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5장] – 파멸을 경배하는 태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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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5장] – 파멸을 경배하는 태도 2


딱정벌레 뒤편에 탄 채 아래를 내려다보던 오니 보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발케네군이 진을 치고 있는 파르바리 계곡 앞까지 운 하를 끌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계곡 아래쪽의 선단 부분을 흐르는 강에 운하를 연결시키는 것이 현재 오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량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선단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물만으로 이미 포화 상태인 듯했고 만약 그곳에 운하를 연결시킨다면 경사가 완만한 선단을 따라 범 람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긴 거리를 따라 이어진 운하는 이제 완만한 유속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단위 시간당 유량이 많지는 않 았다. 하지만 오니는 작은 위험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레콘들 의 전장을 진흙탕으로 만들어 놨다간 제명에 죽기 어려울 것이다. 수도국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니는 지원 요청 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원 요청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해결하겠다는 공명심은 아니었다. 오니는 자 신의 상관과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오니의 상관인 수도국장은 자신이 천경유수의 총애를 받고 있 었다고 생각했다. 오니가 보기엔 마음속으로만 즐기면 무방한 환상의 일종이었지만 국장은 진지했고, 따라서 천경유수가 자택에 연금된 현재의 상황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후원자를 잃 은 야심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보통 세 가지다. 몸을 낮추거 나 다른 후원자를 찾거나 실각한 후원자의 복권을 위해 애쓰는 것. 국장의 선택은 세 번째였다. 국장은 수도국에도 잘 나타나지 않은 채 하늘누리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국장 의 갸륵한 정성으로 천경유수의 복권이 이루어진다면 천경유수가 수도국장의 진짜 후원자가 되어 줄지도 모르지만, 오니는 그런 날이 레콘 뱃사공이 부리는 배를 타고 올 거라고 확신했다. 산공 부사가 있지도 않은 지위를 가지고 나타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천경유수가 갈등을 일으킨 상대는 황제다. 그리고 황제와 갈등을 일으킨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저 하늘누리 아래 쪽을 잠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므로 국장은 벼락을 떨 어뜨리는 것이 누군지 모르니 위를 볼 줄 모르는 것이고 발에 채 는 시체에 자신의 미래를 대입하지 못하니 아래도 볼 줄 모르는 것이다. 오니는 오직 동정심 때문에 국장에게 그것을 암시해 주 었다. 그리고 국장은 오니의 거대한 체구에 대해 평소 가졌던 의 심을 기괴하게 비틀어 놓았다. 오니를 ‘저 세력’의 첩자로 규정 한 것이다. 오니는 저 세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틀림없이 국장도 모를 테지만, 아무래도 국장은 오니가 천경유수의 실각을 일으킨 세력의 첩자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 배후는 황제 폐하로군.’오니 보는 노력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오니는 틸러 달비 같은 종자가 제국군 부위가 된 것을 노력이 이 루어 낸 아름다운 쾌거로 여겼다. 하지만 오니는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아직도 팔을 휘저어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결코 아니다. 사람은 노력과 상관없이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리고 바보는 노력해도 바보 다. 오니는 국장이 즐거운 바보의 인생을 즐기길 기원하고는 국 장과의 교류를 끊었다. 그 때문에 그는 적절한 지원을 요청하기 껄끄러운 상태에 빠졌다. 국장은 수도국원 전원이 천경유수의 구 명을 위해 결사 항쟁의 정신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도무 지 운하 같지도 않은 운하를 설계하기 위한 지원 인력을 요청할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운하 같지도 않은 운하였다. 전투가 남 기는 것 중 영구한 것은 무덤뿐이다. 피 흘려 확립한 경계선조차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오니의 운하 또한 영구성과 는 관련이 없다. 오니가 쓰는 말로 그저 전투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붕괴되든 말든 상관 없다. 그런 엉성한 구조물을 설계하기 위해 인력을 지원해 달라고 말하면 국장은 천경유수 구명 운동을 방해하려는 술책으로 여 길 것이다. 오니가 반길 수 없는 오해였다.

‘아래를 볼 줄 모르면 내려와서 보라고. 여기 분위기가 어떤지.’

제국군은 살기가 등등했다. 운하 설계를 잘못해서 전장을 진구 렁텅이로 만든 공학자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목을 부러뜨려 놓 을 것 같았다. 그들이 코네도에서 학살한 민간인의 숫자는 아직 파악할 수도 없다. 그 생각을 떠올리니 오니는 몸에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불쾌한 의혹이 떠올랐다. 오니는 앞쪽에서 딱정벌레를 조종하 는 갑충사의 등을 두드려 내려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땅 으로 내려오면서 그의 고향 친구 틸러가 코네도에서 학살을 벌인 자들과 같은 제국군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애써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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