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03화
–친구, 당신의 상사는 창의성 없고 지루한 칼잡이입니다….
‘그, 그래.’
나는 이자헌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브라운을 찾아왔다.
양쪽 모두에게 약간 미안했던 점은, 시간이 늦어 도마뱀 조장이 퇴근하면서 이 봉제 인형을 사택에까지 들고 가줬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상사의 집에 방문했던 브라운은 꽤 흥미로워할 줄 알았건만.
-아, 차라리 스튜디오 백스테이지의 차가운 타일 바닥에 홀로 앉아 있겠습니다.
‘……응.’
매우 지루했던 모양이다….
나는 ‘저 작자의 집는 아무것도 없다, 혼잣말도 콧노래도 없이 적막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등의 토로를 하는 브라운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근데 너무 지저분한 곳이었단 말이야. 그 폐건물에 방치하는 건 친구로서 하면 안 될 것 같았어.”
–친구…!
이제 대충 감이 온다. ‘착한 친구’는 나도 친구로서 대할 때 가장 반응이 온건하다….
‘뭐, 사실이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직전에 브라운을 양도받으며 이자헌 조장과 나눈 대화를 회상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징계감인 일을 저질러서 조장님께도 폐를 끼쳤습니다.
솔직히 일반 회사였으면 직속 상사한테 서류철로 얻어맞을 일이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도 도마뱀 과장은 침착했다.
-예.
-……아무 이유도 없이, 동기가 죽을 게 뻔해 보이는 자리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나를 빤히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택의 책임을 감당하십시오.
-…예!
좀 무서웠지만, 어쨌든 넘어가 준 것 같았다.
‘다행이다.’
나는 몇 번 더 이자헌 조장에게 사과와 감사를 전하고, 준비해 온 선물용 과자 세트를 넘겼다.
그리고 계단으로 사택을 내려오는 중이다.
-아, 그럼 이대로 소박하고 아늑한 노루 씨의 방으로 돌아가 휴식하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그대로 사택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하나 더 할 일이 남았거든.”
오늘이 바로 내가 관리 중인 F등급 어둠, ‘양자택일’의 타로를 뽑는 날이었다.
타로카드를 보러 별관에 방문하는 건 두 달 만인 것 같다.
내가 병가 중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한 번 대리로 근무해 주고, 다시 텀이 돌아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검은 인영의 보안팀 직원에게 인사하고 키를 받아서 복도를 이동했다.
‘지난번엔 달 카드를 거꾸로 뽑았었지.’
-아, 이번에도 그 트릭을 다시 쓸 겁니까? 거꾸로 카드를 집어 드는 것 말이지요!
음. 그거 말이다.
“어쩔 수 없다면 써야겠지만… 되도록 안 쓰고 싶어.”
-호오?
관련해서 좀… 마음에 걸리는 점이 떠올라서 말이다.
‘달 카드를 거꾸로 뽑았을 때, 불확실성이 해소된다고 했었지.’
-그렇지요. 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그 카드를 뽑고 한 달간, 불확실성이 해소되거나 일이 명확해지는 일은 몇 건이고 있었으니까.
가령… 내 소속.
‘D조에 계속 남는 게 확정됐어.’
…두 조원이 사라지면서 말이다.
“…….”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전제가 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려면, 애초에 불확실한 상황을 경험해야 한다는 거야.’
즉, 나쁜 카드라고 거꾸로 뽑는다는 건….
‘나쁜 상태를 어찌 됐든 경험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지.’
거기서 회복하거나 벗어나려면 애초에 그 상태가 한 번 될 필요가 있는 거니까.
-아하, 재밌는 접근법입니다. 제법 설득력이 있군요!
그래.
게다가 아무리 회복된다고 해도, 괴담 세계관에서는 ‘나쁜 상태’에 빠지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리스크였다….
오염 사태를 잊지 말아야 했다.
‘되도록 좋은 걸 정방향으로 뽑는 편이 안전할 것 같다.’
그러니까 부디, 두 장 모두 나쁜 카드가 나와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태가 발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휴.’
나는 격리장소에 들어가, ‘양자택일’의 격리를 해제했다. 그리고 검은 타로 카드 두 장을 뒷면 그대로 꺼내서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카드 두 장을 뒤집었다.
첫 번째 카드.
악마.
젠장.
‘저놈의 악마 카드는 계속 나오네.’
놀라운 건 이번에는 처음부터 거꾸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 거꾸로 된 악마라!
-‘악마에게서 벗어난다.’ 해방의 카드로군요. 중독이나 집착을 이겨내거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장래의 결단을 의미합니다.
-의지력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노루 씨와 제법 어울리는군요.
해설은 고마웠다.
하지만 내 시선은 즉시 두 번째 카드로 꽂혔다.
…태양!
