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3장] – 기적을 감상하는 태도 4
뭄토의 벼슬이 뻣뻣해졌다. 니어엘을 노려보던 뭄토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서른한 대라고?”
“예. 원래 가지고 있던 것도 있고 근방의 중대들로부터 지원 받은 것도 있습니다. 또 나나본의 태수께서 쾌히 빌려 주신 것도 있고…… 아, 예. 자유무역당에게서 급히 빌려 온 것도 있습니 다. 그들이 규리하에 납품하기 위해 수송하던 물건이었습니다.” 니어엘은 야영지 끄트머리 쪽에 있는 소화차 중 하나를 가리켰 다. 그 소화차에는 군용임을 밝히는 식별 기호가 붙어 있지 않았 다. 니어엘이 말한 빌려 온 물건임에 분명하지만 뭄토는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소화차는 야영지 옆을 흐르는 시냇물을 퍼 담고 있는 중이었다.
뭄토가 돌아보지 않자 니어엘은 손을 내리고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규리하의 정세는 뒤숭숭합니다. 그래서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가시나무 군단이 자유무역당에게 소화차 열대를 주문했습니다. 방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혹은 저와 비슷한 이유에서 필요한 모 양입니다. 가시나무 군단의 양해를 얻어 그들보다 먼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뭄토가 질문했다.
“규리하의 정세가 왜 뒤숭숭한데?”
니어엘은 잠깐 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뭄토를 바라보느라 시간 을 소비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라는 판단 을 내리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런 후에 니어엘은 제 국군이 규리하를 공격했고 승리했음을 간단히 알려 주었다.
뭄토는 자신이 벼락을 맞거나 그에 준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는 이상 정치에 관심을 둘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약 지지파에 대한 이야기는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인상 적일 만큼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뭄토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 세하려 했던 아이저 규리하가 황제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이야기 를 들었을 때 그것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일 거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뭄토는 투덜거렸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여. 이건 미친 짓거리라고밖에 생각 이 안 되는군. 충성하기 위해 싸운다는 놈이나 충성하려고 고집 피우기 때문에 공격하는 황제나. 그런데 누가 아이저 규리하를 잡았는데? 그 사람 세다고 들었는데.”
“에더리 교위님이지요.”
“에더리 교위님?”
“아니, 이런. 지금은 대장군님이시죠. 폐하의 대장군이신 칼리 도 백 엘시 에더리를 말한 겁니다. 교위님이라고 부른 건 버릇이 되어서입니다. 6년 전 타이모 사건 때 저는 그분을 모시던 부위였습니다.”
뭄토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야?”
“예.”
“허! 온갖 허풍선이들을 다 봤지만 유명한 사람과 이렇게 가까운 사람은 처음 보는데?”
니어엘은 뭄토의 순박한 탄성에 미소 지었다. 하지만 니어엘은 곧 더 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 앉은 뭄토가 제국 만병장 엘시 에더리가 정말로 최후의 대장간에서 무기를 받았는 지 질문했기 때문이다.
“아뇨. 그건 헛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분이 가진 칼은 세 자루입니다. 그중 제국 만병장의 권검과 에더리 가문의 보검은 거의 쓰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주로 패검하시는 것은 제가 차고 있는 이것과 똑같은 제국검입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인간이 최후의 대장간에서 무기를 받 다니, 말도 안 되잖아. 하지만 너무 말이 안 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니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저 규리하는 패하여 도망쳤고, 그래서 현재 규리하가 뒤 숭숭한 겁니다. 아직 그 소식을 접하지 못하셨다니 조금 놀랍군요.”
“난 그런 일엔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하지만 이상하네. 규리하 가 여기서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너 뱀단지 가지고 있냐?”
“뱀단지는 군단 사령부에만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양해를 구했다는 거야?”
“제 말은 가시나무 군단에 양해 요구서를 보냈다는 의미입니 다. 며칠 후에 도달하겠지요.”
뭄토는 웃음을 터뜨렸다. 보급에 함부로 개입할 경우 받게 되는 중징계를 안다면 니어엘을 동정했겠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뭄토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정말 지멘을 잡으려고 작정했군?”
“물론입니다.”
“너 지멘에게 무슨 원한 있냐?”
“그를 체포하는 것은 제 의무입니다.”
“바른 소리 듣고 싶다는 것이 아냐. 그리고 쓸데없는 위험을 피하는 것도 네 의무일 텐데? 인간밖에 없는 네 알량한 부대로 지멘에게 도전하는 건 모험 아냐?”
