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08화
경비반장은 내가 피 묻은 청소 유니폼을 수습할 수 있도록 수건을 줬다.
나는 기계적으로 유니폼을 닦아내며, 내 옆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지금 거기엔 경비반장에 의해 머리통이 터진 무명찬란교인의 괴이한 사체가 있을 테니까.
-흐음. 확실히 보기 좋은 꼴은 아니군요! 미학 없이 바닥을 더럽혔…… 오오, 노루 씨! 재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투성이와 살점, 뭉개진 머리가 팽개쳐졌던 그곳은 어느새 녹아내리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급격히 뒤로 돌린 듯이 바닥에 말라붙던 것은, 바싹 마른 누군가의 몸으로 변한다….
사람의 시체.
너무 깡말라서 신원을 식별할 수도 없는 그자의 뻥 뚫린 입에서 바싹 말라 둘둘 말린 낡은 종이가 떨어졌다.
알아볼 수 없는 황금빛 글자가 적혔던 안쪽 면은 내 시선이 닿는 순간 꿈틀거리며 한글로 바뀌었다.
흉내장이 경전 4절
이야기 탈취자
“…!”
신성법이다.
말하자면 무명찬란교의 괴담 생성기 정도 된다.
입교자는 신성법 경전의 조각을 삼키고 제단에서 의식을 치를 시, 해당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경비반장이 느릿느릿 그 앞에 다가가더니 쭈그려 앉았다.
아마도 챙기려는 것 같….
“4급이네… 저기, 그쪽이 가질래요?”
예?
“회사에서… 조금 비싸게 사주는 것 같은데…. 나중에 다른 곳에서 얻었다고 하고 팔아요…….”
“…제이 씨가 처리하셨는데, 그렇게 제가 개인적으로 챙겨도 괜찮은 겁니까?”
“뭐 어때요…….”
“…….”
“나는 딱히 돈… 필요 없고….”
아니, 회사 경비반이 나선 판에 제가 개인적으로 챙겨도 되냐는 뜻이었습니다만….
어쨌든 준다니 냉큼 챙겼다.
“감사합니다.”
회사에 파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쓸모가 즉각 떠올랐으니까.
‘쓸 수 있는 패는 많으면 좋지.’
게다가 이 개고생을 했는데 뭐라도 챙기면 좋겠지….
나는 혹시라도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포장지 12B357나’로 해당 물건을 감싸서 주머니에 넣는 척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후우.’
“다시 한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뭘요…….”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선 지난 이틀 간의 기억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일상.
그냥 순식간에 지나가고,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어서 굳이 일기도 쓰지 않을 순간들.
1년쯤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져 있을 만한… 그러니까, 소설로 따지자면 ‘서술 생략’에 해당할 법한 나날.
그래서 오싹했다.
시간을 쭉 빨린 기분.
‘무명찬란교… 역시 최악이다.’
세 세력 중에 제일 안 엮이고 싶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 섞여 들어오는 괴담이라니.’
설마 청소하다 만날 줄도 몰랐다. 백일몽 주식회사에 투입된 무명찬란교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딴 식으로 탈주하는 격리실 개체를 아무 준비 없이 만날 줄이야….
‘살아서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퇴근해서 좀 쉬고 싶….
“아, 여기… 복도에 있었네.”
드르륵.
경비반장이 연 격리복도 B의 문 너머에서 정신을 잃은 주홍색 유니폼의 남자가 스르륵 쓰러졌다.
나와 같이 들어온 청소부.
“…오소리 주임님!”
으아아악!
3일 차에도 계셨구나!
* * *
다행히 박민성 주임은 휴게실로 옮겨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어? 뭐지? 무슨… 누가 날 밀쳤는데,”
“격리실에서 탈출 소동이 있었습니다.”
“어어?!”
나는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을 설명했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경비반장은 가끔 요구당할 때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명찬란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추궁할 마음이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그냥…… 일하고 싶지 않아 보이는 것 같기도….
‘…종신직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나는 이해했다.
그리고 박민성 주임도 내 설명을 이해했는지 안색이 변한다.
“확실히, 1, 2일 차에 노루가 뭘 했는지 잘 기억 안 나… 그냥, 별 이상 없이 청소를 잘 끝냈다. 이렇게 남아 있어.”
“…….”
“무섭네. 그 사이비.”
“그러니까요.”
무명찬란교의 흉내장이는 본인이 일으킨 사건도 다 탈취해서 흡수한 것이다.
