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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30화


김솔음이 재난관리국에 스파이로 잠입하기로 이사와 협의한 그날 저녁.

같은 시각, 사택에서 백사헌은 최근 대단히 편안한 사생활을 누리는 중이었다.

바로 망할 사이코패스 룸메이트가 실종된 덕분이다!

‘그 새끼, 그렇게 나대다가 죽을 줄 알았지.’

백사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 사이코패스랑 똑 닮은 D조의 미친 조장이 자신에게 ‘탐라행 고속열차’에 대한 인터뷰를 몇 차례나 집요히 요청하긴 했어도.

그리고 그 때문에 끔찍한… 오염이 심화되긴 했었으나, 이젠 많이 진정됐다. 더는 위대한 토크… X발, 아무튼 그걸 떠올린다고 토하거나 멘탈이 붕괴되진 않았다.

덕분에 여우상담소에 접근할 수 있게 됐으니까.

공짜로 말이다!

‘원래라면 주임이 돼야 받을 수 있는 복지인데… 교환비 나쁘지 않잖아.’

D조 과장이 처리해 준 덕에 이렇게 따로 여우상담실의 문패를 받은 건 선명한 이득이었다.

심지어 그 괴담 속 상담사는 상담받을 때마다 문패를 하나 더 주지 않는가. 그가 회사에서 받은 ‘처리’로는 이걸 ‘적당히 회복할 때까지’ 쓸 수 있었다.

‘쓰다가 슬쩍, 남한테 한 번씩 넘겨줄 수도 있고?’

처신만 잘하면 말이다.

‘주임 승진 전까지… 적어도 3개월은 더 뽑아 먹을 수 있겠어.’

일단 오늘은 자신이 한 번 더 쓸 거고.

백사헌은 여우상담실에 한 번 더 방문하기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이미 뒤진 룸메이트의 방에 문패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

“아. 오늘 휴진하신대.”

“…?!?!”

서늘한 인상의 검은 머리 직장인이 문 너머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문에서 걸어 나온다.

꿈에도 못 잊을 것 같은, 아는 얼굴.

그건, 그건….

“기, 김솔음.”

실종 및 사망 처리된 전 룸메이트가 자신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어?

어어?

“……?!?”

백사헌은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꾸, 꿈인가?’

혹시 내가 최면형 어둠에 빠진 건가?

그게 아니면 실종돼서 사망 처리까지 된 미친 새끼가 지금 여우상담실 문에서 왜 나오고 있….

퍽.

백사헌은 스스로 뺨을 갈겼다.

얼얼했다.

일단 꿈은 아니다.

‘빌어먹을.’

그리고 자기 얼굴을 자기가 쥐어박은 바보를 보는 측은한 시선이 느껴졌다.

“음… 왜 상담을 받으려고 했는지 알겠는데.”

“…!?”

“그런데 지금 들어가봤자 휴진이라니까? 문패 떼고 다음에 들어가.”

쿵.

김솔음은 완전히 방에서 빠져나오더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분명한 물리력을 행사하여, 한때 자기 방이었던 문에 붙은 문패를 떼어내서 백사헌에게 던졌다.

“…!”

얼결에 잡아챘다.

“근데…… 하필 지금 문을 열었네?”

“…….”

“이렇게 얼굴 볼 줄은 몰랐는데.”

백사헌은 침을 삼켰다.

동시에 그의 두뇌가 급속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스스로 되묻게 되는 황당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안대 너머로 쏘아지듯 비치는 짙은 광륜.

경고 알람.

-보면 안 될 것을 보았다.

사망 처리된 직원이 눈앞에 멀쩡히 서 있다는 것은, 회사 차원, 혹은 그 이상의 음모가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날 실종 목격자로 썼었어…!’

화장실에서 사라진 김솔음의 행방을 파악하려다가 당했던 끔찍한 미미미밀침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며 백사헌은 침을 삼켰다.

분노와 어지러움으로 머리가 진탕이었으나 그보다 먼저 경고가 머리를 친다.

‘……잠깐만, 근데 지금 저 미친 새끼가 여기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을….’

내가,

봐도 되는 건가?

“…….”

“…….”

저 사이코패스 새끼가 나를 처리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살인 멸구.

‘아, 아니지!’

반사적으로 스친 터무니없는 생각을, 백사헌은 얼른 고쳤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굳이 왜 한단 말인가.

‘내 세뇌 만년필, 저 새끼가 가지고 있어….’

이 안구랑 교환한 아이템 말이다. 백사헌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분명 세뇌 걸고 빠져나갈 것이다. 못 본 걸로 만들고 나가면 되잖아. 그렇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 없….

“너 내가 만년필로 기억 지워줬으면 좋겠지?”

“…!!”

“안 그럴 건데.”

