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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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3


기병을 지휘하던 테룸 나마스 하장군이 처음 느낀 인상은 대해 일이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짐승이든 인간이든 일정수 이상의 무리가 되면 그것은 액체처 럼 평면을 따라 움직인다. 인간의 경우라면 2미터에 못 미치는 두께의 액체일 것이다. 하지만 수십 미터씩 뛰어오르며 달려오는 레콘들의 움직임은 조금도 평면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미쳐 광분 하는 구름이나 안개처럼 보였고, 뤼도파 출신의 나마스에게는 쟁 룡열도의 태풍이 밀고 오는 대해일처럼 보였다. 물을 극도로 싫 어하는 레콘들이 들끓는 파도의 기세로 움직인다는 것은 나마스 에게 정말 이상하게 보였다. 그러나 의아함은 곧 공포로 바뀌었 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막대한 레콘들이 명백한 적의를 분출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역사가 기록한 가장 강력한 용이라도 도 망쳐야 할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마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제국군 교위 한 명이 미친 듯이 외쳤다.

“도, 도망쳐! 도망쳐라!”

나마스는 순간 자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깨달았다.

“네 이놈!”

그는 창을 매섭게 내뻗어 비명을 지르는 교위의 등을 찔렀다.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고함을 지르던 교위는 입에서 피거품을 쏟 으며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충격적인 모습에 기병들은 물 론이거니와 파리조 병사들 또한 멈칫했다. 나마스는 창을 휘둘러 그들과 파리조 병사들의 얼굴에 피를 뿌린 다음 창끝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포효했다.

“황제 폐하께서 보고 계신다!”

자기도 모르게 제국병과 파리조병의 눈이 나마스의 창끝을 따 랐다. 하늘누리가 그곳에 있었다. 하늘누리는 지형도 병력도 아 니기에 그 누구도 고려하지 않았지만 하늘치는 자신의 압도적 존 재감으로 전장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마스가 외쳤다. 

“너희들의 맹세를 기억해! 제국군이 될 때 너희들 모두 제국과 폐하를 위해 죽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느냐! 드디어 그때가 왔다. 그런데 도망치겠다는 거냐! 제기랄, 폐하께서 보고 계신다. 나는 창피해서라도 도망 못 쳐!”

“개수작 치워!”

발케네의 거친 병사 한 명이 발악하며 나마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상대방의 계급을 봐 두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테룸 나마스 는 하장군이며 시허릭 마지오가 기병대의 지휘를 맡긴 인물이었 다. 나마스는 다리로 말을 돌진시키며 창을 내찔렀다. 지극히 효 율적이고 단순한 동작에 파리조병은 창에 꿰뚫려 몸을 부르르 떨 었다. 다음 순간 나마스는 보는 눈을 의심케 하는 짓을 했다. 나마스는 창대를 단단히 휘어잡으며 그것을 들어 올렸다. 창에 꿰인 병사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 발이 땅에서 떨어진 순간 나마스의 목에서 쥐어짜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폐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테룸 나마스는 창끝에 꿴 병사를 깃 발처럼 꼿꼿하게 들어 올렸다. 달리는 말의 속도와 절묘한 창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고 나마스는 그 동작을 몇 초도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창끝에 꿰인 시체가 허공에서 팔다리를 출렁이는 충격적인 모습은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망막에 낙인처럼 찍혔다. 나마스가 창대를 떨어뜨리자 시체는 창끝에서 빠져나와 땅을 데 굴데굴 굴렀다. 시체에서 떨어뜨린 피로 투구와 얼굴을 흠뻑 적 신 채 나마스는 외쳤다.

“내 싸움도 내 죽음도! 폐하께서 보실 것이다! 돌격!”

기병들은 깨달았다. 그들의 황제는 하늘에 있다. 그녀는 그들 과 함께 있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군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폐하께서 나를 보신다!”

기병들은 제국군의 맹세를 떠올렸다. 기수의 불안 때문에 허둥 거리던 말들이 다시 명백한 통제를 느꼈다. 제국군 기병들의 돌 격이 재개되었다. 이전보다 훨씬 거친 기세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파리조군의 열이 넓은 간격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군 기병들은 몸부림에 가까운 기세로 파리조군 한가운데를 달 렸다.

“폐하께서 나를 보신다!”

