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77화
4장 <마 귀족>
리오는 초조해졌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블랙 프라임도, 마 귀족도 아무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후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의 예고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해 왔으며 후에도 경험할 일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티베를 밖에서 경호할 임무를 지닌 넬 역시 첫날부터 공을 치고 있었다. 활동하는 곳이 방송국이라 심심하진 않았지만 티베가 방송에 들어가면 복도에서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약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상당히 방송국 사람들 안에서 익숙해졌고 벌써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을 상태까지 되었다. 그런 대로 순조로웠다.
반면 리오는 일주일이 되는 날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바이칼이 갑자기 반란을 선언한 탓이었다. 리오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자신과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TV 앞에 앉아 모닝쇼를 보고 있는 바이칼에게 계속 따지고 있었다.
“아니, 6일간 별일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오늘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쩔 거야. 제발 좀 떠 줘.”
“….”
바이칼은 말이 없었다. 리오는 한숨을 쉬며 다시 바이칼에게 물었다.
“후우‥좋아, 이유나 좀 말해 줘. 그러면 오늘은 눈 감고 쉬어 보지.”
그러자 바이칼은 리오를 스윽 돌아보며 말했다.
“‥난 기계가 아니야. 이 정도 말은 이해하겠지. 더는 방해하면 재미없어.”
그 말을 들은 리오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다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래, 미안하다. 타고 다니면서 네 생각을 별로 못했어. 오늘은 쉬는 것도 좋겠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길 신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TV나 봐라.”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바이칼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가 없는 것을 확인한 바이칼은 슬쩍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변경하였다. 그가 변경한 채널에선 만화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바이칼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쳇, 그 녀석 때문에 앞부분을 못 봤잖아.”
리오는 바이칼이 쓰는 간이 침대에 누우며 초조함을 가라앉혀 보았다. 그러던 도중 그는 문득 자신의 두 번째 검술 스승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특기인 마법검을 완벽히 가르쳐 준 우호적인 고신, 오딘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된 리오는 가즈 나이트 중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던 휀을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전의 리오는 주신에게 가르침 받은 기본적인 검술과 자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미완의 검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검술 능력은 이상하게도 점점 떨어져 버렸고 마지막엔 마법만 난무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져 주신은 결국 리오에게 근신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그 근신 기간 중 리오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오딘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리오에 대한 오딘의 평가는 이러했다.
「몸의 균형도는 같은 가즈 나이트인 휀을 능가하고 있다, 하지만 능가할 뿐이다.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하다. 최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법사로 전향될뻔했다.」
그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리오였지만 차차 자신의 검, 디바이너에 대한 특성을 알게 되면서 그의 검술은 늘기 시작했다. 디바이너의 최고 특성은 검 자체에 마력과 속성이 전혀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좀 단단한 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특성은 검에 갖가지 마력을 불어 넣는 기술인 마법검의 힘을 최대로 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항목이었다. 결국 리오는 오랜 시간이 걸려 오딘에게 모든 것을 전수받게 되었고 오딘만이 사용할 수 있다 전해지는 최고의 공격 검술인 [지하드]까지 익히게 되었다. 휀의 [레퀴엠]을 능가한다 칭해지는 유일한 검술이었다.
리오는 지하드를 익히던 날 오딘이 말한 것을 떠올려 보았다.
「네가 가지고 있는 디바이너도 이 지하드를 몇 번이나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구 사용하면 검이 부러지거나 장작처럼 타 버리니 주의하길 바란다. 휀의 플렉시온은 주신이 [레퀴엠] 전용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지하드는 아직까지 전용으로 만들어진 검이 없었다. 네가 그런 검을 얻는다면 좋겠지만‥. 그리고 지하드의 파워를 너무 믿지 말아라. 분명 신들 중에서 지하드의 풀 파워를 견딜 만한 신은 주신, 선신, 악신을 제외하고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 신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잊는다면 언젠가는 화근이 될 것이다.」
그 대사를 떠올린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오딘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지하드를 남발했다가 디바이너도 부러지고 탈진 상태가 되어 바이칼과 함께 여기로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 떨어진 것은 행운이었지만.
“‥그래, 방송국이나 가 보자.”