없던 일처럼 잔잔하고 평범하게.
‘그게 4급이라니.’
일종의 현실조작이 말이다.
사실 백일몽 주식회사로 따지자면 B에서 C등급 사이 정도니까 하위는 아니긴 했지만.
문제는 무명찬란교에 4급 이상 괴담을 ‘권능’으로 받은 광신도들이 수두룩하단 점이지….
거의 인간이라고 볼 수 없던 아까의 흉내장이를 떠올리며, 나는 침을 삼켰다.
제발, 소원권 포인트 다 모으기 전까진 다시 엮일 일이 없길.
“저… 청소 끝났으니까, 그쪽도 옷 갈아입고 오세요….”
“아. 그렇네요. 노루야, 그럼 얼른 환복하고 올게. 잠깐만!”
“네.”
나는 방에서 나가는 박민성 주임에게 인사했다.
옆에서 경비반장은 박민성 주임이 흘리고 간 종이를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기통에 넣고 있었다.
그 이상했던 근무 팁 쪽지를 말이다.
“…….”
“저기. 이 쪽지 말인데요….”
마침 경비팀장이 먼저 말을 꺼내주는군.
“안 그래도 너무 수상해서 여쭤보려고 했는데, 그게 정말로 경비팀 내에서 돌던 팁이 맞습니까?”
“네… 맞긴 해요. 근데… 저 사람한테는 절대 안 줬을 텐데.”
“…예?”
“오소리 주임이요….”
경비팀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방 밖으로 사라진 박민성 주임이 나간 자리를 보면서.
“저 사람, ‘헝그리 행맨’ 완전 오염자였으니까… 모든 형태의 근무 규칙서에 접촉하면 안 되거든요…. 비슷한 어둠에 오염됐으니까….”
“…!!”
잠깐만, 그래!
‘박민성 주임은 유치원 교육서에 오염된 상태였으니, 비슷한 형태의 글은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
강도는 달라도 동일한 오염을 겪어봤기에 속이 울렁거렸다.
오염이 생각나게 하는 것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경비반장이 하려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더… 오싹한 사실이다.
“오소리 주임은 읽는 것만으로 규칙서를 오염시킬 수 있어요….”
“…….”
뭐라고.
“본인이 깨달으면 너무 의식해서… 오염이 가속될 수 있어서, 지금까진 자기도 모를걸요….”
그렇다면.
“…주임님께 금지된 쪽지를 누가 의도적으로 준 거란 말입니까? 제가 박민성 주임님이 오염시킨 근무 팁을 읽도록?”
끄덕.
경비대원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함정이라! 고전적이군요.
내 대처도 고전적이고 확실한 것부터 튀어나왔다.
“…CCTV를 돌려볼 수 있습니까?”
“보안팀 숙소 구역에는, CCTV 없어요…. 안 좋은 게 찍힐 확률이 높기도 하고…….”
“…CCTV가 없는 걸 노리고 한 거군요.”
“예, 아마….”
대체 누가?
이건 완벽하게 박민성 주임의 근무를 저격한 일이다. 우연과 불운이 겹쳐서 얼결에 흉내장이가 탈출한 게 아니라는 거다.
‘사내의 다른 무명찬란교가 협력한 건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격리실에 있던 무명찬란교가 제대로 탈출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냥 소란만 일으키는 거다.
‘그렇다면 탈출이 목적이 아니라….’
그날 근무했던 청소 직원이 목적이라면.
‘날 X 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제이 씨.”
“예…?”
“혹시 연구팀 직원들도 보안팀 지하구역에 대해 잘 알고 계실 수 있습니까?”
“음… 팀에 따라서는…?”
경비반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구팀에… 의심 가는 직원이… 있어요?”
“…약간은요.”
“누구…?”
“…….”
약간 갈등했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오늘 이 구역의 보안 책임자니까 들을 자격이 있긴 하다.
‘더불어서 사태의 증인이 되어줄 수도 있지.’
좋아. 나는 일부러 선선히 토로했다.
“곽제강 과장님입니다.”
“…….”
“애초에 제가 이 징계를 받은 게 그분이 시킨 일을 멋대로 안 해서입니다. …마무리팀 동기를 죽을 자리에 두고 오라고 하셔서, 무시했거든요.”
“…….”
“물론 과장님 개인을 의심한다기보다는 정황상 추측….”
“알았어요.”
“…??”
“잠깐만요…….”
삐비빅.
