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93화
다리가 후들거린다.
실종 사고가 많아서 진입 금지된, 인터넷과 사람들의 대화 속에 이상한 소문으로 떠도는 산 밑 터널을 야밤에 본다.
스산한 도로 끝.
가로등 하나가 음산하게 그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 그림자를 의미 없이 비춘다.
‘하.’
저기 들어가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밤새 걸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시하면서, 계속 해라.
‘아니, 이게….’
그간 130666의 상태로 공포를 둔탁하게 느끼다가, 혹은 세광특별시에서 백스토리 있는 대규모 재난 사태식 괴담만 겪어서 마비되었던 감각이 주먹을 갈겨맞은 듯이 되살아난다.
맞다.
너 X나 쫄보지…!
“자, 들어가져!”
“…예.”
정말 오랜만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
하지만 이 동요가 땀을 뻘뻘 흘리거나 뒷걸음질 치는 식으로 표출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긴 했다.
파충류 외계인의 몸은 감정에 쉽게 호도되지 않았다.
‘이자헌 과장님…. 감사합니다.’
바디스위칭 호러 무섭다고 섬뜩해 했던 게 거짓말 같다.
아니, 솔직히 이성해 대리님에게는 내가 겁쟁이인 게 들키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날 마무리팀에 처박았어야 한다며 경멸할 것 같진 않단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인선이다.
“…….”
“왜, 왜요.”
“너 진짜 운 좋다.”
“…?!”
“재밌는 일마다 빠지질 않네.”
나는 빙긋 웃으며 백사헌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둘한테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어둠에 진입한다니… 재밌지? 돌고래 대리님께 감사하다고 해야 하지 않나?”
“…….”
“안 해?”
“감사합니다.”
“넵. 딱히 그쪽 좋으라고 한 건 아니지만여!”
백사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으나 입을 다문다. 좋아. 이렇게 몰아치면서 다른 의심을 하지 못하게 만들자.
그래야 내가 혹시라도 주저앉거나 뒷걸음질 쳐도 ‘저것도 날 압박하려는 미친 짓이구나’하고 오해 해주겠지.
‘하….’
이 짓을 또 하게 되다니.
“그럼 이제 들어갈게여! 손전등은 일행 중 하나만 켜야 하구… 제가 가진 게 있으니까 켤게요.”
“예.”
터벅, 터벅.
우리 세 사람은 버려진 터널로 걸어들어갔다.
“…….”
습기 찬, 곰팡이냄새가 난다.
이끼가 자란 돌과 시멘트. 그리고 한때 전력이 공급되었던 흔적.
이성해 대리의 손전등 불빛이 터널 안을 비춘다.
[이런, 환풍기까지 녹슬었습니다. 버려진 지 꽤 됐나 봅니다. 폐허가 따로 없군요.]
그래.
그리고 나는 폐가나 폐시설에 담력 시험한답시고 와서 무서운 이야기 해대다가 실종 당하는 인간을 리얼 체험해 보고 있고 말이지….
‘으으으윽.’
손전등을 든 이성해 대리님이 왼쪽에, 중앙에 백사헌이, 그리고 맨 오른쪽 끝자리에서 내가 걷고 있다.
제발 제가 손전등 들면 안 되겠냐고 빌고 싶지만 참고 있다.
심지어 서다 보니 손전등에서 가장 먼 끝자락이다. 하…….
‘중간에서만 걸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아무도 없는 오른쪽이 휑했다.
하지만 바꿔 달라고 할 이유도 마땅치 않으니, 나는 꾹 참고 걸었다.
“자, 그럼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여?”
태연한 척하자. 태연한 척.
“무서운 이야기의 판정은 어떻게 됩니까?”
“그냥 적당히 인터넷에 괴담이라고 올라오는 정도 같아여. 오싹하거나 끔찍하거나?”
후우.
“중요한 건 밤새 하는 거니까, 천천히 이야기하면 돼여. 걷다가 좀 멈춰서 쉬어도 잠드는 것만 아니면 큰일 없었다고 하구요.”
일단 잠들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기절할 걱정이면 모를까.
“그럼 저부터 해볼게여.”
“예.”
터벅, 터벅.
“음… 이 터널에서 실종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예.”
하필!!
“소문으로는 이 터널이 교통사고가 잦은 곳이었대여.”
“…….”
발소리가 울린다.
“여기 인근에 다른 신식 터널이 있거든요. 왕복 차로가 있는 양방향 진입 터널인데, 밤중에 산길 도로에서 그 터널이라고 착각하고 여기로 역주행하는 차량이 꽤 있었나 봐요.”
어두운 터널을 비추는 손전등의 창백한 불빛.
그리고 터널에서 웅웅거리며 울리는 이성해 대리의 목소리.
“신기하져? 보통 내비게이션을 보니까 그런 일이 드물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이 터널만 그런 ‘실수로 길을 잘못 드는’ 사고가 잦았대요. 그리고 어느날 밤에도….”
