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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42화


무명찬란교의 지하 벙커 밖.

인적 없이 텅 빈 지산마을은 이미 반파된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박살 난 지하 벙커의 문을 뛰쳐나오자마자 보인 풍경에 류재관은 혀를 깨물 뻔했다. 그리고….

“오, 나오셨네여!”

바로 옆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

백일몽 주식회사의 정예팀 대리, 이성해가 문 근처에 기대어 서 있다가 그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당장 입을 열려던 류재관은 순간 멈칫했다.

‘어떻게….’

저 정도로 태연할 수 있는 거지?

지금 수십 년간 사람을 가둬놓고 소화하는, 기이한 초자연 재난에 갇혔던 사람 둘이 빠져나왔는데 말이다.

확정된 죽음이었다.

심지어 한 번 닫힌 상자는 다신 열리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강조해서 들었다. 나온 류재관도 이게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인데….

“왜….”

“안 놀랐냐구여?”

…!

“그거야 뭐… 직원님과 함께 들어가셨잖아요.”

그녀가 류재관이 들고 있는 ‘포도 요원’을 본다.

이성해의 동공에 빛이 반사된다.

“마스코트님이 그 상자보다 강하시거든여!”

“…….”

마스코트?

낯선 호칭에서부터 기이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 호칭으로 불린 김솔음을, 류재관은 무심코 내려다보며 스스로 되묻는다.

나는 어떻게 빠져나온 것인가.

‘…아까 들었던 소리.’

기이한 소리를 지껄이던 상자 속 구도자를 지독히 기계적으로 뒤틀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

‘…포도 요원?’

“어쨌든, 동료 요원분 행방 찾으시나여?”

“…!”

이상한 상념에서 빠져나온다.

“그렇습니다.”

숨을 들이쉰 청동 요원이 다시 상황에 집중한다.

그러니까, 최 요원의 행방은….

“다들 저기 계시는데여.”

쿵.

마침 굉음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류재관은 황급히 고개를 움직였다.

허공에서 시퍼렇고 거대한 작두날 둘이 사람의 팔에 들려 신명나도록 움직이는 모습을.

최 요원이다.

작두가 바닥을 향해 다시 망설임 없이 꽂힌다.

목표물을 향하여.

‘…저거!’

“음. 아마 화가 나신 것 같아여.”

달려가려던 류재관의 귓가에 이성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처음에는 저 요원님도 어떻게든 상자를 다시 열어보려고 한 것 같았는데요. 뭐든 빈틈을 분석해 보려구 하신 것 같기도 하구여.”

류재관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멍하니 상자를 보고 있다가, 결국 어떻게든 닫힌 상자를 분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행동할 사람을.

지금까지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침착함을 되찾고, 좀 무모한 행동을 해서라도 이 상황을 헤쳐나가 사람을 구할 방법을 찾으려 들 요원.

“막 손도 떠시구, 너무 힘들어 보이셔서 저도 도우려고 했는데요. 근데 그때 호 이사님이 되게 얄미운 소리를 막 하시더라구여.”

“…!”

-너무 안타깝네요. 하필 노루 님이 들어가셔서.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두 명이 들어갔으니, 이 상자는 앞으로 수십 년은 안전할 거예요. 축하드려요!

-재난관리국이 좋아하는 상황이네요.

“진짜 못 됐더라구여? 자기가 밀어놓구.”

류재관은 입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분노와 걱정.

“그 말 듣고 요원님이 상자에서 손 떼더니 품에서 뭘 꺼내더라구여.”

그리고….

“문이 부서졌어요.”

쿵.

옆에서 다시 굉음이 울렸다.

먼지가 여기까지 날려온다.

“…!!”

이윽고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다.

작두에 관통당해 땅에 꽂힌 누군가의 모습이.

“오, 잡으셨다.”

호 이사다.

정장을 입은 자의 가슴에 거대한 의식용 작두 두 자루가 꽂혀 있다.

