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44화
세광특별시 괴담.
재난관리국에 의해 멸형급 초자연 재난으로 지정된 초유의 사태로, 특별시 하나가 통째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다시 인지하지 못하도록 격리된 구역.
그런데 내가 그 세광특별시 한복판에서, 그것도 세광역에서 눈을 떴다.
사람 모습이 된 채로 말이다.
“…….”
이게 대체 뭐지?
어두운 승강장 바닥에 멍하니 앉아서, 나는 반사적으로 대화 상대를 떠올린다.
그 어떤 미친 상황에서도 일상적인 회화가 가능했던 존재.
‘…브라운?’
…….
…….
응답이 없다.
‘안 돼.’
틀어막아 두었던 불길함과 초조함이 스멀스멀 머릿속에서 퍼지기 시작한다.
‘그’ 브라운도 못 쫓아오는 곳이라면, 지금 나는 대체 어떤 상태….
[오, 친구가 나를 부르는군요!]
“…하.”
자리에 뻗을 뻔했다.
다행이다, 진짜.
[저런, 노루 씨.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많이 놀랐나 보군요. 사실 이 브라운도 다소 당혹스러운 사태였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지요. 우물을 통한 이동이라! 그것참… 토속적이라고 할지.]
신랄함도 여전하구나….
[그렇지만, 오, 축하합니다.]
응?
[근사한 둔갑술이야 아닙니다만, 원하던 외양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
‘내가 사람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왜?
‘세광특별시에 진입한 게 트리거인가?’
실감이 안 나서 그런지 얼떨떨함이 크지만, 그래도 유리창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볼 때, 맨손을 만질 때 느껴지는 짙은 안도감만은 부정할 수 없다….
‘옷차림은… 정장이네.’
익숙한 회사 출근 복장이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손으로 얼굴을 몇 번 더듬은 뒤 심장을 진정시켰다.
내가 맞다.
…익숙한 나.
울컥하는 감격 같은 것이 스친다.
나는 숨을 고르며 간신히 그것을 삼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텁.
“…!”
팔이 잡혔다.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던 자가 내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것이 보인다.
그리고 떠지는 눈.
“…….”
“…….”
“…포도야?”
“요원님.”
최 요원의 눈이 커진다.
그리고 다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어깨를 잡아서 이리저리 돌린다.
‘억.’
변형된 부분은 없는지,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심지어 도깨비 등불까지 들어 올리려 했으나 곧 등불이 손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칫한다.
‘우물에 두고 왔지.’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내 오염을 감지하는 행방 막대까지 써가며 내 상태를 어떻게든 알아내려 한다.
나는 약간 초조한 채로 물었다.
“멀쩡한가요?”
“…….”
최 요원이 어깨를 꽉 잡는다.
“멀쩡하다, 포도야….”
“…….”
나는 숨을 참았다.
“아니, 그 우물에 무슨 회복 기능이 생겼나? 아니… 하.”
최 요원의 얼굴에 혼란, 의심, 기쁨이 얼룩진다.
스파이로 밝혀진 팀원의 회복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모습에 고마움과 동시에 죄책감이 들었으나, 그것도 길지 못했다.
상황이 말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
“아무래도 어디 다른 도시로 보낸 모양인데, 지하철? 음, 어디 보자….”
세광교통공사
세광역
“…….”
여유를 가장하던 최 요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세광.
“혹시,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
일상에서 들어본 적 없는 도시와 역명.
그렇다면 요원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긴 초자연 현상 속이다.
“포도야, 사람들 깨워. 당장.”
나와 최 요원은 당장 몸을 낮추고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나를 보자 자신의 볼을 치려고 해서 황급히 말린 청동 요원,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게 방긋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킨 이성해 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제 대리님.
“…분명 넣었는데.”
최 요원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리님을… 간이 유리 감옥에 수감했었던 건가?’
그런데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수감이 풀렸다면, 정말 심상치 않다.
나는 직접 은하제 대리를 깨웠다.
“잠깐… 노루야?”
“대리님.”
나는 일어나는 은하제 대리에게 다급히 물었다.
“혹시 호 이사와 연결되십니까?”
