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6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전형적인 연쇄살인마 복장의 공무원이 믿음직하게 말했다.
“절대 잘리지 않으며, 만 65세까지 근무하는 호봉제입니다. 특수 직군이라 수당도 따로 책정됩니다.”
왜 내가 여기서 초자연재난관리국 취업박람회 같은 걸 듣고 있는 걸까.
“어차피 초자연현상에 잘 휘말리는 ‘체질’이라면 돈과 제도권의 보호라도 제대로 받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받고 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8급 공무원이 제약 대기업보다 돈을 많이 받을 것 같진 않은데요!
하지만 여기서 내가 <백일몽 주식회사>에 다닌다고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순 없었다.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관리국에 보고 들어가긴 싫다고!
‘그냥 필담 계속할 걸 그랬나.’
빠른 의사소통과 더 호소력 있는 소통, 그리고 임팩트를 위해서 고심 끝에 목소리를 쓴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나는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나를 ‘초자연현상에 잘 휘말리는 민간인’ 정도로 보는 것 같으니까 그쪽을 강화해 보자….
“이번 일은 진짜 무서워서 어떻게든 뭘 해보려고 하긴 했지만, 저는 이런 초자연 현상을 없앨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원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
공무원이 약간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왜?
“지금 이 현상의 원흉이 산장지기라고 생각해서, 다음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약을 종료시키셨지요?”
“그렇…지요?”
“그럼 자의적 판단으로 이 초자연현상의 완전 종료를 이끌어내신 것, 아닙니까?”
“…….”
“천부적 자질입니다.”
아닙니다.
위키빨입니다…….
“죄송하지만 정말 안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일도 같이 온 친구랑 상의하에 한 거고….”
와 제발요.
“애초에 요원이 될 만큼 잘 싸우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특별한 능력.”
공무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건… ‘익히는 법’이 따로 있습니다.”
“…!”
“임용되신 후에는 자세히 듣게 되실 겁니다.”
환장하겠네.
“아니 제 뭘 믿고 이러시는 건지….”
“지금 방패 모양의 작은 은 배지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게 이유입니다.”
아 젠장.
‘예리하네.’
이 상황도 고려는 했다만, 나는 일부러 더 당황한 척 화들짝 놀랐다.
“예? 어, 어떻게….”
“그건 재난관리국에서 쓰는 설득용 장비입니다. 과거에는 큰 선업을 쌓은 시민분들께 배포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사용이 가능한 분을 보는 건 처음이군요.”
“아…….”
“그건 선한 사람밖에 쓸 수 없는 물건이니, 일종의 인증용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날 쓱 보는 것이다.
“주머니에 넣고 쓰셨습니까?”
이 자식 머리도 좋네.
‘여기서 모른 척하면 오히려 수상하지.’
차라리 효능을 인정받고 가자.
잊지 말아라, 이건 ‘선인’에게만 효과가 있으니까!
‘굳이 회수하진 않을 거야. 사고 친 게 아니면 그런 사례는 없었어.’
다행히 뇌가 미친 듯이 돌아간 끝에 공백 없이 반응이 튀어나왔다.
나는 약간 사연이 있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뒤져서 작은 은 배지를 빼낸 후 꺼내 들었다.
내가 이걸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합법적인 루트를 자연스럽게 들먹이면서.
“…가족에게 물려받은 겁니다.”
굿즈박스는 오늘부터 내 가족이다.
“비상 상황에서 발언권이 필요할 때 쓰라고 들었는데…….”
“예.”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훌륭한 가족을 두셨습니다.”
“…….”
‘지금은 하늘에서 보고 계세요’로 오해해 준 거 맞나?
어떤 의미에서는 오해가 아니긴 하다만, 뭐….
나는 하늘에 떠 있던 검은 굿즈박스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위험한 일을 자진해서 하진 말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되도록 지키고 싶습니다….”
“…….”
금융계로 가려던 나를 말리면서 부모님이 하신 멘트도 맞고, 이 회사 입사도 정말 자진해서 한 건 아니니까 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은!
“…잘 알겠습니다.”
공무원은 약간 아쉽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으나, 순순히 물러났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휴.
그렇게 진땀 나는 취업박람회가 마무리되었다.
의외의 수확과 함께 말이다.
“고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연락주십시오.”
산장을 나설 때 즈음, 공무원에게 연락처를 하나 또 받은 것이다.
다만, 이번엔 형식이 달랐다.
