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67화
고영은 씨가 보여준 요원 단톡방은 그렇게 큰 충격과 깨달음을 남겼다.
‘어쩐지 최 요원이 쉽게 신규조사반 일하라고 보내주더니.’
이미 현무 1팀 행이 확정이라 그랬던 거였나.
청동 요원이 오늘 나를 고영은 씨의 팀으로 보내준 배려도, 사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출동구조반행이라 그런 거였나…!
‘억울하다….’
아니, 겉으로 드러난 것만 따지면 포도 요원이 만든 특이점은 하루 더 머물자고 떼쓰고 애들 챙기느라 감염된 정도 아닌가?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정기 구조만 간신히 하던 초자연 재난이 종결됐는데 그 변수가 나뿐이라 눈에 확 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변수의 별명이 ‘파괴왕 신입’이라면… 사실상 이미지에서 끝난 건가?
그렇네!
‘하.’
“…….”
“저… 솔음 씨. 괜찮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썩 좋아 보이진 않았는지, 고영은 씨는 약간 걱정 어린 눈이다.
‘너무 이래도 이상하겠지….’
쫄보인 거 들키기 전에 정신 차리자.
나는 어떻게든 태연한 척 침착한 말투로 약간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출동구조반도 물론 좋은 팀이지만, 제가 현장보다는 서류 업무에 더 강한 사람이라… 조금 당황했습니다.”
“…….”
“영은 씨?”
“음, 그, 네….”
왠지 고영은 씨의 눈빛이 더러워진 것 같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나를 위로하는 말씀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착각이었나 보다.
“음, 크게 봐서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각 팀에 하…!”
…?
눈앞의 직원이 부자연스럽게 말을 멈췄다.
그리고 손등을 눌렀다.
호 이사가 금제를 걸어둔 곳을.
“……!”
누군가 듣고 있다.
자리를 비워놓은 척하면서, 신입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사람이 이 사무실 어딘가에 있다.
나는 고영은 씨와 시선을 마주쳤다.
‘당황하면 안 돼.’
아마도 영은 씨는 ‘각 팀에 하나씩 배정되었으니까 밸런스가 좋다.’ 같은 류의 말을 하려던 거겠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예. 팀마다 장점이 있으니, 혹시 출동구조반에… 이대로 간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근무할 거예요.”
“네. 저희 화이팅하죠…!”
다행히 태연하게 대화가 끝났다.
우리는 풋풋한 신입처럼 서로 양손을 들어 보이며 화이팅 포즈를 취했다.
이후에는 영은 씨가 ‘신규조사반 백호 2팀’의 일을 소개해 주며 자연스럽게 화제가 돌아갔다.
‘후우.’
이후. 우리는 사무실 한편 책상 밑에서 하품하며 일어나는 요원을 보고 최대한 깜짝 놀라는 척하게 된다.
“요, 요원님?”
“아, 미안. 잠깐 눈 좀 붙인다는 게… 그쪽도 신입이죠? 둘이 벌써 친해졌네. 잘 해봐요. 나는 오늘 비번이라… 하암.”
“넵.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훈훈한 시선을 던진 후 요원은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꼬투리 잡힐 일은 없었다.’
감청…이라기보다는, 신입들이 귀엽고 궁금하고, 뭔가 도움을 줄 건 없나 해서 무심결에 듣고 있던 거 같긴 한데. 어쨌든 더 조심해야 하는 게 맞긴 했다.
‘…호 이사의 금제가 도움이 되긴 했군.’
나와 고영은 씨는 이후로도 관련 화제는 입도 벙긋하지 않으며 PC 세팅에 열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원들이 외근으로부터 돌아왔다.
“우리 왔어, 영은 씨!”
“팀장님.”
나는 고영은 씨의 옆에 붙어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백호 2팀의 팀장님은 매우 호탕한 인상이셨는데, 나를 보고 껄껄 웃었다.
“아, 이쪽이 그… 음, 신입사원이군!”
“…….”
방금… 나 파괴왕이라고 부르려다가 멈칫하신 건가?
이 사람들도 그 단톡방에 다 있었다면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별명이 된 걸지도 몰랐다.
‘하….’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차라리 백일몽에서 주임했을 때가 덜 창피했던 것 같다….
“바로 그제 구조 업무에서 귀환했잖아. 큰일 했다고 들었어요. 오늘은 뭐 별일 없이 저기 백호팀은 이런 일 하는구나~ 하고 있다가 가. 알았지?”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잡아둔 캐릭터 말아먹을 뻔했다.
나는 소심한 척 고개를 푹 숙이며, 백일몽 때처럼 미친 MZ식 대응을 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자, 자. 박하 요원님 옆자리에서 오늘 근무하면 되겠어!”
