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8장] – 아는 것과 우는 것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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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8장] – 아는 것과 우는 것 9


하늘누리를 며칠 동안 점령하고 있는 흥분감은 몽상가의 자질 을 가진 자들을 걱정스럽게 했다. 그들은 그 흥분이 하늘치에게 까지 전달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발케네 공 스카리 빌파가 규리하 공 비셀스 규리하에게 보낸 청혼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발케네에 한 번이라도 발을 디딘 사람은 신부 절도 풍습에 대한 전문가로 대우받았다. 신부 절도에 대한 중론은 그것이 보편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화각이나 황궁에서 상식인들을 기쁘게 하는 논평을 내주지는 않았다. 고위층의 침묵은 사람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발케네와 규리하의 결합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누리에 별로 없었다. 그런 결합을 황제나 대 귀족들이 좌시할 리는 없고, 따라서 사각 지대에서 저지 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그런 판단을 주도하는 것은 젊은 발케네 공 스카리 빌파의 추 종자들이었다. 파락호와 제국의 동량 사이를 위험하다 싶을 정도 로 왔다 갔다 하는 이 젊은이들은 스카리 빌파의 결혼을 황제가 방해하게끔 놔두지는 않을 작정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그리 고 규리하 성에 주둔하고 있는 가시나무 군단의 소대 하나가 휴 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그들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듯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다. 스카리 빌파도 그대 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전부 불러 모아 큰 술판을 벌였다. 술에 취해 모든 것을 욕한 다음 자신이 모든 것을 바로잡았다고 착각하는 것은 분명히 젊은이의 특권이 다. 흥분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디서부터 흘러나온 정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날’이 언제인지 알게 되었다. 아라짓력 30년 12월 19일이 왔을 때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날’이 내일이라 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찾아왔다.

스카리 빌파의 집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다. 기세등등한 젊 은이들 몇 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가 우르르 몰려 나왔다. 간 혹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오는 젊은이도 있었다. 집 안에서는 바깥 의 눈을 피하는 움직임들의 파편들이 스며 나왔다. 오전은 짧고 숨가쁘게 지나갔다.

정오 무렵, 발케네 공작 락토 빌파의 계승권자인 스카리 빌파는 자신의 방에 앉아 앞에 앉은 사내에게 말했다.

“알았어. 곧 가도록 할 테니 가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해.” 

사내는 고개를 꾸벅하고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스카리는 서 탁 위에 얹어 둔 목검을 바라보았다.

등이 가려웠다. 무심히 손을 뒤로 돌렸지만 손이 닿지 않는 부 분이었다. 스카리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긁는 것을 포기했다. 그 는 다시 목검을 관찰했다. 칼과 비슷한 형태로 깎아 놓은 몽둥 이. 실제 쓰임도 몽둥이와 똑같다. 베기와 찌르기 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치기뿐이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6년 전으로 돌아가면 거기엔 이런 나무 작대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스카리 빌파가 있을 것이다. 그 스카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자신의 것이 될 대장군 지위뿐이다. 지금의 스카리는 과거의 스카리를 비웃으며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대장군? 바보 녀석. 나무 작대기로 납 치극을 벌이는 녀석이 될 거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겠 지? 기다려 봐.

치솟는 격분에 스카리는 왼손 소매 속으로 오른손을 집어넣었 다. 그 손으로 커다란 비수를 꺼내어 들었다. 스카리는 그것을 단단히 쥐어 눈앞으로 가져왔다. 코 바로 위까지 가져오자 칼이 두 개로 보였다. 스카리는 한쪽 눈을 감았다. 다른 눈으로 하나 가 된 칼끝을 바라보며 서서히 끌어당겼다. 칼끝은 이제 속눈썹 에 닿을락 말락 하는 곳에 떠 있었다.

재채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스카리는 비수를 끌어내렸다. 비수는 그의 눈에 대한 아쉬움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고 스카리는 억지로 팔을 끌어내려야 했다.

‘엘시 에더리 네 심장에 이걸 박아 줘야 하는데.’

엘시는 이곳에 없다. 스카리는 그 사실이 정말 싫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스카리는 가끔씩 자신의 내부에서 들끓는 분노에게 제물을 주려고 시도해 보았다. 타이모, 아실, 분리주의, 술, 엘시 에더리. 그중 어느 것도 엘시 에더리만큼 그 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지만 스카리의 내부에도 합리성을 존중하는 마음은 존재하고 그 마음 은 엘시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겁에 질려 증언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 마음은 엘시가 군단을 구하고 스카리의 목숨 도 구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스카리는 대개 그런 지적을 무시 하는 편이었다. 너는 다른 어떤 선행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중 대한 잘못을 저질렀어. 그것은…….

무엇인가가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소음. 어떤 소음이 들려왔다. 굉장히 불쾌한 소음이다. 스카리 는 벌떡 일어섰다. 마루로 달려나오니 그 소리가 대문 쪽에서 들 려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리는 거칠고 흉했다. 스카리는 비수 를 거꾸로 쥐어 팔 뒤에 숨기고 왼손으로 목검을 꼬나쥐었다. 드 디어 소음 사이로 욕지거리와 비명도 들려왔다. 스카리는 이제 자신의 저택이 공격당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찢어 죽일 놈 들이 발케네 공의 집을!’

스카리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을 때 그의 의문에 대한 대답이 제시되었다. 우렁찬 함성으로, “사자패주 출두야!”