테룸 나마스는 단순한 승부욕 때문에 돌격을 재개시킨 것이 아 니다. 동쪽에서 접근하고 있는 레콘들에 대한 최선의 방책은 그 들과 레콘 사이에 파리조군을 두는 것이었다. 그 이상의 대비책 은 시허릭 마지오 상장군의 몫이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폭력에 대한 대비책이 상장군에게 과연 있을지는 나마스도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제국군 전체에 대한 책임은 시허릭에게 있었다. 나마스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기병들이었다. 나마스는 셀 수 없는 적병들을 거꾸러뜨리며 파리조군을 돌파했다.

기병대의 뜻밖의 분투를 보며 시허릭은 숨이 콱 막히는 기분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나마스가 이미 판단한 것처럼 전장의 상황 이 어떻게 돌변하건 그것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은 시허릭의 책임이었다. 후퇴 결정밖에 내릴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두려 움이나 좌절 대신 냉철한 판단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시허릭은 접근하는 레콘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방향이 기병대가 아닌 제국군 본대 쪽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화차는?”

시허릭은 자신의 냉철한 질문에 스스로 놀랐다. 참모들 또한 충격에서 벗어나 말했다.

“본에 있습니다.”

“아무나 빨리 가서 그것들을 다 가져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본대는 어떻게…….”

“돌격시켜야지!”

시허릭은 또다시 놀랐다. 자신의 입에서 레콘들의 부대에 인간 부대를 돌격시키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턱대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도주하다가는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즉각 엉겅퀴 여단에 명령을 전해라. 파리조군의 배후를 돌아 저 정체불명의 레콘들의 좌측을 공격하라고…………… 제기랄, 그럴 필요 없겠군!”

갑충사에게 달려가려던 참모는 당황하여 시허릭을 바라보았 다. 시허릭은 전장 남서쪽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엉겅퀴 여단의 레콘들이 산봉우리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쥘칸 장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시허릭이 내린 것과 똑같은 결정을 그 또한 내린 참이었다. 엉겅퀴 여단의 움직임을 보던 시허릭은 그 것을 깨달았다. ‘쥘칸 이 멍청아, 빨리 와서 나 좀 살려줘!’ 자신의 명령에 병사들이 폭소를 터뜨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 허릭은 외쳤다.

“돌격!”

상장군의 명령은 즉각 제국군에게 전달되었다. 불 속으로 뛰어 들라는 명령이 떨어졌어도 이보다 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 병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시허릭이 우려하던 반응을 보였다. 달려 오는 레콘들에게 인간을 돌격시키다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 는 명령이다.

하지만 그 순간 전투의 주인들이 눈을 떴다.

제국군은 정렬하고 있던 그들 앞쪽으로 갑자기 한 명의 여성 부위가 말을 몰아 달려 나가는 것을 당혹하여 바라보았다. 그녀 앞쪽에서는 레콘들이 시시각각 거대해지며 홍수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참나무 군단 114소대장 아소레 메신 부위는 고개를 뒤로 홱 젖혔다.

“하하하!”

맑은 웃음소리에 제국군은 피부가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아소레는 웃음을 거두며 외쳤다.

“아소레 메신 부위다! 더 큰 것 없냐!”

두 번째 부위가 전열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땅이 쿵쿵 울렸고 일만의 레콘들이 밀어내는 공기가 얼굴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지만 참나무 군단 331소대장 진 소립튼 부위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제국군 부위 진 소립튼이다. 황제 폐하 만세!”

고개를 돌린 아소레 메신 부위와 진 소립튼 부위의 눈이 살짝 마주쳤다. 그들은 희미한 미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말발굽 소리 와 함께 세 번째, 네 번째 부위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부위 젤피 매그번, 간다!”

“밥맛 없는 깃털 뭉치들아, 이 어른은 카니락 센토멜 부위다!”

얼어붙은 제국군 앞으로 걸어 나온 부위들은 여덟 명이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구만 명의 제국병 앞에서 여덟 명의 부 위들은 꼿꼿하게 선 채 다가오는 레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 두의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한 사람은 아홉 번째의 부위였다. 졸 참나무 군단 125소대장 사리 탄드로 부위는 앞쪽을 바라보는 대신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리 탄드로 부위입니다. 제 자리를 준비해 두십시오.”

사리 탄드로의 좌우에 있던 부위들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들은 피식 웃거나 미소를 지었다. 탄드로는 허리로 손을 뻗어 제국검을 뽑아 들었다. 다른 부위들 또한 차례로 제국검을 뽑았 다. 폭풍처럼 다가오는 레콘들 앞쪽에서 아홉 자루의 제국검이 둔한 빛을 뿌렸다.