그리고 나는 오늘이 휴무일이라는 어떤 요원의 자리에 앉아 고영은 씨에게 업무 브리핑을 짧게 듣게 되었다.
후우.
“오늘 하실 업무는 괴담 조사인데… 현장에 나가는 건 아니고, PC로 작업하면서 이후에 문서 작업하는 방법까지 익히면 좋을 것 같아요.”
“저, 박하 요원님께서 알려주시는 겁니까?”
“네. 제가 이쪽 업무를 최근에 맡는 경우가 많거든요.”
고영은은 약간 갈등하는 것 같다가 덧붙였다.
“그, 저랑 함께 마트에 가셨던 요원분이… 음, 돌발행동을 하신 후로, 저한테 비교적 서류 업무 위주로 주시더라고요.”
아.
‘신입이 갑자기 물귀신 당해서 죽을 뻔했으니, 현장 업무에서 일단 떼어놓은 건가.’
물론 고영은 씨는 이미 백일몽 경력자이기에 빠르게 그 요원을 정신에서 손절하고 회복하신 것 같지만 말이다….
‘여기서도 아마 한 달 내로는 현장 업무에 복귀시키겠지.’
어쨌든 이대로 서류 쪽으로도 담당 업무를 잡다 보면, 강원도에 있다는 재난관리국의 비밀 서고에도 한 번쯤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되실지도 몰랐다.
‘…부럽다.’
내가 그 루트를 타고 싶었는데.
‘…아냐.’
아직 늦지 않았다.
‘이번엔 제대로 어필하겠다.’
마침 현장 출동 업무도 아니니까 딱 적임이었다.
내가 얼마나 괴담 관련 문서 작성에 능한지 보여주고 말리라…!
특히 말이다.
신규조사반의 서류?
‘그거 괴담 추적해서 작성하는 거잖아.’
나를 위한 일이다.
나는 웃으며 PC 앞에 앉았다.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근무 시간 동안 정보를 추적해야 할 괴담은….
[4번 출구의 빨간 옷에 대해 아시나요?]
인터넷 게시글 유래 괴담이다.
* * *
현대 인터넷은 도시전설의 배양기나 다름없다.
온갖 헛소문과 루머, 괴담이 판을 치고 참, 거짓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채 입과 입, 아니… 글과 글을 넘어, 영상과 영상을 넘어 퍼진다.
사람들은 자기 가치관에 맞는 대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흥미롭고 재밌으며,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이하고 재생성되는 끝에, 걔 중 몇 가지 이야기는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분명 거짓에서 출발했는데도 말이다.
가령….
지금 내가 조사하는 이 괴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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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출구의 빨간 옷에 대해 아시나요?]
최근에 지하철역 4번 출구 옆에 이런 걸 본 사람들 목격담이 계속 나옴
(사진)
팔을 두 번 묶어둔 빨간 옷
버렸다고 하기엔 상태가 너무 깨끗하고 또 색도 눈에 띄어서 이상한 느낌
그래서 장기 밀매 표시다, 귀신에 홀린 거다, 정신병자 짓이다 등등 말이 많았는데…
그렇다기엔 너무 여기저기 나타나고 사람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해둔 것 같은 느낌이라 무서움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쎄하다, 보고 나서 속이 안 좋거나 악몽 꿨다는 증언도 속출
(사진)
혹시 여기서도 본 사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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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2개월 전에 처음 나타난 가장 유명한 판본이었다.
지하철 4번 출구에서 어딘가 수상쩍고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괴담.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물건을 괴이한 방식으로 접할 때의 스산함과 상상력의 공포가 결합된 목격담이다.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퍼지며 비슷한 목격담이 속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2개월 후인 지금.
도시전설은 공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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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출구 빨간 옷 건드리지 마]
무속행위용 미끼라는 증언 계속 나옴
만지는 사람한테 귀신 붙게 하려는 것 같대
-일부러 사람들 유인하려고 빨간색으로 해둔 거야… 건드리지 마세요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위험할걸. 저 옷 니 옷이라고 귀신이 착각하게 만드는 용도 같은데. 기 약한 사람은 가까이서 쳐다보는 걸로도 안 좋은 거 옮을 수 있어
-못 본 척 지나가시면 됩니다. 관심 두지 마세요. 옷에 누가 있어요.
-팔만 두번 묶어둔 거… 아 느낌 안 좋은데 저거 내가 아는 의식 맞으면 일반적인 무속인이 쓰는 방법 아님…
-저거 사람 많은 곳에 가져다두면 안 되는 물건인데 무슨 살을 맞으려고 저러지
-옷 뜯어보면 분명 머리카락이나 지전 같은 거 나올 거다 근데 확인해 보겠다고 건들면 병신인 거 알지?ㅋㅋ
내가 발견해서 캡쳐한 것만 이 정도임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제로 어떤 사람이 옷 안에서 머리카락이랑 종이 찾음…
(사진)
뭔지 모르겠는데 진짜 너무 느낌 이상함 다들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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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추천수가 많은 댓글은 이것이다.
