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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5화


토막 난 신체 부위와 피로 그려진 오망성으로 엉망진창이 된 외딴 산장.

그 속에서 또 기절한 여성 앞에 부처나이프를 들고 서 있는 공무원.

그리고 2층 난간에서 그 꼴을 쳐다보고 있는 나.

가짜라는 걸 몰랐다면 혼절하기 딱 좋은 미친 거실이었다.

하지만 뒷문에서 등장한 산장지기는 정중했다.

“편히 지내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하지만 괜히 힘 뺄 필요도 없으니, 나는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산장지기는 ‘방해 없이 편안히 지내시도록 나가 있었다’ 등의 뻔한 소리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말했다.

“사흘이 지났군요.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

“이제부터, 이 산장의 유산과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하실 수 있습니다.”

이 타이밍까지 아무도 안 죽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개판이 벌어진다.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공포와 충격이 충분히 누적되어야 이 카세트테이프는 생존자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만들었지.’

공포와 충격을 말이다.

현대인의 감수성에서 썩 내키진 않았다만, 사람들을 겁줘서 진짜 죽는다고 착각까지 하게 만든 거다.

그 짓거리들이 합격점을 받긴 한 모양이었다.

산장지기가 정해진 대사를 하고, 거실이 칼부림 없이 평화로운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이 평화는 곧 깨진다.

산장지기가 가장 먼저 다가간 게 소파에 기절해 있는 ‘아내’에게였기 때문이다.

“방문객님.”

“…….”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하시겠습니까?”

“으음, 뭐…… 어, 어어어!? 아아아아악!!”

정신을 차린 사람은 몇 번 넘어지며 산장을 뛰쳐나갔다.

저런.

‘차라리 계속 기절해 있는 편이 나았을 텐데.’

산장지기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서 다음 사람을 지목했다.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하시겠습니까?”

“…….”

공무원은 산장지기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맨 마지막으로 의사를 밝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산장지기가 마지막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나도 산장지기를 바라보았다.

남루하고 헤진 옷차림과 다르게 격조 있는 서울 말씨를 쓰는 괴담 속 인물을.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하시겠습니까?”

교환할 거냐고?

“예.”

당연히 그럴 거다.

‘이걸 위해 이 사흘간 새우잡이 배처럼 일했으니까.’

진입자가 생존할 시, 약속되었던 강력한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문구가 실현되는 순간을 위해서.

내가 굳이 연쇄살인마 행세까지 한 이유, 바로….

‘교환 1순위.’

나는 챙겨온 대학생 중 한 사람의 백팩에서 카세트테이프들을 꺼내 들었다.

부부의 것.

대학생들의 것.

그리고 백사헌의 것까지.

“6장이군요. 무조건 방문객님께서 교환 우선입니다.”

산장지기에게서 묘하게 들뜬 기색이 드러났다가, 곧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 정중해졌다.

“이제 이 산장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뇨.”

“…….”

연쇄살인을 수행한 진입자가 보상으로 재난의 장소(지평선 산장)을 고를 시, 그의 변이된 성향은 영구적으로 귀속된다.

내가 연쇄살인의 흉내만 낸 거긴 해도 그런 리스크를 굳이 떠안을 필요는 없겠지.

‘물론 그렇다고 대충 아무거나 교환하거나 거절하고 끝낼 수도 없어.’

금으로 교환해도, 쓰레기로 교환해도, 교환을 거부하고 도망가도, 하다못해 산장을 방화하고 다 탈 때까지 확인해도.

다음 주기가 되면 거짓말처럼 또 연쇄살인마의 물건이 배포되며 사람들을 이 장소로 이끌었다.

산장은 거짓말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참극은 반복될 것이다.

게다가 말이다.

‘…아마 내가 교환을 고르는 순간, 죽인 척 숨겨둔 사람들은 다 죽는 기믹도 있던 것 같은데.’

이런 기록이 있거든.

———————=

#6

인원 : 징발자 8명, 주무관(8급) 1명.

주무관이 무사히 연쇄살인마로 지정되었으나, 3번째 살인에서 독단적 판단으로 기지급된 독극물이 아닌 특수한 아이템을 사용.

죽음에 가까운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하여 징발자를 죽이지 않고 재난을 마무리하려 시도.

