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화
-외계인 쇼핑몰? 독특한 센스의 이름이군요! 그것도 온-라인 상점입니까?
아, 브라운도 불러냈다.
자기를 위해 낮에도 어두컴컴하게 커튼을 쳐줬다는 것에 감동하고, 기어코 그 마스코트 간식을 팔아버린 것에 감격하더라.
‘참 감격 지점이 낮은 친구야….’
사실 마스코트에게 받은 간식은 두 봉지고, 하나는 안 팔고 만일을 위해 간직 중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질문에 대답하자면….
“맞아.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거지. 전단지 같은 화면을 통해서 물건을 구경하는 거야.”
-아하! 그렇습니까.
브라운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되는군요, 과연 친구가 자주 이용하는 상점의 모습은 어떨….
<우주 쇼핑몰>
※외계에서 온 멋진 물건※~!!
>>나는 물건을 본다
-…….
-…?!
-대체 뭡니까. 이 미감이라고는 그 어디도 보이지 않는 추잡한 전단지는.
으음….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라 쓸모 아닐까.”
-맙소사! 노루 씨, 외양도 내면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1차적으로 시각적 효과란 말입니다!
-이런 흥미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단지 못생긴 전단지라니!
그래그래.
나는 그 말을 배경 삼아 사이트를 클릭했다.
……그래요, 노루 씨, 그래도 난 친구를 믿습니다. 당신이 괜찮다고 했으니, 분명 전단지 너머 내부를 살펴보면 괜찮을…….
물건
혈욕조 – ₩29,999,999
신비한 양초 키트 – ₩19,999,999
백설 공주의 사과 – ₩12,999,999
우리가 도움! – ₩66,666,666
※할인!※ 흡혈 식기 – ₩7,999,999
₩14,999,999
-…….
“브라운?”
반응이 없다. 졸도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착한 친구’는 디자이너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 아니, 괴물인 듯하다.
“괜찮아?”
-좀 쉬겠습니다.
그러셔요.
나는 물건을 살펴보았다.
일단 변하지 않은 항목들이 즉각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살 수 없는 ‘우리가 도움!’ 다음에, 무려 할인 품목으로 지정된….
‘아직 남아 있네.’
※할인!※ 흡혈 식기 – ₩7,999,999
₩14,999,999
다른 사람이 사가든, 알고리즘이 내 추천 상품 목록에서 빼든 다신 안 보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또 만나네.
‘내가 사갈 거라고 계산한 건가?’
좀 오묘했다. 어쨌든 다음.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고가의 물건은….
혈욕조 – ₩29,999,999
‘이건… 아까 연어 마켓에서 조각을 구하는 사람도 봤지.’
꽤 유명한 아이템이었다. 나도 무슨 아이템인지 기억났거든.
———————=
어둠탐사기록 / 망상홈쇼핑
/ 아이템
혈욕조
오늘은 놀라운 상품을 소개해드리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우리 홈쇼핑에서 자랑스럽게 보여드리는 놀라운 회춘의 묘약!
바로 젊음의 욕조입니다….
-20XX년 7월 7일 ‘망상홈쇼핑’의 물건 설명
———————=
타인의 피를 욕조에 부으면 아주 향기로운 입욕제로 변하고, 그 속에서 목욕하면 상처 치유, 피로 회복, 관절염 치료, 피부 미용 등의 효과가 있다.
‘전형적인 흡혈귀 괴담의 현대판이라고 할까.’
그리고 가격이 이 네임드 아이템의 위상을 고려해 보자면 기이할 정도로 괜찮았다.
하지만 입욕제로 변하든 말든 남의 피를 욕조에 붓고 목욕하는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이, 일단 다음.’
신비한 양초 키트 – ₩19,999,999
이건 모르는 아이템이었다.
그래도 양초라고 하면 불을 켜는 이미지가 생각나긴 한다.
불빛이라는 건 언제나 괴담에서 위안과 도움을 주는 상징물이었다.
‘그래도 이천만 원을 태울 정도일까에 대해서는 좀 더 심사숙고해야겠지.’
그리고 마지막은….
백설 공주의 사과 – ₩11,999,999
와. 이건 혹시 쓸모가 없어도 사천만 원 받고 팔면 개이득 아닐까?
‘아니, 물론 저걸 괴담 파생 음식으로 쳐줄지는 모르겠지만… 찔러볼 수는 있잖아.’
아직도 사이트에는 ‘괴현상에서 유래한 음식’을 구하는 글이 남아 있었다.
