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31화
류재관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산장.
그 끔찍한 재난에 휘말려서도 살인을 막아설 단서를 잡고, 원흉인 악인들까지 모두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을.
은심장의 소유자.
-사람들을 몰래 숨겨놓고서는 죽인 척 현장을 꾸민 거죠.
-그럼 살인마가 당황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았거든요.
세광공업고등학교라는 기묘한 악몽 속 학교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서도.
-명찰을 습득하긴 했지만, 지금은 제 손에 없습니다.
-교실에 살아계셨던 분께 드리고 왔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타인에게 동아줄을 양보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재난관리국에서 온갖 인간상들을 다 본 류재관의 말문이 막힐 정도로 올곧은 선택지들.
물론 그와 동시에… 사실 ‘은심장의 소유자’가 무고한 시민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노루?
비도덕적이며 미친 제약회사에서 수족처럼 부려지는 인간.
소원권이라는 터무니없는 보상에 사이비처럼 홀린, 어리석고 이기적인 직장인.
그게 김솔음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임시 요원 배지까지 줬다는 건 피가 식을 만큼 진저리 처지는 일이다.
분명, 그랬는데….
-두 분. 절 두고 가십시오.
“…….”
때로는 사람을 수식하는 정보보다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법이었다.
배가 뚫린 채로도 자기 동료와, 동행하던 요원의 안전을 먼저 챙기려고 했던 사람.
‘김솔음.’
그가 지금 유리창 너머에 서 있었다.
재난관리국의 요원 시험에 응시한 채.
“…….”
하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왜 눈을 못 마주치는 거지?’
김솔음은 몇 번 만날 동안 내내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와 외양이었다. 심지어 악몽 속 고등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 유리창 너머에서 보이는 상대는 덥수룩하게 헝클어진 머리에 안경을 쓴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마치 많은 사람 틈에서 시험을 보는 게 처음인, 어수룩한 사회초년생처럼.
혹은….
어딘가에서 큰 정신적 타격을 입고 내면으로 숨어든 것처럼.
‘…….’
허나 류재관은 피로와 경계심으로 퀭한 눈으로 유리창을 쏘아 보았다.
그가 지금 들고 있는 인적 서류에도 선명히 찍힌 이름 세 글자.
성함 : 김솔음.
그게 끝이었으니까.
‘백일몽 주식회사 근무 내역이 없다.’
경력란은 대학 시절의 것을 제외하면 깨끗이 공백이었다.
류재관은 이를 악물었다.
이건 너무 뻔하다 못해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 사이비 회사의 스파이로 온 건가.’
가능성이 있다. 아니, 아주 높다!
‘내가 정말로 자기 이름을 끝까지 모를 거라 생각하고 뻔뻔하게 저런 모습으로 지원했나?’
자기를 못 알아볼 거라 여기면서 말이다.
…더욱 철저히 검증해야 했다.
외양과 분위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주십시오.”
“어엇…!”
청동 요원은 보조 면접관에게서 방송 장비를 뺏듯이 받아 내어, 무감각한 목소리로 진행을 시작했다.
-1번, 2번, 3번, 4번.
-순서대로 앞에 놓은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십시오.
지원자들이 떨떠름한 손으로, 방 한가운데에 놓인 산소호흡기들을 잡았다.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줄을 다 끊어놓은 듯한 모양새의 피 묻은 산소호흡기들은 작동할 리가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성공적으로 불이 들어왔다.
지원자들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누구도 거부하지 않은 채, 산소호흡기를 얼굴에 썼다.
모두의 손과 발이 차갑게 식었다.
-해당 산소호흡기는 초자연 재난에서 유래된 물건으로, 오남용 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거짓을 말할 때마다 산소가 아닌 것을 공급합니다.
“…!”
유리창 너머에서 지원자들이 눈을 질끈 감거나 두려워한다.
4번, ‘김솔음’도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래. 두렵겠지.
스파이 같은 추잡한 짓을 하기 위해 잠입하려 들었다면, 더더욱!
-오로지 진실을 증언하십시오.
재난관리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 허가가 나오는 계통의 ‘초자연 현상’을 이용한 이 인적성 검사.
거짓말 탐지.
악의 감별.
죄인 적발.
최소한의 윤리적 선을 위해 필요한 절차와 능력.
류재관은 유리창 너머를 쏘아보았다.
