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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07화


…무명찬란교.

초자연재난관리국이 괴담을 제거하려 들고, 백일몽 주식회사가 괴담을 이용하려 든다면.

‘무명찬란교는 괴담 그 자체다.’

이들은 괴담을 숭배하며, 이 세상의 근원이 괴담이라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괴담을 잘 발굴하고 가꾸어가며, 세상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면 ‘이름님’의 선택을 받아 영생할 수 있다고 믿는 광신도들이다.

‘완전히 종말론 사이비야.’

솔직히 말하자면,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세 가지 세력 중 내가 가장 거리감을 느끼는 세력이다.

‘내… 취향이 아니라서.’

물론 그 사이비 교단의 위키 항목들도 읽어는 봤다.

그래서 ‘메모리얼 그립톡’으로 위키 페이지야 무사히 뜬다만, 문제는 내가 며칠째 위키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눈치를 못 챘던 거겠지.’

하지만 이제 특정했으니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야간 격리실 청소 중 발생한, 기괴한 반복 현상. 대체 이 악몽 같은 상황이 무명찬란교의 어떤 것 때문에 초래된 것인지.

나는 심호흡했다.

이건….

‘도플갱어 괴담류군.’

누군가의 인생을 찬탈하는 초자연적 존재.

무명찬란교가 위키에 등록된 초창기에 폭발적 호응을 얻고 유명세를 치렀던 사이비 스타일 괴담 중 하나.

정확히 말하자면, 무명찬란교의 계급 중 하나였다.

그 미친 사이비 교단은 소속과 계급에 따라 괴현상을 매치해 주니까!

그리고 그 이름은….

———————=

어둠탐사기록 / 괴담

[이야기 찬탈자]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무명찬란교의 권능. 서열은 흉내장이 교단 소속 4계급.

타인을 모방하여 그 이야기를 빼앗아 자신의 서사적 양분으로 삼는 것을 추구하는 흉내장이 교단의 대표적인 괴현상.

이 괴현상에 휘말린 사람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빼앗기며, 기간이 길어질 시 자기 자신 그 자체까지 빼앗긴다.

———————=

위키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미지의 존재가 나 혹은 주변인을 대체하는 공포에서 파생된 괴담이었다.

‘가장 뚜렷한 징후는… 가까운 친인척의 모습으로 기괴한 짓을 하는 것.’

점찍은 상대의 연인, 친구, 부채감을 가진 자 등 다양한 지인을 흉내 내며 등장해 방심을 유도한 뒤, 초자연적 공포를 연출한다.

그 목적은 이거다.

대상자에게 ‘이 상황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라는 강력한 심리 상태를 유발. 암묵적 동조와 동의를 얻어 상대의 서사를 탈취함.

그리고 여기에 걸려든 나는… 29일, 30일의 서사를 ‘빼앗긴’ 것이다.

이야기 찬탈자는 대상자에게서 다른 일이나 선택을 할 수 있던 가능성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 결과, 대상자는 빼앗긴 것만큼 ‘정신 차려 보니 의미 없이 시간이 흘러 버렸다’라고 체감하게 된다.

덕분에 나는 이틀을 ‘별다른 상기할 만한 점 없이’ 무미건조하게 보낸 걸로 처리됐던 거고, 그다음 날 비슷한 시점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나마 은반지 덕에 하루씩만 뺏기고 끝난 건가.’

자칫하면 갈피를 못 잡고 이대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앞뒤 분간이 안 되고 뭐가 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상황에 끌려가게 되니까.

‘그렇게 인생을 쭉 빨리는 거지.’

정신이 멀쩡한 덕에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 흥미롭습니다. 휴우, 이번에는 더 빠르게 따라잡았군요.

‘브라운!’

작은 봉제 인형에게서 사회자가 과장되게 숨을 고르고 정장 옷깃을 터는 소리가 들리더니, 쾌활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치 이야기를 더 내줬군요, 친구! 흐음, 그런데 그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상대가 교묘한 수작을 부렸나 봅니다.

-노루 씨의 주변인들을 흉내 냈던 게 그 일환인 겁니까?

‘맞아.’

처음에는 은하제 대리님, 두 번째에는 박민성 주임님을 흉내 내어 내 혼을 쏙 빼놓았지.

이전에 한 번 들킨 신원은 안 쓰고, 계속 바꿔가면서 내 서사를 탈취해 가려고 하는 거다….

