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3장] – 기적을 감상하는 태도 10
텡 마바노 조장은 자신의 머릿속 비망록에 있는 니어엘 헨로 수교위에 대한 항목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아기살 쏘기의 명수라 는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텡은 그 설명에 주석을 달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또한 아기살 쏘기의 좋은 스승이기도 함.
텡은 니어엘 헨로가 자신의 중대원들에게 아기살을 가르쳤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군대에서 가르치기엔 위험 한 기술이다. 덧살이 벗겨지거나 할 경우 아무렇게 날아간 아기 살은 옆에 있는 동료를 죽일지도 모른다. 텡은 지휘자였고, 부하 를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그들에게서 사고 발생 가능성을 편집 증적으로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관념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군대에서 무수히 발생하는 불가사의한 사고들을 놓고 볼 때 그것은 잘못된 관념이 아니다. 하지만 텡은 그 관념 때문에 자신이 또 다른 당연한 사실을 무시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기살 쏘 기는 엽사나 활량보다는 병사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니어엘이 병 사에게 필요한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부하 외에 누 구에게 가르치겠는가.
자신의 판단 착오에 이를 가는 텡을 향해 니어엘이 외쳤다.
“맞히기 힘든가 보군요. 도와드리겠습니다. 텡 마바노 조장!”
니어엘의 쾌활한 외침에 텡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오백 발이나 되는 아기살이 날아온다면 고집스러운 유료도로당원을 물 귀신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간단할 것이다. 어쩌면 지멘에게도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텡은 자신과 수비 대원들이 사선에 들어가 있음을 니어엘이 어찌 간과하고 있는지 믿을 수 없었다. 분노 속에서 텡은 지적 수준에 관련된 저속한 단어들을 남용해 가며 그 사실을 니어엘에게 지적해 주기로 결심 했다.
그러나 텡의 입이 열렸을 때 거기에서는 말은커녕 계명성이나 니름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후자의 두 가지는 물론 인간인 텡에 게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텡이 말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발케네 국경 수비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수비대원들은 의심스 러운 눈으로 자기들의 조장을 바라보았다.
텡은 분노와 경악, 의혹을 담은 눈으로 니어엘을 노려보고 있 었다. 니어엘이 다시 쾌활하게 말했다.
“쏘십시오! 지원하겠습니다.”
텡의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 그는 눈을 내려 배를 보았다. 희망을 찾는 것이라면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꾸준히 다가오고 있는 나룻배 안에는 텡이 아는 최고 수준의 유언 청취 전문가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텡은 결정을 내릴 시간이 거의 없음을 깨달았다.
“뒤로 돌아.”
수비대원들은 당황했다. 그러자 텡은 몸소 뒤로 도는 행동의 시범을 보여 주었다. 발케네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린 텡은 활과 화살을 안장에 고정시켰다.
“전속력으로 귀환한다.”
도망간다는 말은 수비 대원들에게도 금지어였다. 그리고 수비 대원들은 텡의 말을 오해하지 않았다.
텡과 수비 대원들이 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을 보던 니어엘은 빙긋 웃으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활에 걸렸던 덧살과 아기살이 치워졌다. 배가 나루터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던 니어엘은 문 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뒤를 잠깐 돌아보았다.
“뭄토는 어디 있지?”
제국병들은 당황하여 뭄토가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물 론이거니와 그들이 볼 수 있는 곳 어디에도 뭄토의 모습은 보이 지 않았다. 니어엘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도저히 볼 수 없어서 도망친 모습이군.”
그렇게 설명하던 니어엘은 자신을 곁눈질하는 시선을 느꼈다.
“카루스 부위, 뭄토가 어디 갔는지 알고 있나?”
니어엘은 카루스 부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카루스 부위는 귀 밑머리를 긁적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저도 뭄토가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뭐지?”
“우선, 왜 한 대만 더 쏘면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위협하셨는지 궁금하군요.”
니어엘은 조금 주춤한 표정으로 카루스 부위를 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필요하겠지. 좋아. 텡이 사공을 죽여서라도 지멘의 월 경을 저지하려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하나다. 지멘을 추적한다 는 명분으로 제국군이 발케네에 들어가는 상황을 미연에 저지하려는 거지.”
“네? 제국군은 봉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래. 하지만 지멘은 제국 공신을 살해했지. 그 리고 제국군이 보는 앞에서 발케네에 들어갔고. 그 정도면 억지 를 부려 볼 명분이 되지. 물론 폐하께 그런 억지를 부릴 생각이 있으신지 없으신지는 알 수 없지. 하지만 폐하의 의향과 관계 없 이 발케네 공 락토 빌파에게는 그런 억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자유가 있지.”