산소호흡기를 뒤집어쓰고 굳어 있는 요원 후보자들.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차 없는 공통 질문이 나왔다.
-이제부터 당신은 이 자리에 함께 나온 요원 후보자 4인 중 1인을 사살해야 합니다.
“…!!”
-이는 초자연 재난을 종결시키기 위한 조치입니다.
-누구를 죽일지 대답하십시오.
경악 속에서 입을 달싹이는 지원자들.
아직 응답은 없었다.
하지만 거울너머 면접관들이 있는 공간에서는 이미 ‘응답을 받아보고 있었다’.
1번 :
주, 죽이라고? 미친!
2번 :
…누굴 고르지? 못 죽이겠다고 하는 게 정답 아닐까? 아니, 요원에겐 비정함이 필요한가? 아아아 젠장….
3번 :
X발 이런 질문을 대놓고 할 줄이야! 옆 사람 좀 확인해야 하나?
각자의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글자로 정리되어서 번호와 함께 뜬다.
본래 산소호흡기를 통해 맥박 수치가 떠야 하는 기기의 출력 칸에서는, 이상하도록 붉고 선명한 문장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속마음이.
진실호흡기.
강원도의 모 요양 시설에서 발생한 고형(告刑)급 초자연 재난, ‘마지막 고해성사’가 종결되고 남은 부속 현상이었다.
그리고 다소 비윤리적이더라도 재난관리국은 이와 유사한 인적성 검사를 꾸준히 시행해 왔다.
여기서 제대로 거르지 못하면 참사가 벌어질 수 있으니까.
면접관들은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요원 후보자들의 속마음을 읽고 그들을 평가했다.
패닉, 고민, 비난.
‘평범해.’
‘무난한걸.’
다만, 딱 한 사람만은 놀랍도록 반응이 없었다.
4번 :
…….
4번 지원자.
김솔음은 아무런 ‘생각’도 스크린에 띄우지 않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을 뿐.
“놀라서 얼어붙은 걸까요?”
“고개 숙인 거 보세요. 배짱이 없어 보이긴 하는데.”
“…….”
류재관은 동요를 내비치지 않으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1번. 대답하십시오.
눈을 굴리던 20대는 꼿꼿이 선 채 대답했다.
“다수의 안전을 위하여 때로는 비정한 선택도 필요한 법입니다. 저는 음, 제가 자원하여 죽겠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의 말은 좀 더 적나라한 다른 소리를 한다.
1번 :
나, 난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죽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해. 그게 맞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물어보는 거겠지?!
‘패닉, 사고력 부족, 극단적 추종성.’
….
탈락.
-1번. 산소호흡기를 벗고 대기하십시오.
“…!”
1번 지원자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곧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산소호흡기를 벗어두고 조용히 자리에 서 있다.
“저기, 저 정도는 보류 처리하고 질문을 하나 더 해봐도….”
“쉿.”
항의하려는 보조 면접관을 다른 보조 면접관이 말렸다.
“청동 요원님 판단이 틀린 적이 없어. 그냥 있어요.”
“…….”
“합격시킬 사람은 또 합격시킨다니까.”
보라는 듯이 보조 면접관이 눈짓했다.
인적성 검사가 계속되고 있다.
-2번. 대답하십시오.
“…가까운 사람을 고른 후, 최대한 빠르고 인도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고통이 없는 걸 우선해서요.”
2번 :
너무 뻔한가? 하지만 이게 안전한 대답이잖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여기서 누굴 다 죽이겠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회피성 대답.
탈락.
-산소호흡기를 벗고 대기하십시오.
순식간에 2번까지 ‘인적성 검사’가 끝났다.
다음.
-3번.
3번은 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어딘지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말한다.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겠습니다!”
“…!”
“어떤 상황이든 플랜 B는 있습니다. 분명 빠져나갈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동료들과 다 함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탐색….”
털썩.
3번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
그가 차고 있던 산소호흡기는 어느새 깨끗한 새것으로 변해 있었고, 3번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정신을 잃었다.
면접관들은 차가운 얼굴로 ‘거짓말’을 말하던 3번의 새빨간 속마음을 읽었다.
아마도 본인은 의식도 못 했을, ‘기분’이라고 생각했을 거짓을.
3번 :
와 X발 개짜릿하네 옆사람 죽이기ㅋㅋ 이거지 이게 비밀 요원이지.
