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 서문
시간이 춤을 출 장소를 찾았고 그것은 태초가 되었다.
시간은 처음엔 다섯 종족과 함께 춤을 추었지만, 이젠 네 종족과 춤을 춘다.
춤은 이어진다.
네 종족이 세상을 말한다.
세상은 가깝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세상 과 맞닿는 표면에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표면은 중심에서 가장 먼 곳, 그러나 외부와 가장 가까운 곳 이다. 이곳의 마지막이자 저곳의 시작인 그곳은 경계 다. 그들은 경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소리 없고 자극 없는 따스한 중심으로 가라앉지 않는 다. 그들은 삶의 중심에서 한가롭게 떠다니며 죽음을 먼 변경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지 않는다. 대신 그들 은 자신의 심장을 뽑아낸다. 뽑아낸 심장을 중심에 남 겨 놓고 그들은 외부로, 표면으로 나아간다. 그 때문 에 그들은 표면의 특권을 누린다. 긁히고 깎이고 상처 입어도 저 먼 중심에 그들의 심장을 보관하는 한 그들 은 본질을 파괴당하지 않는다. 표면에 있는 그들은 외 부의 불꽃을 아무 장애물 없이 직시할 수 있다. 밤이 라는 장막도 그들의 눈을 가리지 않는다. 표면에 있는 그들은 깊숙한 자아의 모호한 메아리인 말을 쓰지 않 는다. 그들은 자신을 직접 상대방에게 전달하며 이를 니름이라 한다. 물론 표면에 있는 것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쌀쌀맞다거나 냉혹하다는 평을 듣는 것 은 둘째 치더라도 이들은 외부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비록 중심에 있는 본질은 안전하지만 표면에 있는 그 들은 더위에 끓어오르고 추위에 얼어붙는다. 그들은 나가라 한다.
세상은 느리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오래 된 원한이라는 말을 낯설어 한다. 그들은 짧고 강렬한 웃음으로 폭발시킨 다음 더 이상 구애되지 않아도 되 는 일들을 더 좋아하고, 심지어 그렇게 되기 어려운 일들도 그렇게 만들려 애쓴다. 그들의 사랑이나 우정 또한 짧고 빠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데, 그것은 다른 이들이 사랑과 우정에 대 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일으키는 착각이다. 다른 자들은 이삼 년의 짧은 추억으로 평생의 결혼 생활이나 교우 생활을 지탱한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끊임없 이 사랑과 우정의 이유를 만들어 내고 그 표현법을 무 수히 창조한다. 그들은 짧은 사랑과 짧은 우정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어 다른 자들에겐 긴 사랑과 긴 우정 처럼 보이는 것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들은 짧은 분노 와 짧은 원한을 계속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런 일 이 소모적이고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래서 그들은 다른 자들에게 선량하게 비춰진다. 그들 은 세상이 느리게 행하는 일을 훨씬 빠르게 해치울 수 있는 힘인 불을 자유롭게 다룬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무거운 몸을 벗어서 더 가볍다는 듯 죽음에 앞장서 달 려간다. 느린 죽음은 그들을 잡기 위해 꽤 오랫동안 그들을 추격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빠를 때는 폭력과 피를 피할 때다. 그것들은 도저히 즐거운 일로 만들 수 없으니까. 그들은 도깨비라고 한다.
세상은 엉성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계에 존재하는 결합 대부분을 어렵잖게 해 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라는 퍽 단단한 결합을 흙과 모래로 해체하고 싶다면 이들은 정이나 망치 따 위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그래야 할 이유만을 요구할 것이다. 그 일을 수행할 도구는 그들 에게 충분히 갖춰져 있다. 무지막지한 힘과 강철같은 몸,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광적인 집착으로 오해받기 쉬운 집중력을 가진 그들은 바위를 손쉽게 흙과 모래로 분해한다. 그들은 다른 결합들도 어렵잖게 해 체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결합도 쉽게 해체하여 무생 물로 분해한다. 국가라는 결합도 그리 어렵잖게 해체 할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엉성하다. 그래서인지 그 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단단한 것에 주된 관심을 기울 인다. 절대로 변하거나 퇴색하지 않는 단단한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그 추구는 실로 맹렬한데, 엉성한 세 상은 부서질지언정 단단한 자신은 부서질 리 없다는 꽤나 정당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려움과 무관할 것 같은 이 강대한 자들에게도 두려움 의 대상은 존재한다. 어떤 파괴력에도 해체되지 않고 거꾸로 감싸 안아 그들의 튼튼한 몸을 가라앉히는 물 은 그들의 근원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레 콘이라 한다…….
늙은 군령자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곰방대를 입 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이 살아 있을 때 어떤 종족이었을지 추측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반복하는 일에만 열중했고 자신의 종족적 관점을 드 러내지는 않았다. 연초를 빨아들이던 그가 말했다.
“그 다음은 인간이 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지. 하 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자네 이야기를 먼저 듣 고 싶군. 자네는 자신이 군령자가 아니라고 했고, 또 아무리 봐도 두억시니는 아닌 것 같으니 자네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인간임이 분명해. 그러니 말해 보게. 자네 생각에 세상은 어떠한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가 본 세상에 대해 말하 기 시작했다. (주 이 대목에서 일기의 저자인 학자 가 인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기의 저자가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하이스 대학에 보관된 무명 학자의 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