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4장] – 묻은 것과 믿은 것 8

랜덤 이미지

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4장] – 묻은 것과 믿은 것 8


기괴하고 무서운 밤이었다.

사람들이 대지의 그 지점을 아스캄이라 부르기로 합의한 이래 그런 밤은 한번도 없었다. 아스캄의 주민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 이 키우는 가축, 아니 아스캄에 있는 생명체 중 그 어떤 것도 그 날 밤 잘 수 없었다. 밤이 살해당하며 내지르는 비명 같은 굉음 때문이었다.

모든 폭풍이 아스캄에 모여 회동을 가진 것 같았다. 수십 킬로 미터 바깥에서도 세상의 구조가 바뀌는 것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불빛은 없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며 깨어 있어 야 했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방화는 인간의 폭력이다. 불을 자유로이 다루는 도깨비는 비폭력적이고 나가들은 나무를 태우는 일에 질색한다. 그리고 아스캄에 닥친 전대미문의 밤을 지배하는 레콘은 불을 지르는 일을 쩨쩨하다고 여기는 종족이다. 그들은 가지고 태어난 몸과 최후의 대장간에서 받은 무기로 직접 부딪치는 쪽을 훨씬 선호한다. 그 때문에 엉겅퀴 여단의 레콘 병 사들이 저지른 일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다음 날 아침이 찾아 왔을 때였다.

틸러는 정신을 질식시키는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 게 생각하는 것이 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틸러는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스캄 사람들이 모여들 고 있었다. 어린애는 하나도 없었고 다섯 명 이하의 무리도 없었 다. 이곳이 바로 그들에게는 고향임을 떠올린 틸러는 갑자기 그 들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물론 물어본다 해서 대답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테 니까. 그래서 틸러는 자신의 인상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 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돌아보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차라리 정우가 레콘들에게 남작의 병사들을 주살하라고 명령 했다면, 성벽을 부수고 기둥을 꺾고 대들보를 모조리 주춧돌 아래로 쑤셔 넣으라고 명령했다면 틸러는 분노와 슬픔 속에서 그 행위를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골케 남작의 성이 지난 밤에 당한 일은…….

“실례합니다. 장군님.”

틸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의 행동 을 후회했다. 틸러의 다급한 동작에 놀라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대단히 늙은 인간 노인이었다. 노인의 등 뒤로 꽤 먼 곳 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이고 있었다. 틸러는 노인이 사람들을 대 신해 자신에게 온 것임을 곧 깨달았다. 틸러는 부드럽게 말했다. 

“놀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영감님. 저는 장군이 아니라 부위 입니다. 장군이 돌리면 열심히 도는 부위지요. 무슨 일입니까?” 

“아, 예. 그러신가요? 바쁘지 않으시다면 여쭐 것이 있어서요. 부위님.”

“말씀하세요.”

“저, 도대체 남작님의 성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저건, 저건 도대체 뭐죠?”

틸러는 쓴웃음을 지었다.

“영감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예?”

“영감님, 믿기 싫으시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시잖습 니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틸러의 타이르는 듯한 어조에 대한 반사적인 동작일 뿐 그때까지 노인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노인의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떠 올랐다. ‘생매장.’ 노인은 왜 그런 끔찍한 단어가 떠올랐는지 의아해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은 황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사레가 들렸는지 몇 번 기침을 한 노인 은 많이 낮아진 음정으로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정말 저 아래에…. 그러니까………… 생매장한 겁니까!”

틸러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을 노인이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예. 여러분의 나라님께서 골케 남작을 벌하기 위해 그의 성을 묻었습니다.”

노인은 틸러가 배가 고파서 하늘치를 구워 먹었다고 말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틸러 자신도 스스로의 말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틸러는 고개를 돌 렸고, 원하던 것을 얻었다. 틸러는 맥없이 생각했다. 

