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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71~72화


외계인 상점에서 전 상품 다 구매하기.

‘와.’

약간 손이 떨리긴 했다.

물건 몇 개 사느라 1억 3천을 태워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래도 전에 몇천 써봤다고 좀 낫긴 했다.

‘잘 쓰자.’

다 생존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 주겠지.

나는 구매 버튼을 화끈하게 눌렀다.

성공 구매!

물건이 로켓을 탔다!

곧, 이전처럼 허공에서 시공간이 열리고 택배 박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박스가 바닥에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

택배는 허공에 계속 떠 있었다.

그걸 누군가가 매우 정중한 손놀림으로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촉수가.

“……!?”

토톡.

촉수가 부드럽게 택배 상자를 흔들었다. 마치 ‘여기 두면 될까요?’라고 묻는 것처럼.

“…! 바닥에 둬주시면 됩니다.”

그러자 택배는 부드럽게 바닥에 쓱 위치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촉수는 바로 사라지진 않았다.

대신 시공의 틈 사이에서 날렵하게 뭔가를 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황금색으로 빤딱이는 작은 카드 편지였다.

나는 우주 쇼핑몰 VIP!

~감사 세포 동봉~

“…감사합니다?”

내가 카드를 받아 들자, 촉수는 손을 흔드는 듯하더니 시공의 틈으로 사라졌다.

“…….”

음.

아무래도 외계인 상점에서 나를 VIP로 취급해 주기 시작한 것 같다….

‘좋은… 거겠지?’

나는 일단 감사 카드는 챙기기로 했다. 황금색이 오색찬란했다….

-세상에, 어떻게 하면 태그 카드까지 저토록 못생길 수 있답니까….

역시 외계인 상점에 디자인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뭐….

‘중요한 건 물건 성능이니까.’

나는 택배 박스로 시선을 돌렸다.

언박싱 타임이었다.

“휴우.”

상자를 개봉하자 가장 부피가 큰 아이템부터 눈에 들어왔다.

정가 2,800만 원짜리 물건.

‘해피 메이커.’

화사한 파스텔톤 상자였다.

마치 액상 소화제나 비타민 음료가 담겨 있을 법한 사각 상자에는 형광펜 정도 크기의 야광 스틱이 열두 개 꽂혀 있다.

그러나 이 야광 스틱 끝에선 바늘이 튀어나온다.

괴담 ‘망상홈쇼핑’에서 동일 명칭으로 팔렸던….

완벽한 진통제.

———————=

어둠탐사기록 / 망상홈쇼핑

/ 아이템

해피 메이커

삶이 고통스러우신가요?

원인 모를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는 당신, 사고를 당했을 때가 두려운 당신을 위한 완벽한 구원자입니다.

자신 있게 소개하겠습니다, 급속 고통제거제, ‘해피 메이커’!

-20XX년 9월 9일 ‘망상홈쇼핑’의 물건 설명

———————=

말 그대로였다.

나는 박스에 적힌 설명문을 보았다.

빠르고 편안한 샷

당신의 고통과 작별하세요!

스틱형 자가 주사기인 이 아이템은 살에 대고 누르면 자동으로 샷이 투입되며 빠르고 편안하게 일정 시간 고통을 아예 ‘없애 준다’.

‘진짜 오버테크놀로지긴 해.’

비록 그 기제가 과학이 아닌 괴현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고통이 극한 상황에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온갖 상해와 부상의 위험을 해치고 나아온 경험상 단언할 수 있었다. 이건 언젠가 요긴하게 쓸 거다.

‘안 썼으면 좋겠지만… 하.’

헛된 기대를 버리자…….

‘더러운 괴담 세상….’

나는 기꺼이 이 아이템을 잘 챙겨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뒷면에 깨알같이 대단히 호러스러운 ‘추가사용법’도 적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안락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응. 절대 안 쓸 거다.

‘진통제 용도로만 써주마.’

-아 진통제. 나도 가끔 두통약을 복용할 때도 있었지요. 창작의 고통! 엔터테이너이자 쇼 크리에이터의 숙명입니다.

…머리가 TV인 괴담 주민이 대체 두통약을 어떻게 복용…… 아니, 아닙니다.

나는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를 지우고 브라운을 몇 마디로 추켜세워 뿌듯하게 만들어준 후에 다시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휴우.

‘다음 아이템은….’

두 가지 물건이 동시에 보였다.

검붉은 밀랍으로 완전히 봉해진 채 먼지가 쌓인, 아주 불길해 보이는 고서 한 권.

그리고 그 옆 구석에 둘둘 말려 있는, 현대적이며 깔끔한 친환경 완충재 포장지.

그래, 말 그대로 속에 물건 없이 저 포장지 자체가 아이템이었다.