“…잠깐만.”
은하제 대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지 잠자코 들고 있던 구슬을 확인했다.
그리고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니, 안 된다.”
“…….”
더 느낌이 안 좋… 아냐. 오히려 잘 됐다.
내 정보의 출처를 얼버무릴 수 있으니까.
“여러분.”
나는 깨어난 사람들을 돌아보며 빠르게 말했다.
“호유원 이사가 찾던 곳이 바로 이곳인 것 같습니다.”
“…….”
“예?”
나는 손으로 ‘세광역’을 가리켰다.
“세광특별시라는 이 도시 전체가, 바로 그자가 찾던 멸형급 재난입니다.”
“…!!”
이성해 대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백일몽으로 따지자면 심연급인 건가여?”
“분류 체계는 다르지만, 그럴지도 모릅니다.”
“오오.”
하지만 감탄한 건 이성해 대리뿐이다. 모두 얼굴이 굳어 있다.
다만 은하제 대리만은 호 이사의 프로젝트를 하며 대충 사정을 알고 있었던 건지, 날카로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을 뿐이다.
“노루야. 그럼 네가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것도 이 어둠 영향일 수 있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가능성 있는 것 같다. 이거 봐라.”
“……!”
은하제 대리가 손을 들어 올렸다.
행맨에서 사라졌던 한 손이… 멀쩡한 모습을 드러낸다!
“대리님, 손이….”
“그래. 도로 생겼다.”
씩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은하제 대리는, 그리 기뻐 보이진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뭔가 조건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쓰읍. 너무 좋기만 하단 말이지. 정말 최고 등급 어둠 맞냐? 그럼 이 정도가 아니라 진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시궁창이어야 맞을 것 같은데.”
그건….
“일단 제가 아는 건… 세광특별시에서 무언가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고, 그것 때문에 시가 완전히 봉쇄되었다는 점입니다. 재난관리국에서 이 특별시의 존재를 지울 만큼….”
“잠깐만.”
두 요원의 얼굴이 굳었다.
“관리국에서 뭘 했다고?”
“예.”
나는 침을 삼키며, 최대한 침착하게 아는 사실을 서술했다.
“제가 알기로는, 도저히 사태를 걷잡을 수 없어 결국엔 일종의 강력한 주박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세광특별시를 인지하지 못하도록요.”
“오오… 가능한 일인가여?”
“…….”
청동 요원의 입이 열린다.
“가능하긴, 합니다만.”
“후우.”
최 요원이 머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둘은 이론적으로는 이게 가능한 ‘무언가의 의식’을 딱 특정해 몇 가지 떠올리고 있는 듯하다….
“제가 알기로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물론….”
“그래. 진짜 했으면 끝나고 요원님들 기억도 싹 지웠겠지. 아무튼 노루야. 계속 설명해 봐라.”
“……예.”
청동 요원이 입을 달싹였으나, 곧 최 요원의 제지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무서운 상황인데도 생각보다 저희의 환경이 괜찮은 건, 이곳이 지하철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내 얼굴을 확인했던,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유리창을 가리켰다.
“…저걸 보시겠습니까?”
그 어둠 너머.
상대식 승강장이라고 불리는, 중간에 선로를 두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두 승강장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가 있다.
이 승강장의 선로, 그리고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의 선로와… 그 너머의 반대방향 승강장이 보인다.
그곳은.
“다 무너져 있네.”
다 부서져 철골이 드러나고, 무너진 계단에서 콘크리트가 쏟아져 있다.
괴리감이 들 정도로 차이가 난다.
깔끔한 이 승강장과의 대비감.
그리고 반쯤 무너진 그곳의 스크린도어 유리창에는….
살려주세요
SOS
제발
엄마 사랑해
수많은 글자로 뒤덮여 있다.
피와 먼지, 오물로 남긴 구조요청과 다잉 메시지투성이.
반대편에서 남겨서 거꾸로 적힌 글자들.
“…!!”
도시를 덮쳤던 압도적인 재난의 흔적에 몸이 얼어붙는다.
‘하.’
그리고 떠올린다.
세광특별시가 멸형급 재난으로 봉쇄되는 과정을 기록한 문서.