‘그럼 저건 성 무덤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 안에 성이 묻혀 있는 흙더미라면 성 무덤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골케 남작의 성이 있던 언덕에는 지금 성보다 조금 큰 규모의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정우의 명령에 따라 팡탄 하장군과 300명 의 레콘들은 16시간 만에 성을 깨끗이 묻어 버린 것이다. 그 말 도 되지 않는 짓을 위해 언덕 뒤편에 있던 산의 형태가 일부 변 경되었다.

앞으로 모든 역사가들이 특기하고 모든 호사가들이 찾아와 구 경할 위업을 달성한 영웅들은 지금 노동 후의 나른한 피로 속에 드러누워 있거나,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있거나, 땅바닥에 앉은 채 옆사람과 담소하고 있었다. 간혹 웃음이 들려오기는 했 지만 전체적으로 언덕 아래쪽의 그들은 틸러와 다른 계절, 좀 더 느긋한 계절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틸러는 그들이 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흥분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엉겅퀴 여단 1대대의 병사들은 상대의 짜증 나는 장광설을 묵묵 히 들어 주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옛날에 성 하나를 묻었지.’라 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레콘들 은 옛친구와 함께 이야기할 추억 거리를 하나 만들었다는 기쁨밖 에 보여 주지 않았다.

틸러의 의문을 풀어 준 것은 두어 시간 후 깨어난 정우였다. 한밤의 대역사가 종료되어 비로소 고요함이 찾아들었을 때 정 우는 어떤 교위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교위는 자신의 배낭을 비 운 다음 그 안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 간단한 천막을 만들었다. 몸에 난 풍성한 깃털 때문에 레콘들은 천막은커녕 모포도 제대로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그 배낭 천막은 정우의 체구에 알맞았다. 정우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 기어 들어가 잠들었다. 다 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틸러는 도깨비들이 잘 자는 것을 높은 덕 의 증거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틸러가 보기엔 저런 일을 저질러 놓고도 태평한 레콘이나 그런 충격적인 풍경 앞에서 태연히 잠드는 정우나 똑같이 이해 불가능한 자들이었다. 두 명의 레콘 병사들이 지키던 배낭에서 정우가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을 때 틸러는 자신의 표정이 지나치게 의문스럽지 않기 만을 바랐다. 주위의 레콘들 중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할 리는 없 기에 틸러는 정우에게 씻을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정우는 고마워하며 그를 따라나섰다. 그것은 조금 위험한 광경이었다.

정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걷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틸러는 장님을 인도하는 기분을 느꼈다.

“미안해요. 하지만 불로 깨끗이 씻는 도깨비들 사이에서 자란 여자가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이해하겠죠?” 

“이해합니다, 규리하 공 아가씨.”

틸러가 미리 수배해 둔 집으로 걸어가며 레콘들에 대한 이야기 가 나왔다. 정우는 레콘들이 흥분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 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것이 저분들의 숙원이었다면 저분들도 스스로에게 자랑스 럽겠지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 게 자랑할 일은 충분히 되잖습니까.”

정우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을 가린 채 그 렇게 했기 때문에 몇 걸음 비틀거렸다. 중심을 회복한 정우는 고 집스럽게 손을 얼굴에 붙인 채 말했다.

“비형 어르신께서 승천한 티나한에 대해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 각나네요. 티나한은 하늘치에 오르고 싶어했지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올라가려고 애쓰지는 않았대요. 결국 가장 먼저 하늘치에 오 른 사람은 알다시피 막타드 신뷰레와 킬소 펜, 주키 네미…….” “그리고 참관하러 갔다가 반강제로 올라가게 된 오레놀 선사였 지요. 그리고 티나한은 그 사실에 대해 유감스러워 하지 않았고요. 저도 레콘이 자기 숙원을 다른 사람이 먼저 이루는 일에 신 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요?”

“레콘들이 다른 사람이 이룬 일에 관심 없다면, 다른 사람이 성을 파묻었다 해도 부러워하거나 약올라 하지는 않을 거예요. 재미있어 할지는 몰라도요. 다른 레콘들이 그럴 것을 아는데 저분들이 왜 자랑하겠어요?”