경비반장은 휴게실 한편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다가가서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잠시 골똘히 뭔가 떠올리는 듯하더니, 꾹꾹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신호음이 가더니… 달칵.
[네네, 곽제강입니다!]
“…!!”
나는 다이렉트로 이 새벽에 타팀 과장에게 전화를 때린 경비반장을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본인은 표정 변화도 없었다.
“저기… 경비 3팀 J3 반장인데.”
[…J3? ……잠깐만, 이게 누구야?? B조 조장… 아차차, 이제 정예팀이 아니지? 하하, 아예 현장탐사팀도 아닌 분한테 내가 실수를 했네!]
“…….”
[아무튼 이게 얼마 만이야, 그래! 경비팀에서도 반장님이시라는 이야기는 들었지. 이야~ 능력 있는 직원은 달라! 어둠에 못 들어가서 아쉽겠어.]
‘긁는 건가?’
아니, 의문을 가질 것도 없다. 박박 긁는 것 같은데…?
[아무튼 무슨 일로 갑자기 연락했지? 오늘 당직이었던가? 그거 보안팀 구역 전화지?]
[무슨 사건이라도 있나? 아, 혹시 어둠에 꼭 들어가고 싶다, 그런 거라면 안타깝지만 못 들어주는데 말이야. 하하!]
나는 긴장한 채 경비반장을 보았다.
“저기.”
[으응?]
“있잖아… 내가 어둠에 못 들어가긴 하지만…… 사람은 죽일 수 있거든.”
[……!]
“그냥… 그렇다고.”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
와.
“그러셔도… 괜찮은 겁니까?”
“예… 뭐.”
경비반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별로… 안 통하긴 할걸요……. 연구팀 직급 높은 애들은…… 음.”
경비대장이 단어를 골랐다.
“미쳐서요….”
“…….”
별로 고르지 않은 듯하다.
나는 가까스로 응대했다.
“어쨌든 그분 반응을 보니, 음, 제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 보안팀 구역 근무 중에 무슨 일 있었냐’라고 은근히 간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을 보아. 아무리 생각해도 곽제강이 관여한 일인 것 같다.
‘내 MZ력에 질려서 관심을 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쉽게 돌아가진 않는 것 같다.
‘미치겠네….’
…대응책을 다시 마련해야겠다.
어쨌든, 나는 상대에겐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사합니다. 제이 씨.”
“음, 그럼… 다음에도….”
아하.
“간식이라도 들고 또 찾아뵙겠습니다. 도넛 같은 거요.”
“네.”
의외로 뇌물 코드가 쉽구만.
“어쨌든… 조심해요…. 걔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
나는 약간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제이 씨도 연구팀과의 갈등으로 안 좋은 경험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
경비반장이 눈을 피한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인데.”
짧은 침묵.
“이상한 동화에 들어갔거든요…. 그리고 아주… 아주 나중에 나왔어요.”
그리고 경비반장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
‘연구팀이 문제를 일으킨 동화 괴담.’
사실 그 문장만 듣고도 눈치챘다.
경비반장이 대체 어떤 어둠에서 오염되었던 건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정예팀 네임드 캐릭터가 있었다.
그 캐릭터가… 경비팀이 된 처절한 탐사기록도.
Qterw-A-37의 연구 중 실종된 직원의 녹음기록은 ‘그리고 모두 불행하게 살았답니다’ 문서를 확인.
‘모르는 척하면서 더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네임드 캐릭터를 한 명 더 확인할 수 있겠지만.
“…….”
나도 그냥 침묵했다.
그렇게 경비반장의 침묵을 존중하기로 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박민성 주임에게 경비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사흘간 청소 작업… 무사히 통과했으니까… 음, 이제… 그쪽도 대충… 보안팀 근무는 될 것 같은데요….”
바로 박민성 주임의 1차 회복 선고다.
“…! 정말요?!”
“예……. 그리고 바깥 외출해도… 될 것 같고.”
“허억.”
“해가 진 후에만 가능하지만….”
으음.
“저, 그럼 혹시 오늘도 가능합니까? 지금도 해가 졌으니까요.”
“노, 노루야? 나 괜찮아. 다른 날 가도….”
“잠시만요…….”
경비반장은 구식 컴퓨터로 어딘가에 보고서를 올리더니, 선언해 줬다.
“오늘 가세요….”
“허어억!”
“이제부터… 주 1회 외출 가능할걸요….”
“허어어억!!”
박민성 주임의 약간 퀭했던 안색에 혈기가 돌아오더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전에 D조였을 때 봤던 그 표정이었다.