그 첫날.
‘주민 다수가 지하철 역사로 도망쳤으나 입구가 무너져 다들 그곳에 갇혀 있다. 바깥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통화 내역이 기록되어 있으나 자세한 현장 상황은 판명 불가.
‘지하철이라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 있었으니, 당장이라도 수색 작업을 개시해야 합니다!
-해당시 현장 요원의 주장 (기각됨)
“…재난에 휘말린 세광특별시에서 마지막으로 구조요청이 발신된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지하철 역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바깥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할 확률이 높다는 거다.
그게 세광역이라고 정확히 묘사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갑자기 사람들과 함께 멸형급 재난 한복판에 떨어진 것보단 낫겠지.
‘그래 봤자일 확률이 높지만….’
후우.
위키를 떠올리자 입 안의 침이 마른다. 공복과 갈증까지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그러니까…….”
잠깐만.
“요원님?”
“오케이.”
한숨을 쉬던 최 요원이 어느새 스크린도어 문을 차분히 개방하려 시도 중이었다.
“요원님?”
“잠깐 살피고 올게.”
“아. 반대편 체크할까여?”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둘 다 제발요!
“이 도시는 전체가 멸형급 재난으로 완전히 망해서 봉쇄된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다급히 다가가서 둘을 막아섰다.
“사람들이 여기로 도망쳐 내려온 게 분명한데, 반쯤 무너진 곳으로는 가지 않는 게 안전할 것 같습니다. …바깥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 최 요원이나 이성해 대리의 발상은 이거다.
‘어차피 정보가 없으면 뭘 해보긴 해야 한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리고 여차하면…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그나마 여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
“포도야.”
최 요원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따악.
내 이마에 딱밤을 갈겼다.
“…!”
으아악!
“포도는 내가 무슨 자살희망자로 보이는 걸까요? 당연히 조심히 확인만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지.”
최 요원은 웃는 얼굴임에도 상당히 빡쳐 보였다….
하지만 숨을 들이켜며 결국 안도로 수렴된다.
“너야말로 여기서는 돌발행동하지 마. 제발 좀.”
“…….”
“그리고 재관이 너도!”
“솔직히 저와 청동 요원님보다는 요원님이 더 돌발행동을….”
“어허.”
헙.
나는 재빨리 최 요원의 딱밤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청동 요원에게 공감의 눈빛을 보냈으나, 도리어 정말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대로,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합니다.”
살려주십쇼.
나는 한숨을 참으며 이마를 문질렀다.
…이런 통증은 또 오랜만이긴 했다.
“그럼 일단 다 경험자니까 같이 이동하는 걸로 하고, 각자 상태 좀 점검할까요?”
“예예.”
어쨌든, 우리는 아직 비교적 ‘분위기가 괜찮은’ 이 승강장에서 챙길 걸 다 챙기고 살필 걸 다 살펴서 계단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각자 몸을 점검할 때.
“직원님!”
이성해 주임, 아니, 대리님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직원님…이요?”
“아, 노루 주임님이라고 불러드릴까여?”
“아. 아닙니다. 노루로 괜찮습니다.”
“그럼 저도 대리 말구 돌고래로 괜찮아여, 노루 님!”
빙긋 웃은 이성해 대리님은 품에서 작은 야광별 스티커와 발포 비타민 통, 그리고 머리를 빗는 꼬리빗으로 보이는 것을 꺼내 쓱쓱 확인한다.
“음. 제 장비랑 아이템 몇 가지가 먹통이네여.”
“이쪽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거, 다른 곳에서 힘을 빌려오는 종류의 아이템들은 다 안 되는 것 같은데.”
“오, 추리 좋네여. 대리님!”
다들 멋지게 자기 장비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노루 님은 아이템 있으세여?”
“…….”
아뇨.
저는 거지입니다….
‘내 아이템…….’
전부 이자헌 과장님께 처분해 달라고 넘겼으니, 아마 남은 건….
[오. 내 머천다이즈가 있지 않습니까, 친구!]
그, 그래.
‘이건 있네.’
착한 친구도 아닌 짭이지만. 크읍.
