하얀 선이 보이지 않아 엘시는 밤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물 벽에 귀를 갖다 대어도 신통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엘시는 자야 한다고 느 꼈다. 세상이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로 좁혀진 상태에서 아무런 자극도 없이 앉아 있다간 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낮 동안 뜨거워진 공기는 쉬 식지 않았다. 엘시는 옆으 로 누워 몸을 동글게 말았다. 자야 한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고서. 엘시는 자신이 잔다고 생각했다. 기만이다. 그는 잠들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추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더웠는데, 이상한 일이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위아랫니가 계속 부딪쳤다. 키 보렌의 한가운데, 이 열대의 땅에서 추위를 느끼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자결? 엘시는 그런 생각은 더 약해졌을 때 해도 무방하다고 생 각했다. 의지가 남아 있는 한 자결은 생각하지 않았다. 지셀은 그런 식으로 추측했지만 엘시는 베로시 토프탈에게 살해당하려고 그녀를 격분시킨 것이 아니다. 베로시는 그를 죽일 수 없다. 그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엘시에게 낮의 행동은 그저 감정 표출이었 을 뿐이다.

‘자결은 이성을 잃었을 때나 하는 짓이다. 나는 이성적이다. 대장군의 행방이 묘연하다면 틀림없이 수색이 있을 것이다. 전쟁 이 벌어졌는데도 대장군이 연락하지 않는다면 역시 수색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레와 쵸지, 주테카, 준람, 론솔피가 있다. 기회는 온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밤, 아직도 밤이었다. 엘시는 의아해졌다. 밤이 너무 길다. 뚜 껑의 틈을 막은 것일까? 아무리 위쪽을 바라보아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밤일 리 없다. 문득 엘시는 자신이 이성 을 잃어 가는가 의심했다. 그 누구도 밤을 잡아 늘일 수는 없다. 베로시 토프탈도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세상을 의심하는 것 은 정신이상의 강력한 징후일 것이다. 엘시는 자신의 시간 감각 을 무시하기로 했다.

잠들어야 한다. 다시 해가 뜰 때까지 푹 잠들어야 한다. 충분 한 수면은 현 상황에서 엘시가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자기 보호책이다. 그는 잠들려 애썼다. 하지만 엘시가 기 껏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비몽사몽에 가까운 멍한 상태였다. 왜 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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