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98화
그립톡에 금이 간 것을 확인하고 무슨 정신으로 그날 밤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나는 아프고 나발이고 당장 외출해 새 폰을 구매했다.
그리고 유심을 옮긴 후, 떨리는 손으로 금이 간 그립톡을 부착해서 켜보았다.
‘…뜬다!’
다행히 위키는 가동되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어둠탐사기록 / 괴담
[지옥할증 택시]
글리치가 튄다.
마치 오래 쓴 컴퓨터 같은 느낌으로, 수명이 간당간당하게 남은 기계 특유의 버벅거림이 보였다….
곧 정상적으로 복구되긴 했으나, 간담이 서늘했다.
‘그래. 굿즈도 파손될 수 있지….’
팝업스토어에서 구매했더니 괴담 세계관에서 실제로 쓸 수 있다는 괴상한 상황에, 스마트폰을 거의 몸처럼 가지고 다니다 보니 그 부분을 간과했다.
위키 내용을 다른 곳에 옮겨 적어서 백업하면 안 되냐고?
‘그 짓만 한 달은 넘게 걸릴걸.’
애초에 메모리얼 그립톡으로 뜨는 페이지는 복사와 캡처가 금지되어 있다. 스마트폰 페이지를 보면서 손으로 일일이 베껴야 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이 그립톡이 버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패닉에 빠질 것 없다.
애초에 굿즈박스가 주는 굿즈들은 이 괴담 세계관의 물건이지 않은가.
나도 반년 동안 이곳에서 기반이 생겼으니 이제 다른 선택지도 열린 것이다.
새 그립톡을 구하거나.
수리가 가능한 루트를 터 두거나.
재밌게도 둘 다 같은 종류의 커넥션을 필요로 했다.
‘재난관리국이지.’
이 그립톡의 출신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그립톡이나 은배지 같은 것들이 어디서 제작된 것인지 알고 있다….
당연히 거기 진입하는 방법, 암호, 준비물도 다 안다.
근데 마침 나한테 재난관리국 임시 요원 배지까지 있네.
“…….”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사흘간 병가 중이지.’
그 말인즉, 어차피 이 상태로는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거나 사망단길 관련 후속 처리를 할 순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출근만 하지 않는 거니까, 견딜 수만 있다면 다른 일로 무리해도 괜찮다. 사흘 뒤 컨디션 회복은 확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택시 요금으로 부과된 고통을 인위적으로 피하는 건 안 된다.’
이건 저주이기 때문에 진통제를 때려 부어도 낫지 않을뿐더러,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피해 가려고 하면 피한 만큼 저주 기간이 늘어난다.
실제 고통을 받아야만 요금으로 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가진 초강력 진통제, ‘해피메이커’는 정말 급해서 저주 기간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넣어두자.
애초에….
“…….”
악몽에서 그걸 꽂아 넣고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좀 오싹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로 전혀 아프지 않고 편안했어….’
꿈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내가 오염을 여우 상담실에서 치료받지 않았다면 힘들 때마다 불쑥불쑥 떠오르거나 중독됐을 정도로.
조심해야 했다.
‘…그래.’
할 수 있는 데까지 뭉개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대비해 놓자.
나는 금이 간 그립톡을 아주 조심스럽게 폰에서 분리한 후, 포장해서 내 문신 속에 수납했다.
“브라운. 다시 외출해야겠어.”
-아하, 부상투혼! 참 매력적인 인터뷰 소재입니다. 때로는 업계를 향한 열정을 보여주는 증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버티기 힘들다면 언제든 말해주시지요. 당신의 완벽한 동료, 친구, 브라운이 당신을 도울 겁니다….
그것참 오싹하고 든든한 말이었다.
“그래. 고마워.”
나는 땀범벅이 된 몸을 한 번 더 샤워한 후, 가벼운 후드집업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윤기 나는 보타이를 맨 토끼인형을 챙겨서 집업 앞주머니에 넣었다.
-말끔해졌군요, 노루 씨!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음.
“서울에서 젊은 애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 * *
나는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한 동네였다.
‘그리고 역에서 떨어져도 사람이 많지.’
망원에서 연남까지 길마다 놀러 나온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이다.
어제 갔던 한물간 골목, 사망단길로 연결되던 그 번화가와 비교하기가 미안할 수준의 인파였다.
-여긴 참 사람이 많군요! 밝고, 리액션 좋고… 아, 모두 쇼에 초대해서 생에 다시 없을 즐거움과 충격을 선사하고 싶어집니다!
으아아악!
다행히 브라운이 바로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기에, 그 들뜬 목소리를 말릴 필요는 없었다.
-아, 커피 향도 좋군요! 한 잔 들겠습니까, 친구? ……이런! 비틀거리는군요. 부축이 필요합니까?
‘…괜찮아.’
질병 저주 달고 괴담 주민과 서울 시내로 나온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그래도 양기가 가득한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카페가 즐비하고 태양이 내리쬐는, 음산함이라곤 한 점 찾아볼 수가 없는 활기찬 거리.
이 대낮에 여기서 신비롭거나 괴담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 된다고 할까.
‘오히려 그래서 안전한 거지.’
나는 그립톡을 고칠 수 있는 장소에 접근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쪽지 이미지까지 만들어져서 위키에 등록되어 있던 재난관리국의 문서.
! 정독 후 반드시 파기할 것
찾아갈 장소 : 푸른 지붕의 무간판 카페. 주택을 개조한 상업시설로 문에 메밀꽃 리스가 걸려 있음.
저기 있다.
나는 브라운의 도움을 받아, 기척을 완전히 죽이고 푸른 지붕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으로 북적이는 대형 카페였다.
대낮에도 온갖 조명과 장식이 반짝이는 그곳에서 카페 직원들은 바쁘게 주문을 받고 음료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주문 줄에 서는 대신, 살짝 비켜서 주방 공간 안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도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두 개의 문이 보인다.
[Staff Only]
똑같은 노란 문이지만, 한쪽은 그냥 밖으로 통하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열어야 할 문이지.’
두 문 중 오른쪽 문으로 출입.
왼쪽 문에는 절대 손을 대지 말 것. 한 번 왼쪽 문을 만지면 다시는 오른쪽 문으로 ‘장소’에 진입 불가.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쪽 문으로 다가가서, 살짝 리듬에 맞추어 노크했다.
똑-똑, 똑똑-, 똑-똑, 똑똑-
자진모리장단. 이 나라에서 공교육을 받았다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박자였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약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쿵.
“….”
안은 평범한 관계자용 공간처럼 보인다.
복도, 창고, 직원 휴게 공간이 뒤섞인 공간 말이다.
낡은 소파, 책상, 노트북, 소모품 박스들. 그리고 한편에는 시즌이 지난 인테리어용 소품들이 쌓여 있다.
주택, 아파트, 게르 등 집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형물을 찾아낼 것.
나는 소품을 조심스럽게 들춰서, 해당하는 것을 찾아냈다.
한옥 모형.
추석용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했었던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게 맞겠지.’
나는 해당 한옥 모형에 쭈그리고 앉은 후, 손을 뻗어서 작은 대문을 잡았다.
그리고 대문을 여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