[그대로 앞주머니에 넣어주면 되겠군요. 오, 좋습니다.]
나는 토끼 인형을 잘 꺼내서 다시 브라운의 요청대로 정장 앞주머니에 넣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성해 대리님이 엄지를 치켜들어주신다. 음. 감사합니다…….
‘이자헌 과장님은 잘 계시려나.’
그러고 보니, 사람으로 돌아왔으니까 이제 우주 쇼핑몰의 VIP 퍼스널 쇼핑도 다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혀 밑에 장착해 둔 ‘VIP 세포’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이것도 다른 곳에서 힘을 빌려오는 류라 안 되려나….’
어쨌든 멸형급 재난에 맨몸 5인팟으로 떨어진 당장은 쓸 수 없으니 일단 패스하자.
나는 그냥 한숨을 참으며 남들 따라 관성적으로 다시 주머니나 뒤졌….
‘…어?’
스마트폰이 있다.
“…!!”
나는 다급히 그것을 꺼내 들었다. 검은 직사각형에 그립톡이 달린 모양새.
내가 백일몽에 다닐 때 가지고 다니던 그것이다.
‘뭐지?’
황급히 스마트폰을 켰다. 놀랍게도 전원이 들어온다.
물론 전파는 닿지 않고 와이파이는 먹통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뜬다.
어둠탐사기록
위키 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전처럼.
“…….”
“아, 폰은 안 터지더라구요!”
“…예. 확실히.”
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성해 대리님께 대꾸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끄려다가… 무언가 깨달았다.
‘안 보이시는 건가?’
“저, 혹시 이 페이지를 읽어주시겠습니까?”
나는 갈등하다가, 어둠탐사기록이라는 단어만 뜬 페이지를 이성해 대리님의 앞에 조심스럽게 댔다.
하지만 상대는 고개를 기우뚱한다.
“딱히 읽을 건 없는데여? 아, 감상이라면 있져. 기본 바탕 화면이라 좀 심심하다!”
“…감사합니다.”
못 보신다.
‘나만 읽을 수 있는 상태인 건가.’
심장이 뛰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러면 확인이 훨씬 수월하긴 하지.’
나는 겨우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다시 확인하는 척했다.
그리고 다른 점을 깨달았다.
그립톡의 모양이 다르다.
‘금 간 게 사라졌어.’
마침내 다 고쳐진 건가?
게다가 ‘X’ 표기가 그려져 있던 그립톡의 가운데는, 황금빛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
뭐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그립톡 달린 스마트폰이 그간 어디에 있었는지도….
[정말 모릅니까, 노루 씨?]
[우리 조금만 추리를 해보지요. 친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장소, 하지만 당신과 항상 함께하는 곳….]
“…….”
아.
‘설마.’
상당히, 으스스한 추측이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
내 몸속.
…그립톡은 내 녹아내린 몸에 박혀서, 제복 속에 같이 뭉쳐 있던 것이다. 나는 그간, 계속 이 그립톡과 일치된 채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던 기묘한 편집 기능은, 그 능력은….
‘여기서… 기인했던 건가?’
머리가 얼얼해지는 충격과, 다시 몸이 녹아내릴지 모른다는 공포와, 직전에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해 내려는 머리….
지이잉.
“…!”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간신히 상념에서 벗어난 나는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새롭게 등재된 페이지
(1) 세광 지하철 노선도
어둠탐사기록에 위키에 새로운 페이지가 등재되었다는 알림이 떠 있다.
물론 익숙한 페이지는 맞다. 하지만….
‘이럴 리가 없는데.’
이 위키는 내 기억으로 구성된 거라 이런 게 뜰 리가 없는데.
당혹 속에서 손을 움직여 클릭한다.
세광 지하철 노선도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기이한 예감이 든다.
‘이건… 새롭게 고쳐진 그립톡의 기능인 건가?’
녹아내려 특수부서 직원으로 근무한 6개월간, 대체 이 그립톡은 어떤 것으로 완성되었을까.
“모두 점검 끝났으면 이동하겠습니다.”
“넵!”
나는 일단 아무것도 등록되지 않는 페이지를 그대로 두고,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심하자.’
