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00화
-60초 후에 생방송 시작됩니다! 59, 58….
긴장감에 손을 쥐었다가 편다.
주변을 둘러보면, 화사한 홈쇼핑 방송 스튜디오가 보인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용 시계도.
10:00
방송이 시작하면 줄어들 것이다.
주어진 10분 내로 얼마나 파냐에 따라서 생존 여부가 갈리는 홈쇼핑 서바이벌.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되다니.’
하지만 진정하자.
‘죽어도 괜찮아.’
되뇐다. 위험하지 않다, 위험하지 않다….
그냥 개꿈되는 거다. 아니, 오히려 죽으면 깔끔하게 꿈에서 깨어나고 좋지.
나는 옆을 보았다.
다른 스튜디오에 서 있는 내 일행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
우리 중에 누구든 최종까지 가서 받는 상금으로 아이템 쇼핑을 하면 그만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 둔 ‘쇼핑 편법’을 떠올리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한 명만 살면 돼.’
-3, 2, 1….
나는 카메라를 보았다.
-액션!
불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일일 쇼호스트, 기호 4번, ‘토크쇼의 친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러자….
카메라 옆의 프롬프트에 실시간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
-?이건 뭘 파는 거임?
-소금팥소금팥소금팥소금팥
-죽어
-미친 이게 뭐야ㅋㅋ 괴담 같네
-안녕하세요
-같이 있자좋아보여
어디로 송출되고 있는 거지?
드문드문 이상한 채팅을 읽는 순간 오싹함이 등골을 타고 올랐으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오늘 저희 망상홈쇼핑에서 저, 기호 4번이 판매할 상품은….”
고민했다.
‘혹시 일반 사람들이 살 수도 있다.’
되도록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안기지 않으면서, 빨리 팔아치울 수 있을 만한 것.
나는 직사각형 박스 하나를 책상 밑에서 꺼내어 올려놓았다.
회색 컨테이너를 작게 축소해 놓은 것처럼 생긴 그것은 지극히 투박하고 이질적인 디자인이었다.
“삼라만상 회사의 ‘진공 속으로’ 시리즈입니다!”
-예?
-방금 이 사람 씹덕같은 소리했어
-뭐라는 거야
이럴 줄 알았다….
‘하지만 주어진 보기에선 이게 정답이었어.’
이게 뭐냐하면….
진공 속으로
‘사망한 장군의 중요 신체 부위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다’라는 기묘한 광고 띠지가 붙어 포장된 장례용품.
전쟁 중 사망한 고위직 시체의 남은 일부를 장거리 우주여행 중 온전하게 이송하는 용도로 개발된 듯하다.
가끔 이미 사용되어 안이 차 있는 상태로 발견될 때도 있음. 해당 생물 ■■■■■■로 판명됨.
…나도 안다.
‘우주전쟁 장례용품을… 팔겠다고?’ 같은 생각이 들겠지.
실제로 홈쇼핑에서도 오랫동안 판매하지 않고 미뤄둔 건지 창고에 있는 적재량 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원래 중요한 건 셀링포인트다.
나는 진지하게 해당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며 카메라에 들이대면서 말했다.
“여러분. 이걸로 말할 것 같으면… 전설적인 밀폐용기입니다.”
-네?
-갇혀 죽어
-뭐래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이 안에 넣고 밀봉하기만 하면….”
나는 탁탁, 소리를 내며 컨테이너를 열었다가 닫았다.
“냉장보관해야 하는 식품들, 전부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습니다!”
-???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통기한이 극적으로 늘어납니다! 갓 잡은 생선을 넣어서 보관하면, 한 달 후에도 갓 잡은 그대로! 회로 즐기실 수도 있습니다!”
-미친
그렇다.
주방용품으로 팔아버릴 것이다…!
“그야말로 주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품!”
나는 미친 듯이 입을 털기 시작했다.
대용량으로 사면 더 질이 좋고 저렴한 걸 알지만 차마 기간 내로 먹을 자신이 없어 포기한 식재료? 이 컨테이너를 사면 된다.
너무 비싸고 좋은 식재료라 좋은 날에만 가끔 아껴먹고 싶었는데 상해버릴까 봐 그러지 못했다? 이 컨테이너를 사면 된다.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이 해준 요리를 오래오래 보관해 두고 싶었는데 상해서 버렸다? 이 컨테이너를 사면 해결!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템포 쉰다.
“본래 이게… 정가는 이백이 넘는 엄청난 고급 제품인데요. 이걸 하나, 둘, 셋… 무려 4개를.”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번 방송에서만 이 모든 구성을 단돈 53만 원에 모십니다!”