백사헌은 머릿속에서 당장 써먹을 만한 대처법-주먹질, 전용 장비 사용, 신고, 빌기 등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떠올린 동시에 다 폐기되었다.

‘아, 안 돼.’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이코패스답게 피도 눈물도 없는 저 자식은 수완이 좋았다.

휘말려서 나락에 처박히거나 죽지 않으려면 침착하게 가야 한다.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설마, 진짜 죽이려고….

‘……아니!’

백사헌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재조립된 문장.

-원하는 게 있다.

저 새끼,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나랑 대면하고 있는 거겠지!

백사헌은 겨우 침착해졌다.

그리고 간신히, 여유를 나타내기 위해 팔짱을 꼈다.

“…주임님, 원하시는 게 있나 보죠.”

“음.”

역시!

“…아. 혹시 제 목격담이 필요하기라도 하세요, 주임님? 실종 때처럼 말이죠! 막, 사택에서 김솔음 주임님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회사에 보고한다든가….”

“아니.”

젠장.

쌍욕을 간신히 참은 백사헌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상대를 보았다.

김솔음도 물끄러미 백사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상대는 정장 차림은 맞았지만, 머리카락이 약간 잘린 데다가 한쪽 팔에는 부목을 덧대고 있었다. 완전히 ‘멀쩡한’ 꼴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서 다친 거지?’

게다가 정장 자체도 약간 다르다.

이상했다. 어딘가 일반 사무직 직장인이 입기에는 더 비싸고 멋을 부린 듯한, 보여주는 용도의 핏 같은….

‘방송에서나 입을 법한….’

…어?

어딘가, 이상한 연결고리 같은 것이 번뜩이려던 찰나였다.

상대가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말을 꺼낸다.

“넌 아이템 욕심 있어 보이던데.”

“…!”

“쭉정이 말고 제대로 된 거 말이지. 최면, 제압, 치유…. 그런 쓸 만한 아이템 더 가지고 싶어?”

모든 걸 앞서는 욕망과 필요가 백사헌의 우선순위 제일 위에서 번뜩인다.

백사헌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김솔음은 웃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한테 정기적으로 알려줘.”

“…….”

상대가 제안한 건 거래였다.

정보 거래.

“…사내에서 보유 중인 고등급 어둠 탐사 매뉴얼… 같은 것, 말입니까?”

김솔음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았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현장탐사팀 기밀을 요구하진 않겠….

“그런 재미없는 걸 왜 알려주려고 해.”

“…….”

“사내에 도는 소문도 괜찮고, 인사 발령, 직원 가쉽도 좋고. 네가 생각했을 때 ‘내부 직원에게 가치 있을 만한 정보’를 가져오라고.”

“…왜요?”

“궁금하니까?”

“……!!”

“아니, 퇴사 당해서 더 못 들으니까 심심해서.”

아니 X발!

백사헌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다른 인간이었다면 당연히 알려주기 싫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걸 텐데, 상대는 김솔음이었다.

‘저 새끼는 진심 같기도 하다고!’

진짜 도파민을 위해 사내 가쉽이나 들으려는 또라이 같기도 해서 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

“그래서. 정보 가져와서 아이템 교환해 갈 거야?”

“정보,”

…….

…….

“가져올 수야… 있죠.”

백사헌은 생각했다.

‘알 게 뭐야.’

회사에 들키면?

협박당했다고 하거나 세뇌당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회사는 가면이랑 수집기 팔아먹는 짓만 아니면 현장탐사팀이 뭘 하든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었다.

퇴사자가 ‘사내 분위기’ 묻는 거에 대답하는 것 정도야 뭐!

비록 그 퇴사자가 뒈졌다고 회사에서 ‘오해’ 중이긴 하지만, 솔직히 내 알 바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회사가 이런 걸로 징계를 먹일 것 같지는 않았다.

‘재난관리국에 정보를 파는 것도 아니잖아?’

자기가 과장급도 아니고, 연구팀이라 개발 노하우를 유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좋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받는 게 맞는 거래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김솔음은… 이런 일에서 약속한 보수를 안 주는 식으로 사람을 골탕 먹이거나 모욕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하자.’

일단 먹고 보자!

발 뻗을 자리가 보이는 순간 백사헌의 얼굴에 뺀질거림이 돌아왔다.

“근데요. 주임님, 아니, 아차차, 이제 주임님도 아니시죠?”

“…….”

“어쨌든 그쪽이 제 뭘 믿고 맡기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잖아요.”

신뢰를 사고 싶다면 아이템 좀 선불로 땡겨달라는 뜻이었다.

김솔음이 활짝 웃었다.

“거짓말하게? 재밌겠다. 꼭 해 봐.”

“…….”

택도 없었다.

‘개자식.’

