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29화
잠시 후.
나는 은하제 대리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호 이사의 개인실로 연결되는 사내 번호.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호 이사님.”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부터 상사들은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최대한 동요 없이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한 달 전에 실종됐던 김솔음 주임입니다. 겨우 어둠에서 나와서 연락드립니다.”
[와. 안녕하세요, 솔음 님! 한 달간 잘 지내셨나요?]
…이상할 정도로 태연한 인사가 돌아왔다.
마치 오랜만에 연락한 손님과 이야기하는 듯한, 약간 반갑고 따듯한 어투에 도리어 소름이 끼친다.
이건 사망 처리된 직원이 갑자기 전화를 걸었을 때 할 수 있는 반응이 절대 아니니까.
‘정상이 아니야.’
차라리 청달래 이사가 나았지만, 그쪽은 지금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호 이상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돌아가신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무사하신 것 같아서 제 마음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곤란하시지 않으세요? 이대로 복귀하시면 포인트 손해가 크실 것 같아서….]
역시 다 아는군.
‘회사가 나한테 비용 청구할 걸 전제로 이야기하네.’
개발부 이사면 충분히 방지해 줄 수 있는 일이면서, 호 이사는 걱정되는 듯 말만 하며 도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물론 기대도 안 했다.
내가 각오한 건….
“예. 그래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일부러 한 템포 쉬고, 차분하게 물었다.
“이사님. 혹시 이전에 제안 주셨던 프로젝트 합류 건, 아직 유효합니까?”
…….
[우와, 솔음 님.]
[정말 좋은 생각을 하셨어요!]
밝은 목소리가 귓가에 빗발쳤다.
[제 프로젝트에 합류해서 지난 한 달간의 실종을 전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생한 모종의 기밀 근무로 처리하고, 포인트 손해가 없게 해달라는 조건을 거시려는 거죠?]
소름이 쭉 돋았다.
옆에서 은하제 대리가 주먹을 쥐었다.
[참 좋은 발상이네요!]
차마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말이 잘 통한다고 기뻐할 지점을 넘어서서, 무슨 요괴 같다.
[그리고 물론, 가능하죠.]
“감사….”
[그러니까 지금부터 김솔음 주임님께서는 호유원 이사의 신설 프로젝트팀의 인원이며, 이것은 명백히 통화 기록으로 남는 수락입니다. 환영해요!]
“…….”
하자 있는 부동산을 5분 둘러보고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받아서 얼결에 계약이 완료되기 직전인 기분이다.
“관대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저는 그저 이사님의 고견을 여쭤보려던 것으로, 당장 참여 의사를 밝히기 위해 말씀을 드린 건 아니라서….”
[아, 그러실 수 있죠.]
[그럼 저희 한번 뵐까요?]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당장은 상황상 회사로 찾아뵙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아, 역시 그렇죠? 안 그래도 다른 곳에서 뵈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놀랍도록 관대한 말이 나왔다.
‘…어디서 보자는 거지?’
막연히 룸 형태의 식사 자리 등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여우상담실.]
“…!”
뭐라고?
[어떠세요? 따스하고 좋지 않을까요?]
[은하제 대리 편으로 문패를 보내드릴게요.]
“…….”
우리는 천천히 은하제 대리를 돌아보았다.
‘분명 직원들을 피해서 다녀야 하는 업무를 받았다고 했는데.’
호 이사는 마치 이 자리에 대리가 있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친절하고 공손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이사와의 전화가 끝났다.
그리고 직후.
드르르르륵!
은하제 대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대리는 즉각 스마트폰에 뜬 이름을 우리에게 한번 보여준 후 받았다.
[호유원 이사님]
“…….”
“예. 예…. 음. 알겠습니다.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달칵.
“들었지? 보통 사람이 아니야.”
은하제 대리가 학을 떼며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뗐다.