리오가 문을 벌컥 열고 방에서 나오자, 바이칼은 움찔하며 급히 리모컨을 눌렀고 채널은 다시 모닝쇼가 방영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만화 본다고 욕먹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 내가 티베한테 그 만화 테이프 얻어다 달라고 부탁해 볼게. 그리고 나 나간다. 티베하고 같이 들어올 거니 기다리진 말고. 집 잘 지켜.”
리오가 현관문을 닫고 나서자, 바이칼은 다시 채널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쳇, 나쁜 놈.”
방송국 앞에 도착한 리오는 경비의 눈을 피해 유유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로비에서 티베나 넬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리오는 30분이 지나도록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마침 TV 뉴스에서 가끔 보던 여자 앵커가 그의 근처를 지나가기에 리오는 정색을 하고 그녀를 불렀다.
“저어‥말씀 좀 물어도 될까요?”
그 여자 앵커는 리오를 한번 쓱 본 후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미남이시니 기꺼이‥.”
리오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물었다.
“티베·프라밍이라는 여 기자분을 찾습니다만, 어디서 뵐 수 있을까요?”
그녀는 티베의 이름을 듣고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오에게 물었다.
“예? 음‥실례지만 티베와 무슨 관계시죠? 설마 남편?”
리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핫, 설마 그럴 리가요. 사촌 동생입니다.”
리오는 속으로 티베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 말을 들은 여 앵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히 기자실을 안내해 주었다. 리오를 기자실까지 안내해 준 앵커는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리오는 기자실 앞 의자에 앉으며 주머니에 있는 카세트에서 이어폰을 빼 귀에 꽂고 티베가 올 때를 기다렸다.
파리 시장과의 인터뷰를 마친 티베는 긴장을 풀며 스튜디오 밖으로 나섰다. 시장이라면서 왜 그렇게 말을 못 할까 속으로 외치던 티베는 스튜디오 밖 의자에서 졸고 있는 넬을 보고 웃으며 그 애의 곁에 앉았다.
“자자, 일어서 넬. 점심 먹으러 가야지.”
“우웅‥알았어요.”
넬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티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친한 동료 앵커를 만난 티베는 잠시 그녀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은 어때요 제티? 요즘은 너무 조용해서 뉴스도 잘 안될 것 같던데? 호홋‥.”
“응, 솔직히 그저 그래. 그런데, 너 왜 나한테 숨기고 있었니?”
그 앵커의 질문에 티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넬은 뒤에서 티베와 앵커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앵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잘생긴 미남 사촌이 있으면서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가족이 없다고 하면서 동생하고 사촌은 잘도 생기네? 어쨌든, 나중에 나 좀 소개시켜 줘, 알았지? 그 사람 기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가 봐. 그럼 나중에 보자.”
그녀가 간 뒤, 티베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고, 넬은 팔짱을 낀 채 티베에게 말했다.
“흠〜미남의 사촌? 뭐 짚이는 것 있어요? 전 좀 의심이 가는데요.”
티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넬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가 보고 올 테니까요. 제 얼굴은 잘 모를 거 아니에요.”
“음‥그래, 그럼 부탁해. 아, 조심해야 해.”
넬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기자실로 향했다. 티베는 한숨을 쉬며 아직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고 티베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보라색 턱시도를 입은 신사였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저랑 같이 가 주실까요?”
티베는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났다. 그녀는 뒷걸음질을 쳐 그와 거리를 두려 했으나 순간 몸이 꼼짝하지 않았다. 티베는 순간 공포에 휩싸이며 그 신사를 바라보았다. 신사의 피부는 점점 붉어져 가고 있었고 결국 낯익은 모습으로 변하였다. 마 귀족, 네그였다.
「어서 갑시다 티베 양. 귀찮은 일 생기게 하지 말고 말이지요.」
“아, 안돼! 살려줘요!!!”
그러자 근처를 돌던 경비가 목소리를 듣고 달려와 네그에게 권총을 겨누어 보았다.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던 직원들도 모두 나와 웅성대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경비는 용감히 소리쳤다.
“티베 양을 놔줘!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그 말에, 네그는 피식 웃으며 안광을 번뜩였다. 그러자 총을 잡은 경비의 손이 뒤틀리며 총구의 방향을 경비의 머리에 향하게 했고 경비는 손목에서 오는 통증과 네그의 눈에서 뿜어지는 마기에 의해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그 광경을 본 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티베는 더더욱 공포에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