-오
-비싸!
-아니 근데 저 정도 할 것 같긴 했음
-금 바름?
-제발살려주세요저여기갇혔
-아니 대체 여기 뭐야? 뭘 파는 거예요 이게 과학적으로 말이 돼?
-착한 아이
-비싸지만 흥미 있어요
“여러분, 헤어드라이어 하나 가격입니다. 본래 시장의 선두 주자, 특허 기술을 보유한 물건, 삶의 질이 달라지는 물건은 이보다 저렴할 수가 없어요.”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도 저희 물량을 긴급 확보해서 이 가격에 팔 수 있는 겁니다. 진심이에요.”
-아니 근데 진짜 유통기간 정지면 저 가격도 파격가는 맞는 것 같어
-너무 멋져요
-인보관고하간싶어
-주문 들어갑니다
“무료 반품 기간도 완비! 한번 사용해보세요! 정말로 ‘유통기간 정지’, ‘상온 보관 가능’, 이런 마법 같은 효과가 없다면, 편하게 반품 가능합니다!”
나는 목청껏 외쳤다.
[내 친구가…. 오, 세상에.]
…민망하다.
민망하다…!
그러나 프롬프터 옆에 달린, 실시간 수량을 곁눈질하는 눈은 솔직했다.
‘좋아!!’
순조롭게 남은 물량이 쭉쭉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매진! 감사합니다. 오늘 준비된 수량이 전부 끝났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방송을 종료할 수 있었다.
01:45
‘후우.’
됐다.
-기호 4번! 브라운… 아니, ‘토크쇼의 친구’ 쇼호스트!
-오오, 첫 번째 순서로 매진이 뜹니다. 전량 소진! 성과가 대단합니다!
-아쉽지만 매출은 3위로 안착했고요. 저렴한 상품을 고른 한계입니다.
-그래도 상위권! 최저가의 혜성!
나는 2위에서 반짝이는 나의 순위 표지를 보면서 한숨을 참았다.
‘기왕이면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리고… 슬프게도 꼴찌는.
-기호 2번! ‘매의 눈’ 쇼호스트는 즉시 탈락입니다!
“뭐, 어쩔 수 없나.”
은하제 대리님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흘간 잠을 안 잘 수 있게 해주되 나흘째는 수면으로 날리게 만드는 ‘수면도박 코담배’를 팔아보려다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홈쇼핑 쇼호스트…… 안 어울리시긴 해…….’
그래도 이자헌 과장님이 가장 먼저 탈락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이한 디자인 센스와 미친 완력이 합쳐지며 묘한 어그로를 끌어 1위로 끝마친 모양이다.
“다들, 저 먼저 갑니다.”
-탈락자는… 허?
그리고 메인 쇼호스트가 움직이기 전.
우리에게 슬쩍 손을 흔들어 보인 은하제 대리님은 깔끔하게 쓰러졌다.
빠르게 안락사약을 복용한 것이다.
-…탈락의 충격이 정말 컸나 봅니다.
-안타깝지만, 역대급 특가 상품을 이 정도밖에 못 팔면 탈락이 맞죠! 어후, 여러분의 구매 기회를 뺏은 것 같아 눈물이 나네요!
바닥에 쓰러진 은하제 대리의 시체가 스튜디오 밖으로 재빨리 치워진다.
…찝찝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나, 그래도 은하제 대리는 이미 여기서 나갔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나는 계속 카메라를 보았다.
-그럼 이번 동시 판매 특가할인 홈쇼핑 대전, 1라운드를 종료합니다! 많은 성원 감사합니다!
그리고 라운드가 종료되었다.
“…….”
스탭들이 들어와서 스튜디오를 정리하고 망상홈쇼핑의 메인 쇼호스트가 그들과 뭐라 뭐라 대화하는 사이, 나는 남은 일행과 빠르게 소통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 좀 치워.
쇼호스트가 은하제 대리님의 시체에 손가락질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공손하게 말을 걸었다.
“아, 제가 치우고 올까요?”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이런, 브라운의 친구. 이런 일 하라고 있는 게 계약직들인데 그럴 필요가 없지!
-자, 일어나.
……지금.
시체가
왜
움직이지?
-저쪽으로 가서 대기.
은하제 대리의 시체가 몸을 일으킨다. 아니, 그냥 시체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
표정이 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당혹스러운 표정의 은하제 대리님이 몸을 삐걱거리듯 움직이며 나를 쳐다보았으나, 곧 이동한다.
죽은 몸을 이끌고.