아무도 외치지 않았지만 아홉 부위들은 동시에 말을 돌격시켰다.

일만 명의 레콘들을 향해 아홉 마리의 말들은 놀랍도록 고요한 직선을 그리며 달려갔다. 다급하게 맥동 치는 사라티본 평야. 아홉 줄기의 먼지구름이 바람에 나부낀다. 하늘과 땅을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레콘들. 뒤쪽에서 뛰어올랐다가 계속 떨어지는 레콘들 의 움직임 때문에 그 모습은 폭포의 진격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 홉 부위가, 그곳을 향해, 분명하기 짝이 없는 죽음으로, 질주하 고 있었다.

어느 수전사가 비통하게 절규했다.

“부위님 가신다!”

초현실적인 광경에 혼을 뺏겼던 제국병들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충격을 느꼈다. 고함을 지르는 수전사는 참나무 군단 114소 대의 1분대장이었다.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린 수전사는 비틀거 리며 달려 나갔다. 그의 입에서 패악스러운 고함이 다시 터져 나 왔다.

“씹할 놈들아! 뭐 하고 있냐? 소대장님 가신다!”

순간 114소대가 전열 앞쪽으로 출렁 뛰쳐나갔다. 그 움직임 에 이끌리듯 각 부위들의 소대가 미친 듯한 함성을 지르며 돌진 했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중대 돌격! 부위를 따르라!” 

“으아아아!”

더 이상 제국병들의 함성을 의미 있는 말로 바꿔 듣는 것이 불 가능해졌다. 구만 명의 제국군은 불꽃의 형상으로 뛰쳐나갔다. 구만 개의 칼날이 폭풍우 속의 벼락처럼 번득였다. 구만 명이 내 뿜는 열기로 주위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호흡은 하나도 없다. 구만 명의 제국병은 숨도 쉬지 않은 채 달렸다. 충 격 때문에 미처 앞으로 나서지 못했던 부위들은 아홉 전우들의 곁에 서기 위해 자신의 소대마저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달렸다. 중대장들은 그런 소대들을 독전하며 부위들의 뒤를 따랐다. 그 시간에 관련된 어떤 참혹한 예언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은 시작되었다.

전대미문의 살육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달려간 아홉 부위들은 몇 초 만에 모조리 살해되었 다. 진 소립튼 부위가 당한 공격은 특히 끔찍했다. 거대한 칼날 이 말의 목과 소립튼 부위의 가슴 윗부분을 단숨에 절단해 버렸 다. 사리 탄드로 부위의 몸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실행하듯 하늘 로 치솟았다. 팔다리를 우쭐거리며 하늘누리 위쪽까지라도 솟아 오를 것 같은 기세로 튕겨 오른 사체는 뒤쪽에서 뛰어오른 레콘 이 성을 내며 휘두른 손에 맞아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 나 죽음의 장면이 목격된 것은 그 두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부위 들은 폭포 아래로 사라지는 조각배처럼 레콘들의 격랑에 부딪히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뒤이어 도착한 제국병 들의 운명이 되었다.

레콘들은 휘두르고 짓밟고 걷어차고 내리 쪼았다.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소름 끼치도록 파괴적이었고 두 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달려와 부딪치기만 해도 사람 을 죽일 수 있는 거인들이 흉흉한 무기를 휘두르며 살의를 불사 르고 있었다. 열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도 도망칠 수 없는 형 세다. 그러나 도망친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첫 번째 레콘이 경 미한 상처를 입을 때까지 수백 명의 제국군 장병들이 죽어야 했 다. 돌진하는 제국군은 그 말도 안 되는 비례식에는 관심도 없었 다. 그들은 레콘의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눈을 찌르려 했고 다리 에 매달려 칼을 도끼질하듯 휘둘렀다. 무익하고 무익한 행동이 다. 레콘들이 계명성을 내지를 때마다 병사들은 우당탕 쓰러졌 다. 두 팔을 조금 휘두르기만 해도 제국병들의 목과 척추가 데걱 데걱 부러졌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피보라와 귀를 멀게 할 것 같은 비명에 제국병들은 미쳐 버렸다.

시허릭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암살공은 어디서 저런 것을 가져왔을까? 일 초에 백 명꼴로 제국군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발휘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산수 능력은 시 허릭에게 일 초에 백 명이 죽으면 구만 명이 몰사할 때까지 15분 밖에 안 걸린다는 답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계산 은 시허릭에게 중요한 단어 하나를 남겨 주었다. 몰사 시허릭은 이제 패배를 걱정할 때가 아님을 인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구만 명의 귀한 목숨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형국이었다. 시허릭은 더 이상 전술가일 수 없었다. 그는 구조자가 되어야 했다. 사라티본 평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재난이었으니까. 하 지만 그런 종류의 재난에서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구조자는 아 무도 없을 것이다. 무릎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시허릭은 가까이 있던 참모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참모가 먼 저 그를 부축했다.