-저기 캡처에 옷 확인해 본 사람 연락 두절됐다고 함..
└진짜임?
└미친
└진짜야 자기 나름 소금도 뿌리고 무슨 굿? 같은 것도 했다는데 소금 다 탄 거 인증글 올라오고 그 후로 소식 없음
└하ㅠㅠ
└X발 개무섭네ㅋㅋ
더 살벌하고 으스스한 증언들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온갖 곳의 댓글 창과 인용글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연락두절됐던 사람 부고 떴다는데 이거 진짜야?
-이거 그거네 빨간 옷 주웠던 위튜버가 자기 병원 입원했고 자꾸 악몽 꾼다고 도와달라고 글 올렸잖아
-X나 무섭다 X발 대체 누가 하는 짓인지는 못 밝힘?
-사람이 두고 가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하는 무속인도 나오고 있음
여기까지 읽으면 정말로 섬뜩한 반전이 있는 실화 괴담으로 느껴진다.
아직도 지하철 입구 곳곳에서는 붉은 옷이 발견되고 있고,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도 없어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만 계속 공포에 떨며 희생자가 나오는 걸 지켜보게 되는 그런 괴담.
다만 소강하지 않는다.
현재진행형이니까.
-연락두절 케이스 하나 더 추가.. 이거 신고해야 할 것 같은데
-서울 아닌 곳에서도 발견된 빨간 옷 (사진) 이거 모방범일까 진짜일까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공포담을 약간의 흥미로 소비하던 사람들은 점점 더 피부로 와닿는 괴이함과 섬뜩함이 무서워 현실적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공권력.
-경찰 신고해도 딱히 뭐 안 해준대요 사실 그냥 옷이니까ㅠㅠ
그리고 경찰 중에서도 이거 정체 아는 사람 많아서 꺼리는 분위기고요 주로 나이 많은 경찰분들이 그렇대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예전부터 이런 경우 제법 있었나 봄
공론화.
-뉴스 제보 같은 거 안 됨?
└제보 해봤는데 그냥 아침 뉴스 끝에 인터넷 화젯거리 이러고 끝이다 실제 실종자 있다고 했는데도 호들갑 떠는 백수 취급하네ㅋㅋ아ㅋㅋ
그리고 더 현실적인 목격담들.
-역무원한테도 말해봤는데 사실 출구 밖에 있는 거라 역 소관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저께 사람들이랑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거 봤어 (동영상)
-어떤 사람이 빨간 옷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쓰러짐 근데 아무도 안 도와줘서 어떤 어르신이 부축해서 구급차 신고해 주셨는데 저분도 무슨 일 있으면 어쩌지? 계속 신경 쓰인다…
-빨간 옷 자꾸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지마 간접적으로도 영향 주는 것 같아
그리고 마침내, 재난관리국에까지 이 인터넷 도시전설이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인터넷 괴담의 대부분은 우연과 착각, 그리고 ‘믿고 싶은 심리’가 맞물려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처음에는 재난관리국도 그렇게 접근했던 것 같다.
문제는….
‘4번 출구의 빨간 옷’을 목격한 요원이 접촉 및 샘플 수집을 시도.
이후 정신을 잃고 닷새간 혼수상태. 몽유병 증세. 도깨비불이 적대적으로 반응. 정신을 차린 후 ‘빨간 옷을 입어야 해’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진술.
이후 투신.
이 괴담이 실제라는 걸 확인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 모든 소문이 그대로.
진실이었다.
요원은 기억 부분 소거 시술로 안정 상태. 현재 입원 치료 중.
‘4번 출구의 붉은 옷’을 초자연 재난으로 등록 논의 중. 더 많은 사례 확인 요망.
그리하여 나, ‘포도 요원’은 인터넷에서 이 4번 출구의 붉은 옷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사실상 이미 등록은 기정사실이고, 등록에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만 인터넷에서 더 따오라는 거다.
좀 으스스하고 무섭겠지만 현장 업무에 비하면 그냥 괴담 읽는 수준의 난이도일 뿐이다.
정말 신입 교육용, 쉬어가는 업무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면 아쉽지.’
분명 말했지 않은가?
나는 서류 업무에 더 강하다고.
그리고… 인터넷 괴담을 문서로 정리하는 것?
‘이건 진짜 내 전문이지.’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씩 웃으며 PC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