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3장] – 비밀의 불씨 10
지셀의 외침을 들은 순간 준람은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살수관 을 보았다. 사실 그것은 살수관이 아니라 정원에 피어 있던 양란 이었고 준람도 곧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 렸을 때는 이미 몸을 옆으로 날린 후였다. 준람은 흙벽을 부수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주테카의 어깨 위에서 그 모습을 보던 세레지는 이 레콘들이 망고 군단에 상당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와주러 왔나? 엘시가 힘겹게 말했다.
“긴장하지 마시오! 저건 그냥 질러 보는 함성일 겁니다. 벌써 소화차를 끌고 나왔을 리 없습니다!”
레콘들은 엘시의 지적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의 식적인 두려움은 합리성이라는 친구를 소개받은 적이 없다. 주테 카와 론솔피가 달리던 기세를 잃고 주위를 불안하게 두리번거릴 때 엘시를 메고 있던 쵸지가 앞으로 나섰다.
“가자, 엘시의 말이 맞을 거야. 준람!”
하지만 어느 군단에나 있는 노련한 교위들은 망고 군단에도 있 었다. 나가인 지셀이 벌써 일어났을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 위들은 지셀의 의도를 눈치 챘다. 곧 여러 곳에서 물을 뿌리라거나 물통을 뒤엎으라거나 소화차를 굴려 버리라는 등의 외침들이 들려왔다. 앞으로 나서던 쵸지도 당혹하여 걸음을 멈췄다. 쵸지 는 커다란 벼슬을 꼿꼿이 세웠다. 그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나 늬는 있어.’ 하지만 그 순간 상상력이 풍부한 어느 교위가 물독 을 깨트렸다. 물독 깨지는 소리에 쵸지의 발이 다시 멈췄다. 그 때 검은 레콘이 더 난폭하다는 속설의 신봉자가 보면 좋아할 일 이 벌어졌다.
이레를 떠메고 있던 론솔피는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다가 도끼 창에 부리를 부딪혔다. 그 순간 론솔피는 자신에 대해 분노했고, 곧 그 분노를 외부로 돌렸다. 이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말장난으로 레콘을 이길 작정이냐!”
론솔피가 거세게 뛰어올랐다.
론솔피의 어깨에 있던 이레는 숨이 턱 막혔다. 까마득한 높이 로 솟아오른 론솔피는 도끼창을 옆으로 휙 뿌렸다. 지지점이 없 는 공중에서 그는 도끼창의 무게를 평형추 삼아 자신을 회전시켰 다. 그러면서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 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론솔피는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 는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담백한 사람이었다. 쿵 소 리를 내며 떨어진 론솔피가 외쳤다.
“아무것도 없다! 바보들아, 달려!”
무너진 건물에서 뛰쳐나오던 준람은 자신의 앞을 휙 지나치는 론솔피를 보았다. 그 뒤를 따라 쵸지와 주테카도 달렸다. 세 사 람의 거침없는 달리기를 본 준람은 기세 좋게 몸을 부풀렸다. 그 는 흙먼지를 날려 보내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많은 시간을 지체한 후였다. 그리고 망고 군단의 대비는 충분했다. 맹렬히 달려가던 론솔피는 어디선가 들 려오는 쿠르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수레바퀴 소리였다. 그 소리 가 의미하는 바는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론솔피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앞쪽에 있던 단층 건물을 뛰어넘었다. 그것이 앞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뛴 것이지만 그 때문에 그는 곧장 부대 정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정문을 확인한 론솔피는 환호를 내질렀 다. 그곳에는 공포에 질린 몇몇 제국병들이 있었지만 그 제국병 들은 론솔피가 멈춰 서서 상황을 고려하게 할 만한 요소는 아니 었다. 론솔피는 정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동시에 정문 바깥으로부터 소화차들이 굴러 들어왔다.