류재관
010-XXXX-XXXX
“제 업무용 연락처입니다.”
오.
“이전에 드린 명함보단 이쪽이 나을 겁니다. 그건 출동팀이 배치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고, 어떤 부류의 요원이 올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한 마디로 괴담탈출 프리패스권이었다.
나는 마치 카세트테이프를 교환하듯, 기존에 받았던 연락처와 해당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이제 통성명하자고 하기 전에 얼른 돌아가…면, 어차피 뒷조사를 하려나.
‘그렇다면.’
나는 일부러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저, 사실 연어 마켓 때는 좀 무서워서 필담을 했었는데… 다음에 뵐 때는 이렇게 목소리로 말씀 또 나누고 싶네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 제 신원은 혹시 비밀로 보호될 수 있을까요?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요.”
“…….”
공무원은 짧게 침묵했으나.
“이대로 가시면 될 겁니다.”
봐줬다.
아싸!
‘이거 신원미상으로 남겨준다는 거지?’
새 거래의 여지도 남겼으니 완벽했다.
‘다음엔 의심 덜 받고 음식을 더 팔 수 있겠어.’
“조심히 내려가시길 바랍니다.”
“요원님도.”
나는 공무원과 악수했다.
공무원은 그 길로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헤어지는 길에 공무원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권유할 때도 꽤 자연스럽게 넘겼다.
-제가 솔직히 이런 상황이 힘들어서… 지금도 한계에 가깝거든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 진심이었다.
백사헌 너는 그 소름 돋는다는 눈깔 치워라.
공무원도 그냥 아쉬움에 해본 말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인 후 미련 없이 자전거를 탔었다.
‘관리국 뒤처리팀’이 오기 전에 떠나라는 피와 살이 되는 조언과 함께 말이다.
‘당장 튀어야지.’
나는 거짓말처럼 산사태의 토사도 버스 정류장도 사라진 산장 앞을 떠나, 등산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후우.’
긴장이 그제야 풀렸다.
-지난 며칠, 수면도 포기하고 예술적인 마지막 컷을 위해 쏟은 당신의 노력은 이 브라운이 알고 있지요! 고생 많았습니다.
그래. 겁나 징그럽고 무섭고 피곤했다….
‘이런 괴담에 혼자 투입되다니 역시 재난관리국은 아니다.’
오늘만큼 백일몽 주식회사의 기업점수가 내 안에서 높았던 적이 있던가.
‘돈이랑 포인트를 주는 게 어디냐.’
머슴도 대감집에서 해야 한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물론 보람이 더 있지는 않은 것 같다만….
나는 그 보람 없는 일에 한몫하고 있는 내 직장 동기를 돌아보았다.
“당장 내려가자고요. 이 망할 산장…!”
“…….”
“빌어먹을, 포인트도 돈도 안 되는데 이딴 일에 휘말려서!”
“그전에 할 말이 있을 텐데.”
백사헌이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더니 대단히 방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뭘 지불할 순 없는데요. 어차피 내가 살려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얼씨구.
“카세트 교환 보상도 그쪽… 김 솔음 주임님만 받아 가셨으니까. 그걸로 된 거잖아요.”
“오.”
나는 빙긋 웃었다.
“재밌네. 너 때문에 주말 날리고 무단결근한 사람한테도 그렇게 말할 배짱이 있고?”
“……”
백사헌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힘겹게 물었다.
“……뭘 원하는데요?”
“없는데.”
“…?!”
“사실 재밌었어.”
“…!!”
나는 성큼성큼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등 뒤에서 허겁지겁 따라오는 백사헌의 발소리와 한발 늦은 대답이 들렸다.
“…어쨌든 주말이랑 무단결근, 그쪽한테 피해를 줬다는 건 인정할게요.”
“…….”
“그렇다고요.”
오.
“급여 사흘 치 입금할 테니까 기다려요.”
“그래.”
하지만 잠시 후.
우리가 통화권에 진입하며 데이터가 터지는 순간 백사헌은 소리를 지르게 된다.
“날짜 그대로잖아!”
그렇지.
원래 괴담에서는 시간 흐름이 다른 게 국룰인 거 모르나.
“아무튼 나는 사흘을 썼는데.”
“…!”
하지만 나는 급여를 받아 냈고, 백사헌은 억울함과 안도와 빡침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고 도망가게 된다.
-하하, 이 일이 아니더라도 몸 성히 살긴 어려운 부류 같습니다!
좀 그렇지?