“괜히 화내시는 데 방해될까 봐 빠져 있었는데여, 슬슬 뒤처리 도와드리러 가도… 엥?”

류재관은 달려갔다.

‘안 돼.’

보았기 때문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바닥에서 먹물이 올라오며 글자를 그리고 있었다.

글자는 붉고 푸르게 물들며 원형의 문양을 구성한다.

들리기 시작한 꽹과리와 북, 방울 소리.

‘굿판…!’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굿판을 벌이는 건 하나뿐이다.

‘제물굿…!’

재난관리국에 전해지는, 강대한 초자연적 귀물을 공양하는 절차였다.

저 백일몽 주식회사의 이사라는 작자를 통째로 공양해서 신적 존재를 불러내, 상자를 부수려는 생각이다…!

분노와 목적의식이 일치한 거다.

‘하지만.’

“요원님!”

그건 최 요원이 쓰면 안 된다!

최 요원은 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기원하는 듯한 입 모양.

축문을 읊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소리는 들리기에, 그리고 그 소리가 아주 낯익은 목소리였기에.

“요원님!”

최 요원이 하던 것을 중단하고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친 최 요원의 동공이 커진다.

놀람.

의심.

환희.

안도.

그리고… 울컥함.

“재….”

“요원님!!”

류재관은 달려가서 멱살을 잡아 올렸다.

“요원님은 제물굿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않습니까!!”

“…….”

“쓸 이름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면….”

“청동아.”

흉터 많은 두 손이 류재관의 어깨를 꽉 잡는다.

“고맙다….”

“…….”

멱살이 풀린 최 요원이 스륵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에서, 류재관은 이 사람이 얼마나 긴장하고 심적으로 몰려 있던 건지 알아서 순간 만감이 스쳤다.

자신을 제외한 현장 팀원이 전부 눈 깜빡할 순간에 초자연 재난에 잡혀, 수십 년간 고문당한 뒤 사망할 것을 깨달았을 때 선배의 심정.

동시에 울컥했다.

‘자기는…!’

맨날 혼자서 제일 위험한 시도나 하는 작자가!

그래도 울컥거림은 금방 가라앉았다.

일단 포도 요원과 자신 모두 무사히 나오긴 했으니까.

대신 그는 최 요원의 허리춤에 달린 작은 구슬에 주목했다.

그 간이 유리 감옥에 이미 누군가 들어 있다.

지산 마을에서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했던 자.

송골매라는 이상한 이름을 쓰는 직원이다.

“…그건, 일부러 넣으신 겁니까?”

“어. 괜히 휘말려 든 시민님 다치실까 봐 일단 이렇게 해뒀지.”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협조적이었다며, 최 요원은 그제야 씩 웃어 보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류재관은 겨우 한마디 했다.

“앞으로는 제발, 제발 무모한 짓 좀 하지 마십시오.”

“하하….”

대답은 최 요원에게서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에, 눈물겹네요.”

의식용 작두 두 자루에 의해 제압된 초자연 재난.

백일몽 주식회사의 호 이사.

그것은 웃고 있었다.

작두에 관통당한 것에 눈살 한번 찌푸리지도, 고통스러운 신음 한번 내지 않는다.

도리어 태연히 양손을 들어서 가슴팍을 거의 두 동강 내듯이 가른 거대한 작두날 표면에 손을 올린다.

치이익, 살이 타는 소리가 들려도 웃는 눈은 변함이 없다.

‘…정말로.’

제압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제 저희 회사 직원은 돌려주시겠어요? 계속 들고 계시네요.”

“…!”

류재관은 당장 뒤로 물러났다.

곁에 있던 최 요원의 눈이 가라앉는다.

버릇 같은 미소도 싹 사라진 이 자가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는 척하며, 쓰러진 ‘김솔음’에게 몸을 숙이고 무언가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포도야. 응응,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작두가 꽂힌 여우 역병을 돌아보며 웃는다.

“포도가 퇴사한다는데?”

“그래요? 직접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한번 깨워보시겠어요.”