의외로 날카로운 뭄토의 지적에 니어엘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녀는 뭄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다른 말을 꺼냈다.
“당신에게 요청할 것은 간단합니다. 뭄토. 작전이 진행되는 동 안 곁에서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지멘이 저를 기습할 가능성은 없다고 믿습니다만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죠. 그리고 작전의 최 종 단계에서 지멘의 구금 및 호송을 맡아 주십시오. 원래는 제 부하들에게 맡길까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레콘에게 더 쉬운 일이 겠지요. 지멘을 결박한 다음 센시엣 특수 수용소까지 호송해 주 십시오. 괜찮겠습니까?”
“센시엣 특수 수용소? 그게 뭔데?”
“절망도라는 말 들어 봤습니까?”
뭄토의 벼슬이 꼿꼿해졌다. 그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름 만 아는 것이지만 그것으로도 뭄토의 대답에 살의가 담길 이유가 충분했다.
“절망도에 들어가라고!”
니어엘은 겸손한 표정과 어투를 사용했다.
“거기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뭄토. 그곳에 가면 특수 수용소의 관리들이 지멘을 인수할 겁니다. 지멘을 섬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당신이 할 일은 지멘을 그들에 게 넘겨주고 인수증을 받아 오는 일뿐입니다. 제가 알기론 그 과 정에서 바다를 눈으로 볼 일도 없습니다.”
뭄토는 조금 안도했다. 불안을 떨칠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게 어디 있는지 몰라. 다른 레콘들도 마찬가지일걸. 젠장. 알고 싶지도 않은 곳이니까. 그게 어디 있는데? 쟁룡해?”
터무니없는 바다의 이름을 대는 뭄토를 보며 니어엘은 센시엣 특수 수용소에 대한 레콘의 의도적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할 수 있었다. 혹 해양학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렇게 먼 곳은 아닙니다. 선조해입니다.”
“선조해면, 그게 어디인데?”
니어엘은 두 손을 조금 펼쳐 보였다.
“시구리아트 산맥을 넘어 호라이체, 단탐, 나로드를 거쳐 키준 산맥을 돌아 북상하면 됩니다. 여기서부터 말을 타고 가면 사순 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습니다. 제 장병들이 동행할 테니 당신이 지멘과 붙어 있어야 하는 기간은 최대 사순입니다.”
뭄토는 사십 일 동안 지멘의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과 절망 도에 가까이 가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꺼림칙한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둘 모두 그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다. 하지 만 뭄토는 지멘을 붙잡을 결심을 하고 있는 인간 앞에서 약한 모 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니어엘을 자극해 보기로 했다.
“네 졸병들이 따라오면, 너는 안 가냐?”
“아, 유감스럽지만 저는 중대 본부를 오래 떠날 수 없습니다. 왕복 백여 일이나 되니 어렵군요.”
겁이 나서 안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보 려 했던 뭄토는 좌절하고 말았다. 니어엘은 빈말을 하는 것이 아 니었다. 그래서 뭄토는 질문했다.
“이렇게 술술 대답하는 걸 보면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지멘 체포를 생각했다는 의미군. 무슨 원한인지 읊어 봐.”
니어엘에겐 유감스럽게도 뭄토의 기억력은 나쁘지 않았다. 니어엘은 조금 지체한 다음 말했다.
“저는 그가 싫습니다.”
“싫다고? 그게 이유야?”
“예.”
뭄토는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저편에서 부위 한 명이 낭랑한 목소리로 소화차의 수조가 찼음을 알려 왔기에 뭄토는 더 질문할 수 없었다. 니어엘은 뭄토에게 양 해를 구하고 일어났다. 그녀는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고 나서 부 위에게 말했다.
“약간 빨리 행군해야겠군. 도착하는 대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 말해 봐.”
“소화차를 서로 엄호할 수 있는 위치에 배치시키고 지멘을 목 격할 때까지 함정을 팝니다.”
“어쩌면 지멘은 몸을 숨길지도 모른다. 그 커다란 몸도 숨기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네 구역에 반드시 나타날 거야. 그러니 지멘을 혹 목격하지 못하더라도 달이 뜰 무렵엔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해라.”
부위는 경례하고 나서 두 대의 소화차와 자신의 소대원 이백 명 과 함께 출발했다. 니어엘은 말에서 내린 다음 뭄토에게 말했다.
“잠깐 식사할 시간이 있습니다. 저녁 시간은 멀었습니다만, 밤 에는 아무래도 좀 바쁠 테니 지금 드셔야겠습니다.”