론솔피가 우뚝 멈춰 섰다. 그를 따라 건물을 뛰어넘은 세 레콘 도 소화차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소화차를 담 안쪽에 둘 경우 밖 으로 물을 쏘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베로시 토프탈은 부대 바 깥에 두 대의 소화차를 배치하여 위장해 두었다. 그 소화차들이 부대 안쪽의 소란을 듣고 급히 이동하는 것이었다.
레콘들이 멈춰 서는 것을 본 제국병들은 재빨리 소화차에 접근 했다. 소화차 위에서는 드센 병사들이 이를 악문 채 살수관을 내 밀고 있었다. 레콘들은 재빨리 좌우를 돌아보았다. 고무적인 광 경은 보이지 않았다. 부대 안쪽에 있던 소화차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키보렌 유료도로에서 겪었던 일의 재현이었다. 론솔피는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똑같은 일을 두 번 당할 수는 없다.
이레가 그의 어깨에서 떨어져 내렸다.
화를 내고 있던 론솔피는 조금 후에야 이레가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이레는 바닥에 서서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소화차들을 상대해 보겠습니다.”
“네가? 맨손으로?”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우물쭈물하다간 완전히 포위됩니다. 어떻게든 그걸 뿌리는 것은 막아 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도망치 십시오. 주인님을 부탁합니다.”
“이레.”
“괜찮습니다. 저도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감시탑을 처리해 줘서 화살은 날아오지 않습니다. 칼싸움이라면……”
“뭐? 감시탑은 네가 처리했잖아?”
이레는 어리둥절하여 론솔피를 돌아보았다. 론솔피 또한 이상 한 것을 느끼고는 높이 솟아 있는 감시탑들을 바라보았다. 부대 내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감시탑은 고요했다. 그곳에 있 는 감시병들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해서 침묵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레는 의아하여 말했다.
“당신들이 한 것 아닙니까?”
“아냐. 감시탑은 비어 있던데.”
“예?”
“달려오다가 잠깐 봤어. 모두 비어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네 가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레콘은 눈이 좋다. 희미한 빛이 있다면 먼 곳에서도 감시탑 내 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레는 론솔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 외에 다른 자들이 있다는 겁니까? 그럼 누구……!”
이레는 말을 삼키고 경악한 얼굴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론솔피는 이레의 시선을 좇았다. 이레가 보고 있는 것은 감시탑이었다.
새파란 달빛이 떨어지는 감시탑 위에 무엇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었다. 그런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동물은 어디에도 없다. 하 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날개인지 뒷다리인지 꼬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을 기운차게 움직이며 자신의 생명성을 공고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우렁차게 외쳤다.
“행복은 불타는 이단옆차기!”
론솔피는 펄쩍 뛸 뻔했다. 주테카는 괴상한 소리를 냈고 준람 은 휘청하다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그리고 쵸지는 부리를 쩍 벌렸다. 세레지와 이레도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굴로 감시탑 을 바라보았다. 소화차를 끌고 오던 병사들 또한 깜짝 놀라서 황 당해하며 감시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감시탑 위에서 꿈틀거리 는 기묘한 존재에 다시 놀랐다. 외침의 여운이 사라질 무렵 다른 감시탑 쪽에서도 기괴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흥미로운 거미줄의 어금니!”
“동쪽이 세 개! 우, 송아지! 늦가을은 빨래집게의 맹장을 따라!”
감시탑마다 기괴한 존재들이 벌떡 일어섰다. 그것은 다른 것들 과 달랐다. 그리고 모두 기묘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상황에 맞 지 않고, 어쨌든 총체적으로 불합리한 외침들은 사람들의 넋을 빼 버렸다. 그때 쵸지의 어깨에 있던 엘시가 충격 때문에 약간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게 뭔지 알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 리 없는데. 저것은…….”
엘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베로시 토프탈 상장군의 경악에 찬 비명 또는 전문가의 진단이 대장군의 말을 덮었다.
“두억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