3번은 그대로 바닥에 방치되었다.
“…….”
방안에서 다음 순서를 대기 중인 요원 지원자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직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4번.
-대답하십시오.
이번에도 질문은 마찬가지.
‘위험한 괴현상을 없애기 위해, 이 자리의 4인 중 누구를 죽일 것인가?’
류재관은 유리창 너머의 김솔음을 보았다.
과연 비윤리적이기 짝이 없는 제약회사의 직원이었던 저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쩌면 그걸 의식해서, 전처럼 더 약삭빠르고 선량한 대답을….
“3번입니다.”
…….
어?
“지금 쓰러져 계신 분이요.”
-…!
처음으로 누군가 대놓고 지목되었다.
면접관들은 눈을 크게 뜨고 다음 말을 경청했….
“…….”
“…….”
아니.
그게 끝이야…?
4번은 다음 설명은커녕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어딘지 떨떠름한 안내 음성이 나온다.
-답변은 끝입니까?
“네?”
-더 설명할 것, 없습니까?
속이 터질 정도로 머뭇거리던 4번은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말씀 주신 상황이면, 어차피 저희 넷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요….”
-…!!
“꼭 우리 중 하나의 죽음으로 재난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재난 자체와 깊은 연관이 있던 거겠죠…. 뭘 잘못 건드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
“저, 이게 맞을까요?”
-…지원자에게 질문 기회 없습니다.
“아…! 죄, 죄송합니다….”
4번 후보자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창피한 듯이.
“그렇다면… 예. 저는 그렇게 추측했고, 무력화되어서 가장 사살이 쉬운 상대를 선택했습니다.”
진실.
-…….
“다만 시간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대안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뻔하도록 선량한 대답.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단순히 머릿수로, 혹은 누가 더 가치 있는지로 비교하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말투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도 제게 허락된 시간 내로 대안이 없으며, 대형 인명사고로 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처음으로 김솔음이 고개를 들었다.
유리 너머, 안경 너머의 그 눈은 두 겹의 창을 지났는데도 여전히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속마음이 뜬다.
4번 :
하지만 되도록 살리고 싶습니다….
…정확히 재난관리국이 요원들에게 원하는 모범 답변이었다.
피할 수 없는 재난 사태에서는 규정에 따르되, 양심의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
후다닥.
4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시선을 내렸지만, 면접관들은 작게 감탄했다.
“진심이군요.”
“심성도 판단력도 괜찮네요. 그리고 발상도 좋….”
콱.
류재관은 옆에서 들리는 태평한 감탄에 서류를 구길 뻔한 것을 참았다.
아냐.
그럴 리 없다.
“저 친구는 일단 합격….”
-다음 질문입니다.
“며, 면접관님?”
류재관은 주변을 무시하고, 본래 ‘판단하기에 모호할 경우’에만 진행하는 2차 질문을 강행했다.
-당신은 초자연 재난에 고립된 상황입니다.
-이 방에서 가장 선량한 지원자와 당신의 절친한 친구 중 단 한 사람만 재난 밖으로 살려 보낼 수 있다면, 누구를 보내겠습니까?
4번은 이제 거의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왜 이런 당연한 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어. 두 분 중에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요…?”
-…!
“그냥…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4번 :
초자연재난관리국은 그래야 맞는 거니까….
-…….
류재관은 얼빠진 얼굴로 유리창 밖을 보았다.
보조 면접관들은 직감했다.
‘이건 합격이다.’
‘무조건 합격이야.’
4번의 태도가 (좀 많이) 소극적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잘 나가는 재난관리국 요원들일수록 다 저렇게 어딘가 하나씩 이상한 면모가 있지 않은가.
신념과 교환한 듯한 트라우마들.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요원 후보자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합격….’
그때였다.
4번의 새빨간 속마음이 갱신된다.
4번 :
…나한테는 이런 선택을 할 일 자체가 없긴 할 테지만.
‘…!’
말투가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빈틈!’
류재관도 보조 면접관들도 순간 긴장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다음 문장을 집중해서 읽었….
4번 :
음, 지금 나한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 자체가 없으니까….
앗.
4번 :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질문이라고 말씀드렸어야 했나? 친구인 사람이 없어서 괜찮다고 말하긴 조금 창피한데….
“…….”
“…….”
4번 :
아냐. 역시 말하지 말자. 여기서 동료들을… 음, 열심히 사귀어 보자. 파이팅!