뭄토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야영지의 취사장에서 제공된 음식은 거칠었지만 양이 많았다. 뭄토에게 적당한 그릇은 없었지만 다행히 뭄토는 떠돌이 레콘들 이 흔히 그러하듯 자기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애 한 명이라 도 들어갈 것 같은 뭄토의 그릇에 삽으로 음식을 퍼담으며 취사 병은 재미있어 했다.
식사를 하며, 니어엘 헨로 수교위는 작전을 설명해 달라는 뭄 토에게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하지만 니어엘이 든 비유는 뭄토 를 약간 곤혹스럽게 했다. 뭄토는 도대체 ‘회돌이’ 라는 것이 무 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뭄토가 바둑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 고 니어엘은 비유를 포기했다.
“간단히 말하죠. 저는 지멘을 포위할 병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 니다. 그래서 지멘에게서 병력을 빌릴 작정입니다.”
“무슨 소리야?”
니어엘은 나무 숟가락으로 그릇을 긁으며 말했다.
“저는 지멘이 선택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를 계속 없애고 있습니다.”
“아, 몰아붙인다고? 몰이?”
“음. 그것과는 약간 다릅니다. 몬다는 것은 한 길을 선택하게 끔 유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다른 길을 포기하게 하는 것 에 관심이 있습니다.”
뭄토는 커다란 물잔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다음 상체를 앞으로 크게 숙였다. 그리고 물잔에 부리를 박고 물을 빨아들였 다. 몸에 물이 묻지 않게끔 하는 레콘 특유의 방법이다. 그렇게 물잔을 고정시켜 둔 채 물을 마신 뭄토는 다시 상체를 들어 올리 고 말했다.
“야, 수교위. 그거 말장난처럼 들린다. 이 길로 가게 하는 것 과 다른 길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같은 말이잖아.”
“그래서 하나의 길을 없앤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가진 병력이 부족하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멘이 선택할 수 있 는 길이 둘이라면 내버려둘 겁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셋 이 상일 경우에만 그중 하나를 막을 겁니다. 그러면 지멘은 남은 길 들 중 하나를 선택할 겁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한 가지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길은 제 가 막지 않아도 막은 거나 다름없어집니다. 포기하는 길이 점점 많아지면 결국 지멘이 포기한 길들이 지멘 자신을 포위하게 될 겁니다. 결국 지멘은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 다. 실제로는 갈 길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스스로 우형(形)을 짓게 하여 곤마(馬)가 되게 하는, 아니, 그러니까 지멘에게서 병력을 빌린다는 것은 그런 말입니다.”
“음.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하지만 지멘이 자기가 포기한 길로 다시 돌아가면 어쩔 건데?”
빈 그릇과 숟가락을 내려놓은 니어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 었다. 뭄토는 자신의 날카로운 지적에 니어엘이 당황했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본 뭄토는 자신의 지적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지적임을 깨달았다. 어리둥절해진 뭄토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니어엘의 대답을 촉구했다. 니어엘이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좀 걱정스럽군요. 저는 지멘이 레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레콘 맞는데.”
“예. 자기가 선택한 길을 평생 추구하는 레콘 말입니다.”
“어, 맞아. 지금 그러고 있잖아?”
“예. 맞습니다.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안심했어? 그런데 조금 전엔 왜 걱정했는데?”
“또 다른 레콘이 선택을 번복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해서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니어엘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본 뭄토는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뭄토는 손가락을 펴 니어엘을 겨냥했다.
“그거 무슨 의미야? 그러니까 내가 우유부단하다는 말이야?”
니어엘은 두 손바닥을 펼쳐 뭄토에게 보였다.
“아아, 저는 레콘의 부리에서 자기가 포기한 길로 다시 돌아간 다는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작전은 레콘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다는 가정 하에 세운 작전입니다. 그래서 조금 놀랐던 겁니다. 기분 나쁘다면 사과하죠.”
“그 말은 레콘을 바보 취급하는 거야?”
“아니요. 가당찮은 숙원에 매달리고 있는 지멘의 고집스러움을 염두에 둔 겁니다.”
니어엘의 정성스러운 대답에도 뭄토의 기분이 완전히 풀리진 않았다. 하지만 뭄토는 지멘의 숙원이 가당찮다는 것에 동의했기 에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레콘이 다른 레콘의 숙원을 평 가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뭄토는 지멘의 숙원에 대해서는 그런 취급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뭄토는 자신이 배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멘의 숙원을 비웃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