“…….”
“저기, 해가 뜨기 전에 돌아오시면 되고… 음…….”
“혹시 주임님께서 못 돌아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회사에…… 구조 서비스를 요청하게 되는데…….”
“…….”
“하지 마요……. 종신직… 하고 싶은 게 아니면.”
박민성 주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예. 꼭 시간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경비반장이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순식간에 외출 준비를 마친 박민성 주임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또 봐요….”
경비반장은 지하를 나서는 우리에게 살짝 손을 들어 배웅했다.
* * *
“와! 밖에 걸으니까 좋다!”
박민성 주임이 싱글벙글 웃으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서울 시내답게 아직도 여기저기서 불빛이 반짝였고 사람이 다녔다.
“아니, 정말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는 것 같아… 별도 보고!”
박민성 주임은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마치 자기 얼굴을 최대한 가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주임에게 허락된 외출 시간은 동이 틀 때까지 보수적으로 잡아서 3시간.
‘그나마 겨울이라 다행인가.’
“주임님, 집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아, 음… 병원에 가보려고.”
“…….”
“가족이 입원해 있어서. 아마 자고 있겠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올까 해.”
박민성 주임이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었다.
“음, 나는 사실, 가족 때문에 포인트를 모으고 있거든….”
젠장.
“어떤 가족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아, 동생이야. 되게 착해! 그리고 천재다? 바이올린 천재!”
그리고 박민성 주임은 자기 동생이 어린 시절 얼마나 착하고 멋진 아이였는지, 바이올린을 얼마나 사랑하고 잘 연주하는지 신나게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
“아무튼… 그래서 난 동생을 위해 포인트가 꼭 필요하거든. 그러니까 되도록 퇴사는, 안 하고 싶은데….”
“그럼 현장탐사팀으로 복귀하실 겁니까?”
“…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고.”
박민성 주임은 왠지 말끝을 흐리더니, 좀 밝은 목소리로 뒷말을 덧붙였다.
“아, 의외로 보안팀에도 포인트를 많이 주는 부서가 있대. 현장탐사팀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데?”
“…!”
…아.
거기.
“…많이 주는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박민성 주임이 중얼거렸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써야 소원이 이뤄지는 것 같아….”
“…….”
“아, 노루 사택 도착했네!”
박민성 주임이 내 등을 두드렸다.
“얼른 들어가 봐. 난 여기서 택시 타면 돼. 편하게 들어가 봐 노루야. 고생 많았다 진짜!”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작게 말한다.
“저기, 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솔직히, 각오하고 일한 거기도 하고. 이 정도면 내 예상보다 좋은 결과야…. 네 덕분이야. 노루야. 고맙다.”
“…….”
나는 결국 희미하게 웃으며 상대와 악수했다.
“어디서 일하시든 응원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응. 그러면 좋겠다.”
우리는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고, 박민성 주임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떠났다.
“후….”
나는 한숨을 쉬며 사택 건물로 들어왔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소원에 대해서 말하는 박민성 주임에게선 묘한 광기 같은 것이 묻어났다….
-범상한 사람이었는데, 이제야 좀 재밌는 개성을 가지게 됐군요.
그런 무서운 소리는 하지 말자, 브라운….
‘어쨌든, 나도 드디어 잘 수 있겠군….’
한 해의 마지막 날 비번이 발생하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잠만 자면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어두컴컴한 새벽의 사택에 들어와, 오싹함에 스마트폰 손전등을 따스하고 밝게 켜둔 채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단 잤다.
‘곽제강 대비책…은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고…… 제발 좀 쉬자.’
야간의 피 말리는 육체노동, 정신노동에 지친 과로한 몸이 수면을 달게 받아들였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자기 전에 아동용 만화나 코미디를 시청하지 않고도 잠을 맞이한 것은.
나는 꿈도 꾸지 않는 아주 깊고 달콤한 수면 시간을 한껏 누렸다.
그리고 마치 눈 감았다가 뜬 것처럼 개운하게 몽롱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아. 깼냐.”
“…!”
나는 단박에 몸을 일으켰다.
-예고 없이 게스트가 찾아왔군요 노루 씨.
희끄무레한 창가에 누군가 서 있었다.
피로한 얼굴, 평상복, 질끈 묶은 머리, 그리고….
텅 빈 왼손.
“오랜만이다, 노루야. …민성이랑 청소했다며.”
진짜 은하제 대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