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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05화


나는 얼어붙은 채 격리실 B14호를 응시했다.

끼익, 끼이이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격리실의 문틈을 벌린다.

절대로 열리지 않아야 하는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형체가…….

“뛰어.”

나는 당장 뒤로 돌아 격리복도 출입구로 질주했다.

옆에서 박민성 주임이 함께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생존본능이 발을 부추기는 동시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게 뭐야.’

무슨 상황인 거지?

‘근무 수칙 팁에는….’

격리실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라는 수칙 4번, 닥치라고 소리 지르면 조용해진다는 수칙 11번.

둘 중 뭘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고?

지금 대체 저 안에서 뭐가….

“얘들아.”

나와 주임이 동시에 발을 헛디딜 뻔했다.

우리 둘이 모두 아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모퉁이를 돌아 복도 끝 초록빛 비상구 사인을 향해 달렸다. 청소도구도 옆으로 팽개쳤다. 헉헉거림이 턱까지 차올랐다.

박민성 주임이 숨도 안 쉬고 초록 비상등 아래 문고리를 잡는 순간.

[삐이이이이익!!]

“…!!”

[격리실 무단개방 확인.]

[복도를 봉쇄합니다.]

복도에 붉은 비상등이 점등한다.

무감정한 기계 음성과 함께, 박민성 주임이 잡고 있는 문고리 밖에서 방호 셔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와 주임은 순간 서로를 돌아보았다.

“…….”

우리를 안에 두고.

복도가 봉쇄됐다.

‘X 됐다.’

망할, 망할!!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혹시 관련 수칙이 있는지 근무 팁이라도 확인해야….

“얼씨구. 덤앤더머가 따로 없구만. 너희 탐사 매뉴얼은 가져다가 엿 바꿔 먹었냐? 침착함은 다 어디 갔어?”

…….

‘어?’

허탈한 목소리다.

빡침을 누르는 것 같지만, 어딘가 일상적인 느낌의….

터벅터벅.

“미치겠네 진짜. 아니지, 이건 신중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나… 후.”

어느새 등 뒤로 따라붙은 목소리.

하지만 예상했던 이상 현상은 없었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도, 뒤에서 뻗어오는 차가운 손길이나 섬뜩한 행동도 없다.

“…….”

“젠장. 후, 아니. 진정하고… 얘들아. 나도 내가 아까 좀 미친 소리를 한 건 안다. 근데 탈출용 아이템 쓰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좀 납득해라. 어?”

목소리가 약간 초조해졌다.

“나가려면 무슨 소리를 못 하냐? 미친 척하는 김에 정보도 좀 뽑아보려고 했던 건데, 갑자기 아이템 작동하고 문이 열려서 빠져나온 거라고.”

그 목소리는,

“정신 차려라. 10초 준다. 얼른.”

…….

…….

“…대리님?”

“그래.”

나는 옆에서 중얼거린 박민성 주임이 돌아보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정확히는, 나도 돌아보았다.

그러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단발.

또렷한 안광.

차가운 인상의 정장을 입은 여성.

우리가 알던 은하제 대리가 복도에 서 있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우리가 내팽개친 청소도구들을 훑어보며.

“…저거 저렇게 둬도 되냐? 아니, 이건 나중에 확인하고… 일단 납득부터 해야지.”

“…….”

“…….”

내 어깨를 잡고 있던 박민성 주임의 손에서 힘이 풀린다.

우리는 멍하니 상대를 보았다.

“오소리, 그리고… 노루야.”

은하제 대리의 얼굴에 표정이 깃든다.

“잘 지냈냐.”

침착함, 여유, 권태와 피로가 살짝 묻어나는 상사의 얼굴.

그리고 사나운 미소.

“진짜 이 X 같은 회사… 후.”

대리는 머리를 털며 깊은 한숨을 쉬더니, 손짓했다.

“미안한데 신세 좀 지자, 저기 격리복도 문까지만 좀 열어 줘라.”

은하제 대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 후엔 알아서 빠져나갈게.”

나와 주임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은하제 대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도 못 하겠냐. 그래, 뭐, 현명한 판단이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뭐지?

‘왜 이렇게…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거지?’

왜 이렇게 진짜처럼 느껴지는….

‘아니, 그럴 리가!’

“주임님.”

나는 침을 삼키며 스스로 되뇌듯이 박민성 주임에게 낮고 빠르게 말했다.

“기억하십시오. 대리님은 퇴사하셨습니다. 여기 계실 리가 없…….”

…….

‘잠깐만.’

정말 없나?

나는 그간 의구심으로 남았던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을 떠올렸다.

연락이 끊긴 은하제 대리.

본인의 장비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 넘기고, 문자를 보내도 확인만 하고,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이자헌 조장을 통해 이야기만 전해 들었던 게 전부….

설마.

‘여기 갇혀 있어서?’

나는 황급히 보안팀에 의해 격리구역으로 이송되는 조건들을 떠올렸다.

긴급 오염자, 사내 이상현상, 위험 분자, 스파이, 징계자, 그리고 검은 네모로 검열된 뭔지 모를 으스스한 조건들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나나 박민성 주임도 잠깐 갇혔으니까.

그렇다면.

은하제 대리도 여기 해당할 가능성은?

“…노루야?”

“잠시만… 잠시만요.”

가능성이 있지 않나?

당장이라도 은하제 대리의 모습을 한 누군가에게 사태를 꼼꼼히 물어보고 검증해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고 싶다.

그러나 가능성에 도박할 순 없었다.