연구용이라고 했으니 계속 구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걸 종합해 봤을 때, 내 선택은….
“역시 이거겠지.”
신비한 양초 키트 – ₩19,999,999
백설 공주의 사과 – ₩11,999,999
※할인!※ 흡혈 식기 – ₩7,999,999
= ₩39,999,997
아까도 말했다시피, 불빛은 괴담과 상극이었다.
근데 양초를 만들어 내는 아이템?
이 키트에서 만드는 양초는 왠지 방어나 보호와 관련된 아이템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좀 비싸도 투자할 만해.’
백설 공주의 사과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백설 공주의 사과라고 하면 왠지 잠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거든.’
나 요즘 진짜 잠이 간절하다.
저기 혹시 푹 자게 해주는 사과면 진짜 나한테 필요했다. 정말로. 내 능률이 수직상승하고 생존률도 떡상할 것이다….
‘제발 좀!’
처절히 바라며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물론 아니라도 판매용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 대비도 된다.
그리고 마지막.
흡혈 식기.
‘할인 폭이 이렇게 큰 데 사주는 게 예의 아닐까.’
이전에 할인 품목으로 샀던 ‘은화 뱀’도 커스텀 장비부터 브라운 소환까지 꽤 알차게 썼다.
참고로 봉제 인형 키링의 배를 살짝 눌러보면, 그 안에 ‘은화 뱀’이 아직 들어 있는 듯 동그란 금속 모양이 잡혔다.
솔직히 아직도 흡혈 식기로 그렇게 알차게 뽑아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원들에게 팔 거나 교환용으로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이제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면 변명으로 댈 수 있는 연어 마켓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세 가지 아이템이다.
“좋아.”
가용 예산에도 딱 들어왔다.
좋아, 이대로 구매를….
-노루 씨.
음?
뜬금없이 브라운이 나를 불렀다.
-혈욕조라는 물건 말입니다.
그게 왜?
-가지고 싶습니다.
“…!?”
뭐, 뭐라고.
–친구, 이 브라운에게 선물을 하나 해주지 않겠습니까?
브라운의 목소리가 간교하게 간절해졌다.
-그간 내가 ‘착한 친구’로서 당신을 물심양면 성의 성심껏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죠!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작은 대가 하나 정도는…… 아.
침묵.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나 속물적인 발언을 했군요…. 우정의 가치를 금으로 환산하려 했습니다.
–‘착한 친구’는 이러지 않습니다…….
“…….”
봉제 인형의 그림자가 수치스럽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우울히 말했다.
-제 발언을 부디 편집하고 무시해 주십…….
음.
“사자.”
-예…?!
“혈욕조, 사자고.”
-!!
솔직히, 테마파크에서 이 녀석 덕에 탈출한 것도 있지 않은가.
내 목숨 살려줬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어차피 여기 돈은 체감상 게임 머니에, 앞으로는 추가적으로 돈 나올 구석이 꽤 보이는 상황.
그리고 ‘착한 친구’와는 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누가 봐도 현명한 판단이었다.
테마파크에서 이 봉제 인형 키링이 썼던 기묘한 능력을 떠올리면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이왕 살 거라면, 아쉬운 티 내지 말고 화끈하게 가는 게 맞다…!’
“부족한 돈도 곧 입금될 테니까. 그럼 그때 바로 사줄 수 있어.”
-맙소사.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노루 씨, 내 친구…!
“응. 근데 이건 대가 같은 건 아니고, 그냥 브라운이 내 친구니까 선물로 주는 거야.”
-예, 압니다. 친구!
“추가 수당이 입금되는 대로 바로 혈욕조를 구매할게. 며칠 후면 될 거야.”
-예!!
정말 감격했는지 목소리가 기쁨과 흥분으로 떨렸다가 다시 가다듬어졌다.
-정말 기대되는군요, 정말로… 하하!
허허.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좋구먼.
…제발 나한테 어디서 신선한 피 구해와 달라는 말만 하지 말아줘라.
-오!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제법 빠르군요.
어쨌든 주문한 아이템들은 이번에도 즉각 우체국 박스에 담겨 도착했고 나는 즐거운 언박싱 타임을 가졌다.
가장 위에 놓여 있던 것은 특가로 산 흡혈 식기였다.
-호오. 제법 품위 있는 커트러리 아닙니까?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려 보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세공된 작은 디저트 포크와 나이프는 가죽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은빛이 손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우아하고 섬세하게 빛났다.
하지만 쓰려면 이걸 피범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후.
‘그래도 일단 가지고는 다녀보자.’