-호오. 그렇다면 노루 씨가 31일에는 어떤 ‘지인’을 만날지 궁금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 3일 차의 상황에서는 과연 누구를 흉내 냈을까… 곧 공개되겠군요!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박민성 주임의 기척은 없었다. 당연하지만, 은하제 대리의 기척도… 없었다.

대여창고에는 나 혼자뿐이다.

‘…2일 차 마지막에, 봉쇄가 풀렸었지.’

그렇다면 그것도 이미 나간 게 아닐까?

하지만 보통 ‘이야기 찬탈자’들은 자기들이 빼먹기로 점찍은 인물의 삶을 완전히 빼앗을 기회가 있다면, 그러기 위해 집착하고 공을 들이는 편이다.

‘내가 자기 정체를 눈치챘을 거라곤 짐작 못 했을 거야.’

그렇다면.

이 장소에 자연스럽게 등장해서 내 긴장을 풀 수 있으면서, 나와 이미 안면이 있는 지인은….

삐리리릭.

[이제 곧… 10분 지나거든요……. 갈게요.]

“…….”

나는 무전기 너머의 소리를 들으며, 어깨를 굳혔다.

잠시 후.

[삐이이이익!]

[봉쇄가 해제됩니다. 셔터가 개방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을 보았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보안팀 대여창고 프론트에서 밖으로 향하는 문의 방호 셔터가 열리고, 붉은빛이 들어오던 전등이 다시 초록빛으로 바뀐다.

그리고 올라가는 셔터 너머에서….

“무사하네요. 다행이다…….”

경비반장 J3가 여느 때처럼 만사가 피로한 눈이지만 약간 안도감을 담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아, 저쪽 문 안에 있나… 저기, 괜찮아요?”

“…….”

“저기요…?”

나는 몸을 일으켜… 경비반장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

그리고 벽을 보고 섰다.

사실 말이다.

‘보통 괴담에 종교적 색채가 들어오면, 퇴마법이 따라오거든.’

초월적 존재에게 대응하는 절차가 있는 것이다. 일종의 양면 거울처럼 말이다.

이 점에서는 아무리 미치광이 같은 무명찬란교라도 예외는 없다.

‘이야기 찬탈자에게도 퇴치법이 있지.’

나는 첫날 받았던 근무 수칙을 떠올렸다.

이름님?아무튼 이상한 거 부르짖으면서 무슨 행복해지는 방법 알려주겠다고 하는 새끼인데, 대충 욕이나 해주면 조용해질 거야.

욕하기 싫으면 대충 꺼지라고만 해도 괜찮음.

기묘한 일이다.

그 2번째 장은 오염되었을지언정, 힌트는 맞았으니까.

왜냐하면.

“꺼져.”

이걸 쫓아내는 방법은, ‘사전에 정체를 눈치채고 완전히 거부한다’가 맞다.

내 시간을 탈취하는 데에 암묵적 동조와 동의가 필요하다고?

안 해주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저기, 왜 그래요…?”

“꺼져.”

나는 상대를 외면한 채 다시 선언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진짜?

두 번이나 줘놓고?

“꺼져.”

“노루야. 너 말버릇이 대체 왜 그 지경이 됐냐. 아무리 그래도 상사한테 그게 뭔….”

“꺼져.”

“어어? 저기, 노루야. 말이 너무 심한데! 우리 청소는 마무리해야지. 그냥 널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꺼져.”

“싫은데… 저기, 그냥 있을게요…. 솔직히… 그쪽한테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꺼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깝다아아아아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뒤틀린다.

이 세상의 근원에 한 글자 영향도 주지 못하는, 미물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내린 은총을 거부하네. 아깝다.

네 비루한 이야기를 넘기면 우리가 그 이야기를 이름님의 찬란한 은총으로 채워줄 텐데. 이름님이 나를 보실 텐데 아깝다.

“꺼져.”

아깝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꺼져.”

등 뒤의 이상한 속삭임이 잦아든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

아무래도, 저것은 나를 타깃으로 삼는 건 포기한 것 같다.

‘후우….’

긴장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으나 참았다. 대신 머리를 끈질기게 굴렸다.

아직 발소리는 안 들리니까, 저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즉시 여기서 튀면서 보안팀에 신고하자. 그러면 되겠….

삐리리릭.

“……!”

주머니의 무전이 울린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도착했는데… 음.]

“도착했는데… 음.”

그런데, 근처에서 육성도 함께 들린다.

“…….”

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대여창고의 출입구를 보았다.