‘일단 다른 방법부터.’

나는 괴담 주민에게 물었다.

‘브라운, 저 앞에 사람처럼 보이는 것 말인데. 몇 달 전에 같이 근무했던 D조 대리님이 맞나?’

브라운은 쾌활하게 대답했다.

-이런, 안타깝게도 이 전설적 사회자는 엔터테이너지 수사전문가는 아니라서 말입니다!

-물론 내 눈썰미가 탁월하긴 하지만, 이 솜 든 몸의 조약돌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요….

-외양이야 동일해 보입니다만, 누가 알겠습니까? 세상에는 감쪽같은 분장의 대가들도 있는 법이니까요.

젠장.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하나만 확인해 줄 수 있을까? 그냥 네 눈으로 볼 때의 판단이 궁금해. 널 믿거든.’

-…! 그렇다면야 기꺼이 답변드리겠습니다, 친구!

‘고마워. 그럼….’

나는 침을 삼켰다.

‘내 눈앞에 있는 건 정신과 육체 모든 측면에서…… 인간이야?’

-아, 마침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로군요.

브라운이 쾌활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그렇습니다!

하…….

‘인간이, 맞다고.’

미치겠네.

차라리 눈앞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확정이지 않은가.

…은하제 대리가 아닌 것이.

하지만 눈앞의 익숙한 모습의 사람은 익숙한 어투로 계속 말했다.

“어지간하면 나도 공들여서 설득하고 싶은데, 시간이 얼마 없다. 얘들아.”

그 안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곧 보안팀에서 사태 파악하러 출동할 텐데, 내가 여기서 나가려면 그 전에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어.”

“…….”

“큰 거 안 바란다. 잠깐 숨어 있을 테니까, 문이 열리면 날 보내줘.”

나는 인정했다.

‘도저히 육안으로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즉각 말을 걸었다.

“주임님.”

“어, 어어?”

박민성 주임에게.

“휴직하신 대리님을 보안팀 격리 공간에서 만나는 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오. 간접적으로 대화. 괜찮은 방법인데, 노루.”

은하제 대리가 짧게 감탄하더니 빠르게 중얼거렸다.

“퇴사한다니까 마음을 바꿀 때까지 생각해 보라면서 여기 처박은 거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 망할 회사를 믿은 내가 잘못이다. X발.”

“주임님. 혹시 격리된 누군가가 복도 문으로 나가더라도 금방 잡히지 않을까요?”

“내가 바보냐? 아이템 준비해 놨다. 문제는 시간이지. 시간이 없다고. 지금 보안팀이 오고 있을 텐데. 확인도 못 하니 미치겠네, 이거….”

확인.

‘…잠깐!’

뒷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을 떠올렸다.

‘무전기.’

나는 문에 등을 붙인 후, 한 손을 뒤로 안 보이게 돌려서 조심스럽게 무전기를 주머니에서 잡았다.

그리고 음량을 아주 살짝, 올렸….

삐리리릭!

[지금 봉쇄…….]

망할!

‘경비반장이 계속 무전을 보내고 있었구나!’

나는 바로 무전기 소리를 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무전기 소리가 들리는데.”

“…!”

“뭐, 가진 녀석 맘이니 편하게 연락해도 되겠지. 그런데 의문인 게 있는데….”

의문?

“청소부한테는 무전기 안 줄 텐데.”

“…….”

등이, 싸해진다.

“누가 특별히 주기라도 했나? 그것도… 이상한데. 청소 인력은 무인 기기로 매뉴얼 읽고 출근 기록하고 들어오거든. 다른 직원을 굳이 만날 일이 없는 시스템이야.”

은하제 대리의 목소리에 의구심과 긴장이 섞인다.

“그거… 연결되는 게 진짜 보안팀 맞냐?”

“…….”

“노루야. 너 누굴 만났던 거냐.”

손에 땀이 찼다.

이런 미친 상황은 처음이었다.

‘뭘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니.’

힌트가 없다. 아니, 정말 은하제 대리가 맞다고 해도 어떻게 보내준단 말인가. 보안팀을 피해서 숨는다고? 그게 가능한가?

‘조금이라도 상황을 더 파악하려면….’

아!

원래 보려던 것을 다시 생각해냈다.

근무 팁이 적혀 있던 두 번째 쪽지.

‘남은 팁을 모조리 다 읽으면 맥락에서 진실을 잡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당장 쪽지를 꺼내서 다음 번호를 읽어내렸다.

12. 문틈에서 혹시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뭐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무조건 도망쳐.

문이 열리기 전에 반드시 나타나는 징조거든. 역으로 말하자면, 이런 게 없으면 보통은 안전함.

그 외의 예외 상황들에 대해서 자세히 다음 번호에서 말하겠음.

조금 시간을 두고 읽는 걸 추천함.

나는 즉시 다음 항목을 읽었….

13. 어? 문이 열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반사적으로 종이를 구기듯 접었다.

손에서 고동치듯이 맥박이 쿵쿵거린다.

“노루야, 왜 그래?”

침착, 침착하게….

“일단 진정하자. 보안팀이 오고 있기도 하니까,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지금부터 생각해 보면 되는 거야.”

박민성 주임은 내 등을 두드리는 척하면서….

“우리가 나갈 방법을….”

내 등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고 있었다.

ㄷㅐ

ㄹㅣ

ㄴㅣㅁ

ㅇㅏ

ㄴㅣ

ㅇㅑ

…….

대리님 아니야.

나는 얼어붙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와.”

은하제 대리가.

아니, 은하제 대리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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