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99화
청년은 자신의 방 창문에서 자신에게 소리를 지른 금발의 여자를 올려다본 채 맞받아 소리쳤다.
“임마! 심심해서 그랬는데 어때!!”
“심심하다고 이런 일을 하면 어쩔 거야! 빨리 올라와서 마키씨나 돌봐줘!”
곧 창문이 거칠게 닫혔고 청년은 투덜대며 여관의 문 쪽으로 향하였다. 린스는 그 청년의 손이 거쳐간 자신의 턱을 손수건으로 닦았고 노엘은 급히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저어, 잠깐만요!”
청년은 노엘의 부름에 슬쩍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요, 난 누나는 필요 없다구요.”
노엘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고요, 실례합니다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 청년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푸욱 쉬며 대답했다.
“음‥<지크>라고 해요. 그럼 바이바이∼.”
청년은 곧바로 여관 안으로 들어갔고 노엘은 청년이 자신의 성을 밝히지 않아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흐음‥상당한 실력을 가진 것 같이 보이는데, 왕궁에서 공주님 경호원으로 쓰면‥.”
“싫어 노엘! 난 저딴 건달은 필요 없단 말이야!!! 리오라면 몰라도‥아, 아니야! 어서 집에 가자구!!”
노엘은 린스가 갑작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린스는 아무 말 없이 왕궁 쪽을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휴우‥그러시길래 좀 참으시지‥.”
노엘은 한숨을 쉬며 린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성에 도착한 린스가 맨 처음 본 것은 자신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 경비병의 모습이었다. 린스가 인상을 쓰고 자신들을 바라보자, 병사들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린스와 노엘을 통과시켜 주었다.
“뭐야아‥오래간만에 왔는데 왜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린스가 투덜대자 노엘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이 갑자기 무사히 돌아오시니 저분들도 놀라신 것이겠지요. 저라도 놀랐을 텐데요.”
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궁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아아∼어마 마마를 뵌 다음에 바로 목욕 좀 해야 하겠어. 벌써 이틀 동안 못했단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노엘은 자신도 목욕을 해야 하겠다 생각했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목욕 비슷한 것도 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물론 린스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런 것이지만.
린스는 곧바로 알현실을 향해 걸어갔고 알현실 앞에서 일을 보던 시녀들 역시 린스가 돌아온 것을 보고서 혼비백산을 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히잇!? 고, 공주님?”
린스는 모든 성 사람들이 자신이 돌아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자 결국 화를 내며 그 시녀의 옷을 붙잡고 거칠게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노엘은 안 되겠다 싶은 듯 린스에게 붙어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공주님, 잠깐만 참아 보세요!”
시녀는 노엘이 린스를 말리자마자 급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에 알현실 안으로 급히 들어갔고 곧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문 안에서 들려왔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시녀가 아닌 여왕이었다.
“고, 공주야! 너 어떻게 구출이 되었니?”
린스는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한 달하고도 반 만에 만난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구출이라니요?”
※
※
“하하하하하핫!! 엄마도 참!”
대충의 이야기를 여왕에게 전해 들은 린스는 깔깔 웃기 시작했고 여왕은 궁금한 표정으로 노엘에게 물었다.
“노엘,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요?”
노엘 역시 미소를 지은 상태에서 친절히 대답을 해 주었다.
“여왕님께서 말씀하셨듯, 저희는 한 달 반 동안 그 붉은 장발의 떠돌이 기사분과 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납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오히려 저희들 때문에 고생을 하셨지요. 지금은 오른쪽 눈까지 잃으셨지만‥. 아마 어디선가 들려온 뜬소문이겠지요.”
여왕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아‥그럼 다행이오. 이제 왕가의 고민은 거의 끝난 셈이구려, 미네리아나까지 돌아왔으니‥호호홋.”
린스는 미네아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 이모가 돌아왔다고요?”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시녀를 시켜 미네아를 불렀고 잠시 후 미네아가 베르니카와 함께 알현실에 들어왔다. 린스의 모습을 본 미네아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된 표정을 지으며 린스에게 달려왔고 린스 역시 미네아의 품에 안기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와아–이모!!”
“그래 그래, 린스가 돌아왔구나! 어떻게, 납치된 건 아니었니?”
“응, 누가 퍼뜨린 헛소문인가 봐.”