“여우상담실이라니… 말이야 번지르르하게 ‘솔음 님이 오염으로 힘드실 수도 있으니 상담도 받으시고 겸사겸사 이야기 나눠요’ 같은 소리 할 거지만, 사실은 분위기 휘어잡으려는 거겠지.”
“…….”
“노루야.”
은하제 대리가 찝찝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렸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호 이사 프로젝트는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내 정론이다. 포인트가 아깝긴 하지만… 젠장.”
결국 대리는 머리를 헤집더니 한숨을 쉬었다.
현장탐사팀 인원들에게 포인트는 목숨과 다를 바 없으며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문패는 가져올 테니까, 쉽게 넘어가지 말고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면서 이사한테 끌려가지 마라. …넌 워낙 말솜씨가 괜찮으니까, 믿는다.”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이야기 들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잠시 후.
회사에 갔다 온 은하제 대리에게 나는 호 이사가 약속한 물건을 받았다.
이제는 꽤 눈에 익은 문패.
여우상담실
‘후우.’
“노루야. 분위기 안 좋으면 그냥 뛰쳐나와 버려!”
“감사합니다, 주임님.”
나는 상사들의 격려와 조언을 받으며 임의의 문에 문패를 걸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여우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끼이익.
“…….”
이전에는 분명 여기서 탈의실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그 대신 다른 공간이 보였다.
‘대기실?’
상담을 하기 전에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거나 심리 검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공간이었다.
다만 편백나무로 된 탁자와 의자가 몇 개 놓인 아이보리색 공간은 아기자기 소박한 맛이 있었으나, 정작 상담실로 통하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문 위에 붙은 안내문.
오늘은 휴진합니다 *^^*
(문패는 도로 챙겨가세요!)
‘잠깐, 이러면….’
톡톡.
“안녕하세요, 솔음 님!”
기절할 뻔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어깨를 두드린 호인의 인상을 한 젊은 남성이 보인다….
호 이사가 호인처럼 웃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마침 여우상담소가 휴진일이라 딱 좋았네요! 다른 사람이 들어올 일도 없고요. 어때요, 괜찮으신가요?”
“……예. 감사합니다.”
괴담 속 상담소가 휴진했다는 걸 대체 호 이사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여우상담실과 자신이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은데.’
일단은 괜히 이 지점을 파지 말자.
확실히 논점을 잡고 가야 한다.
내가 필요한 건 포인트 복구다.
“그럼 저희 앉아볼까요?”
“예. 감사합니다.”
어쨌든, 나는 안락한 대기실 의자에 앉아 이사를 마주 보게 되었다.
별로 현실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휴우.’
나는 대기실에 비치된 티백 녹차를 타서 이사 앞에 두었다. 이사는 감사의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그냥 싱글벙글 웃고 있다.
‘먼저 대화를 시작해 주진 않겠다는 거지.’
그렇다면야.
“이사님.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프로젝트에 합류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혹시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실까요? 분명 전화로는 의향이 있으신 걸로 들렸거든요.”
침착하자.
‘지금의 나는 퇴직 처리된 외부인이다.’
막말로 복귀 안 하면 그대로 민간인 되는 거니까, 이사의 알력이 전보다 강하지 않다.
할 말을 하는 게 맞다.
나는 깍지를 끼고 말했다.
“예. 죽을까 봐 두렵습니다.”
“…!”
“포인트를 잃는 것은 뼈아프지만, 포인트를 다 모으기 전에 죽으면 아무 소용 없지 않습니까.”
“아하.”
“기존 현장탐사팀보다 위험하다면, 굳이 프로젝트를 하는 건 몹시 두려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복귀하거나 퇴사하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그러시군요. 와. 정말 똑똑하시네요!”
“…….”
비꼬는 건가?
하지만 이사는 알 수 없도록 선량한 표정으로 성실히 대답할 뿐이다.
“그리고 좋은 질문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현장탐사팀보다 호 이사의 사내 기밀 프로젝트는 더 위험한가?’”
“…….”
“거기에 대한 제 대답은….”
호 이사가 빙긋 웃었다.