이성해 대리의 손전등이 움직인다.
“산의 안개 속에서 실수로 역주행하던 차량이, 경차를 쳐버린 거죠.”
끼이익- 쾅!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묘하게도, 손전등이 비추는 저 앞 도로 바닥에는 타이어가 쓸린 듯한 자국이 남아 있다.
“사고 현장은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되어 수습됐대요. 뺑소니였던 거죠. 그런데 이상한 점은… 차만 남아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건….”
“차 안에 사람이 없던 거져.”
마치 그 형상을 상상하며 그리듯, 손전등이 터널의 도로 위로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사고당한 경차의 운전석뿐만 아니라 모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대요. 남은 건 에어백이랑 깨진 유리창, 그리고….”
“…….”
“혈흔과 손자국이었고요.”
서늘한 느낌이 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번호판도 사라져서 경차 탑승자들의 신원은 아주 나중에야 파악됐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던 일가족이었대요. 그리고….”
“…….”
“그 사고 이후로, 실종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터벅, 터벅.
거침없이 걷는 발걸음을 쫓는 내 발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
“낮이든 밤이든 이 도로에 인적이 드물 때 진입하면, 사람이 사라졌대요. 그리고 실종된 사람들은 가끔 마지막으로 문자나 통화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
“매번 같은 말이더래요.”
터벅.
“꼭, 앞에 사고가 난 경차가 있고, 탑승자가 유리문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
“그리고 어깨를 잡는대요.”
탁.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이렇게요.”
간신히 고개를 돌리자, 손을 쭉 뻗어 내 어깨를 친 이성해 대리가 나와 눈을 마주하고 싱긋 웃었다.
“물론 전부 소문이지만여!”
하.
“어때요?”
“…정말 상황에 잘 맞는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울뻔했다.
너무 잘 맞다 못해 뒤에서 귀신이 따라오는 것처럼 스산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손전등을 들고 있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들고 있었다면 조명 효과처럼 진동을 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알던 이야기라 살았지.’
강령읍 터널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D-2076.
■■시의 산 중턱에 위치한 길이 2076m의 편도 터널로, 강령읍이라는 단어는 행정구역상의 공식 명칭이 아니며 인터넷에 괴담 소문이 돌며 붙은 별칭이다.
정식 명칭은 ■■고개 터널이었으나 역주행 뺑소니 사고 이후 폐쇄되며 더는 해당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괴담 속 사고는 해당 문서를 참고.
진입 시, 하룻밤 내내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터널을 걸어야만 출구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절대로 뒤돌아 뛰거나 단독 행동을 하면 안 된다.
“…….”
이게 대체 왜 안전합니까, 대리님…!
아니, 물론 강심장이 평균인 현장탐사팀 인간들이라면 개꿀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긴 하지만.
‘여기서 밤을 꼴딱 새우고 밥 먹으러 가자 이겁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으나, 결국 나는 백사헌이 다음 순서를 이어받아 ‘무서운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을 들었다.
“…적당히 무서우면 되는 겁니까? 뭐, 그럼.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리고 이어진 백사헌의 이야기는 이성해 대리님만큼 상황상 끔찍하진 않았다.
어떤 시골집에서 이상하게도 딱 맞게 필요한 조언이 든 노래가 재생되는 이상한 카세트가 든 플레이어를 발견한 여자아이의 이야기였다.
“동생 생일선물을 고르거나, 싫어하는 어른들을 피해서 숨어 있을 타이밍을 알기 딱 좋았다고 하던데요. 문제는… 뻔하지만 내용이 점점 이상해졌다는 거죠.”
어느 순간 노래 가삿말은 점점 섬뜩하거나 과격해졌고, 무서워진 아이는 결국 플레이어 안을 열어서 테이프를 버리려고 했는데….
“그 플레이어 안은 처음부터 텅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
“끝.”
“오. 근데 그게 뭐가 무서운 거예여?”
무서웠는데요.
나는 가까스로 변호했다.
“음. 충분히 섬뜩한 초자연적 이야기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닷. 자, 그럼 이번에는 고양이님 차례!”
잠깐만.
“고양이님…이요?”
“넵. 가면이 검은 고양이시잖아요.”
“음. 예.”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가면 형상이 단순히 고양이라기보다는 좀 더 대형종 같은 느낌이지만… 뭐, 상관없긴 하다.
‘겹치지만 않으면 되지.’
애초에 이 가면이 어떤 기재로 이 형태를 보여준 건지도 잘 모르니 말이다.
-현장탐사팀 가면이랑 비슷해요. 인지 저하 기능인 거죠. 하하.
…마치 내가 입고 있는 보안팀 제복처럼, 호유원이 따로 빼돌려 개량 중이었던 장비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제 내 차례라 이건가. 후우.
[오,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가장 짜릿한 이야기를 말해봅시다. 친구!]
그보단 말하다가 무서워지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하자….