린스는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고 미네아 역시 웃으며 린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옆에서 웃음을 애써 감추며 서 있었던 베르니카는 살짝 웃음을 띄우며 무릎을 꿇고 린스에게 예를 올렸다.
“공주 마마. 베르니카 페이셔트, 인사 올립니다.”
린스는 베르니카가 인사를 하자 그녀에게도 다가가 활짝 웃으며 손을 잡아 주었다.
“응, 오래간만이야 베르니카, 근데 나보다 노엘에게 먼저 인사해야지, 제일 친한 친구인데.”
베르니카는 웃으며 일어섰고 노엘 역시 의자에서 일어나 베르니카에게 다가왔다.
“노엘‥오래간만이야.”
“후훗, 넌 변한 게 없구나 베르니카. 안대만 빼고‥.”
베르니카는 손으로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덮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자, 인사는 대충 된 것 같으니 린스와 노엘에게 그동안의 얘기를 듣고 싶군요. 린스? 말해 주겠니?”
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응‥헤헷, 얘기는 잘 못하는데. 어쨌든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어마 마마, 그 붉은 머리는 절 지켜줬다는 것이에요.”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린스에게 물었다.
“그래? 그 떠돌이 기사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
린스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리오·스나이퍼라고 하죠. 제가 이때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강해요.”
린스가 말한 사람의 이름을 들은 베르니카는 문득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 성이 똑같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계속 린스의 얘기를 들었다.
“돌아오면서 저희들은 여신의 전설을 들었고 그들의 부하인 12신장들을 만나게 되었죠. 그 리오란 녀석이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일 같았어요. 그 일 때문에 저랑 수도까지 같이 안 온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노엘이랑 먼저 수도에 돌아왔죠. 케톤도 무사해요, 사람들과 만나고 괴물들과 싸워 오면서 케톤도 많이 강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이 레프리컨트 왕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한번 더 온다면 제대로 여행해 보고 싶어요.”
여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철부지 같기만 하던 린스가 한 달 반 만에 어른이 되어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린스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면서 노엘도 여자는 여자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헤헤헷.”
여왕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며 노엘을 바라보았고 노엘은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고개를 숙여 버렸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왕 마마, 심려치 마시길‥.”
노엘의 그런 모습을 본 베르니카는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어전이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어째서‥남자 따윌 또 사귀게 된 거지? 하지만 노엘이 진심이라면 그 남자가 좋은 사람이면 좋겠는데‥라세츠 같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래,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자꾸나 공주. 그럼 저녁 만찬이 있을 때까지 편히 쉬거라.”
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여왕에게 인사를 한 후 미네아, 베르니카, 노엘 등과 함께 알현실을 나섰다.
“노엘, 다시 돌아오니까 어때?”
린스의 질문에 노엘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예‥변한 게 없으니 좋습니다.”
노엘은 조용히 린스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그 누군가를 만나지 않길 빌면서.
“엥? 저녁 만찬?”
침대에 누운 채 전령의 말을 듣던 지크는 만찬이란 단어를 듣고 몸을 반쯤 일으키며 되물었고 전령은 곧바로 대답했다.
“예! 공주님께서 돌아오신 기념으로 만찬이 열리니 지크님도 오시라는 미네아 마마의 명이 있었습니다!”
지크는 턱을 받치고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아직도 누워있는 마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예전처럼 움직일 상황은 아니었다.
“음‥곤란한데‥아, 미네아님이 오시면 간다고 해.”
전령은 무뚝뚝히 지크를 바라보다가 경례를 붙이며 대답했다.
“예! 마마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전령이 의외로 나오자 지크는 깜짝 놀라며 말을 번복하려 했으나 전령은 급히 사라진 뒤였다. 지크는 자신의 이마를 주먹으로 살짝 두드리며 고민스럽게 중얼거렸다.
“으악‥이거 큰일이네, 다른 왕족이라면 모를까 미네아님은 진짜 오실 확률이 높은데‥.”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음성이 지크의 귀에 들려왔다. 마키가 눈을 슬며시 뜬 채 지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가 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나 같은 남자가 이런 병쯤에 쓰러질 것 같아?”
지크는 순간 인상을 버럭 쓰며 마키를 쏘아 보았고 마키는 다시 이불에 파묻히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네 맘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