강대한 발케네의 계승권자는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위로 삼고에서 아래로 태수관 분원까지 아라짓 제국의 다양한 관직들의 계보는 초보 관리들의 두통 거리다. 사실 아라짓 제국 의 광활한 영토에 비하면 행정 조직은 놀랄 정도로 단순한 편이 다. 뱀단지의 강력한 전달력 때문에 중간 결정권자들과 그들의 감시자, 견제자 등을 대폭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국의 행정 조직을 완전히 숙지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노력 이 필요하다. 많은 종류의 계약직이나 임시직뿐만 아니라 귀족 제도와의 연계 때문에 그러하다. 공작과 같은 예우를 받는 삼고 에서 남작과 같은 예우를 받는 태수까지 귀족 제도와 연계하여 제국 행정 조직을 완벽히 이해했을 때 비로소 초보 관리는 중견 으로 대우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떤 관리도 특별히 암기할 필요가 없이 바로 그 서열 을 이해하는 관직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높은 삼고나 가장 낮은 분원 같은 것은 물론 외울 필요가 없다. 그런 관직들 중 가장 특 이한 것이 사자패주로 불리는 임시 관직이다.

사자패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이러하다. 이들은 황제의 직지 를 받아 지정된 고장을 암행하며 관리의 행적을 평가하고 민정을 살피는 임시직 관리다. 그리고 징벌이 필요할 경우 소정의 절차 에 따라 관리를 처벌할 수 있다. 지정된 고장에 대한 관찰과 처 벌이 끝나면 이들은 황제만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으며 다른 사 람은 황제의 허락이 있을 때만 열람할 수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 고 그 보고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이들의 권리 및 의무도 소멸된다. 신분 증명과 업무 편의를 위해 흑사자가 양각된 패가 지급되 고 업무에 종사하는 동안 원래의 지위와 상관없이 무조건 백작과 동일한 예우를 받는다. 단순하다. 그리고 이 단순한 설명은 사자 패주의 놀라운 위엄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차라리 민간에 전하는 속언이, 비록 과장이 심하지만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 훨 씬 도움이 된다. ‘만약 사자패주가 하늘누리에서 출두한다면 하 늘치도 놀라 몸을 떨 것이다.’ 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속언이 지 금 스카리의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집안 공간과 바깥 공간을 구분하는 흙담 위로 사람들의 손이 불쑥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문이 박살 났다. 부서진 문 안쪽으 로 하인들이 데굴데굴 굴러 오는 것을 보자 스카리의 눈에서 불 똥이 튀었다. “사자패주 출두야!” 흙담 위로 사람들이 불쑥 튀어 올랐다. 모두 체구 당당한 사내들이자 거세게 보이는 무장을 하 고 있다. 담을 넘어온 이들을 보자마자 스카리는 뒤로 뛰었다. 마루에 올라선 스카리는 목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자패주 출두야!”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위쪽에서, 뒤쪽에서 연신 고함소 리가 들려왔다. “사자패주 출두야!” 부서진 문 사이로 거친 사내 들이 어깨를 비비적거리며 뛰어들었다. 기왓장이 날리고 정원이 파헤쳐지고 장독이 깨지고, 어쨌든 부서질 수 있는 것들은 모조 리 부서지면서 다급하게 아우성쳤다. 정신이 쑥 빠질 광경이지만 스카리는 첫 번째로 가까이 오는 놈의 머리를 부수겠다는 태도로 목검을 거세게 내밀었다.

“천박한 도로 장사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유료도로당원들은 씩 웃었다. 길손은 언제나 있는 법이기에 길 을 관리하는 유료도로당원에게 축제나 휴일 같은 것은 없다. 그런 유료도로당원에게 축제에 가까운 것이 있다면 사자패주의 출 두다. 주어진 권리를 실행하기 위해 사자패주에게는 무력이 주어 져야 하지만 대규모의 병력은 암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 따라서 사자패주는 가장 가까운 유료도로 관리소에 찾아가 사자패를 제출하고 무장 당원들을 제공받을 수 있다. 그들을 대 동하고 관청에 나타나는 것이 바로 패주출두(牌主出頭)다. 유료 도로당원들에겐 축제지만 지방 관리에겐 가장 끔찍한 악몽이다. 발케네의 계승권자지만 또한 유수부의 관리이기도 한 스카리 는 사자패주의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가 목검 을 던지고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은 스카리의 내부에 발케네 남자 의 난폭함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료도로당원들은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이 발케네 공의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마루 쪽을 포위한 채 더 다가서진 않았다. 하지만 집 안의 다른 곳에서는 문 쪼개지는 소리와 자물 쇠 부수는 소리, 각종 가구가 나뒹구는 소리와 함께 하인들의 비 명이 처절하게 들려왔다. 눈이 뒤집힐 것 같은 분노 속에 스카리 는 그냥 포위망 속으로 뛰어들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 때 스카리의 눈에 번쩍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어떤 남자가 손에 둥그런 금속패를 들고 있었다. 반사광 때문 에 그 금속패의 형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스카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의 직지를 받은 패주에게 주어지는 사자패일 것이다. 스카리는 사자패를 들고 있는 남자에 게 목검을 겨눴다.

사자패주는 씩 웃으며 자신의 칼을 뽑아 들었다. 평범한 제국 검이지만 스카리의 병기 같지도 않은 병기보다는 훨씬 우수한 것이다. 스카리는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무슨 장난이냐! 사자패주가 하늘누리에 출두한다고?”

백작의 예우를 받는 사자패주는 발케네 공에게 공대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장난이 아닙니다. 각하.”

사자패주는 사자패를 옆에 있는 유료도로당원에게 건네주고 품 속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는 그것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을 보시면 제가 하늘누리에 파견된 치천제수사자패주 틸러 달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각하.”

틸러 달비는 한없는 고양감 속에서 생각했다. 

‘아버지가 여기 계셔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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