“흐음. 그래서…..”
“텡은 일부러 찾아와서 들어오지 말라고 강조했어. 그리고 오 늘은 사공을 죽이려 드는군. 아마 오래전에 발케네 공으로부터 국경 수비대원들에게 어떤 지시가 내려졌을 거야. 승천한 티나 한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제국군이 발케네령에 들어올 빌미를 주 지 말라는 식이었겠지. 그런데 발케네 공이 왜 그렇게 우리를 싫 어하는지 모르지만 난 발케네 공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춰 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
카루스는 다시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수교위님께서는 지멘이 발케네령에 들어갔 다는 사실을 보고하시면서 그것이 제국군의 발케네령 진입의 빌 미로 이용될 수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담으시겠군요. 발케네 공 이 자신의 땅을 지나치게 보호하려 애쓴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나는 물론 사실대로 보고할 거다. 내 의무니까.”
니어엘의 약간 뻔뻔스러운 표정은 카루스를 즐겁게 했다. 카루 스는 자신이 상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대답을 들어도 마음 상하지 않을 자신감 속에서 두 번 째 질문을 꺼냈다.
“마바노 조장이 활을 쏘기 전에도 수교위님께서는 명령을 내리 지 않고 계셨습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손을 들고 계셨습니까?”
“그거? 빚 갚음이지.”
“예?”
“결국 레콘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물에 빠지는 것이다. 물에 닿는 순간 허우적거릴 겨를도 없이 쇳덩이처럼 바로 가라앉지. 생물 중에 그런 식으로 물에 빠지는 건 레콘뿐일 거다. 절대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야. 그런데 소화차로 돌진하는 것과 배에 타는 것 중 어느 쪽이 물에 빠질 위험이 더 클까?”
니어엘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본 카루스는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고삐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카루스는 니어엘을 쳐다보았다. 니어엘은 한숨처럼 웃었다.
“글쎄. 모르지. 소화차로 돌진하면 반드시 젖지만 나룻배를 탈 경우에는 조심하면 젖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또 사공 을 인질로 삼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니어엘은 말끝을 흐렸다. 듣는 귀가 많았고 지휘관의 입장에서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니어엘은 자신의 감정을 어 떻게 표현해야 할지 조금 고민했다.
그동안 나룻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도달했다.
먼저 지멘이 대단히 신중한 동작으로 나루터에 올라섰다. 두어 걸음을 점잖게 걸어간 지멘은 세 번째 걸음에서 앞으로 도약했다. 지멘은 수십 미터 저편의 단단한 땅에 무릎부터 떨어졌다. 두 무릎과 양손으로 땅을 짚은 지멘은 격한 호흡을 몰아쉬었다. 아실 또한 발작적인 웃음 때문에 호흡에 문제를 겪고 있었다. 나룻배에서 가까스로 내린 아실은 비틀거리며 지멘을 향해 걸어 갔다. 그러나 채 반도 이르지 못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실은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몸을 돌려 제국령 쪽을 바라보았다. 아 실의 가슴이 크게 벌렁거리는 것은 제국군에게도 잘 보였다. 니어엘은 피식 웃었다.
‘저 팻감을 쓸 줄은 몰랐는데.’
니어엘은 더 이상의 고민 없이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적을 일으키는 자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카루스 부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니어엘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자! 저 숨 쉬기 어려워하는 남녀는 발케네 땅에 있고, 그렇다 면 우리는 저들에게 볼일이 없다. 임시 훈련은 이만 끝내고 중대 본부로 복귀하자.”
카루스는 이 체포 작전이 언제부터 임시 훈련이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꺼낼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해답 없는 의문을 고민하는 대신 카루스 부위는 재빨리 수교위의 명령을 전달했다. 곧 제국군 전체가 강변에서 물러났다.
강을 건너오던 데무즈는 잠시 노를 멈추었다. 다시 제국군과 조우하는 것도 좀 점잖지 못한 일이라 생각한 데무즈는 노를 멈 춘 채 마지막 제국병의 모습이 갈대 사이로 사라지기를 기다렸 다. 이윽고 강변에서 모든 제국군이 떠났다. 노를 당기려던 데무 즈는 발케네 쪽을 잠시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빈 나루터뿐이었 다. 조금 전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남녀의 모습은 더 이 상 보이지 않았다.
유료도로당원들은 말하곤 한다. 길은 방랑자가 흘렸던 눈물을 기억할 수 있지만 방랑자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부족함 없는 유 료도로당원답게, 데무즈는 길을 떠난 고객들의 신상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사공은 정오의 강물 속에 노를 쑤셔 넣어 떠다니던 햇빛을 부서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