면접관들 사이에서 숙연한 침묵이 번졌다.
“…….”
류재관은 보조 면접관들의 시선을 느꼈다.
여기까지 읽어놓고 계속 질문을 하면서 합격을 보류시켰다간 당신은 쓰레기가 될 거란 노골적인 시선!
-…산소호흡기, 벗고, 대기하십시오.
4번 참가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
안내는 전과 똑같은 말이었으나, 방 안의 모두와 면접관 모두가 알았다.
“…감사합니다.”
4번 참가자는 합격했다.
-인적성 검사를 마친 4인은 모두 밖의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짐짝처럼 옮겨지는 3번 참가자 너머, 4번 참가자는 여전히 약간 움츠러든 자세로 조용히 안경을 고쳐 쓴 뒤 이동했다.
비록…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존엄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인 합격자였다.
‘어디서 일할지 기대되는데.’
‘응.’
보조 면접관들은 서로를 보면서, 다음에 저 소심한 4번 참가자를 만나면 좀 챙겨주자고 생각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그 효과까지 노린 답변이었으니까!
* * *
‘휴우.’
대기실.
나는 의자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방자한 자세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릎을 모은 채로.
‘무사히 넘겼다…….’
대체 청동 요원이 왜 거기서 나오는데!
‘방송 듣는 순간 기절할 뻔했네.’
와, 면접관 목소리로 류재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망하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오히려 당황해서 캐릭터 만드는 것에 도움을 받았다.
바로….
‘말 못 할 기구한 사연 탓에 내성적이지만, 능력 좋은 요원.’
이번에 내가 재난관리국에서 써먹을 캐릭터였다.
그 규격에 맞춰서 나는 몇 주간 외양을 꽤 흐트러트리고 면접에 오기까지 했다….
‘너무 능수능란한 것보다는 좀 주눅이 든 것 같은 타입이 의심을 덜 받지.’
애초에 재난관리국 요원들은 대부분 사연이 있는 인물들이니까. 자연스럽기도 할 것이다.
아. 소심한 척하는 게 현타 안 왔냐고?
나는 원래 소심한 인간이다. 사회적 체면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쫄보식 사고를 그대로 겉으로 표출하면 그만이더라고….
‘하하하….’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미친 MZ인척하는 것보다 오히려 괜찮다.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나는 안경 아래 볼을 훔쳤다.
‘어쨌든 잘 통했잖아.’
합격은 거의 확실했다.
무려 면접관으로 류재관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
내게 이미 한번 뒤통수를 성대하게 맞아 본 적 있는 요원이 날 합격시켜 준 것이다….
내가 면접장에 밀어닥친 요원들에게 잡혀가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근데 또 뒤통수를 치게 생겼네.’
나, 스파이지 않은가.
나는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속으로만 사과했다. 저, 한 번 더 죄송합니다 요원님….
‘그래도 그, 아직은 좀 긴가민가하고 계시죠?’
합격은 시켰지만 주시하겠다? 윗선에 내 전 직장에 대해서 다 보고하면서?
그럼 참 곤란했다.
어차피 스파이 길로 들어선 이상 제대로 해내자. 퇴로는 없다.
‘여기서 더 작업을 쳐서 완전히 신뢰도를 굳히고 들어가야 해.’
나는 묵묵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번호가 또 호명되었다.
합격의 사인.
-‘다’ 그룹의 4번.
-합격입니다. 지정 장소로 이동하십시오.
“…!”
됐다.
아마 ‘장소’로 가면 목소리만 들려주던 면접관들이 실제로 나와서 요원증을 주고 임시 소속을 배정해 주는 거겠지.
즉… 나는 류재관을 직접 대면한다.
‘요원 잠입 첫날부터 가장 큰 위험 요소를 만날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잘 됐어.’
지금 해결 보고 가자.
“네! 네….”
나는 일부러 크게 대답했다가 당황한 듯이 목소리를 낮춰 정리한 후, 헐레벌떡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언젠가 류재관을 만나면 써먹으려고 했던 작전을 머리와 가슴에서 다시 새기면서.
작전명 : 요원님! 저 죽은 척하고 미친 사이비 회사 탈출했어요!ㅠㅠ
바야흐로 요원 사기꾼 생활의 시작이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일 생각은 없었다는 것만은, 변명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