사람 몸으로 돌아온 건 정말 좋지만, 동시에 그때 썼던 능력들이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사람 심리일 것이다….
5인은 베테랑들답게 소리를 내거나 돌발행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시야를 확보하며 승강장 계단을 오른다.
툭. 툭.
발걸음을 옮기는 차분한 진동만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윽고, 계단 위 저편이 보이기 시작하자….
숲이 펼쳐졌다.
“…!!”
그곳에는 음울한 조도의 거대한, 안개 낀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지하철 역사의 구조물들. 소화전, 점자타일, 에스컬레이터, 안내판, 거울, 그리고 조명 달린 천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나, 이상할 정도로 크고 미로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 틈을 나무와 흙, 안개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데다가 안개 때문에 거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
“……잠깐.”
안개를 살짝 들이마신 최 요원이 인상을 찌푸린다.
“독성은 일단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호흡기 가리고 가자. 조금이라도 이상 나타나면 바로 승강장으로 복귀하고.”
“예.”
“안내게시판 같은 것부터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역이 있는 초자연 재난은 규칙성 있는 괴담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좋아. 그럼 선발대 지원하실 분? …아니, 다들 진짜 적극적이십니다. 다 스카웃감이야, 진짜.”
방어용 장비 다 갖춘 고인물들끼리 움직이니 이런 일이 생긴다.
결국 모두 함께 안내게시판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무 틈으로 발을 들이민다.
바스락.
메마른 낙엽이 발밑으로 밟히며 건조한 소리를 낸다. 어딘가에서 음울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곧 안내게시판은 아니지만 거대한 표지판 하나를 발견하긴 한다.
“아.”
벽면에서 덩굴 식물과 나무로 둘러싸인 그것은, 역명판이었다.
승강장에서 봤던 것과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광고도 표기되네.”
“광고여?”
“어어. 왜. 지하철 역명 파는 거 있지. 진짜 역명 옆에 병원이나 회사 같은 거 표기해 주는 거 있잖냐. 지하철 공사에서 수익성 때문에 파는 거지.”
그렇다.
주로 광고효과를 노린 표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곳의 표기되는 역명은….
세광교통공사
세광역(임종의 숲길)
“…….”
“…….”
모두가 직감했을 것이다.
절대 정상적인 ‘광고용 역명’이 아니라는 것을.
그 순간.
지이잉.
‘…!’
나는 다급히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보았다.
위키가 업데이트되었다.
세광 지하철 노선도
– 세광역 (임종의 숲길)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세광역.’
숨도 안 쉬고 클릭했다.
세광역 (임종의 숲길)
목매단 나무의 숲이라고 불리는 세광특별시의 지하철역.
재난의 날에 이 역으로 대피한 사람만 추산 칠천 명에 이르기에, 대피자들의 거점이 되었다.
‘목매단 나무의 숲…?’
거기까지 읽은 순간.
툭. 머리에 무언가가 닿았다.
“…….”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간, 이동 중에 나무에 너무 가깝게 닿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스마트폰을 보며 잠시 정신이 팔려서 나무에 살짝 몸이 기울며 늘어진 것에 부딪힌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내게 닿은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의 생김새를 다시 보았다….
사람의 발이었다.
“…….”
“포도… 잠깐만.”
“오, 여기 시체가 있어여. 노루 님 머리 위에여.”
나는 깨달았다.
얇은 나무와 굵은 나무가 번갈아서 빽빽이 서 있던 게 아니다.
얇은 나무의 정체.
나무마다 굵은 나뭇가지에 목매단 시체가 달려서, 비쩍 마른 채 흔들리고 있었다….
“전부 시신입니다.”
“이거 목을 매단 것 같은데.”
그리고 연달아 깨달았다.
내가 사람이 됐다는 건, 무서운 걸 못 보는 공포도 다시 느낀다는 뜻이라는 걸.
다시, 쫄보가 됐다는 걸…!
‘조졌다.’
“저희 주변도 좀 확인할까여?”
“좋지. 노루야. 넌 네 머리 위에 있는 거 봐라. 오, 맨발이네.”
“…예.”
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