“싫은데?”

최 요원의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튄다.

“자는 애를 왜 깨워. 우리가 알아서 잘 보양해 줄 테니까 그쪽도 감옥에서 쉬라고.”

그리고 주변의 동료를 돌아본다.

“안 그러냐, 청동….”

“…….”

하지만 류재관은 동조하지 않는다.

그 미묘한 기색을 최 요원은 눈치챈다.

그리고 상황에 지나치게 안도한 나머지, 순간 미뤄둔 사태 파악을 위한 질문이 떠오른다.

대체.

상자에서 어떻게 나온 건가.

“청동아.”

왜 똑같이 나왔는데, 김솔음은 이 난리통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가.

“저런… 안 일어나시나 봐요.”

“…….”

“제가 한번 해볼까요?”

“닥쳐.”

“130666 직원님, 깨어나서 근무대기 하실 시간입니다.”

그 순간.

130666은 몸을 일으켰다.

검은 연기.

검은 제복 사이로 짙게 피어오르고, 노란 등불이 번뜩이고, 기이한 존재감이 무겁게 먼지 쌓인 땅을 짓누른다.

뿔 달린 것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가만히, 미동도 없이 코트를 늘어트리고 서 있다.

‘…….’

무언가 이상했다.

‘이건.’

이전과 다르다.

아까는 기이하고 인간이 아닌 것이 분명한 실루엣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태도와 반응에서 나오는 분위기.

보자마자 포도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실루엣으로 억지로 뭉쳐놓은 무언가.

등골이 찌릿해지는, 요원으로서의 귀납적 본능.

‘초자연 현상이다.’

그래도 입은 열린다.

“…포도야?”

연기가 먼저 돌아본다.

느릿하게 발밑에 깔리는 검고 어스름한 것 위에서 번뜩이는 가스등 불.

뿔 아래 시선.

부적절한 호칭

사유 : 비공식적

“…….”

최 요원은 말문이 막혔다.

몇 번 입을 달싹거리던 그가 말을 완성한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공식 호칭 없음

권고 : 등록번호 130666

“…번호로 부르라고? 너 지금….”

“잠깐.”

류재관이 다급히 끼어든다.

“포도 요원.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혹시 통증이 계속되거나, 이상한 속삭임이 계속 들리는 상태인 겁니까?”

연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는 특수부서의 검은 직원은 몇 초 후에 글자를 표기한다.

알 수 없음

“…….”

“저런.”

호유원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기대랑 다른 상태인가 보네요?”

“너…!”

“130666 직원님. 회사 임원이 구속된 상황이니까, 이것 좀 뽑아내 주실래요?”

검은 연기가 작두로 쇄도한다.

“…!”

쨍그랑.

뽑혀 떨어지는 의식용 작두의 날이 바닥에 부딪히며 청명하고 딱딱한 소리를 낸다.

자유의 몸이 된 호유원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최 요원이 다른 제압 수단을 꺼내 들며 달려들려 했으나….

연기가 막는다.

“…!”

경고 : 보안 위험 행위

재시도 시 제압 수위 변경 예정

“…….”

위험하다.

정말로 위험한 것을 마주했을 때처럼 목뒤가 쭈뼛 솟는 경험.

“…너,”

떨리는 눈이, 연기 너머 삿된 것을 본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것도.”

호유원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 목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상자가 좋지 못한 영향을 준 모양이에요. 그렇죠?”

“상자? 너나 네 사이비 회사가 한 짓 같은데.”

“글쎄요.”

웃음소리.

“그런데 어쩌죠. 저는 대답해 드릴 의향이 없는데… 계속 궁금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최 요원이 작두를 거둔다.

대치 상태에 있던, 한때 그와 함께 근무했던 존재를 보다가….

“하나는 확실히 알았는데.”

작두가 연기 너머 삿된 것을 가리킨다.

현무 1팀 요원이 선언한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호유원 이사는 초자연 재난이다.”

표적 선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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