정방향의 붉고 노란 태양이 이글이글 불타면서 화려한 색채로 카드 그림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건….
‘무조건 좋은 거 아닌가?!’
-오, 태양이여!
-태양의 명징한 빛 아래에서 누리는 기쁨과 만복이란! 커리어의 성공, 관계의 증진, 더 없는 긍정의 징조입니다. 근시일 내의 행복을 보장하지요.
-그래서 혹자는 타로카드에서 가장 좋은 카드로 여기기도 합니다만, 글쎄요…. 무조건적인 성공과 행복은 좀 지루하지 않습니까?
죄송하지만 그 지루함이 나한테 지금 꼭 필요합니다, 사회자님…!
‘이건 고민할 것도 없지.’
나는 손을 뻗어서 태양 카드를 잡아 올렸다.
그렇게 정방향의 카드, 안정적으로 좋은 미래를 확정했다.
-좀 재미없는 선택이긴 하군요! 하지만 그 선택도 존중하겠습니다. 노루 씨!
‘고마워.’
그리고 의식을 정리했다.
‘성공과 기쁨이라.’
이거야 뭐 있어서 손해 보는 건 절대 아니니까.
일단 이번 한 달 내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예언에 좀 안도감이라도 느끼도록 하자….
‘이제 사택으로 돌아갈까.’
-좋습니다, 친구!
나는 그렇게 늦은 밤에 귀가하며 길고 파란만장했던 하루를 끝냈다. 참고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서 걸어 올라가야 했다.
‘야밤에 계단을 올라가는 거, 괴담이 아니라도 생각보다 무섭다…….’
약간 서러웠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파란만장했던 올해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놀랍게도 얼마 남지 않은 이번 해가 평화롭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남은 12월 한 달.
곽제강은 이 사건 이후로 쓸데없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상한 연구팀의 프로젝트가 할당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MZ력이 잘 먹혔나 보군….’
혹시 연구팀에서 장허운을 다시 부를까 봐 걱정했으나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허운 : 솔음 씨! 저도 특별히 소속 변경은 없습니다. 그대로 F조예요.]
장허운은 연말 인사 발령에서 무탈하게 정식으로 F조에 정착한 듯하다.
‘축하할 일이지.’
비록 조원이 백사헌이지만… 음,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보니까 장허운을 무작정 미끼로 쓰진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 외에도 평범했다.
‘괴담 열심히 들어갔지 뭐.’
C등급 이상의 고등급 괴담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내적 비명과 공포, 내 불면증을 막아주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청 기록이 늘어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복도에서 만난 심사 담당 이병진 과장은 ‘회계니 감사니 회사가 연말 특수로 더럽게 바쁘기 때문’이라고 가볍게 귀띔했다.
아직도 가끔 호 이사 이야기를 늘어놔서 거북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보를 주는 건 고맙….
“이야, 김 주임은 고등급 어둠에 들어가기만 하면 클리어 팍팍 하고 포인트 모아서 걱정이 없겠지? 고등급이 없어서 많이 아쉽겠어, 허허!”
“…….”
하나도 안 아쉽습니다….
어쨌든 차분히 저등급을 클리어해도 포인트는 쌓였고, 나는 한숨 돌리며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내내 기묘하게도 계속 확정되지 않는 게 있었다.
“저, 조장님. 아직도 제 징계는 논의 중이신 겁니까?”
“예.”
내 징계 말이다.
-오. 이것 참, 흥미롭군요…. 바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노루 씨?
그렇다.
솔직히 무마되는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시간이 소요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냥 건방지고 능력 있는 신입 기 좀 꺾고 얌전하게 만들 수준의 징계가 바로 내 발등 위로 떨어질 줄 알았지.
‘…위에서 왜 이렇게 복잡하게 구는 거야?’
심지어 현장탐사팀 자체에도 좀 소문이 돈 것 같았는데, 좀 기묘했다.
[강이학: 주임님! 소식 들었습니다ㅎㅎ 월급에 포함 안 되는 비효율적인 일은 안 하겠다고 결단하셨다면서요! 캬! 존경합니다!]
“…….”
그…런 식으로 소문이?
‘도덕적 선이 분명한 캐릭터를 구축하려고 했는데, 설마 그것도 어그러졌나…?’
다행히 거기까진 아닌 것 같았고, 단지 개발부에서도 대체 날 어떻게 해야 할지, 예외로 처리할지 규정대로 처리할지 고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12월 하순.
“징계 일자가 확정되었습니다.”
“…….”
후.
드디어 공문이 내려왔다.
——
징계 안내
내용 : 경비팀 야간 청소 업무 수행.
기간 : 3일.
이 징계 조치는 해당자의 업무 태도 개선을 위한 것이며,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바랍니다.
——
정말 괴담 회사스러운 종류가 나왔다.