“하지만 더 재밌고 흥미로운 정보를 가져오면, 내가 줄 아이템도 당연히 좋아지지 않겠어? 그게 상거래의 기본이잖아.”

“…!”

정보만 제대로면 대충 쳐주진 않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백사헌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잘 가져와 볼게요. ‘재밌는 정보.’”

“그래.”

김솔음은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김솔음은 아주 계산 빠른 정보용 스파이 하나를 성공적으로 회사에 심어두게 되었다.

‘휴우.’

살았다!

김솔음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공식적인 정보책… 확보.’

호 이사는 일부러 ‘같이 근무할 동기들’을 언급하면서 그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교묘히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김솔음은 알았다.

그와 동기들은 엄연히 다른 조건이라는 것을.

‘나만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야.’

게다가 퇴사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사내 소식을 파악할 자연스러운 경로가 다 틀어막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호 이사는 내가 정보 면에서 고립됐다는 걸 기껍게 이용해 먹을 상사지.’

김솔음은 은하제 대리의 발언을 정확히 기억했다.

-난 이 프로젝트에서 다른 팀원들이 뭘 하는지 몰라. 호 이사가 아예 담당이 다른 직원들끼리는 대화도 못 하게 하거든.

절대 일부러 챙겨줄 리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줄이 필요했다.

‘하지만 D조는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연결고리는 이미 호 이사가 파악한 것 같았다. 은하제 대리를 통해서 문패를 전달한 게 아주 노골적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백사헌이나 강이학 쪽을 공략하려고 했는데, 아주 상황이 잘 돌아가 줬다.

‘솔직히 강이학 씨는…… 돈 더 많이 주는 누군가가 나오면 내 정보를 홀라당 다 팔 것 같기도 하고.’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경계하고, 생존 본능이 강력한 백사헌이 알맞은 패긴 했다.

김솔음은 자신의 전 룸메이트를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가본다.”

“네? 뭐… 바쁘신가 보네요.”

김솔음은 백사헌의 영혼 없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할 게 있어서.”

재난관리국에 투입될 때까지 남은 시간이 몇 주도 안 됐다.

‘빠듯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신입사원이 아니라 재난관리국 요원에 걸맞은, 새로운 캐릭터를!

* * *

2월 22일.

“청동 요원님. 신입용 인적성 검사 준비 끝났습니다.”

“예.”

류재관, ‘청동’이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초자연재난관리국의 요원은 서류를 들고 유리창 앞에 섰다.

사실 해당 유리창은 단방향으로,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그저 거울로 보일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곧 재난관리국의 새로운 요원이 될 후보자들이 대기 중이었다.

긴장감 어린 기색으로 방에 둘러앉은 자들은 얼굴에는 묘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남은 건 인적성 검사뿐.

하지만 이게 가장 중요한 관문이기도 했다.

‘인적성에서 떨어지면, 시험에 응시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돌아가게 되지.’

다시 준비할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전의 의미가 없으니까.

재난관리국에서 일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성정의 소유자거나, 비도덕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절대 근무할 수 없다.

“…….”

그러나 이곳에 지원하는 자들 대다수가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류재관은 내심 다수의 사람이 무사히 인적성을 통과하길 바랐다.

특히 실종된 친인척을 찾고 있는 지원자나, 반드시 없애고 싶은 초자연 재난이 있는 지원자는, 더더욱.

“시작합시다.”

“예!”

하지만 그는 결코 점수를 후하게 주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이런 바람은 겉으로 전혀 표출되지 않았다.

함께 채점 중인 보조 면접관들은 그저 침을 삼키며 ‘청동 요원’을 의식했을 뿐이다.

‘합격 기준이 진짜 깐깐하다던데.’

‘이 방 지원자들이 좀 안 됐지.’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청동 요원의 지시에 따라 인적성 검사를 시작했다.

-‘다’ 그룹 1번부터 4번. 앞으로 나오십시오.

유리창 너머의 방에서 안내방송에 나왔다.

호명된 4명의 최종 면접자가 방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1번, 만 25세. 태연한 듯 보이지만 얼굴이 창백한 2번, 만 38세. 눈이 불타오르고 있는 3번, 만 31세. 그리고….

“푸흐읍!”

“요, 요원님?”

류재관은 황급히 기침을 갈무리했다.

순간 착각했나 했으나, 유리창 너머에서 맺히는 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지난 반년간 초자연 현상 속에서 예기치 못하게 몇 번이고 봤던 기묘하고 선량한 인물.

‘…포도 요원!’

김솔음.

백일몽 주식회사의 직원이었던 그가, 어색한 듯 움츠러든 표정으로 안경을 매만지며 거울 맞은편에 서 있었다!!

초자연재난관리국 요원 후보 ‘다’ 그룹 4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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