그 소름 끼치는 괴이한 상황을, 공포로 얼어붙은 채 보았다….
-서바이벌 동안에는 그래도 재활용해야지. 인터뷰도 따야 하고 말이야.
뭐라고?
“죽…었지 않습니까?”
-그래, 죽은 채로 계속 쓰는 거야. 망상홈쇼핑 스튜디오는 합리적인 비용 절감을 무척 선호하는 편이지!
-송출료가 비싼 장소긴 해도 이런 건 또 잘 되는군! 고립된 곳이라 그런가? 일단 사지가 썩어서 떨어지기 전까지 잘 써보지!
잠깐,
잠깐… 잠깐만.
나는 그제야 청동 요원의 시체가 왜 남아 있던 건지 깨달았다.
세광특별시에서 이전에 우리가 죽으면서 남겼던 시체는, 다시 들어오면 보통 사라져 있다. 바로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다른 연유로 소실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다.
원래는 없어져야 정상인 것이, 이번에 남은 것.
‘못 떠났어.’
그러니까….
‘죽어도 못 나간다고?’
-보험 광고 끝나간다. 빨리 투입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나온 홈쇼핑 촬용 스튜디오에 다른 인영이 들어가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웃고 있는, 하얗게 분칠한 얼굴들.
단정한 차림, 세팅된 헤어.
전형적인 쇼호스트의 외관을 한 자들.
망상홈쇼핑 괴담에 속한 기이한 존재들.
-자, 기호 6번부터 10번까지. 여러분, 소개합니다! 망상홈쇼핑 서바이벌 다음 조입니다!
‘아냐.’
그러나 깨닫는다.
이 괴담의 주민이 아니다.
세광특별시 사람들이다.
이 망상홈쇼핑에 단기 알바를 하러 왔다가 잘못된 계약서에 사인하고 실종된 시민 중 ‘쓸 만한 것’은 망상홈쇼핑에서 계속 쓰고 있었다.
죽었든 죽지 않았든 계속.
말 그대로, 쇼 비즈니스에 영혼이 종속된 자들.
그리고 이어서 깨닫는다.
-이번 방송이 종료되면, 10명의 예비 쇼호스트 중 4명을 뽑을 겁니다! 최하위로 탈락한 둘을 제외하면, 넷이 더 탈락하는 거지요.
-그리고 네 명이 각각 영광스러운 최종 홈쇼핑을 진행합니다! 최저가, 다시 없을 구성, 특별한 사은품까지!
-채널을 고정해주세요! 망상홈쇼핑의 블랙프라이데이입니다!
‘참가자가 더 있었어.’
피가 식는 느낌이다.
‘우승자가 우리 중에 안 나올 수도 있다…!’
저 사람들이 우승하면 끝장이다.
우리는 다 탈락해,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로 이곳에 종속되어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일용직 계약서니, 하루가 끝났으니 내보내달라고 우기는 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 상태’ 그대로 멈출 것이다.
죽은 자들이니까.
“…….”
“이거 어쩔 거예요.”
내 옆에 다가온 백사헌이 거의 멱살을 잡을 것 같은 기세로 식은땀을 흘리며 속삭인다.
“이거 보니까 죽어도 못 벗어나잖아요. 왜 계약서 같은 걸 쓰게 만들어서…!”
“…….”
“무조건 1등 할 방법도 없잖아!”
나는 백사헌을 돌아보았다.
백사헌이 이를 악문 채로 나를 보았고, 나는 손을 뻗어….
“고맙다.”
“……??”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루님. 지금이라도 역에서 벗어날 길을 뚫어볼까여.”
“…아뇨. 위험합니다.”
그러다가 걸리면 ‘홈쇼핑을 망쳤다’ 같은 소리를 하면서 막대한 금액을 청구할지도 모른다.
“1등 할 방법이 있으니, 기다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음… 넵.”
[노루 씨…. 내 친구가 이런 천박하고 너저분한 광고 프로그램에서 시청자에게 제일 잘 팔아치우는 싸구려 호객꾼 역할을 해야 하다니, 오, 이럴 수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맞다.
나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했다.
[오, 그럼….]
그러니 자체적으로 도움을 수급하기로 했다.
[음?]
나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방금 떠올랐거든.
‘무조건 1등 할 수 있는 방법.’
천 아래, 피부에서 두근거리는 맥박과… 문신의 선이 느껴진다.
이 방송국 괴담을 만난 이후로 역동적인 감각이 느껴지고 있던 한 부위.
나는 문신에 정리해 둔 오염 하나를, 꽉 눌러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