‘교육, 감봉, 정직, 직위 해제 같은 일반적인 사기업 징계 사항들은 어디 갔냐.’
그래서 사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선방했지 않았냐고?
그건 맞다. 다만….
“일정은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입니다.”
“…….”
누구냐.
‘날짜 선정에서 정말 최대한 나를 엿 먹이고 싶다는 욕망이 느껴지잖아…!’
연말 내내 날밤을 새우며 회사에서 새해를 맞아보라는 악의가 느껴진다. 대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들이받은 이상, 이번엔 까라면 까야겠지.
‘후…….’
결국 12월 29일 자정. 나는 회사의 지하 1층의 보안팀 구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안면이 있는 얼굴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제이 씨.”
“와… 오랜만….”
바로 경비반장 J3다.
산군님 괴담부터 헝그리 행맨 괴담에서 탈출 이후 격리 사건 때까지, 몇 번 안면을 튼 그 호리호리한 체구의 직원은 나를 향해 제법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물론 귀찮아 보이는 게 더 컸기에, 나는 준비한 뇌물을 얼른 꺼내 들었다.
“죄송합니다. 사흘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죄송해도 되는데…….”
큼직한 12개들이 설탕과 크림 도넛 두 박스를 받아 드는 경비반장, 제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원한 보람이 있네……. 고맙습니다…. 제 간식으로 잘 먹을게요…….”
“…….”
‘경비팀 직원들과 나눠 먹으라고 두 박스나 가져온 건데….’
하지만 이미 본인만을 위한 24개의 도넛이라 굳게 믿는 것 같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음,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경비반장은 나를 CCTV실보다 더 안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경비팀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다.’
여길 또 오게 됐군.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발걸음을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여기 어딘가에서 내가 청소를 해야 한다는 거지.
“사흘간 제가 청소해야 할 곳이… 어딘지 여쭤봐도 괜찮습니까?”
“네…. 그래도 한번 가보신 데니까… 좀 나을걸요? 아마…. 음.”
가본 데라고?
“오늘 청소할 구역이 격리 B 복도니까…. 있잖아요… 저기, 그쪽이 오염된 직원 꺼낸 곳….”
“……!”
젠장.
보안팀 대여창고 옆에 붙어 있던, 그 격리실 구역을 말하는 거다.
내가 헝그리 행맨에서 나와서 구조된 후에 잠깐 갇혀 있었던, 밀실이 늘어선 복도 말이다…!
‘거기… 보통 이상한 장소가 아니었는데.’
나는 격리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들었던 온갖 중얼거림과 이상한 현상들을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보안팀 구역 청소라니.’
이상 현상을 맞닥뜨릴 거라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심장을 뛰게 들었다.
“이쪽이요… 탈의실.”
나는 침을 삼키며 경비반장의 안내에 따라 탈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이 열린 경비팀의 숙소도 얼결에 구경하게 되었다.
[침실]
문틈 사이로 보인다.
생활감이 있는, 회색의 지급품 위주로 커튼과 이불, 철제 책상과 캐비닛이 구비된 밀실들이었다.
…묘하게, 교도소의 직원 기숙사 같은 느낌이다.
‘사택보다… 열악한 것 같은데.’
일단 지하라는 점에서 건강에 나쁠 것 같았다.
“보안팀 분들은 전부 여기서 생활하시는 겁니까?”
“아뇨. 경비팀만…… 음.”
경비반장은 마치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는지 가늠하는 것처럼 살짝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대충 대답했다.
“보안팀은… 사실 보안관리부라는 저 상위 부서에서…… 갈래가 나뉘는데요, 여긴 주로 경비팀이 있는 곳….”
“그렇군요.”
어쨌든 곧 탈의실에 도착했고, 나는 얼른 비치된 옷으로 환복했다.
저번에 입었던 경비팀 옷이 아닌, 주황빛으로 눈에 확 튀는 색감의 옷이었다. 묘하게 엔지니어의 작업복 같기도 했다.
“청소 유니폼… 나쁘지 않아요…… 색도 예쁘고….”
“…….”
진심…인가?
어쨌든 다 갈아입고 청소 장소로 이동해야 할 타이밍이 됐다.
‘후.’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경비반장을 보았는데, 그 사람은 마치 누구를 기다리듯 탈의실을 나가지 않고 발을 멈췄다.
“청소… 보통 2인 1조인데.”
음?
설마 경비반장이 붙지는 않을 텐데… 다른 직원인가?
그때 경비팀장이 탈의실 밖을 보더니, 나를 손짓했다.
“저기 오네요…. 오늘의 파트너.”
나도 탈의실 밖을 보았다.
아까 침실이 있던 복도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
“노루야.”
“…!!”
복도에서 박민성 주임이, 손을 들고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들어 보였다.
“반갑다. 잘 지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