문밖에는 표정이 없는 경비반장 J3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본인인가?’

아니, 이건 확실히 본인이 맞지!

나는 황급히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 제이 씨.”

……내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당혹스럽다는 듯한 목소리.

나는 고개를 더 돌려 등 뒤를 보았다.

그곳에 있던 무명찬란교의 괴담은 어느새 주홍색 청소복을 입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검은 머리 20대 중후반. 충격 어린 얼굴로 경비반장과 나를 번갈아 보고 있는, 창백한 인상의 남성.

김솔음.

내 현재 모습을 완벽히 베낀 것이 나를 쳐다보며 당황한 어투로 떠든다.

“이게 무슨… 이런 괴현상도 청소 중에 휘말릴 수 있는 겁니까?”

나를 흉내 내고 있다.

‘X발…!’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는 다급히 경비반장을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제이 씨, 저건 무명찬란교 신도입니다.”

“무… 그게 무슨. 제이 씨, 이게 혹시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아무래도 어둠 같은데….”

“제이 씨! 대답하시지 마십시오. 듣기만 하시면서 판단하셔야 합니다. 대답하는 순간 상황에 휘말려 들게 됩니다.”

“…….”

“검증하고 싶은 건 혼자 벽에 대고 말씀하시고… 아니, 되도록 그냥 모두에게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십시오. 그게 가장 안전합니다.”

경비반장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내 옆에서 가늘게 떨리는 ‘김솔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저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생각해 보십시오, 제이 씨. 저는 그냥… 사흘간 청소를 하러 들어온 겁니다. 이 현상이 어둠인 것도 제 옆의… 뭔가가 말해서 깨달았고요.”

“…!”

“제가 보안팀 격리실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제이 씨, 논리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이쪽이… 맞지 않습니까?”

-오 제법 그럴싸하군요.

그러게 말이다. 망할…!

“그리고… 와주셔서 정말 안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시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

‘말을 더럽게 잘하네.’

사이비답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긴, 나도 첫날 은하제 대리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거의 넘어갔으니까.

‘대체… 박민성 주임은 어떻게 은하제 대리가 아닌 걸 알아차린 거지?’

나는 필사적으로 그때를 떠올리려 애썼다.

어디서 알아차린 걸까?

‘그때도 논리적 결함은 없었던 것 같은데….’

대체 뭘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는 위화감?

대화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아니면…….’

필사적으로 검토하고 고민하는 그때, 내 옆에서 또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 제이 씨. 혹시라도 죄책감을 가지진 마시고, 판단하시는 대로 움직여 주세요. 받아들이겠습니다.”

…….

아.

‘알았다.’

그거였나.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제이 씨, 말을 꺼내는 목적을 봐주십시오. 당신과 어떻게든 친근한 대화를 이어가고, 상황에 몰입하게 하려는 쪽이 누군지.”

그때 은하제 대리는….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친근했다.

감옥에 갇혀 있다가 겨우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럴 순 없다.

‘아니, 애초에 원래 대리님이면 굳이 모습을 드러내고 설득하는 무리수를 두느니 숨어 있다가 빠져나왔을 거야.’

도와줄 아이템이 있고, 기다리기만 하면 봉쇄가 풀리는데 말이다.

그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우리와 꼭 당장 대화하겠다고 판단할 리가 없다는 거다.

상황에 맞지 않는 기묘한 반응.

그러니까….

“이 이상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굳이 불필요하게 사교적인 발언을 하는 건 누군지. …다른 목적을 가진 게 누군지요.”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절 꼭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꺼지라고 소리 지르시고 외면하면 사라질 괴담입니다. 아니면 다른 보안팀을 호출하시는 것도….”

“으음.”

경비반장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쪽이네.”

거대한 늑대 같은 괴물의 검은 앞발톱이 내 머리 위로 단두대 칼날처럼 떨어진다.

‘X발…!’

눈을 감기도 전 찰나.

퍼억.

머리가 날아갔다.

내 옆에 붙어 있던 흉내장이의 것이.

“…!!”

철퍽.

뒤틀린 거대한 그림자 같은 앞발은 뭉개진 시체 위로 쩌저적 소리를 내며 다시 들리더니, 어마어마한 압박을 남기고 내 옆을 스치듯 지나….

경비반장의 팔로 돌아온다.

“저기.”

“…….”

“괜찮아요…?”

나는 흉내장이의 피를 뒤집어쓴 내 주홍빛 청소 유니폼을 내려다보며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

“예. 감사합니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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