틸러는 아버지를 동정했다. 멍청한 아들을 두셨으니까. 정우의 말이 옳았다. 레콘은 개인주의자다. 그들이 뭔가를 자랑한다면 그 대상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 로를 감동시키기 위해 숙원에 도전한다.

정우의 세면은 틸러의 기대대로 굉장했다. 틸러는 정우의 세면 법에서 도깨비불로 씻기에 물로 씻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도깨비들이 어린 그녀에게 경쟁적으로 건넸을 기상천외한 조언의 흔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아이저 규리하가 파 견한 교사가 많이 교정시켜 준 것이라니 틸러는 보다 어린 시절 의 정우를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세면을 마친 정 우를 다시 언덕으로 안내하면서 틸러는 자신이 레콘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굉장한 것을 보았노라고 자랑할 수 있으니까.

땅에 앉아 있던 골케 남작은 넋이 빠진 얼굴로 자신의 주군을 올려다보았다.

골케 남작과 그의 가솔들, 성을 지키던 아스캄 수비 대원들이 성을 뛰쳐나온 것은 성의 1층 부분이 반쯤 묻혔을 때였다. 뛰쳐 나가야 한다는 기분을 느낀 것은 훨씬 이른 시점이었지만 성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일이 장난이나 거짓 위협이 아니라는 것 을 확신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상식이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바깥의 레콘들이 정 말로 성을 묻어 버릴 작정이라는 확신이 모든 사람을 덮쳤을 때 그들은 어떤 전망이나 계획도 없이 동시에 성을 뛰쳐나왔다. 따 라서 체포는 간단했다. 엉겅퀴 여단의 병사들은 방을 치우는 정도의 노고만으로 그들을 한자리에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밤새도록 땅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그들 중 300명의 레콘을 뚫고 탈주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골케 남작은 원망하거나 분노를 터뜨릴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정우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정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틸 러에게 물었다.

“아스캄의 등기소장은 어느 분이지요?”

“어젯밤에 말을 타고 도망쳤습니다.”

“어머? 왜 말을 타고 도망친 거죠? 좀 느리더라도 당연히 강을 따라 도망쳐야 할 텐데.”

“일반적으로는 그렇지요. 하지만 구헬 협곡 때문에 상류로는 갈 수 없고 하류로 도망친다면 중간에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스지우나 데린보트로 가려면…” 

문득 틸러는 정우가 규리하의 지리를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 니다. 조금 전 네 명의 병사가 붙잡으러 갔으니 늦어도 저녁까지 는 잡아 올 겁니다.”

“그렇군요. 파노 영감님의 자부는 어느 분이죠?”

“그 여인은 집으로 보냈습니다. 몸이 상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 적 고초가 심해서 빨리 쉬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나라 님이 깨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꼭 인사를 하겠다고, 그리고 남작 의 따귀를 한 대 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을 겨우 돌려보냈지요. 파노와 그 아들은 그녀를 집에 데려다 놓자마자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가요? 잘하셨어요, 틸러.”

주위의 레콘들이 조금씩 이쪽을 향해 몸을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렸다. 레콘들의 모습에 질려 감히 다가오지는 못하지만 아스캄의 사람들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바라보 고 있었다. 정우가 말했다.

“도깨비들은 저를 정우라고 부르지요. 킴 식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변경백 아이저 규리하의 딸 비셀스입니다.”

골케 남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우는 두 손을 모아 배 앞에 붙였다.

“보시는 것처럼 남작님의 집이 사라졌어요. 그러니 이젠 아스 캄 사람들의 집에서 사세요.”

틸러는 흠칫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작이나 그의 병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빈틈없이 바라보던 팡탄 하장군도 벼슬을 약간 꿈틀하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남작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

“아스캄 사람들의 집에서 살라고 했어요. 한곳에 너무 오래 머 물지는 마세요. 폐가 되니까. 사흘 넘게 한집에 머무시면 안돼 요. 물론 어떤 아스캄 사람들도 남작님을 머물지 못하게 해선 안 돼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서 자며 사흘 동안은 머물 게 해줘야 해요.”