포장지 12B357나

사실 이렇게 겉에 바코드와 함께 음각으로 문구가 새겨진 것 외에는 그 흔한 설명문 하나 없다.

별거 아닌 것 같다고?

아니다.

‘왔다. 방어구!’

독특한 성능을 지닌 ‘완충재용 포장지’이기 때문이다.

내 소중한 목숨줄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해당 포장지를 잘 수납했다. 적절할 때에 사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고서를 보았다.

Necronomicon

네크로노미콘.

일명 죽음의 서.

금지된 지식이 적힌 마도서의 전형적인 대표 창작물이었다.

몇십 년간 다양한 이야기에 꾸준히 등장하다 못해 아주 사악한 마도서의 대명사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어둠탐사기록>에서도 한 자리 차지했던 것을, 내가 읽은 것이다.

그래서 보통 네크로노미콘의 클리셰적인 특징이 뭐냐고?

1. 읽으면 미침.

2. 인피로 제작.

“…….”

응.

인간 피부라는 뜻… 맞다.

그래서 표지 대표 이미지도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얼굴 가죽이다.

내가 받은 이 고서의 겉면을 덮고 있는 검붉은 밀랍에도 희끄무레하게 그게 티가 났다.

‘하.’

정말… 손도 안 대고 싶은 꼴이다.

-노루 씨, 방금 네크로노미콘이라고 했습니까? 아, 그 번역본,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미국 토크쇼 테마의 괴담 사회자가 네크로노미콘을 안다? 너무 당연해서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이다.

‘네가 아는 그 네크로노미콘은 아닐걸.’

-음?

그런 게 있다, 짜샤.

나는 말없이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진 ‘네크로노미콘’을 잡아다가 내 팔뚝에 수납했다.

‘후.’

이렇게 ‘협박용 물건’도 잘 수납했고.

이어서 원래 알던 노스텔지어 캔디도 잘 챙겼다.

‘이건 긴급 회복용 아이템이라고 할까.’

만약에 심하게 오염될 처지에 놓이더라도, 이걸로 탈출 시까지 응급 처치가 가능하겠지.

‘…좋아.’

그리고 마지막.

나는 택배 구석에 아무렇지도 않게 툭 놓여 있던 작은 빨간 버튼을 주목했다.

소거법으로 생각하면, 이 아이템의 정체는 이걸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도움! – ₩66,666,666

그런 인터넷 괴담 들어본 적 있는가?

누가 버튼을 주고 ‘이걸 누르면 누군가가 죽고, 대신 당신에게 1억이 입금됩니다. 누르시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할 거냐는 거.

딱 그런 곳에 나올 것처럼 생긴 빨간 버튼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면에 작은 글귀도 보였다. 다만….

‘무슨 언어인지 모르겠는데.’

-번역이 필요합니까, 친구?

이 부분은 브라운의 도움을 받았다.

-흐음. 그래요. 노루 씨는 ‘긴급 탈출’이란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과연. 누르면 ‘외계인의 도움으로 긴급 탈출’을 할 수 있는 작은 버튼인 건가.

‘육천만 원 값어치를 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이건 거의 도박수에 가까운 베팅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외계인 상점은 사기는 안 치니까.’

다른 괴담이었다면 ‘이거 누르는 순간 내 뇌가 머리에서 긴급 탈출하고 식재료로 쓰이는 건가’ 따위의 끔찍한 예측도 해봤겠지만… 외계인 상점의 신뢰도를 믿어보자.

“다 됐다.”

-내 친구는 참 깔끔한 성정의 소유자란 말이죠. 마음에 듭니다!

나는 그렇게 모든 쇼핑 전리품을 팔목의 문신에 수납했다.

괴담에 완전히 오염된 인간이 들어갔다가 나왔어도 괜찮았으니, 이런 아이템들도 문제없겠지.

…그런 식으로 증명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후.’

그만 생각하자.

다행히 쇼핑 좀 하고 물건 정리한 것으로 낮시간이 전부 사라지진 않았기에, 나는 훤한 대낮에 잠을 좀 보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잠깐 잊고 있었던 소식이 내게 들이닥쳤다.

[고영은 : 인트라넷 보셨어요?]

[고영은 : 방금 떴어요 정기인사 발령 문서!]

“…!”

정기인사 발령.

곧 D조 결원이… 보충된다는 뜻이다.

“…….”

누굴까.

* * *

며칠 후.

“안녕하십니까.”

“아, 예예.”

나는 새롭게 D조로 발령 난 직원을 사무실에서 볼 수 있었다.

직위는 나와 같은 주임.

괴담에 들어오기 전 나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안경 쓴 직원이 힐끗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아, 그쪽이 그 주임이라고요? 60일 만에 승진한?”