부피가 크지 않으니 수납도 용이하고, 이제 전용장비도 있고 아이템을 제법 갖췄으니 위기 상황에 써봄 직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커트러리 바로 밑에 놓인 것은….
[쉽고 빠른 양초 제작 키트]
‘신비한 양초 키트’의 박스였다.
알록달록하고 귀엽게 생긴 것이 마치 어린이용 같다.
‘오히려 좋아.’
어린이용이면 제작이 쉬울 테니까!
당장 뜯어서 설명서와 내용물을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한데, 전면을 다 뒤덮고 있는 주의사항 스티커부터 눈에 들어왔다.
[개봉 시 환불 불가. 원재료가 공기와 접촉 시 12시간 후 변질되니 빠르게 사용하세요.]
[권장 사용 인원 : 3인]
음. 그런 고로 일단은 패스.
‘괴담 투입되기 전날 밤에 준비 다 끝내놓고 뜯는 게 맞겠다.’
그래도 만들 양초에 무슨 효과가 있을지 기대되긴 했다. 이천만 원짜리니까 보통 효과는 아니겠지.
-그럼 이제 마지막 물건만 남았군요!
“맞아.”
나는 드디어 상자 맨 밑에 깔린 것을 살펴보았다.
작고 묵직한… 농산물 사과박스였다.
“…?”
아니, 진짜로.
백설산 사과
정말 맛있다! 미용과 영양!
“…….”
실수로 진짜 농원에 잘못시킨 건 아니겠지?
음. 박스 위에 원산지에서 온 편지가 붙어 있다.
읽어보자….
——————–
백설 사과를 구입해 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농산물은 정성을 다해 ■■에서 ■■를 비료로 땀 흘려 직접 키우고 수확합니다. 타 농원과 그 효능과 맛에 분명한 차별점이 있습니다.^^
복용법 : 한 알을 모두 꼭꼭 씹어 삼키기.
효과 : 복용 즉시 죽음과 같은 잠에 빠지며, 모든 생명 활동이 중단됩니다.
이 효과는 다음날 태양이 뜰 때까지 지속되며, 깨어났을 때는 큰 활력과 에너지가 솟구치며 컨디션이 회복됩니다!
※사망형 수면 중 신체에 일어난 모든 변화에 대하여 본 농원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
‘괴담 확실하네.’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그, 죽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물약 같은 건가.
‘일단 알았다.’
나는 사과박스를 열었다. 그림처럼 동그랗고 반들거리는 미니사과 일곱 개가 박스 안에 담겨 있었다.
사과는 작지만 매우 이상적인 모양새고, 새빨갛다.
-과연, 건강에 좋아 보이는군요!
진심인가?
그래도 확실히 쓸모 있어 보이긴 했다.
가사 상태를 유발하는 데다가, 하루 뒤에 깨어날 때 몸을 회복시켜 주는 아이템? 어디든 써먹을 구석이 있겠지.
그리하여, 현재 내 아이템 보유 현황은 이렇다.
-착한 친구
-흡혈 식기
-신비한 양초 키트
-백설공주의 사과
-메모리얼 그립톡
-스마일 스티커 🙂
-앨리스 피크닉 세트
그리고 전용 장비와, 블루소다 츄러스 정도인가.
‘며칠 후에는 혈욕조가 추가되는군….’
모두 잘 써먹어 보면서 살아남아 보자.
-그럼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노루 씨!
나는 그날 좀 일찍 잠이 들었고, 악몽을 간간이 꾸면서도 그럭저럭 잘 잤다.
앞으로 며칠은 적어도 평화로울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 덕이겠지.
‘재정비하면서 돈 받을 때까지 심신 회복 좀 하자.’
* * *
그러나 며칠 후.
나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추가 수당이, 입금이 안 된다…!’
아니, 심지어 A조 조장이 말한 매뉴얼 개정부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걸로 포상금을 받기로 한 건데 말이다.
‘뭐, 뭐야.’
설마 다 뻥카였던 건가? 오천만 원 떼먹혔어?
즉각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담당자 실종이요?”
“그래. 며칠째 결근이야.”
매뉴얼 개정 심사를 담당하는 행정지원팀의 모 직원이 실종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이나.
“…….”
잠깐만.
“그럼, 매뉴얼 심사는….”
“일단 무기한 연기지 뭐. 급한 것도 아니고… 이 회사가 그런 서류담당자 발령 다시 내주려면 적어도 2개월은 걸릴걸.”
아, 안 돼!
괴담 속 괴물이랑 약속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