자신의 모습이 누가 보아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해졌다 는 것은 시허릭을 놀라게 했다. 시허릭은 참모의 손을 뿌리치며 자신의 불안도 뿌리쳤다. 살려 내야 했다. 다만 천 명이라도, 아 니 열 명이라도. 시허릭은 전장 북쪽을 가로지르고 있는 쥘칸 장 군의 엉겅퀴 여단을 바라보며 목을 놓아 외쳤다.

“쥘칸! 이 익사할 놈아! 빨리 가! 빨리 가라고!”

시허릭의 말이 들렸을 리는 없지만, 쥘칸은 시허릭이 어떤 기 분일지 잘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과 똑같았으므로, 눈앞에서 쓰러지는 인간 병사들을 보며 쥘칸은 속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 다. 비록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는 인간 병사들이지만 그들은 같은 제국군이었다. 그 연약하고 멍청한 바보들은 쥘칸의 전우들이었 다. 쥘칸 장군은 격분하여 외쳤다.

“제기랄 것들아, 비겁한 짓 그만둬! 레콘끼리 싸우자!”

인간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제국군 여단의 규모는 2개 대대 일 만 명이다. 하지만 레콘 여단들일 경우 그 편성은 현저하게 달라 진다. 엉겅퀴 여단의 경우 4개 대대 천이백 명 정도다. 벼슬이 찢어질 것 같은 흥분 속에서도 쥘칸 장군은 자신들의 숫자가 상 대방의 십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쥘칸 은 어쨌든 장군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것이 필요했던 경우는 별 로 없었지만, 쥘칸은 순식간에 전술 비슷한 것을 구상했다. 그것 은 레콘들도 수행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1대대와 2대대-! 옆으로 달려가 좌측을 후려쳐-! 3대대는 천천히 뛰어 중앙 돌파! 4대대는 계명성을 지르며 천천히 걸어가라! 너희들은 우측이다-!”

엉겅퀴 여단병들은 쥘칸 장군의 계명성대로 움직였다. 각 대대 의 속도가 미묘하게 변하면서 그들은 엉성한 사선진 같은 것을 형성했다. 그 순간 쥘칸 장군의 두 번째 계명성이 터져 나왔다. 

“각 소대는 함께 움직여라! 흩어지지 마!”

오랜 제국군 생활을 통해 쥘칸 장군은 인간 장수들의 어깨 너 머로 배운 것들이 있었다. 쥘칸 장군의 외침은 단순한 소대 전술 개념이다. 인간 병사들이라면 소대 단위로 움직이라는 지극히 상 식적인 명령을 전투 도중에 내리는 지휘관에게 어처구니없다는 눈길을 보내겠지만 레콘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레콘들의 편 제는 어디까지나 부대 생활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성격이 강했으 며 전술과는 별로 상관없는 편이다. 레콘 여단들을 가리켜 부대 가 아니라고 말하는 전술 이론가들도 많은데 그들의 지적에 따르 면 레콘 여단은 홀로 싸우는 전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일 뿐 함께 싸우는 부대가 아닌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지만 지금까지 그것이 크게 문제된 적은 없다. 전투력의 면에서 따질 때 레콘은 혼자 있어도 부대니까.

하지만 똑같은 레콘으로 이루어진, 거의 열 배나 많은 악몽 같 은 병력 앞에서 쥘칸은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부하들이 단독으로 무용을 펼치는 것에 더 익숙하다는 것은 쥘칸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고 따라서 그들에게 익숙한 움직임 대신 낯선 소대 전술을 실시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자칫하면 대혼란을 일으 킬지도 모르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쥘칸 장군은 군대 훈련의 성 과를 믿기로 했다. 아니면 단체 생활의 효과라도. 그것도 아니면 그의 계명성의 크기라도.

쥘칸의 믿음은 보상받았다.

엉겅퀴 여단의 천이백 레콘들이 부딪친 순간 발케네 측의 일만 레콘은 먼 곳에서 보는 시허릭 마지오 상장군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동요를 일으켰다. 시허릭은 그만 참지 못하고 펄쩍 뛰고 말았다.

“제대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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