“예.”

“그럼 실제로는 신입이네?”

“…….”

나는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 쳐다보는 거 봐라. 왜. 3년 근속한 주임이랑 똑같이 대우해 줘?”

그리고 빙긋 웃었다.

“그럴 리가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래. 야, 너 상황 파악이 좀 빠른 편이라는 말 듣지?”

“하하….”

“이 현장탐사팀이라는 게 다 조별 과제라니까. 눈치! 눈치가 답이라고.”

그래?

“승진 일찍 했으니까 선임처럼 대우해 달라고 징징대다가 찍혀서 도움 못 받고 죽고, 이런 거 흔하다?”

그러면서 비어 있는 사무실을 슬슬 둘러보는 것이다.

“여기 원래 있던 대리랑 주임도 손 잘리고 오염되고 지랄 났다면서. 그거 다음엔 너 될 수도 있던 거야.”

“…….”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깨끗이 비워진 사무실 자리 하나가 보였다.

원래 박민성 주임의 자리였다.

며칠 전, 정기인사 공문이 올라온 다음 날 출근하니 이미 모든 소품과 컵, 액자가 사라져 있었다.

“그렇죠. 주임님이 되실 수도 있고.”

“…뭐?”

“워낙 위험한 업무가 많으니까요. 그러지 않도록 앞으로 저도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정중하게 악수를 요청했다.

“어….”

약간 찝찝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직원은 곧 기분 탓이라고 여겼는지 악수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과장님! 윤조훈 주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실에 들어오는 이자헌 과장은 새 조원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하, 저희 이름 초성 똑같은 거 아세요? 제가 조장님 밑에서 근무할 운명 같지 않습니까?”

“예.”

“……아니, 그러니까… 어, 운명 같죠?”

“아니요.”

“…….”

스몰토크를 완전히 실패한 새 조원, 윤조훈은 조장이 회의로 사무실을 비우자마자 내게 다가와서 숙덕거렸다.

“야. D조 조장 진짜 무슨 정신장애 있냐? 소문은 들었는데.”

“그렇게 느끼세요?”

“너도 대화 들었으면서 이걸 모르냐? 방금 무슨 공짜 AI랑 대화하는 줄 알았다고.”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 X발, 안 그래도 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회사인데… 후. 조장이 저 모양이 맞냐.”

“이자헌 조장님께선 조원들을 잘 챙겨주시는 편인데….”

“그래서?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저렇게 말귀 못 알아먹고 어둠에서도 자기 X대로 하다가 A조 조장한테도 밉보였다며. 그 소문 사실이지?”

“…….”

“맞나 보네. 어후 X발, 너도 조심해라. 아, 하필 이 조야….”

윤조훈 주임은 투덜거리면서 ‘화장실에 가겠다’라고 하며 나가더니 몇십 분쯤 돌아오지 않았다.

“…….”

저런 자식이랑 같이 근무해야 한단 말이지….

-저런…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노루 씨.

-이 브라운이 도울 일이라도? 알다시피, 나는 당신의 착한 친구가 아닙니까?

친구의 요청이라면 기꺼이….

‘응. 퇴근해서 같이 예능 보자.’

-아, 그것도 좋지요!

이 대화 덕에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그래.

엄밀히 따지자면. 이전이 말도 안 되게 사람 운이 좋았던 거다.

‘회사 생활은 이게 디폴트 값이지….’

저 주임이 사수가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하자.

나는 빠르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일 들어갈 어둠을 브리핑하겠습니다.”

회의에서 돌아온 이자헌 과장이 PDF를 배포하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 온 주임은 경악했다.

“등급 미정? 아니, 매뉴얼 없는 어둠입니까 이거?”

“아닙니다.”

도마뱀이 윤조훈 주임을 세로 동공으로 바라보았다.

“클리어할 때마다 꿈결 수집기 속 용액의 등급값이 다르게 측정된다고 합니다.”

“…!”

변칙성?

“그, 근데 그걸 왜 정예팀도 아니고 일반팀인 D조에 줬답니까?”

“D조에만 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반팀 현장탐사직 직원이 진입을 시도합니다.”

도마뱀 조장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것은 꿈을 통해 진입하는 어둠으로, 진입 자체가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

“기본적으로는 이렇습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특정 도서를 읽고 잠이 들면 야간의 학교에서 깨어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잠깐만.

“해당 학교의 명칭이 ‘세광공업고등학교’라면, 어둠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겁니다.”

세광공업고등학교.

“…….”

나는 이 괴담을 안다.

하지만 단순히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참여했던 괴담이잖아.’

탐사기록 #13

저 괴담 탐사기록의 13번째 항목은, 내가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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