골케 남작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왜……?”

“열심히 일해서 남작님을 먹이고 입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알게 해 드리려는 거예요. 그렇게 직접적으 로 가르쳐 드려도 모른다면 남작님은 바보겠지요. 스스로와 아스 캄을 위해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바보가 아스캄을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

남작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골케 남작은 처음으로 완전한 문장을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규리하 공?”

“남작님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아스캄의 통치자예요.”

“제가 아스캄의 통치자라고요? 제가요?”

“그래요. 아스캄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잠자리를 제공받 고, 그 대신 아스캄을 통치하세요. 다음에 돌아와서 남작님이 잘 하고 계신다면 저 성을 도로 파내 드리지요. 만일 보수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면 다른 성을 짓도록 도와드리고요. 하지만 그렇 지 않다면 남작님에게서 다른 것을 뺏겠어요.”

대취한 레콘이 골케 남작의 목을 술병으로 착각하고 꽉 움켜쥔 것처럼 남작의 얼굴이 하얗게 바뀌었다.

“다른 것? 다른 것이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스캄에 대한 통치권 외에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통치권만은 끝까지 남아 있을 거예 요. 남작님은 계속해서 아스캄을 통치해야 하니까. 통치에 필요 하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묻을 수 있겠지요.”

틸러는 그 무엇이든이라는 말이 정말 무서우면서도 적절한 말 이라고 생각했다. 성채 한 기를 통째로 묻었는데 무엇이든 못 묻 겠는가. 아스캄 수비 대원들은 다음에 묻힐 것이 남작의 군대가 되고 말 거라는 확신 속에 영을 흘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골 케 남작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 는 골케 남작에게 정우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잘해 보세요. 팡탄 하장군님?”

정우의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팡탄 하장군은 갑작스러운호 출에 놀라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 말을 다시 외쳐 주시겠어요? 다른 분들도 알아야 하니까.”

팡탄 하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세 배로 늘어날 때까지 몸을 부풀렸던 팡탄은 곧 계명성을 뿜어 내었다.

아스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우의 선고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 다. 자신의 선고였지만 정우는 주저 없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 다. 틸러는 꽤나 실용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지만 꼭 묻고 싶은 것 이 있었기에 정우를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틸러가 자신의 입을 가리키는 것을 본 정우는 조금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오른쪽 귀 를 막은 손을 뗐다. 그리고 그 귀를 틸러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틸러는 손나팔을 만들고 외쳤다.

“규리하 공 아가씨!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겠다고 하신 건 이런 뜻이셨습니까?”

그리고 틸러는 자신의 귀를 정우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정우 또한 손나팔을 만들었다.

“네! 남작님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 드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출발하실 땐 호위자가 레콘 300명이라는 것을 모르셨잖습니까?”

“예! 몰랐어요! 갑자기 출발했으니까! 그런데요?”

“그러면 그때는 무슨 방법을 쓰실 생각이셨습니까?”

“아무 생각 없었는데요? 남작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데 그분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미리 알 수 있었겠어요!”

틸러는 곧 대답하려다가 잠깐 멈추고 고함지르느라 새빨개진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 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우는 이곳에 와서 남작을 보았고 그가 성에 기대어 끝까지 싸울 것을 결심한 것을 확인한 다음 그에게서 성을 제거했다. 할 일이 없어진 레콘 300명이 때 마침 가까이 있었으니. 정우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갑작스 럽게 틸러는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채 수습하지 못한 미소를 입가에 묻힌 채 틸러는 손나팔로 외쳤다.

“그게 누구라도 그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믿으세요?”

정우는 틸러가 왜 웃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진 도깨비들 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상대가 웃으니 덩달아 웃으며 외쳤다. 바 로 그때 팡탄의 계명성이 끝났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 요 속에 정우의 외침이 크게 울렸다.

“믿고 싶어요!”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