“그럼 제가 할 이야기는….”
“뭐야.”
“…!”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성해 대리의 손전등이 비추는 도로 저편에서 정장을 입은 다른 인영들이 보였다.
‘다른 현장탐사팀…!’
두 사람. 그리고 그중 하나는 눈에 익은 실루엣이었다.
포니테일의 호리호리한 장신 여성.
“엥? 대리님!”
바로 정예팀 A조의 진나솔 대리였다.
“먼저 들어가셨다더니,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여.”
“그래?”
진나솔 대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합류한 김에 동행해. 보다시피 문제가 생겨서.”
그리고 자신의 옆에 선 일행을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 아무래도 그 직원의 행태가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익숙하다….’
칼손절이 현장탐사팀 정예다웠다. 나는 진나솔 대리님과 동행하던 곤충 가면의 직원을 안쓰럽게 잠깐 쳐다보았다.
그러자 나비 가면 아래 시선이 가늘어지며 나를 본다.
“그쪽은 뭔데.”
“아, 여기도 우리 회사 직원분인데, 본사 현장탐사팀은 아니구여, 정말 착하고 유능하세요!”
“그래?”
그리고 날카로운 눈이 나를 훑듯이 본다.
“직급이?”
“저보다 높으세여!”
“그러니까 정확히 어떤데.”
“음. 아무래도… 조장님 비슷하져?”
예?
“맞잖아요. 프로젝트팀에서 리더 같은 역할이시니까여!”
가면 아래 눈빛이 변했다.
“…호 이사님의 프로젝트팀?”
“넵!”
“흠.”
나는 최대한 차분히 대답했다.
“조장님이라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고양이’라는 호칭으로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대리님보다 이 회사를 오래 다니진 않았을 겁니다.”
“…그래?”
“예.”
“그럼 그렇게 해.”
그리고 진나솔 대리님의 시선이 떠났다.
나는 남몰래 침을 삼켰다.
‘오랜만에 뵙네.’
괜히 긴장된다. …은하제 대리님이 별관 진입하려고 진나솔 대리님 흉내 내던 게 떠올라서 그런가?
‘그거… 들켰으려나.’
아니, 일단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장은 괴담 속에서 가면을 쓴 나를 만나서 못 알아보시고 있으니까.
‘그냥 반가워나 하자.’
인원이 늘어주다니.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니. 최고다.
아니, 애초에 왜 이놈의 회사 직원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서로 팀을 나눠서 들어가고 난리란 말인가.
최대한 정원을 다 채워서 다 같이 손잡고 들어가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단 가지.”
“넵.”
진나솔 대리는 이성해 대리의 옆에, 그리고 곤충 가면의 직원은 내 옆에 섰다.
감사합니다. 아마 나비 대리님과 멀어지고 싶어서 그러신 거겠지만, 저는 덕분에 드디어 샌드위치 신세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도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새로 합류한 대리님부터 가시져.”
“귀찮게.”
하지만 진나솔 대리는 결정된 건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진행했다.
“어떤 멍청이가 목재옷장 하나를 중고로 샀는데, 그 옷장 주변에서 자는 사람은 모조리 가위에 눌렸거든.”
“오!”
“목수 불러서 열어보니 그 옷장 밑판에 이상한 부적이 끼어 있더라고. 근데 다음날, 목수가 그 옷장 안에서 목을 매단 채로 발견돼.”
으아악.
과연 현장탐사팀 정예팀답게, 직접 겪은 것처럼 살벌한 정통무속 괴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재난국이 와서 깽판 부리고 옷장을 가져갔지. 짜증 나게.”
…아니, 진짜 직접 겪으신 건가?
“이야기 끝.”
후우.
어쨌든 겨우 이야기가 끝났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고양이님!”
“예.”
그리고 나도 겨우 생각해 낸 ‘덜 무섭지만 대충 무섭다고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마지막은 아닙니다. 한 분 더 남았으니까요.”
“네?”
“제 오른쪽에 계신 분 말입니다.”
“고양이님.”
“지금 거기 아무도 없는데여.”
“…….”
어?
“지금 고양이님이 우리 중에 가장 오른쪽 끝에 서계세요.”
“…나비 대리님의 동행자분은요?”
“걔? 진작에 도망갔는데.”
…….
“나랑 같이 들어온 멍청이는 아까 뭘 봤는지 뒤로 돌아서 도망갔거든.”
아.
“그래서 너희랑 합류한 거잖아. 무서운 이야기 혼자 하기 목 아프고 짜증 나니까.”
…….
나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텅 비어 있어야 하는 내 오른쪽에는 분명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내 옆에서 걷는 소리.
그림자.
달칵.
뒤에서, 전조등 불빛이 나를 비춘다.
…망가진 경차의 엔진소리가 들린다.
“저기요?”
툭툭.
오른쪽 사람이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귓가에 속삭인다.
“여기 사람이 갇혀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