결과: 주무관 1인 생존 (교환 거부)

※가사 상태였던 진입자는 교환식 이후 토사물이 목에 걸려 사망한 것을 확인.

———————=

화재가 발생하는데, 내가 그들을 가둬둬서 공교롭게도 탈출을 못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진짜 연쇄살인마가 되는 거다.

‘아무리 괴담 세계관에 원래 죽을 사람들이라도,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지….’

인간으로서 내 멘탈리티를 존중해 주자고.

그래서 이것저것 고려하여 내가 내린 선택은.

이거다.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산장지기분의 고용 권한과 교환하고 싶습니다.”

산장지기는 놀란 듯 잠깐 말이 없었다.

“제 고용계약 말씀입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는가?

보통 초자연재난관리국에선 괴담을 가능한 제거하는 편을 지향한다.

내가 다니는 미친 제약회사처럼 직원이 탈출만 하면서 요리조리 잘 보존 및 관리하는 건 절대 목표가 아니다.

백일몽 주식회사에게는 괴담이 원료수급처일지 몰라도 정부에겐 그냥 재난이니까.

그래서 위키답게 그 점을 반영한 창작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즉, 정부가 관리하는 괴담은… ‘성공적으로 없어지기’도 한다.

산장지기가 이번 교환으로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고지.

산장이 있던 자리는 공터로 변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초자연 현장 징조 없음.

재난 종결.

이게 이 괴담의 공식적인 마지막 탐사기록이었다.

즉, 서술의 마침표가 찍힌, 사태가 종결될 수 있는 괴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굳이 몇 차례 더 하기 전에 내가 종료시켜 버려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산장에서 일하시는 걸 보면 이전 산장 소유자분과 계약기간이 남은 듯한데, 그걸 제 앞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산장은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산장지기의 고용 권한을 받아 내면서, 그의 계약기간을 끝내 마지막 탐사 기록과 똑같은 상황을 연출한다면?

“…….”

나는 산장지기의 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렇지.

“그러나 외람되지만, 제 고용주에게는 몇 가지 자격이 요구됩니다.”

“자격이요?”

“예.”

산장지기의 정중한 말씨에 어딘가 모를 거만함이 살짝 섞였다가 사라졌다.

“태생적, 존재적 고결함이 필요합니다.”

살인 산장 운영을 맡기는 사람이?

아무래도 보편적 현대인과는 윤리도덕성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만…….

-하하! 이 작은 산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주인의 권세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18세기 버틀러처럼 구는군요!

-그냥 이 산장을 받아 내고 해고해 버리지요!

브라운아… 내가 그걸 안 하려고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건데.

‘잠깐 기다려 봐.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거든.’

-인내심도 깊군요, 노루 씨!

그래그래.

나는 적당히 대꾸하며 턱을 문질렀다.

‘…고결함이라.’

사실 생각나는 게 있긴 했다.

내가 아이템을 못 챙겨온 게 맞긴 한데, 워낙 소형이라서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게 딱 하나 있다.

‘내 굿즈.’

가장 최근에 굿즈박스에서 튀어나왔던 ‘은심장’이 손안에서 달그락거렸다.

착한 사람이 착용하면 발언권을 증대시켜 주는 물건.

‘시험해 봐야 하기도 했지.’

나는 그 작은 은빛 배지를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움직여 주머니 안에서 핀셋을 열었다.

그리고 주머니 안 옷감에 ‘착용’했으나….

“…….”

“…….”

상대는 딱히 반응이 없다.

‘아.’

적용 범위의 문제인가.

‘저쪽은 인간이 아니겠지.’

착용자는 자신의 누적된 이타적 행동에 따라 타인의 경외심을 얻는다.

음, 어차피 고결함의 정의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었는데 한번 시험이나 해본 거니까.

나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그렇다면….

“제게는 태생적, 존재적 고결함이 없다는 뜻입니까?”

입을 터는 수밖에.

“갖춘 분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실정이니, 상심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뇨.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교환이 어렵다는 말씀이죠? 자격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나는 일부러 인상을 찌푸렸다.

컴플레인 거는 손님처럼 말이다.