사실 해야 할 말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끝까지 고맙다는 말을 안 할 줄은 몰랐는데.’
진짜 여러모로 대단한 자식이었다.
그래도 <어둠탐사기록>에서 봤던 것보다는 덜 독하고 피도 눈물도 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 아까 공무원이 지하실에서 이 녀석을 만났을 때 잠시 서늘한 눈으로 보더니, 내게 조언했었다.
-누군가는 은심장을 물려받고, 누군가는 카세트테이프를 물려받았다…라.
-…….
-어울릴 사람을 잘 고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음. 예. 감사합니다.
그것참.
정부는 카세트테이프가 악인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면서 죄가 확실한 사람들만 징발했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정부가 공인한 악인이라는 뜻이었다.
정말 선해해서 봐주더라도, 최소한 백사헌의 입수 루트 중에는 악인이 있다는 거다.
-…집에 있던 물건인데요. 친척에게 물려받은 거죠.
……친척이라.
‘사연이 있을 법도 해.’
하지만 일단 생각을 멈췄다.
위키 속 등장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탐구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괴담 회사에서 살아남고 봐야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놈의 회사는 또 회사다운 일을 시작했다.
예측도 못 한 괴상한 일을 상식처럼 가져온 것이다.
* * *
며칠 후.
“김 주임!”
상사 심부름으로 커피 사 가는 도중에 복도에서 아는 얼굴이 나를 불렀다.
실종됐었던 매뉴얼 심사 담당자, 이병진 과장이었다.
“아~ 축하해. 내가 우리 김 주임 잘 될 줄 알았지!”
저희 알고 지낸 지 두 달도 안 됐습니다만….
“입사 수석에, A조 스카웃에, 나도 구해주고 어, 경비팀에 연줄도 있는데 이젠 초고속 승진까지? 이야, 좋구만.”
“감사합니다.”
별로 좋진 않았지만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병진 과장은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떠나는 대신,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렸다.
“호 이사님이 김 주임 눈여겨보고 있어.”
“…….”
“이 회사에서 가장 괜찮은 윗사람이야. 기회니까 놓치지 말라고.”
기회…?
“이사님이 산하에 대외기밀 프로젝트팀 운영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거기로 전출될 수도 있잖아.”
하하. 뭘 모르시는군요.
괴담 세계관에서 ‘대외기밀’이 붙으면 생존율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예의 바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입사한 지 반년도 안 됐는데 그런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크, 겸손까지! 내가 사람 잘 봤어. 하하!”
내가 경비원인 척할 때의 고압적 태도들은 다 편안하게 까먹어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역시 사람은 환경의 동물인가.
이병진 과장은 내 어깨를 몇 번 대견한 듯 두드리더니,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무튼, 어디로 갈지 궁금해, 정말!”
“……?”
묘하게 뉘앙스가 다른데.
‘왜 내가 어디로든 갈 거라는 걸 전제 하에 말하는 것 같지?’
이 의문은 곧 밝혀지게 된다.
그날 오후.
“저기 노루야. 다른 조 가더라도 가끔은 보자. 내가 밥도 몇 번 못 샀네.”
예?
나는 약간 풀이 죽은 주임을 보면서 눈을 껌벅였다.
다른 조요?
나… 설마 이상한 곳으로 좌천당했나?
이사가 뭐 눈여겨본다더니 사실 날 안심시키고 충격을 줘서 반응을 뽑아내려는 블러핑이었나?
일개 직원한테 왜 그런 쓸데없고 사악한 짓을…!?
“아니, 웬만하면 우리 팀에 남았으면 좋겠는데… 지금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까 말이지.”
다행히 패닉에 빠지기 전에 대리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현장탐사팀은 보통 한 조에 3인이 정원인데, 한두 명 더 여유 인원을 배정해 주는 경우는 보통 신입사원 교육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사원이 승진하기 전까지는 같은 조에 계속 정원 외 인원으로 붙어 있기도 하는 것이다.
“근데 넌 이제 주임이잖냐.”
아.
나는… 그 일반적인 케이스에서 제외된 것이다.
“아마 다른 곳으로 튕길 확률이 좀 높긴 한데… 음, 너무 걱정 안 해도 될지도.”
약간 희망을 가지고 물었다.
“혹시 예외로 처리되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 아마 3인 정원이 딱 맞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이건 너만 알고 있어라.”
“예?”
대리가 피식 웃었다.
“나 곧 퇴사한다.”
“…!!”
직장 동료의 탈출 예고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