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50화
“오~ 애꾸눈이잖아? 어쩐 일로 이곳에 왔지?”
지크가 의외로 자신을 반기자 베르니카는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남자가 자신에게 아는 체하는 것을 그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투로 이어봤자 승부가 뻔한 걸 알기 때문에 그녀는 참기로 했다.
“오늘 새벽에 얼핏 들은 얘기가 있어서… 너 4여신의 전설 알고 있어?”
지크는 손가락으로 포크를 휘휘 돌리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몰라.”
“흥, 무식한 녀석. 그럼 간단히 말하지. 이 마을의 근처에 여신의 성역이라 불리는 신전이 있다더군. 다른 종족들은 거의 나타나질 않아 이곳의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 근데 이틀 전에 그곳으로 놀러간 아이들과 아이들의 인솔자인 유치원 선생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해. 그래서 찾으러 갈까 하는데.”
지크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흔들었다.
“흥,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난 갈 길이 멀다구. 너 혼자 잘 가봐.”
“상관이야 있지. 그곳에서 살인검이 더 뛰어난 건지, 활인검이 더 뛰어난 건지 한 번 겨루어 보자구. 내가 실종자를 먼저 찾으면 내 말이 옳은 거고 네가 실종자를 먼저 찾으면 네가 이기는 거다. 해보지 않겠나?”
그러나 지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루이체와 마키는 그러하지가 않았다. 루이체는 다시 한 번 지크의 정강이를 차며 말했다.
“오빠!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이 반응은 뭐야, 구하러 가지 않겠다면 난 오빠를 두 번 다시 오빠라고 하지 않겠어!!”
지크는 자신의 정강이를 쓰다듬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엣, 사람 마음 약하게 하는 덴 뭐 있다니까 진짜. 가면 될 거 아니야 가면… 걸핏하면 사람 차고 있어….”
반시간 뒤, 지크와 베르니카는 마을을 떠나 성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둘의 모습은 정말 판이하게 달랐다. 베르니카가 온갖 장비를 다 갖추고 중무장을 한 채 걷는 것에 비해, 지크는 오직 무명도 하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이 애꾸, 그러다 성역인가 하는 데 가기 전에 지쳐 쓰러지는 거 아니야?”
지크가 그렇게 말하자 베르니카는 자존심이 상한 듯 고개를 휙 돌렸다.
“남의 일이야. 상관하지 마.”
간단한 대답을 들은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기 있게 받아쳤다.
“예~에. 여부가 있겠습니까.”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얼마간 걷던 둘의 앞엔, 커다란 회색 기둥들이 열을 지어 늘어선, 일명 여신의 성역이라는 곳이 펼쳐졌다. 지크의 눈엔 아무리 보아도 위험할 것이 없어 보였다. 오직 기둥과 몇 개의 폐허만이 있을 따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건… 이게 성역이야? 실종된 사람 있다는 거 거짓말 아냐?”
“진짜야 멍청이. 게다가 난 장난을 싫어하는 성격이라구.”
지크는 아무 말 않고 베르니카의 뒤를 계속 따라갔다. 베르니카는 폐허로 가득한 성역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고 지크도 그녀를 따라 조사를 해보았다. 그러나 별 이상점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숲 안쪽에서 한 나무꾼이 나와 성역을 살피고 있는 지크와 베르니카를 향해 다가왔다.
“엇, 당신들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이곳에선 마물들이 출몰한단 말이오!”
베르니카는 그 나무꾼을 보고서 그에게 다가가 실종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 나무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하였다.
그들이 그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지크는 피식 웃으며 베르니카의 곁으로 다가서서 자신보다 키가 조금 작은 나무꾼을 내려다보았다. 나무꾼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생각을 계속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틀 전에 숲 안에서 일곱 명의 아이들과 한 유치원 선생을 본 기억이 있소. 저기 동쪽 숲이었나…? 아마 내 기억이 맞을 거요.”
베르니카는 단서를 잡았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고 말을 한 나무꾼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해주었다. 베르니카는 지크와 같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나무꾼이 가리킨 동쪽 숲으로 뛰었고 지크는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무꾼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헤헷… 친구, 난 속아주는 걸 좋아하거든? 저 애꾸눈이 실종된 사람들 중 어른 여자가 유치원 선생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안 건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어서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나무꾼은 급히 지크에게서 떨어지려 했으나 지크에게 잡힌 어깨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통증에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지크는 그 나무꾼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가 뭐 하는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네 친구들은 운이 없는 거다. 어서 멀리 도망치는 게 너로선 좋은 일일 거야. 난 가리는 법이 없거든? 그리고 기억력이 나빠서 나에게 힌트를 준 괴물도 분간하지 못하고 없애버리지. 헤헷… 잘 처신해라. 그럼 난 이만, 네 친구들의 명복이나 빌어줘.”
가볍게 말하며 베르니카를 따라 숲으로 향하는 지크의 뒤를 끝까지 바라본 나무꾼은 이빨을 부득부득 갈며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숲으로 들어간 지 꽤 오래된 것 같았지만 베르니카의 눈엔 아이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숲 안에 입사되는 햇빛의 양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용감하기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녀 역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숲을 걸어가던 그녀의 눈앞에 무언가 희미한 빛이 보였다. 베르니카는 한숨을 후우 쉬어본 뒤에 빛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 빛이 있는 곳에 도착한 베르니카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녀가 본 빛은 어떤 거대한 문 앞을 밝혀주는 횃불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그 불꽃의 색이 푸른색이라는 것이었다.
“어, 어째서 여신의 성역이라 하며 이런 불길한 불꽃이 불타오르는 거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은 베르니카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거대한 문을 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잉…
듣기 거북한 강철의 마찰음과 함께 비교적 쉽게 열린 문 안엔 거대한 방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방의 중앙엔 높다란 제단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의 천장엔 이상한 모양의 석상들이 마치 박쥐처럼 모여앉아 있었다.
베르니카가 그 거대한 방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자 강철문은 휘익 닫혔다. 급히 문을 바라본 베르니카는 그 문에 자물쇠가 저절로 잠기는 것을 보고 자신의 대검을 뽑아 들었다.
「후우… 길을 잃어 이곳으로 온 게 아닌가 보군… 마침 잘됐어, 제물 하나가 모자라 마을을 어쩔 수 없이 습격하려던 참이었는데 저절로 굴러들어왔으니 말이야.」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기분 나쁜 음성에 베르니카는 바짝 긴장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돌기둥과 벽뿐이었다.
「싸울 마음이 있는가 보군, 그럼 제압해 줘야 하겠지? 자, 나와라 가고일….」
음성의 명령에 반응하듯, 천장에 위치해 있던 석상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두 마리뿐이어서 베르니카는 조금 안심했지만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빠른 스피드와 엄청난 공격력, 그리고 검이 통하지 않는 강한 몸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검으로 아무리 내리쳐도 가고일의 몸에선 돌가루가 조금 떨어질 따름이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가고일에겐 그녀의 물리적인 보통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지친 베르니카는 가고일의 공격에 복부 급소를 가격당했고 그녀는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가 쓰러지자마자 가고일은 공격을 멈추었고 목소리는 다음 명령을 가고일들에게 내렸다.
「자아, 그 계집을 감옥으로 끌어가라. 이틀 전에 잡힌 제물들이 있는 방에 넣어둬. 간은 인간들끼리니 외롭진 않겠지… 후후후후훗.」
명령을 받은 가고일 두 마리는 베르니카를 잡고 어디론가 날개를 펄럭이며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