“분명 ‘카세트테이프를 가지고 오면 내가 가진 어떤 것으로든 교환하게 해주겠다’… 이게 조건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말이 바뀌어서 당황스러운데요.”

나는 일부러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사흘입니다. 제가 여기 쓴 시간이요.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에 자격이 필요하다고 약속과 다른 말씀을 하시는군요.”

산장지기는 약간 당혹스러운 듯했다.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어떤 오해입니까?”

“약속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제 고용 권한만을 승계받으시면 실제 사용인으로 부리시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산장지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만일 산장 자체를 받으신다면 저는 이곳에서 기존의 계약대로 근로할 것이나, ‘고용 권한’을 받는다는 것은 그 권리가 통용될 때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응. 난 원래 계약대로만 일하는 거지, 네 말은 안 들을 거야’다.

“그냥 문서만 남는 계약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실제 사용할 수 없는?”

“그렇지요.”

와.

“상관없습니다.”

“…….”

오히려 좋잖아!

무효화!

“그럼 해당 사항을 제가 숙지하고 있다면 교환할 수 있겠네요. 알고서라도 교환하고 싶다는데 막을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산장지기는 양손을 내밀었다.

“방문객님의 말씀이 맞군요.”

승복한 것이다.

“교환하실 카세트테이프를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옙.

나는 얼른 쥐고 있던 테이프를 내밀었다.

투투툭.

테이프 여섯 개가 내 손을 떠나 산장지기의 거친 손 위에 떨어졌다.

산장지기는 자신의 남루한 옷 속으로 부드럽게 테이프를 수납했다.

그리고 낡은 소매의 옷차림새를 정중히 다듬더니, 그 속에서 얇고 오래된 물건을 하나 꺼냈다.

그건 종이였다.

한지처럼 보이는 동양식 재질이었는데, 기묘하게도 서양식으로 재단되어 돌돌 말린 뒤 붉은 왁스로 봉해져 있었다.

“제 계약서 원본입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든 순간.

낡은 종이에 불이 붙었다.

“…!”

한지는 주홍빛으로 타들어 가더니, 불티만 남아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내 손목을 휘감는다.

정확히는, 테마파크 마스코트가 남긴 문신이 있는 자리에!

‘자, 잠깐.’

: Socius :

문신이 달궈지듯 색을 띤다.

불티는 문신과 마치 씨름이라도 하듯이 부딪히더니, 결국 승복이라도 한 듯이 튕겨 나왔다.

그리고 팔뚝에 가까운 위치로 내려와서 자연스럽게 세로로 자리를 잡았다.

: 恩主 :

“…….”

문신이 두 개가 됐잖아.

‘이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아이템처럼 실물계약서를 보관할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묘하게 귀속된 느낌이다만… 사실 기동성 측면에서는 이편이 낫긴 하다.

-‘은주’라. 이쪽도 고풍스러운 표현이군요.

브라운도 불길하다는 둥 마음에 걸리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지난번 사례에 비추어볼 때, 어차피 공무원에게도 이 문신은 보이지 않을 테니 그것도 괜찮다.

허공으로 계약서가 사라진 걸로 보이면 오히려 좋지.

‘어차피 안 부를 거니까 뭐.’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산장지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피투성이의 산장.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나와 공무원.

‘다 마무리됐네.’

정말 웃기지만, 그 순간 창문으로부터 부드러운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햇살이었다.

“날이 갰네요.”

“…….”

자, 모두 정리됐다.

분위기 좋으니 난 이대로 사라지고, 공무원도 자기 갈 길을 가면 딱이겠다.

지하실에 묶여 기절해 있는 사람들의 신원이야 정부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괴담이 자체가 없어졌으니까 나도 따로 추적 대상으로 등록되거나 신상 명세가 자세히 기록되진 않을 것 같고.’

원래 정부든 기업이든 후속 처리가 필요 없는 종결 케이스에는 힘을 잘 안 쓰는 법이다.

‘좀 특이 기록으로 남더라도, 내가 죽인 사람도 없었으니까 괜찮겠지 뭐.’

여기서 공무원에게 처신만 잘하고 변명만 잘하면 이대로 넘어갈….

“그쪽.”

아래층에서 공무원이 계단을 올라왔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내 팔을 잡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이직 생각 없으십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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