“‘위험하지 않다’입니다. 오히려 더 생존율이 높을지도 몰라요.”
“…!!”
“아, 물론 업무에 따라서는 더 위험한 경우도 확률적으로 생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솔음 님께 지금 제안드릴 업무는 확실히 아니에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는 거겠지요.”
“맞아요. 여기까지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의 전부네요.”
호 이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보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하지만 오히려 전보다 좋은 상황에, 생존율이 높은 업무라는 것만은 확답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래서, 프로젝트에 지금 합류하실 건가요? 참고로… 다음부터는 저희도 인원이 완전히 확정되어서 새로운 사람을 받지 못할 듯하네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완전히 못 박는군.
나는 호 이사를 보고, 일부러 고뇌하는 듯 몇 초간 시간을 끈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습니다.”
“오! 아주 좋아요.”
‘하겠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
여차하면 마지막까지 발을 뺄 수 있는 말이지. 하지만 다행히 호 이사는 박수를 보내며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자기가 따듯한 물을 리필해서 내 앞에 녹차를 놔뒀다.
하나도 안 고맙고 살 떨렸다….
“정말 좋은 선택을 하셨어요. 정말로, 오히려 근무조건이 더 좋아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무조건, 말씀이십니까.”
“네. 더 편안하실 거예요.”
이사가 녹차를 마시며 눈을 가늘게 떠 웃었다.
“한 달이나 어둠에 계셨으면 고초가 심하셨을 텐데, 또 고등급 어둠에 들어가시는 건 힘드실 것 같아서요.”
이사가 호인 같은 말투로 말한다.
“재밌는 일을 해보시는 게 어떨까 했죠.”
어딘가.
미묘한 뉘앙스였다.
“…재밌는, 일이군요.”
“네! 그러니까, 솔음 님이 해주실 업무는….”
그리고 터무니없는 ‘김솔음 주임의 업무’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재난관리국에 잠입해 주시는 거예요.”
“…!!”
“이걸 스파이라고도 하던가요?”
호 이사가 눈을 찡긋거렸다.
“공시에서 합격한, 아주 깨끗한 신분의 신입 요원의 신분으로 잠입해서… 그 속에 섞여서 생활하며 요원으로 지내주세요.”
맙소사.
“그리고 그곳에서 관리하는 한 초자연 재난에 대한 정보를 찾아와주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나는 침을 삼켰다.
“어떤 초자연적 재난을 찾아오길 원하십니까.”
호 이사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또 사람 좋게 웃는다.
“어떻게 하냐고 따지는 게 아니라, 뭘 할지 목표물부터 물어보시네요. 역시.”
“…….”
“그건 차차 알려드리죠. 일단은 성공적으로 잠입하시는 게 중요한데….”
호 이사가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제 생각에, 솔음 님 만한 적임자도 없는 것 같거든요.”
“…….”
혹시 들켰나.
내가 재난관리국과 제법 접점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쪽 소속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아직도 주머니 속에 있는 은심장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호 이사는 재난관리국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일단 입 닥치고 있어 보자.
호 이사의 충격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혼자는 외로우실 것 같아서, 다른 분들께서도 함께 투입되실 거예요.”
예?
“…누가 말입니까?”
은하제 대리를 순간 떠올렸는데, 전혀 예상치 못 한 답변이 또 돌아온다.
“솔음 주임님의 동기 두 분이요.”
“…!!”
“보실래요?”
나는 이사가 내미는, 전부 블러 처리되어 이름과 소속만 확인 가능한 서류 한 페이지를 확인했다.
현장탐사팀 R조 고영은 (사원)
현장탐사팀 F조 장허운 (사원)
…동기 중에, 재난관리국에서 받아줄 것 같은 성격만 뽑아둔 것 같은 이름 둘이 거기 적혀 있다…….
“자, 솔음 씨.”
호 이사가 활짝 웃는다.
“재난관리국 요원 스파이로 멋진 활약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